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장마고인돌과 화왕산
 
 
 
 

회원 알림

 

회원 알림

다음
 
  • 방문
  • 가입
    1. 종합영양제v
    2. 볼매찬
    3. 뮤즈
    4. 구찌
    5. 이것저것
    1. 방울이
    2. 내머리딸기향
    3. 하쿠나마타타
    4. 두두얌
    5. 능슝능슝
 
카페 게시글
창녕문화유적 마령치(마령재)를 역사적 측면에서 재 조명해 보았습니다.
♡돌쇠(손흥태) 추천 0 조회 1,699 11.07.14 16:34 댓글 9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1.07.18 15:39

    첫댓글 이게 뭐죠?
    성산하면 그냥 창녕군의 한개면으로 산이 가로놓여 있으니 그저 경북 지역이 아니고 창녕군에 속해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 글을 세세히 읽어 내리며 역시 창녕은 역사문화의 보고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마디로 길곡면이나 부곡면 산밖이 낙동강과 청도천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창녕에 속한 것과 같은 이치라고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이참에 향토사학적자들 토론이나 한판 붙여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낍니다.
    또 어떤 싸움을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 11.07.18 15:38

    왜? 이런 중요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실이 아직 묻혀 있을까요?
    현대인들은, 아니 우린 그냥 주어진 자신의 눈과 귀만 믿으러 하는데서 이런 중대한 사실이나 아이디어가 상실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적으로 부곡온천 활성화에 대한 어떠한 환상을 가지고 간혹 손여사와 부곡쪽 산을 올라 보는데,
    개인적으로 가진 작은 생각이 위대한 아이디어일지도 모르는데, 그런 분위기, 그런 의견을 개진할 마음을 갖지 못하지요.
    또다른 좋은 생각들도 가끔씩 해보며 그냥 혼자 웃고 맙니다.
    예컨대 제9구단 창원야구장이 북면이나 중리로 오면 우리 창녕은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생각들 말입니다.

  • 작성자 11.07.22 09:38

    얼마전 문화체육과에서 신라진흥왕 행차길을 복원한다기에
    위의 자료를 담당계장과 담당자에게 전자편지로 보내 주었습니다.
    혹시나 561년 신라진흥왕이 창녕에 진출하여 척경비를 세웠을 당시 진출한 길이
    엉뚱한데로 정리될까 봐서 였습니다.
    그쪽에서도 청도방면으로 들어 온것으로는 알고는 잇었는데 다소 차이가 있었던것은
    지금의 국도 20호방면으로 알고 있는듯 하였지요.
    위의 사료들로 추정해 볼때는 청도 - 마령치 - 연당 - 원동 - 간상 방면이라고 전언 한바 있습니다.

  • 11.07.22 16:43

    역사학적 사료도 없이 어림짐작하여 무엇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인것 같습니다.
    참고로 최근에 우리집안 족보 중 일부를 아버지와 컴퓨터로 정리하면서 모르는 글자가 나와서
    향교와 구학을 하시는 함안 선생님께 여쭤 보아도 원형 글자를 찾지 못하여
    아버지께서 제일 근사한 글자로 대체 하시는것을 이것이 선대에 기록한 것과 다르다면 후손들에게 누가 되는 것이므로 모르는 그 글자는 그냥 비워 두었다가 인쇄후 복사본을 오려 붙여 두기로 결정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잘 하신다고 그 글자를 대체했다면 그것이 10년, 20년, ....... 100년후에는 사실이 되어버리니 엄청난 사실이지요.

  • 11.07.22 16:44

    한집안의 작은 일도 이러할진대 특정 규모의 향토사에 편리성만 따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아무튼 수고 많습니다.

  • 작성자 11.07.26 14:04

    흔히들 역사는 뒤안길에서 평가 받는다고 하지요.
    돌쇠의 자그마한 노력들이 우리 창녕의 역사를 바로잡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폐교된 성곡초등학교였던 현재의 성곡정보화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던
    장군석이 도난되어 그 옛날 신라의 역참이었다는 표시가 사라져 안타깝다는 점입니다.
    아마 일찍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적시하여 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면 이런 낭패한 일이 없었을 것인데...
    이젠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입니다.

  • 작성자 11.08.04 09:21

    감사드림
    보낸날짜 2011.08.02
    보낸사람 윤상곤
    받는사람 손흥태
    수고 많으십니다
    제가 어릴적(군에가기 전) 넘나들던 고개 입니다.
    재 너머 조상 산소(안국)에, 그리고 할매하고 자주넘던 고개 입니다.
    그후 수봉산 측량기준점 관계로 두세번 간것 외에 요즘에 가본적은 없었는데.,,
    옛날 할매하고 말안재 정상에 있던(성황당, 돌배나무)가 생각 납니다.
    지금은 임도로 많이 변한 모슴이네예
    그 옛날 누구보다 제가 그 고개를 많이 넘어 다녔던 소중한 기억을 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고하세요...

  • 작성자 11.08.04 09:24

    맞아요 지난 봄에 마령재에 갔을때 발아래 연당방면에 큰 돌배나무꽃이 피어 있던걸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사진과 소개글의 제목이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제'로 붙였던 기억이 납니다.

  • 13.01.07 19:50

    관심이 고향을 지킵니다. 두 분...박수!!!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