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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4가지 : 1). 교가개정사유 발췌-교장.hwp 2). 대동모 건의문.hwp 3). 작사자가 밝힌 "남팔아 남아"의 뜻.hwp 4). 모교교가개정요구-42회.hwp 끝. ----------------------------------------- 파일내용 펼침 : 1).교가개정사유 발췌-교장 교가 일부 개정사유 (상략) 매일매일 명문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수많은 일을 했지만 채 마무리 짓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대전고 교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장으로 부임하고 처음 참석한 동창회 모임에서 어느 동문이 의견을 말해 주었다. 교가의 일부 표현이 시대에 맞지 않으니 교육적으로 검토해야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 후 교가를 일부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간간히 제기되었다. 대전고 동문이 아닌 사람한테도 전화가 왔었다. 전국의 고등학교 교가를 수집하는 사람인데 대전고 교가 가사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2011년 3월 14일에는 ‘대전고등학교 교가에 대한 의견 제출’이라는 민원이 접수되었다. 발신자는 ‘대전고 교가 가사 검토를 요청하는 동창회원(42회 32명)’이었다. 민원에 대한 답변을 보내기 위해서 교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먼저 대학교에 있는 동문 교수들의 자문을 구했다. 2011년 4월 1일에 경상대학교 외 14개 대학의 국문과에 재직하는 동문 교수들에게 ‘대전고등학교 교가 바로 알기를 위한 검토 의견 요청’이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대전고 교가 해설(대전고 60년사 발췌), 대전고등학교 교가에 대한 의견 제출(42회 동문 민원)과 강인순 동문 의견(홈페이지 발췌)을 첨부하여 보냈다. 2011년 4월 30일까지 의견을 제출한 동문은 없었다. 그래서 2학기까지 민원에 대해 학교에서 공식적인 답변을 보내지 못했다. 여러 동문들에게 자문을 구해 보았는데 의견이 분분해서 답변을 보류하기로 했다. 2011년 9월 5일에 ‘대전고 교가 검토 재촉구’하는 민원이 다시 접수되었다. 학교 밖에 있는 전문가와 동문의 의견을 구하는데 한계가 있어 내부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먼저 재직 동문과 담당부서의 교사에게 관련 자료를 구해서 검토하도록 했으나 특별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2012년 4월 4일 전 직원 회의를 열고 교가에 대하여 설명한 후 교가 개정에 대한 설문지 조사를 시행했다. 조사 결과, 개정해야 한다 73.2%, 개정하지 않는다 23.2% 이었으며 개정 범위를 묻는 설문에 53.7%는 ‘장백과 남팔’을, 41.4%는 ‘남팔’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하였다. 개정할 경우 표현 문구로 백두산, 계백, 이순신, 대한, 한밭벌, 대한의 남아, 충무공, 광개토왕 등의 대안이 제시되었다. 2012년 10월 28일에 신축 교사 준공식이 있었다. (중략) 준공식 때에도 교가 개정에 대한 비공식적 언급이 있어 검토 작업을 계속하였다. 2012년 12월 8일 대동모(대전고등학교 동문을 위한 모임) 총회에 참석하였다. 대동모는 47회부터 64회까지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론 주도층의 동문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었다. 회의 진행 중에 교가 가사를 개정하여 독창으로 불러 주면서 느낌이 어떤가를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회원들이 교가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건의문을 제출하였다. 2012년 12월 24일에 학생 대의원회를 소집하여 교가 개정 문제에 대하여 논의하도록 하였다. 문법상 오류, 중국 장수에 대한 표현은 개정해야 하고 백두산으로 개정하자는 주장들이 나왔다. 결의는 대의원 상대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자는 것이었다. 설문조사 결과, ‘장백’은 48.4%, ‘남팔’은 75.0%, 멈출‘줄’은 67.1%가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개정 문구로 백두산, 태백산, 대한 남아, 천지, 무궁화, 한반도, 멈출 수, 단군아, 화랑도, 대한아, 한모의, 금강, 태극, 글로벌 시대이므로 바꿀 필요 없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중략) 2012년은 대전고 역사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중략) 100년 역사의 전환점에서 다음 100년을 내다보며 또 하나의 디딤돌을 놓은 한 해였다. 이에 새로운 다음 세대를 위하여 교가 개정에 대해 분분했던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다는 판단을 했다. 학생, 교직원, 동문들의 교가를 개정하기를 주장하는 의견이 교육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교가는 학교가 추구하는 교육적 가치를 제시하고 학생들이 교가를 부름으로써 그 교육 목표를 달성하는데 이바지할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뜻에서 교가 가사를 개정하기로 하였다. 가사는 작사자의 ‘작사정신’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개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학교 특성에 맞는 어휘를 선정하며 학생들에게 쉽게 이해되는 가사를 만들기로 했다.
