필리핀에는 70가지 이상의 지역언어(사투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 약 9개 정도의 지역 언어가 90%정도의 필리피노들에 의해 사용된다고 한다. 발음이나 문법에 유사한 점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지역 언어를 쓰는 사람들 끼리는 서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따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루손 중부의 팜팡가노(팜팡가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역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세부아노(세부 지역에서 사용되는 지역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필리핀어'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지역 언어들 중 마닐라 등에서 주로 쓰이는 '따갈로그'를 말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할 수 있지만, 기본적인 따갈로그 몇 마디 쯤은 할 수 있어야 필리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필리핀의 영어 엑센트
필리핀에서 영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00년대 초반부터 였다. 처음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법으로 영어가 사용되었고 그리하여 현재에는 필리핀 전역에서 영어가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필리핀인들은 영어를 미국이나 영국에서 쓰이는 것과는 약간 다르게 자신들만의 고유한 발음적인 특징을 가미하여 사용한다. 예를 들어 영어어 'i' 와 'ee' 발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big'은 발음 기호로는 [big] 이고 'beeg'는 [bi:g]로 긴 발음이다. 하지만 이 두 개를 그냥 똑같이 발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a'의 발음을 무조건 '아'로 발음하여 bank는 '방크', ham은 '함' 등으로 발음한다. 한국사람 뿐만 아니라 미국사람들도 헷갈리는 발음이다. 또한 'f'와 'p' 역시 발음을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장 흔한 예를 들면 '필리핀 사람의'라는 뜻의 'Philippine' 혹은 'Filipino' 의 Ph와 F는 모두 'f'로 발음해야 하지만 필리핀인들은 그냥 'Pilipino'로 'p'로 발음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필리핀어에도 'f'발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th'와 'd'의 발음도 구분되지 않고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발음할 때 이처럼 다른 방식으로 한다고 해서, 반대로 영어를 할 수 있는 외국인이 필리핀인들에게 필리핀 사람들과 똑같은 발음으로 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발음을 하지 못할 뿐, 원래의 영어로 이야기를 전달하면 자연스럽게 알아듣는다. 필리핀인들이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서 절대로 큰 소리로 말하지는 말아야 한다. 큰 소리는 상대방에게 당신이 적대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는 것이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언어는 문화를 반영한다
필리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그들의 성향을 알 수 있다. 필리핀인들은 대개 상대방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용어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상대방의 이름 앞에 그 사람의 직위를 붙여 부르는 경우가 있다. Mr.Cruz라는 이름을 그 사람의 직위에 맞추어 변호사이면 'attoney Cruz', 엔지니어이면 'engineer Cruz', 건축가이면 'architect Cruz' 등으로 사용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고위 공직자들은 그들의 이름앞에 직위를 붙여 불린다. 예를 들어 시장의 경우 'Mayor Cruz'로 불리며 그의 아내는 'Mrs Mayor'로 불린다. 계급이 낮은 경찰이나 군인을 'captain'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높여 주고 나를 낮추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부심을 가지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경우중 가장 흔한 경우가 식당의 웨이터나 택시 기사를 부를 때 인데, 이들을 'boss' 혹은 'manager'라고 부름으로써 상대방을 존중하는 의사를 비추고 이에 따라 나도 상대방에게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같은 호칭은 필리핀의 성향인 'amor-propio(자존심)'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필리핀인들은 자존심이 아주 강하기로 유명한데, 이 자존심을 서로 세워주는 호칭을 불러주면 서로간의 관계도 돈독해지게 된다. 또한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무례하게 대하면 주위의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사람에게 존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잘하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존중받는다. 특히 자신이 데리고 있는 운전기사나 회사직원들에게 잘해주는 상사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서 존경을 받는다. 한국적으로 생각해 아랫사람을 규율로만 대하는 것으로는 존경심을 이끌어낼 수 없는 곳이 필리핀이다. 아랫사람을 존중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존칭을 써서 불러주는 것. 간혹, 한국사람은 필리핀에서 식당 종업원이나 운전사에게 '어이' 혹은 '야' 등의 호칭을 쓰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는 필리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그 뉘앙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필리핀식 영어 - 2
