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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환경영화제 미니 워크샵 “재앙의 물길, 한반도 대운하” 발표문
4월 14일부터 청소년들이 강을 걷고 있습니다. 경부운하구간을 직접 걸으면서 강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강강수월래단의 지원단장을 그들과 일상을 함께 하며, 강을 걸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편지로 써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보내고 있는데, 발표할 내용은 그 편지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작성한 편지 내용도 함께 전달해 드리고자 합니다.
강을 두고 운하 찬반 논쟁을 하는 것은 강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입니다.
강은 그 자체로 존재이고, 가치입니다.
강 노래하기 첫 번째 편지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과정보다는 결과 좋으면 그만이다는 풍조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이죠.
운하 문제는 간단하게 접근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반도의 지형뿐 아니라 이 땅을 밟고 사는 모든 사람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운하는 강을 두고 거대한 두 담론이 충돌함을 의미 합니다.
충돌의 결과는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운하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운하!웃나!우나! 두 번째 편지
1987년 이후로 청소년들은 사회 문제에 대해 그들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학교라는 세계에서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사회의 최종 승자가 되기 위한
하드 트레이닝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진작 그들이 살아갈 미래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조차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정되곤 했습니다.
운하 문제는 청소년이 살아갈 미래 사회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운하 문제에 대해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는 주제와 ‘운하!웃나!우나!’는 부제로
청소년 강강수월래단(江江水原來 : 강을 원래대로 바라보자는 作語) 기행을
떠나기로 하였습니다.
저도 그들과 한강, 낙동강가에서 생활 하며,
강과 주민과 청소년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이 땅을 살아갈 뭇 생명들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고자 합니다.
운하!웃나!우나! 다섯 번째 편지
“하천과 인간의 역사는 공존과 공생의 역사였습니다.
하천은 신이 인간에게 보내 준 생명의 원천이며,
맑은 하천의 흐름은 오염되지 않은 정신의 상징으로,
깨끗함을 소생시키는 장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또한 하천은 사람의 정서를 키우고, 마음을 다스리는 장소로서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고 생활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학의천 감시단 까페에서>
이처럼 하천은 훌륭한 학습의 장소입니다.
운하!웃나!우나! 일곱 번째 편지
오늘은 강을 주제로 한 시 한편으로 문을 엽니다.
바람이 머무는 강
윤 정 강
서쪽으로 기우뚱 거리는 앞산이
해질녁 강 저편에 불현듯
세월을 안고 멈추어 서 있다
고요를 동반한 애꿎은 그리움 하나
눈물 다듬어 곱게 깃을 세우고
한 조각 비워야 하는 마음을 밀어낸다.
해묵은 그리움이
물위에 동동 걸음 치며
줄줄이 매달린 별 밭으로 흩어지고
품에 안겨온 허드레 불씨 한 줌 달래어
돌을 깍는 아픔으로 화해하며
흐느끼는 강물의 소리
바람이 머무는 강물위에
사랑의 이름표를 밝히는 그리움
기억 밖으로 달아난 바람 앞에
노을 빛 달구어
서러움으로 서 있다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청소년들이 신청을 했습니다.
기본 수월래단이 25명으로 늘어났고, 지원단 10명과 구간 참가자를 합하면
하루 평균 60명이 넘는 큰 식구가 되었습니다.
운하!웃나!우나! 여덟 번째 편지
저는 경기도 여주군에 있는 양화나루터에 있습니다.
한강 하류 방화대교에서 출발한 지 벌써 6일이 지났습니다.
해가 지면 강가는 축제의 장소로 바뀌고,
오랜만에 조용한 농촌이 싱그러운 웃음으로 가득합니다.
강과 인간은 태초부터 공존 공생 관계였음을 매일 확인합니다.
운하!웃나!우나! 아홉 번째 편지
어제 오늘 이틀 동안 걸은 강 길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강가 녹음은 수십 가지 초록빛으로 단장 하고,
땅에는 앞 다투어 비집고 나오는 생명들의 축제가 무르익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도로(운하)가 자연과 인간을 단절시킨다면 길은 그것들을 연결시킵니다.
현대문명이 길을 도로로 왜곡시켜 놓았다면
강강수월래단은 그 도로를 부정하고 다시 길 위를 걷습니다.
똑같은 강 길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마다 독특한 모습을 뽐내면서 전체는 강을 유지합니다.
진정한 하나 됨은 이렇듯 다름의 소중함을 전제합니다.
강물이 흐르는 것은 깨끗해지기 위함입니다.