1. 「男八」 대전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신입생들은 제일 먼저 교가를 접하게 된다. 교장선생님의 특강을 통해 교가의 의미를 배우고, 음악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교가를 부르게 된다. 교장으로서 교가를 설명할 때 ‘남팔’이 제일 어려운 과제가 된다. 남팔이란 어휘를 아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은 남팔 장군을 기백이 있는 장군이라기보다 지조가 있는 장군이라고 받아들였다. 또한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요즈음 남팔 장군을 학생들이 추앙해야할 기백 있는 장군으로 설명하기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교가를 개정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남팔’에 대한 설명은 교가를 작사한 지헌영(10회) 동문이 ‘한모’21호 21-33쪽에 ‘대고교가 작사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해설에 잘 나와있다. “「男兒의 氣魄」은 「男八」二字를 冠하였다. 이「男八」二字는 저 唐代의 文豪 韓昌黎(退之)의 「張中丞傳後叙」에서 引入한 것이었다. 「傳後叙」에 보이는 『男八男兒死耳 不可爲不義屈』(男兒 죽을지언정 不義에 굽혀서는 아니된다)에 보이는 「男兒의 氣魄」을 强調한 것인데 「男兒」의 語感을 强化하기 위하여 「男八」을 모았던 것이다.”(한모 21호 30쪽-31쪽) 지헌영 동문의 해설에서 논란이 되었던 몇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첫째, “‘남팔아 남아’가 ‘八道江山에서 南쪽의 사내(兒)중 사내(男兒)’”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둘째, 신당서(新唐書) 권192 남제운 열전(南霽雲列傳)에 의하면 「張中丞傳後叙」에서 引入된 남팔은 남제운임을 알 수 있다. ○원문 : 乃以刃脅降 廵不屈 又降霽雲未應 廵呼曰 南八 男兒死爾 不可為不義屈 霽雲笑曰 欲將有為也 公知我者 敢不死 亦不肯降 ○번역문ː--- 이에 칼로 항복하라고 위협하였는데 장순이 굴복하지 않았고, 또 남제운에게 항복하라고 해도 응하지 않았는데, 이때 장순이 남제운에게 “남팔(南八)아, 남아는 죽음이 있을 뿐으로, 의롭지 못하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 하자, 남제운은, “장차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공께서 절 알아주었으니, 감히 죽지 않겠습니까.” 하고, 또한 항복하지 않았다. 셋째, 「男八」은「男兒의 氣魄」을 강조하기 위한 수식어로 덧붙여 사용되었다. 따라서 남팔이 문제가 된다면 남팔을 대신할 수 있는 수식어를 찾으면 된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이상의 근거에서 ‘남팔’을 대신 할 어휘를 찾았다. 지헌영 동문이 대고의 인간상을 설명할 때 썼던 어휘를 검토했다. “대한 남아, 충청 건아, 대고 남아의 내면에서 發動하여 躍動하는 香氣가 不屈防禦·決死突擊의 정신적 자세를 갖춘 것을 浮刻시키려 한 것이 이 후렴(人間像)이었던 것이다.” (한모 21호 30쪽-31쪽) 지헌영 동문은 ‘남아’를 수식하는 어휘로 대한, 충청, 대고를 사용했다. 이 중에서 ‘남팔’을 대신하여 ‘대한 남아’로 표현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대한’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통성을 나타내고, ‘대한 남아’는 국민의 보편성을 갖춘 어휘로 대전고등학교가 추구할 인간상을 적절히 나타낸다고 판단했다.