미국이나 영국에서 쓰이는 단어와 다소 다른 뜻으로 쓰이는 '필리핀식 영어'가 몇 가지 존재한다. 'D'는 마치 'the'와 같은 정관사처럼 발음되어서 '강조'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하고, 프랑스풍의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 등의 이름에 'D'를 붙여 " D'Pinoy " 혹은 " D'Angel Cocktail Bar " 등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처음보면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생기지만, 이것은 단지 좀 더 멋있게 보이려는 의미없는 말이다. 'peacetime'은 필리핀이 미국에 점령당한 후부터 2차 세계 대전이 있기 직전 까지의 기간(1902년~1941년)이나 혹은 단순히 2차 세계 대전 이전의 기간을 말한다. 대부분의 필리피노들은 현재의 평화로운 시기를 당시의 'peacetime'으로 비유한다. 도시에서 정전이 되는 경우 영어에서는 'power stopage' 등으로 나타내지만 필리핀에서는 'brown out' 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쓰이는 'brownout' 은 부분 소등, 등화 관제의 뜻이다. 또한 필리핀에서 누군가에서 한턱 낼 때는 'blowout'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미국에서는 타이어 펑크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Sir' 이나 'Ma'am'이 직접 당사자를 부를 때 쓰는 표현이지만, 필리핀에서는 미국 점령 초기에 미국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이 표현을 가르친 후,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거의 모든 사람에게 이 표현을 쓰게 되었다. 또한 제품의 원래 명칭보다는 특정 상표를 대신 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과거 치약은 '럭키치약'으로 통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에서 toothpaste는 'Colgate(콜게이트-치약 상표)'로 불리는 경우가 많고, 카메라는 'Kodak'등으로 대표적인 상표가 전체 제품을 나타내는데 사용되는 예가 있다. 'Cowboy'는 소치는 사람이 아닌, 한국의 '터프가이'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반면에 'cool(죽여준다)'나 'chicks(젊은 여성)'등의 단어는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미국식으로 쉽게 쓰는 표현이다.
필리핀인과 대화시는 문화적인 요소를 고려
언어에서 오는 오해는 단지 필리핀인들의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이 보다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시간'에 대한 관념을 볼 때, 서양에서는 1초,2초가 변하는 디지탈 시계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지만,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디지탈화된 개념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시골에서 길을 물을 때, 한국이나 서양 사람들의 경우, 차로 이동할 때, 혹은 걸어서 이동할 때, 거리가 어느 정도면 대략 몇 분이 걸린다는 개념으로 대답을 하겠지만, 필리핀 사람들에게는 그 장소가 자신이 친근한 장소이면 '바로 길 건너' 혹은 '금방 도착하는 거리'로 대답하게 된다. 실제로 걸어서 얼마가 걸리느냐가 중요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친숙한 곳인지가 더 중요하게 생각된다. 영어에서는 높임말이 따로 없지만 'Sir' 혹은 'Please'라는 말을 사용해서 존중을 나타내듯이 필리핀에서는 주로 'Po'를 붙여 존중을 나타낸다. 이 'Po'는 따갈로그에서 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문장을 사용하면서도 함께 쓰여질 수 있으며 상대방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거나 어른인 경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필리피노의 'Yes'는 항상 여러가지 뜻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필리핀 사람들은 상대방의 기분을 최대한 고려해서 대답을 한다. 상대방의 질문에 비록 'no'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혹은 자신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위해 'Yes'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직접적인 질문보다는 간접적인 질문으로 상대방의 의사를 분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드럽게 말하고 둘러서 얘기하라
필리핀에서는 절대로 목청을 높여 큰 소리로 말해서는 안된다. 한국식으로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긴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말자. 목소리가 높아지면 필리핀 사람들은 이 사람이 나와 싸움을 하겠다고 생각하거나 위험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자기방어적인 측면에서 갑자기 위험한 행동(가드의 경우 총을 쏘게 된다든가)을 유발하게 한다. 필리핀 사람들이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할 경우, 우리식으로 '네가 이것을 잘못 했으니 넌 나쁘다. 빨리 사과하라'고 말하면 필리피노는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어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발생한다. 상대방이 잘못을 했다 하더라도 간접적으로 '네가 한 행동이 어떤지 한번 생각해 보라. 그 행동으로 인해 내가 받은 피해는 이러이러하다' 등으로 표현하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