쉼 없는 흐름의 여정 속에 수많은 만남을 통해 물은 비로써 깨끗해집니다.
강물은 또 바다에 닿기 위해 흐릅니다.
바다의 어원이 ‘받아들임’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지극히 낮추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바다가 됩니다.
운하!웃나!우나! 열 번째 편지
충주는 수월래단이 남한강과 작별을 하고 달천을 만나는 곳입니다.
한강을 출발하여 이곳까지 오면서 많은 도시, 시골을 번갈아 지나왔는데,
이곳을 지나 다시 도시를 만나는 날은 거의 일주일후에야 가능한데
그만큼 달천 상류는 오염원이 없어 물이 맑기로 소문난 강입니다.
도시와 시골 강은 접근성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냅니다.
도시를 통과하는 수월래단이 너나 할 것 없이 힘들어 하는 이유는
강 접근을 막은 도로를 따라 걸어야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가능한 모든 개발로 강과 인간을 단절시켜 놓고 선진도시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도로를 질주하는 차를 타고 바라보는 도시 강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걸어서 만나는 도시 강은 삭막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강 길을 따라 사람과 생산물이 모여 든다는 것을 간파한
인간은 강변도로를 우선적으로 건설했습니다.
도로는 기술문명의 빠른 전파를 통해 획일적 문화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강은 기본적으로 문화의 다양성을 전제합니다.
강변도로는 강과 인간의 단절 뿐 아니라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는
신호탄이었던 것입니다.
문득 왜 강을 江이라 썼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물(水)과 만듬(工)이 강(江)이라, 그리고 물은 생명(生命)이라,
여기서 만듬(工)은 창조를 뜻하며,
창조는 오직 신의 영역인바, 강은 신이 생명을 창조하는 곳, 혹은
신이 창조한 생명이 강이기에 강(江)으로 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운하!웃나!우나! 열한 번째 편지
문득 수월래단이 너무 많은 민폐를 끼치며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온 날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남의 호의를 거절하기 보다는 좀 더 편히 지내기 위해
오히려 호의를 구하는데 힘을 쏟은 것 같습니다.
고생을 사서하자는 취지는 아니지만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생활이 강조되어야겠다 싶습니다.
수주팔봉에서 조곡교 구간은 강물이 크게 휘돌아 치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림 같은 강 길이 중간에 뚝 끊어져 산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험하지는 않은 산이나 인적이 없던 관계로 산림이 제법 울창 합니다.
산 길속에서 강을 바라보니 산천초목은 하나입니다.
산천초목은 본디 하나이고, 만물의 근원인데,
인간이 개입하면서 분절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충주에서 이 길은 4km밖에 되지 않는데 돌아가는 도로는
무려 14km나 됩니다. 이곳만 보면 충주와 괴산은 가깝고도 먼 사이입니다.
운하!웃나!우나! 열두 번째 편지
달천은 칠성면 부근에서 다시 쌍천에게 수월래단을
넘겨두고 무심히 흘러갑니다. 길을 떠난 지 16일 만에
우리는 한강의 거의 최상류에 다다른 것입니다. 하루 밤만 괴산군 연풍에서
지새고 나면 이화령을 넘어 문경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낙동강 유역에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것입니다
한반도 운하 사업이 100대 국정과제에서 빠졌다는 데, 오히려 걱정됩니다.
낙동강 유역은 현 정권의 정치적 고향이라 일부 구간이라도 건설한다면
낙동강이 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니다.
그래서인지 낙동강 구간을 앞두고도 고향이 가까워지는 설레임보다는
착잡한 마음이 앞섭니다.
강은 강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운하!웃나!우나! 열세 번째 편지
새들도 쉬어 가며 넘는다는 문경 새재(鳥嶺). 서울에서 충주와 수안보 온천 지대를 지
나 30여 리를 가면 만나는 곳이 충청도 연풍(延豊)이고, 이곳에서 다시 심하게
굽은 고개를 올라 조령, 조곡, 주흘 등 세 개의 관문을 지나면 경상도 문경이 나옵니다.
연풍 성지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수월래단은 조령산의
수 십 구비를 돌고 도는 이화령 고개를 힘들게 넘었습니다.
이처럼 험준한 고갯길에 수로를 만들어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시킨다는
사실에 청소년 수월래단은 상상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문경 조령산에서 발원한 조령천은 초곡천을 받아들인
막곡천과 신북천이 만나 이룬 강입니다. 이후 조령천은 영강에 합류되고,
영강은 낙동강으로 흘러갑니다. 한 친구가 화이트 보드에 “강은 차갑다”라고
낙서 했습니다. 텐트 옆을 흐르는 막곡천은 그만큼 맑고 깨끗합니다.