2. ‘장백’과 ‘줄’ 언어는 시대를 대변한다는 말이 있다. 요즈음 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는 낯모르는 말이 많다. 특히 카카오톡에 쓰이는 대화나 친구들끼리 어울릴 때 쓰는 언어에는 그들만의 말이 있다. 교실 속에서 사용하는 말도 어려운 말이 있다. 한편 학생들은 한자어로 된 숙어나 오래된 어휘에는 약하다. 교가에 나오는 어휘들도 학생들이 잘 모르는 말이 많이 있다. ‘장백’이란 어휘도 잘 모른다. 지헌영 동문이 사용한 장백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大高校歌의 地緣表現인 제1절은 저 멀리 長白·白馬江·鷄龍으로 돌아 소용돌이처럼 되돌아 磁場中心인 大田으로→ 大高의 동산으로→ .... (한모 21호 29쪽) 해설에서 장백은 장백산, 계룡은 계룡산을 의미하고 있다. 장백산을 ‘다음(daum.net)’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중국에서 백두산을 이르는 말’로 설명되었다. 또한 우리 학생들은 장백산이 백두산을 지칭한다는 것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중국식 호칭인 ‘장백산’ 대신에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고 국민들이 널리 사용하는 우리말 호칭인 ‘백두산’으로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대부분의 학생과 교직원이 ‘장백’을 ‘백두산’으로 바꾸는 것을 더 원했다. 가사가 쉽게 이해되고 기억하기 쉬울 때 교가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백의∼) 를 (백두산∼)으로 바꾸었을 때 음악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음악교사의 설명이 있었다. 이에 ‘장백의’를 ‘백두산’으로 개정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한다.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언어도 그렇다. 우리말의 어법도 시대를 이어오면서 많이 바뀌었다. 교가의 ‘멈출 줄 없다’는 현대 어업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어떤 방법을 나타내는 불완전명사 ‘줄’ 다음에는 ‘안다, 모른다’가 온다, ‘인사할 줄 안다. 운전할 줄 모른다.’ 가능성을 나타내는 불완전명사 ‘수’ 다음에는 ‘있다, 없다’가 온다. ‘실수할 수 있다, 추측할 수 없다’. ‘줄’을 ‘수’로 바꾸는 것은 의미의 전달에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에 현대적 어법에 맞게 ‘멈출 줄 없다’를 ‘멈출 수 없다’로 개정하기로 했다. 학교에 부임하고 1000여일을 학교 발전을 위해 있는 힘을 모두 쏟았다. (중략) 이제 학교를 떠나면서 (중략) 교가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남긴다. 학생들이 교가가 담고 있는 뜻을 이해하고 교가가 추구하는 인간상을 구현해 주길 기원한다. 2013. 1. 23. 대전고등학교 교장 유 의 규
2). 대동모 건의문 建 議 文
대한민국의 명문 대전고등학교 총동문, 재학생께 정중하고 깊은 마음으로 건의 드립니다. (후렴)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 창공을 쏘아보는 젊은 희망과 대지에 드디고선 불굴의 발길 수련은 조국으로 멈출수 없다 위의 글은 우리 동문과 재학생은 누구나 알고 있고 깊은 애정과 학창의 추억을 갖고 있는 대전고 교가의 후렴입니다. 대전고 교가는 조광혁 작곡. 지헌영(地憲英) 작사입니다. 지헌영 선생님은 대전공립중학교를 졸업하시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셨으며, 우리 고장의 언론계 논설위원 및 사장을 역임하시고 충남대학교의 교수로도 재직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불의와 부정에 조금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기품이 있어 학창시절에는 항일운동으로 옥고를 치르시기까지한 자랑스럽고 훌륭하신 우리의 선배님이십니다. 잠깐 여기서 대전고 교가 가사중 “남팔아 남아” 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모교의 Homepage 에 보면 “南八 이란 중국 당나라 시절의 남제운 장군을 일컫는다. 그는 말타기와 활쏘기에 능했으며, 안록산의 반군과 맞서 싸우다 패하여 잡힌후 항복을 강요 받았으나 『南八男兒死彌不可爲不屈不義屈』(남팔 장부는 죽을 뿐 불의에 항복해서는 안된다)을 외치면서 처형되었다. 그 후로부터 男八男兒는 ”살신 성인한 대장부의 기개“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헌영 선생님께서는 훌륭하고 존경스러운 우리 선조들을 모두 제쳐놓고 하필이면 역사왜곡을 하는 중국의 武將을 우리의 교가 가사에 인용했을까요? 나쁜 뜻이나 왜곡된 생각은 절대 없으셨을 겁니다. 선생께서는 후배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뜻있는 훌륭한 가사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생각과 노력을 기울이셨을 겁니다. 단, 향가 연구에 정통한 학자로써 한학(漢學)을 가까이하다보니 순수한 생각으로 男八을 인용하셨을거라 생각합니다. 대전고 Homepage에 나온 것처럼 “살신성인한 대장부의 기개”를 학생들에게 각인하고 교육시키기 위해 하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男八의 뜻과 같은 훌륭한 우리의 선조를 가사에 인용하면 안될까요? 오랫동안 열창을 했으니 그대로 두어도 되겠지요. 훌륭한 뜻이니 알렉산더 또는 링컨 그리고 男八을 인용했든 무슨 상관이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그 이유는 첫째. 교가의 가사는 모든 동문과 재학생, 관계된 사람까지 훤히 알 수 있는 보편적 단어나 내용이어야 합니다. 둘째. 애국가와 마찬가지로 교가는 동문들의 애교가입니다. 교가는 자주성과 민족성이 있어야 됩니다. 셋째. 대전고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명문학교입니다. 수많은 애국자와 민주투사가 나왔으며 대한민국의 정계ㆍ학계ㆍ관계를 망라한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인물을 많이 배출한 명문학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가에는 애국, 애족의 뜻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입니다. 그리고 대전고는 대한민국의 명문 학교입니다. 배우고 자라나는 우리의 후배들에게 주체的 자부심을 심어주는 가사이어야 합니다. 다섯째. 향후 동북아시아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국가와 학교를 지향하므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를 내세워야 합니다.