운하!웃나!우나! 열네 번째 편지
문경이 탄광도시로 명성을 날릴 때는 많은 광부들로 넘쳐났던 이 진남역도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역이 폐쇄되고 주변에는 늙은 농부의 처소만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하였다 하는데 최근에는 레일바이크를 타러
오는 관광객이 있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저녁에는 서울환경영화제 팀의 도움으로 애니메이션 ‘나무를 심은 사람’으로 유명한
프레데릭 백 감독의 또 하나의 걸작 애니메이션 ‘위대한 강’을 감상했습니다.
강이 어떤 존재이며, 얼마나 소중한 가를 그가 지닌 천부적 재능으로
아름답고 안타깝게 그려낸 이 작품은 다시 한번 우리가 강을 걷고 노래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합니다.
강은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는 곳을 통과할 때마다 어김없이 더러워졌다가
간섭이 없는 곳에서는 다시 맑아지기를 반복합니다.
희노애락, 흥망성쇠로 점철되는
개인 및 인류 전체의 역사가 모두 그런 것은 아닌 가 싶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야영 생활을 할 때는
어느 곳에서 묵느냐에 따라 다음 날 몸 상태가 확연하게 차이가 남을 느낍니다.
자연 속에서 하나가 되어 보내는 밤은 잠들지 않아도
땅과 하늘의 기가 내 몸속으로 들어와 새 기운을 주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지요.
문경에서 내려온 영강이 내성천을 만나 비로써 낙동강 칠백리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홍수가 흔한 것도 아닌데 높고 넓은 제방공사를 하더니,
한술 더 떠서 운하까지 만들려고 한다며 핀잔을 주시는 이곳 신부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한데 무심하게 해는 다시 서산으로 저물고 있습니다.
운하!웃나!우나! 열다섯 번째 편지
상주 퇴강(退江)천주교회는 낙산 가실 성당과 함께 경북 북부 지방을 대표하는 성당입니다.
성당 마당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신부님은 성당의 지리적 위치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셨는데,
20,30년 만에 한번 올까 말까하는 큰물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많은 예산을 들여
마을 앞에 불필요한 높은 제방을 쌓고 있다고 불만이 대단하십니다.
비단 이곳뿐 아니라 낙동강 전 구간에 걸쳐 제방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태풍 매미나 루사와 같은 큰물이 올 때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지류에서
유독 피해가 심했는데, 정부는 근본적인 수해 대책이라 하면서
낙동강 본류에다 제방을 쌓고 있습니다. 이것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유역에 사시는 늙은 농부들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강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강이 되어 흐르고 있더라,
자연은 인간을 보호해 주었는데, 이제는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 줘야겠더라,
운하가 만들어 져도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강가를 지켜야 하는 잡초가 왠지 불쌍해 보였다.
청소년들이 내뱉은 소감의 일부입니다.
조금씩 강에 대한 그들의 느낌이 구체성을 띠기 시작했습니다.
운하!웃나!우나! 열일곱번째 편지
지난 4월 14일 한강 하류 방화대교에서 전국에서 모인 70여명의 청소년이
경부운하 구간에 대한 47박 48일의 대장정을 시작한 지 꼭 한 달 만인
5월 13일 대구에서의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40여년을 딛고 살아 온 고향 땅인데도 이렇게 강을 따라 걸어보기는 처음입니다.
넓은 면적만큼이나 대구를 흘러 나가는 낙동강도 희비애락을 교차합니다.
낙동대교에서 시작되는 대규모 모래 채취장, 금호강의 합류, 성서공단 폐수 유입,
옥포 지역의 대단위 경작, 그리고 현풍면에서 다시 이어지는 모래 채취장 등
인간의 끊임없는 간섭에도 불구하고 낙동강은 그의 자정능력을 힘겹게
발휘하며 유유히 흘러갑니다.
1,2,3,4차 국가공단 조성에 이어 5차 국가공단 조성을 추진 중임에도
수 천 킬로미터를 여행하다 잠시 쉬어가는 두루미들의 귀착지인
해평 습지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을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칠곡을 비롯한 대구 하류 지역을 흐르는 낙동강을 걸으면서
대했던 그 많은 모래 채취장을 구미에서는 볼 수 없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구상 선생 기념관이 있는 왜관을 지나 낙산 가실성당에서 하룻밤을 지샜습니다.