위와 같은 여러 가지의 이유로 “男八아男兒” 라는 구절을 개사(改司)할 것을 깊은 마음으로 건의(建義) 드립니다. 지헌영 선생님의 숭고한 이상과 업적을 폄하하거나 절하하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습니다. 절대로 중국인에 대한 민족적 반감도 아닙니다. 작사자의 숨은 뜻을 존중하고 우리의 자주성에 걸맞는 가사로 개사하자는 것입니다.
“살신성인한 대장부의 기개”에 맞는 그 이름도 거룩한 이순신장군도 있고 안중근의사도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충의지사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이름도 모르는 남의 나라 장군을 가사에 넣어 불러야 될까요? 이순신 장군은 우리고장 출신으로 묘지도 우리 고장에 있습니다. 자랑스럽고 그 누구도 비견할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위인입니다. 예를 들자면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를 “이순신 장군의 기백은 날뛴다”로 하면 됩니다. “불의에 굴하지 않는 장부의 기개”라는 추상的 뜻이 같으면 됩니다. 또 다른 훌륭하신 선조를 인용하여도 됩니다. 그러면 선생께서도 개사에 반대하시지 않을 겁니다. 선생님께서 주창하신 뜻이 같다면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조를 인용한 것을 나무라지 않을 것입니다. 동문여러분! 한번 생각해보고 총의를 모아야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부디 충분한 논의를 거쳐 하루 빨리 개사를 하도록 간곡하게 건의 드립니다. 그래서 더욱더 힘차고 뜻있게 부를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작고하신 지헌영 선생님께는 죄송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보냅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간절하게 바랍니다. 대전고등학교의 발전과 동문들의 발전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3). 작사자가 밝힌 "남팔아 남아"의 뜻 작사자가 밝힌 “남팔아 남아”의 뜻
교가를 작사한 故 지헌영(10회, 국문학자) 동문이 모교 교지인 “한모” 21호(1971년 발행)에 “‘대고교가’의 작사정신”이라는 제목으로 교가에 대한 해설을 기고했다(21~33쪽). 그 중 “남팔아 남아” 부분에 대한 해설(30~31쪽)을 원문 그대로 싣는다(한자를 배우지 않은 동문들을 위해 한자는 한글로 바꿔 적되 뜻풀이에 필요한 경우 원문 한자를 병기한다).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 창공을 쏘아보는 젊은 희망과 대지에 드디고 선 불굴의 발길 수련은 조국으로 멈출 줄 없다.』
후렴격인 이 구절은 대고남아의 인간상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다. 안에서 내연(內燃)하는 대고 남아의 정신 내면을 피력하려는 것이다. 문장기교로서의 조응(照應)에서는 제1절 지연(地緣)의 안에 보이는 「향기」가 확대된 것이다. 「피는 듯 맑은」 산하(山河)의 정수(精粹)인 「향기」의 발동(發動)이라 하겠다. 「향기」를 자기(自期)한 대고남아의 영상(映像)이 후렴이라 할 수가 있다. (중략) 대한남아ㆍ충청건아ㆍ대고남아의 내면에서 발동하여 약동하는 「향기」가 「불굴방어ㆍ결사돌격」의 정신적 자세를 갖춘 것을 부각시키려 한 것이 이 후렴(인간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대고교가의 제1절과 후렴은 「지인합일(地人合一)」이라 할 수가 있겠다. 「고장」(고국ㆍ고향)과 「피」(인정)와 「향기」(영성ㆍ혜지慧智)가 혼연일체화 할 것을 노린 것이었다. 「대고의 인간상」 표상인 「후렴」에 있어서 그 핵심적인 주체가 「남아의 기백」이란 어사(語辭)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제1절 지연(地緣)의 핵심인 「향기」라는 어사가 「남아의 기백」이라는 말로 대치된 것이다. 「역사의 향기」이기를 기약하고 「이 고장의 향기」인 것을 자기(自期)하는 대고「남아의 기백」은 「스스로 맺어진 순결한 우리」(대중교가)의 순수정결한 「나」의 발동 그것일 뿐이다. 교훈인 「순결」이 「남아의 기백」이란 말로 응결되어 있는 것이다. (중략) 「남아의 기백」은 「남팔」 두자를 관(冠)하였다. 이 「남팔」 두자는 저 당대의 문호 한창려(퇴지)의 「장중승전후서(張中丞傳後敍)」에서 인입(引入)한 것이었다. 「전후서」에 보이는
『남팔남아사이 불가위불의굴 南八男兒死耳 不可爲不義屈 (남아 죽을지 언정 불의에 굽혀서는 아니된다)』
에 보이는 「남팔남아의 기백」을 강조한 것인데 남아의 어감을 강화하기 위하여 「남팔」을 모았던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남아는 불의에 굴(屈)하지 않는데에 있다.』 유일무이한 영성(靈性)은 오염에 휩쓸릴 수 없는 지보(至寶)이기로써다. 유일청정한 영성은 유혹과 해이에 굽힐 수는 없기로서이다. 황차(况且) 부정ㆍ불의ㆍ부패에 휘말릴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민족의 정기」가 땅에 떨어져 「사회주의」가 동요(動搖)할지라도 진남아(眞男兒)의 영성은 요동할 수 없는 것이라 나는 한다. 외계내계(外界內界)의 오염을 「결사방위」「결사파사(決死破邪)」 하는 길 이외에 아무런 영성발휘의 활로가 있을 수 없기로이다.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선생은 진즉 「삼습(三習) - 국습(國習)ㆍ가습(家習)ㆍ도습(道習)을 초탈하여야만이 진남아」라 한바 있다하거니와 (중략) 국가사회와 정원과 학문ㆍ종교의 풍조가 땅에 떨어지더라도 남아의 기백은 의연히, 굳건히 자기 스스로의 존엄성과 무한한 발전성을 신념할 것을 호소한 것이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의 구(句)였던 것이다. (하략)
4).모교교가개정요구-42회 우리 모교 대전고등학교의 교가는 바뀌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대전고등학교는 3만6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국가와 지역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며 명문학교의 학풍과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개교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교를 가슴에 새기며 교가를 애창하여 왔다. 그러나 1951년 제정된 현 교가 가사 중 "장백에 정기 모딘",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 등 어·문법에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중국 당나라 현종시대의 무장 남제운(남팔)의 기백을 본받아 우리 대고 건아의 기백이 날뛴다는 후렴 제1행의 가사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교가를 바꿔야 한다는 명분을 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우리 동문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잘 모르고 교가를 불러 왔다. 교가 가사 중 문제점이 있는 부분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제1절 제1행 : 장백의 정기 모딘 계룡의 둘레 장백은 백두의 북한말이다. 북한이 대한민국과 차별화하여 쓰는 말을 우리가 굳이 쓸 이유가 없다. 모딘은 모디다의 어간에 어미 ㄴ을 활용한 말인데, 모인이 맞는 말이다. 제1절 제2행 : 유유천년의 백마강이 구른다 백마강은 백제 패망의 과정에 생겨난 설화에서 비롯된 고유명사로 부소산을 감싸고 흐르는 부여지역의 금강을 이르는 말이다. 유장한 역사를 노래하며 역사단절을 상징하는 백마강이라는 말을 쓴 것은 잘못이다. 후렴 제1행 :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 남팔의 장한 기백을 받은 대고 건아의 사나이답고 의로운 기백이 힘차다는 표현이지만, 우리 교가의 클라이막스라 할 수 있는 이 소절에서 우리 동문이 기백을 본받자고 한 <남팔>은 우리가 결코 본받아서는 안 될 사람이다. 당나라 현종(712~756)의 무신으로 이름을 얻은 남팔 남제운... 첫째- 그는 중국 사람이다. 그 중에도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훌륭해도 본받을 수 없다. 기백이 장하다 하여 오다노 부나가, 이또오 히로부미를 본받자는 예와 다르지 않다. 둘째- 그가 섬긴 당 현종은 부도덕한 사람이었다 당 현종은 며느리를 아들로부터 빼앗아 애첩을 삼은 사람, 예의 그 양귀비와 사랑놀음에 탐닉하였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이런 지저분한 사람을 섬겨서는 안된다. 그런데 남팔은 그런 현종을 섬겼다. 