한국에 온 지 41년째인 독일출신 현익현 신부는 대체 물류 수단을 찾지 않고
운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며 운하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청소년들 앞에 솔직 담백하게 말씀하십니다.
“자유란 어떠한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진심을 다해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것”
이라는 신부님의 자유에 대한 정의가 내내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창녕 우포늪을 걸었습니다. 1억 4천만 년 전의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 습지,
2008년 람사르 총회를 창원에서 유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우포늪은
사실, 낙동강의 지류인 토평천의 일부입니다.
낙동강이 범람하면 강물이 토평천 상류로 올라가다가 우포늪에 이르러 머물게 되는데
이때 우포늪에 사는 다양한 식물들이 강물을 머금고 있다가 가뭄에는 다시 낙동강으로
강물을 되돌려줌으로써 홍수조절 기능과 유지수 확보 기능을 합니다.
이 기능을 함에 있어 우포늪은 인간이 건설한 대규모 댐보다도 훨씬 정교하고
과학적인데, 지자체는 관광객만 끌어들이려고 자꾸 제방을 쌓아
우포늪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태해설가는 목청을 올립니다.
“낙동강과 토평천이 우포늪을 존재하게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우포늪에만 관심을 가지고, 낙동강과 토평천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운하와 같은 발상을 한다.“ 며 한숨짓는 이 지역의 한 환경운동가의
탄식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창녕 이방면에서 낙동강은 의령 방면으로 크게 굽이치다가 다시
창녕으로 돌아 나오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창녕 남지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0km만 걸으면 을숙도에 도착합니다.
그들은 이미 550여 키로미터를 걸었습니다.
전 구간을 걷는 22명 청소년들의 기운을 따라 가기에 지원단은 역부족입니다.
이미 체력이 바닥났을 텐데, 쉬는 시간에는 쉴 새 없이 뛰어 다니거나
조잘대며 에너지를 소비하고도 자고 일어나 걸을 때는 마치 첫째 날 걷는
같은 속도와 힘을 보여 줍니다.
아무리 자신이 선택했다고는 하나 성인도 하기 힘든 여정을 소화하려면
불평불만도 하고, 중간에 낙오자도 생길 법 한데, 체력이 안 되거나 공동체 생활이
어색하여 중간에 포기한 서 너명을 제외하고는 22명의 전 구간 참가자가
간혹 팥빙수를 사 달라, 목욕탕에 보내 달라, PC방에 가고 싶다는
하소연을 하는 것 외에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들입니다.
이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소망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의 눈으로 본 강과 운하>
구슬한
시간이 지날수록 음..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강이 보이고, 강 옆에 사는 새가 보이고, 내 옆을 걸어가는 짐을 든 친구가 보이고,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는 기본수월래단이 보이고, 참.. 신기했다. 강이 생각나서 맨날 쓰던 샴푸도 안 쓰고, 발우공양도 맨날 하고. 그렇게 걸으면 걸을 수록 내 자신이 깊어져가고 점점 배려를 하기 시작하는게 보였다.
진 종현
제가 강을 걸으면서 본 강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운하를 파면 제가 본 수달이 사는 수주팔봉 및 저희 집 근처에 있는 낙동강과 여태껏 본 강, 산은 다신 못 보는 거잖아요. 그런 건 싫어요.
김용훈
강에 대한 여러 가지 영화를 봤는데 그 중에서 가장 기억 남는 것이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고 약간 충격 받았다. 나는 절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이나 동물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다.
박솔비
흐르는 강은 그래도 흐르게 하라 라는 말은 정말 맞다. 솔직히 화가 나기도 하다. 언제까지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을 파괴시킬 테인가. 국민과 대통령 모두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 흐르는 강에 햇살이 비춰지며 반짝거리는 걸 봤는가? 그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고, 푸르디푸르고 알록달록한 산도 없어지고. 콘크리트와 어우러져 살고 싶은가?
유지원
내가 걸었던 강과 자연은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고, 아름다웠다. 뭐든지 다 받아주고 안아 줄 수있게 보면 자연은 어머니 같았다. 열매도 꽃도 풀도 나무도 강도 모두 자연이 하늘이 준 고마운 선물인데 사람들은 그 감사를 넘어 이젠 이용을 하려는게 가슴 아프다.