셋째- 남팔은 큰 것을 희생시켜 작은 것을 이룬 사람이다 즉, 그가 보호하고 지켜줘야 할 수양성 주민 2만여 명을 서로 잡아먹어 죽게 하고 수양성이 반군에게 함락되자 항복하지 않고 죽어 충절을 지켰다. 그가 올바른 인간이었다면 수양성 백성의 생명을 지켜주고 죽었을 것이다. 이러한 남팔이 수많은 우리 역사의 영웅을 물리치고 대능인의 표상이 된 까닭을 알 수가 없다. 남팔을 우리 교가에서 없애야하는 또 다른 이유는 중국의 역사왜곡 때문이다. 중국은 지금 <동북공정>으로 고구려를 자기들의 변방 속국에 편입시키는 짓거리를 하는 중이다. 불법 국제거래인 간도협약으로 차지한 간도지역과 북한으로부터 할양받은 문제의 장백산 그리고 북한정권이 와해될 때 북한까지 삼키려는 중국의 속셈을 들여다보면서도 "남팔아, 남아의 기백은 날뛴다"라고 노래해서야 되겠는가! 후렴 제1행은 교가를 바꿔야 할 절대적 원인을 제공하는 부분이다. 관심을 가지고 교가 가사를 살펴보면 이밖에도 교가를 바꿔야 하는 이유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그것들을 모두 지적하며 문제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위에서 검토한 몇 가지만으로도 동문들의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모든 동문이 부르며 가슴 뛰고 영원히 가슴에 남아 좌우명이 되어 줄 좋은 교가를 새로 제정해 주기를 우리 모교와 동문들에게 간곡히 촉구한다. 교가 개정을 촉구하는 42회 동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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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하세요.3월31현재 (메일로 받은 의견) <이계상 동문의 의견>
1) "멈출줄 없다"에서 "줄에 대하여 멈출 줄 없다에 대하여' 줄'을 가지고 이렇쿹저렇쿵하는데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할 줄 몰랐다' '할 줄 안다'란 말을 쓰기도 하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줄이란 말은 단순한 불완전 명사로 보기 보다 의미상으로 멈출 일이 없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기도하다. 그럴줄 몰랐네 실망이네 이런 뜻으로 사용할 수 있다 나도 할 줄 안다네 이렇게 쓰일때 동의의 의미 즉 수긍하는 의미가 담긴다 줄을 가지고 사용된 의미가 다르다.
그러므로 근래에 의사가 잘 통하지 않는다고 하여 교가의 가사를 바꾼다는 것은 아직은 수긍하기 힘들다 교가를 가르칠 때 그 내용과 담겨진 숨은 뜻을 잘 가르치고 그런 해설을 한동안 가르치고 해설서를 배포하여 그냥 부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전통성을 함부로 바꾼다는 것은 정신이 달라 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멈출 줄이 없다 " 습관화 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강한 의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 될 것이다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강한 이미지가 있다 즉 멈출 수 없다는 의미의 강한 이미지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 싶다.우리의 배움을 통하여 조국에 헌신하고자 하는 강한 의미 애국심 그리고 그것이 대고의 정신이란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별 하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2). 또 다른 의견 - 우리 교가를 작사한 지헌영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한 보통 분이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생각 이상의 너머의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작사한 것이리라 그리고 지헌영님은 대고의 선배를 지나 한국적인 국문학자로 대단한 역사적 높임의 학자다 우리 대고의 자랑스런 인물이다 그리고 시인이며 국어국문학자이시다 그리고 그 분의 대고 교가에 대한 깊은 뜻을 단순한 논리로 생각하여 고치거나 바꿀 성질의 것이 아니리라 마치 미켈란제로의 작품을 지금의 취향대로 맞추기 위하여 그 작품을 고칠 수 있다는 말인가 조각작품이며 이미 벽면에 그려 놓은 그림이다 그런 작품이란 말이지요
우리의 취향이나 언어에 약간 안 맞는다 하여 고치고 하는 일은 어불성이다 우리가 그 작품을 해설하거나 쉽게 풀이하는 과정은 있을 지언정 성형수술하듯 고치고 바꾸고 하는 것은 본질을 훼손하는 큰 실수라고 할 수 있다
남의 작품을 제 3자가 고칠 수 있나 내 마음에 안 든다고 고쳐서 다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가 그런 작품이 예로부터 지금까지 용납이 되는 일인가 우리의 습관이나 언어에 생소하다고 하여 고전 자체를 바꿀 수 없다 셱스피아 작품이 그 원문을 오늘날 어색하다 하여 바꿀 것인가 해설은 가능하고 그 어휘에 대하여 새로의 풀이하고 당시의 상황에 맞는 사실을 잘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원문을 바꾼다는 말이 있는가 남대문이 불타 버렸다 그래도 그 원형대로 재건축한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형은 원형이다 그리고 장백의 정기 여기에 대하여 이는 한반도와 역사성을 지니고 있는 포괄적이고도 의미심장하다 옛 고구려 땅을 연상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를 왜 생각하지 않는가 남팔남아에 대하여도 그 정신을 생각하는 것이지 낱말에 구애될 필요가 있는가
내 생각에는 원문을 훼손시키지 않고 그냥 우리 교가를 불러 교가에 담겨진 정신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대고의 정신으로 승화시켜져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얼마시간이 지나면 또 고치자고 한다면 그때마다 고쳐야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새로운 교가를 작사하는 것이 낫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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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교가가 악보가 한때 틀린 부분이 많았었는데, 오래 지나서 대고싸이트에 다시 가니 옳게 잘 고쳐져 있었습니다.(본 카페 홍보게시판 참조)
그런데 이번에는 가사를 바꾼다네요? 대전중학교 교가는 아예 곡을 전부 바꾸고 가사도 좀 바뀌 었습니다.
요즘은 무작정 바꾸려는 시대적 습성들이 있습니다. 동창 제현님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합니다.
3가지를 고치려 하고 있습니다. 1).南八아 2). 長白(산맥) 3).멈출 줄 없다 "줄" 입니다.
남팔아 남아"는 전체가사의 뜻과 어울리는 좋은 용어로 바꿀 수 있다고 저는 요즘 생각해보기도 하는 데, 그 것 참 ㅎㅎㅎ 좀 씁쓸합니다.
요즘은 봄철 나들이 때문인지 메일을 여는 친구가 드믈군요.
이계상 말대로 얼마시간이 지나면 또 고치자고 한다면 그때마다 고쳐야 한다는 말인가 차라리 새로운 교가를 작사하는 것이 낫다하겠다 .제1교가(초창기), 제2교가(2013년)... 이렇게말이다.
섹스피어 원작이 현대와 맞지 않는다하여 고쳐서야 되겠는가?.
홍보게시판 "남팔아남아"에 대한 게시글에서 밝혔드이 우리 조상들은 "남팔남아"를 인용하여 시조를 읊었습니다.청나라에 항거하는 김상헌은
남팔(南八=(절개 있는 자)아 남아(男兒)이 사(死)이언정
불가이불의굴의(不可以不義屈矣)여다
웃고 대답하되
공(公)이 유언 감불사(有言敢不死)아
천고(千古)에 눈물진
영웅이 몇몇인 줄 알리오 - 라하였다. "남팔(南八)은 그시대에는 즐겨쓰던 용어이다.
오늘 날에 생각하면 "대한의 남아"로 고치는 것 까지는 무방하지 않을까? 친구들! 말해보세요.
교가를 새로 만들기 전에는 곡을 바꾼다던가 가사를 고치는 안될 것 같다.
중대한 오류가 있는것도 아닌데 교가를 바꿀 필요가 없읍니다.교가는 수십년을 이어온 그 학교의 상징적인 노래로 누구나 마음속에 기억하고 있는데 함부로 바꾸면 안되지요.교가 가사가 국어교과서는 아니지요.반대합니다.
하나의 詩 입니다. 정지용의 시를, 김소월의 시를 오늘 어법을 따져 왈가왈부하면 않되지요~ 말은 사용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용비어천가를 고치자는 것인가? 작사하신 선생님의 의중은 아세아를 바라 본 것이며, 대전중학교 교가 "태평양 품안에"는 지구의 5대양 중에서 태평양을 본 詩입니다.
또 "장백의" ===>고칠필요없다. ::: 이유- 1)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하여 2) 만주는 우리 땅이다.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作辭인가 ?