노디
끈기도 없고 막연하게 온 내가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연’ 때문 인 것 같아요. 사실 자연이 왜 좋은지, 왜 보호해야 되는지 관심 없었어요. 특히, 운하는 여기오기 전에는 뭔지도 몰랐어요. 근데 걷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산과 강, 자갈과 모래, 흐르는 눈물은 말려주고 볼을 식혀주는 바람, 지루한 일상에 일탈을 불어 넣어주는 비, 늘 내 옆에서 나를 위해 함께 있어 주었는데 난 몰랐어요. 근데 이제는 일부가 된 것 같아요. 함께 인 것이 당연하고 익숙해요.
내가 본 이 아름다운 자연을 나누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요. 말로도 글로도 사진으로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강이 얼마나 로맨틱 한지 나누고 싶어요.
이예진
만약 이 운하를 건설한다면 자연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저는 운하를 건설하게 됐을 때 가장 슬픈것이 저희가 걸었던 이 길을 다신 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너무 슬퍼요. 지도에 표시를 해가면서 걷는데 다시 걷고 싶어도,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이 길을 생각하니까 떠나기가 싫더라구요.
박솔비
강물에 햇빛이 비춰 질 때, 강물이 반짝반짝 하는 걸 보신적이 있으신가요? 강물은 아름답고 모든 걸 포용합니다. 대통령님, 흐르는 강물은 그대로 흐르게 해야합니다. 인간의, 당신의 욕심으로 환경을 망가뜨려서는 안됩니다. 제발, 강물을 그대로 냅둬주세요. 운하는 안됩니다.
무명
내가 방금 낙동강을 지나왔거든요? 근데 강물이 반짝반짝 엄청 예뻐요! 중학교 때 수업이 너무 하기 싫어서 학교 앞 개울에 가서 하루 종일 발 담그고 앉아있던 적이 있었어요. 우와 근데 발에 모래랑 물이랑 바람이랑 찰랑찰랑 너무 기분이 잠 오는 거 같기도 하고 왠지 이미 꿈나라 인거 같기도 하고
개울에 하루종일 있던 내가 학교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개울 저 위쪽에서 이따만한 포크레인이 졸졸 개울을 시커먼 흙탕물로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그치만요, 나 다짐하는데 이번 포크레인 때는 가만있지 않을 거에요. 용사님이 목숨 바쳐 이뤄낸 민주주의 세상에 내 작은 발걸음으로 알릴 거에요. 쉿, 잠시만요.. 우아~ 들려요? 우리가 지금 걷고 있어요.
김명주
저는 제가 보았던 강을 대통령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반짝이는 강을 따라 걷고 나서 운하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이규호(민들레 사랑방)
TO. 아버지
아버지, 아들입니다.
왜 이명박을 지지하셨나요?
지금 제가 아버지 덕분에 여기서 정말 열심히 걷고 있습니다. 비록 3일이지만 제가 열심히 보고 느낀 강은 너무 아름답고 장엄한 것이 였습니다. 그런 강을 겨우 돈 때문에 죽여야 되는 겁니까? 대운하는 강을 흐르지 못하게 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정말 많은 생명들을 죽여 생태계를 파괴시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그렇게 중요해 하시는 돈!
대운하 만드는 돈도 결국 전부 저희의 세금으로 충당하는 겁니다. 아깝지 않으세요? 제발 아버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주세요. 그럼, 마저 걷고 좀 있다 뵙겠습니다. 돌아가면 치킨사주세요.
걷고 있는 아들올림
윤둥실
스스로 그러한 너에게..
너에게 많이 미안해...
너는 나에게...
푸르고 너른 잎으로 시원하고 여유로운 휴식을
선물해 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모래의 부드러움과 동시에 발목을 잡는 강인한
힘으로 나에게 너의 큰 존재를 알게 해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굽이굽이 신비하게 이어지는 강줄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작지만 큰 소중한 행복이 무언지를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너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유혜지
40여일간의 그것
강은 물이다. 물은 생명이다. 자연도 생명이다. 인간도 자연이다.
강은 모래다. 모래는 흙이다. 흙은 생명이다. 인간도 흙이다.
강은 갈대다. 갈대는 바람이다. 바람은 숨이다 숨은 생명이다. 인간도 숨이다.
강은 움직인다. 움직임은 흐른다. 흐름은 생명이다. 인간도 흐른다. 인간도 생명이다.
강은 반짝인다. 별도 반짝인다. 인간의 눈도, 마음도 반짝인다.
강은 살아있다. 자연도 살아있다. 인간도 살아있다.
강도 자연이고 인간도 자연이에요. 자연은 곧 생명이고, 살아있어요
인간이 제 숨을 쉬듯, 강도 제 숨을 쉬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다른 생명도 함께 하고, 그 곳은 해 칠 순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