백두산은 장백산맥에 있다. 백두산이 장백산이 아니다.
두고 두고 발의가 될것 같은데 하루 빨리 매듭을 지어야 하지요.
강_루의 의견("대한의 남아"로 고치는것 까지는 무방하지 않을까?)에 동의 합니다
그런것 같기도 해요? 더 연구합시다. 감사합니다.
척화파(斥和派) 김상헌(金尙憲)이 청나라의 출병 요청에 반대하였다 하여 ,인조 18년(1640년) 12월에 조한영(曺漢英), 채이흥(蔡以興)과 함께 심양으로 잡혀가는 몸이 되었다 잡혀 가면서,
김상헌은 다음과 같은 단장(斷腸)의 시조(時調)를 읊었다.
가노라 삼각산(三角山)아
다시 보자 한강수(漢江水)야
고국산천(故國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 그러면서도 김상헌은
남팔(南八)아 남아(男兒)이 사(死)이언정
불가이불의굴의(不可以不義屈矣)여다
라 하였다. 왜 적국의 시대용어 "南八"을 넣어 시를 지었을 까요?
시대(時代)마다 어느 나라의 성어(成語)이든 고사성어(故事成語)를 인용(引用)할 수 있다. 시조(時調)는 고려 말엽부터 우리나라 고유(固有)의 정형시(定型詩)이다. 우리나라의 고사성어에 불굴(不屈)의 기백(氣魄)과 관련된 성어(成語)가 없으련만은,고사성어의 교훈(敎訓)이 되는 말은 중국뿐이 아니라 全 世界를 向한 對象이 되는 것이다
우선 작사자의 詩意를 알고서 교가가사를 고쳐야 되며, 그에 맞는 불굴의기백의 표상이 되는 우리 나라의 고사성어를 찿아 고쳐야합니다.. "대한의 남아"로 도 생각 해 보았는데, 詩 원래의 취지와 동떨어지고, 時空 前後 調和에 큰 손상이 올까 두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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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八"과 버금가는 고사성어를 우리나라 역사에서 찿아야 한다. 예컨데 이순신 장군에서 성어를 찿아 보자.백의종군,애국충성 ... 함축된 고사성어를 찿자. 남팔과 같은 고사성어 무엇인가? 찿아 보자 !
"남팔"을 고치면 "장백"산맥도 필요 없게 된다.작시자의 의중을 벗어 난다. 그리고 "멈출 줄 없다" 가사를 운운하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국어 사전에도 "없다" = "있지 않다" / "줄"= 용언밑에 붙어 어떠한 방법,셈속을 나타냄. "ㄴ" "ㄹ" 아래에서만 쓰임. / 예: 비가올 줄 알았다. 멈출 줄 모른다. 멈출 줄이야 ? 죽는 줄 알았다.그럴 줄 알았다."멈출 줄 없다" "줄"은 불완전 명사로서 강한의지를 표현한다."멈출 줄 없다" = 멈출 줄 그런일 있지 않다. "멈추는 일이 절대 있지 않다"의 뜻이다.
교가의 가사를 바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전통이 살아 이어오는 숨결은 지고지대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배님! 오랬만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기자활동을 하시는 것이 존경스럽습니다.
모교인 대전고등학교의 교가 가사내용의 일부를 수정하는것은 작사자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것 입니다.
지헌영님의 교가작사는 그분의 평생의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시대를 초월한 붕절만리의 길을 바라본 깊은 내용이다 겉으로 보는 단어상의 의미이상의 조화로운 대고정신을 함영한 불요물굴의 기백이 있다 그 정신을 함양하고자 하는 틀에 우리대고의 사람으로 이끌고자 하는 거함이리라 시인은 작품을 쓰는 사람은 글자 한자한자가 생명을 기울인 것이다
시인의 토색적인 단어는 오히려 향수적인 가까움이 있다 역사를 넘나드는 지도자로 그 정신의 근간을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넣어 준 가사라고 할 수 있다 일제로부터 항거의 정신의 밑바탕이나 독재에 항거하던 2.28 정신이며 4.19의 항거 희생의 정신이 바로 남팔남아의 기백은 우리의 것임
늦게나마. 저도 반대입니다.
교가의 가사내용 일부를 수정하는 것은 첫째 작사자 지헌영님의 대고사랑의 뜻을 저버린행위이며,둘째 역사속의 많은 대고 선배들의 뜻을 저버린 경솔한 행위로 즉시 본래의 가사로 환원조치 하기바랍니다. 송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