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 목사와 근무태만 성도
며칠전에 하버드대생들의 인터뷰를, 신문에서 읽은적이 있다.
그들은 하루에 보통 4시간 잠을 자고, 시험중일 때는 2시간을 잔다고 한다.
어디 하버드생 뿐이랴!
어느 신문에서는 겨울 스포츠의 꽃인, 치어리더들의 삶을 읽은적이 있었다.
그들은 하루에 5시간동안 운동을 하며, 수천 방울의 땀을 흘린다고 한다.
큰 도전과 자극을 받을수 있었다.
목회자인 나는 심각한 부끄러움을 견딜수 없었다.
우리는 하루에 몇시간을 성숙과 충만한 영성을 위하여
기도와 말씀앞에서 씨름하는가?
세상의 지식탐구와, 육신의 직업을 위해서도, 그렇게 전력을 다하는데 말이다.
우리는 학생이거나, 직장인이거나, 주부이거나 아니면 성직자로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영위하여 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또 하나의 부업이 있다.
그것은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 일이다.
사실은 이 일이, 전업되어야 한다.
그것을 사명이라 말하고 성직이라 말한다.
예를들어,
운동선수가 운동을 안하거나 게을리하거나, 경찰이 도둑을 놓치거나 못잡거나
군인이 초소를 이탈하거나 총기를 분실하면
그것은 근무태만이나 직무유기라는 죄명으로 벌을 받게 된다.
마찬가지로 목사나 성도가,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예수를 더 잘 믿기 위하여,
기도하는 일과 말씀으로 씨름하는 일에 게을러, 성령충만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직무유기나 근무태만의 죄가 성립이 된다.
운동선수는 하루라도 운동을 쉬면, 온 몸의 리듬이 깨진다고 한다.
피아니스트는 하루라도 파아노를 안치면, 손이 굽는다고 한다.
감각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노력이나 방법으로 살지 않는다.
오직 무릎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하루라도 기도의 무릎을 쉰다면,
우리는 잘 믿을수도, 영혼을 살릴수도 없다.
물론 그럭 저럭은, 가능하지만 말이다.
목회자는, 볼펜으로 목회할수 없다.
목회자도 역시, 무릎으로 목회해야 영혼들을 살릴수가 있다.
목회해 보면 이론과 지식이, 통하지 않을때가 더 많다.
그때처럼 능력이 절실히 갈급할 때가 없다.
물론 성도들이나 목회자가 무릎으로 살지 않아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다.
겉으로도 전혀 표시나지 않는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표시가 나지 않음으로, 우리는 직무유기와 근무태만이라는 중죄(?)를
밥 먹듯이 범하고도, 가책이 없을수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령충만하지 않아도, 교회생활이나 사역에 당장은 큰 지장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성도나 목회자의 근무태만의 결과는
곧 바로, 성령충만하지 못함으로 증명되고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영혼을 살려내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내 영혼도, 극심한 기근을 피할수 없게 된다.
육신은, 잘 나간다 하더라도....
아무일이 없음이, 성령충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환난이 많음이, 성령충만하지 못함을 말하지도 않는다.
성령충만이란, 하루 24시간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에게 집중하는 삶이다.
그분이 나를, 전 인격적으로 장악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고난의 유무와, 성공과 실패와, 건강과 병듦과, 가난과 부요함과 상관없이 ....
모든 영적행위는, 카피가 가능하다.
봉사도, 열심도, 전도도, 희생도, 충성도, 사역도, 설교까지도 말이다.
그러나, 영력은 카피가 불가능하고 위조가 안된다.
그것은 기도의 양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과의 친밀한 사귐을 통해서만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다른 것은 이 땅에서도, 얼마든지 모조품으로 만들어 낼수 있지만
신령한 통찰력과 영권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사이다.
그것은 무릎꿇는 시간과 비례한다.
목회자도 누구의 설교를 카피할수는 있다.
그러나, 그분의 영성은 흉내도 낼수 없다.
충만한 영성은, 직무유기하지 않는 목회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보상인듯 하다.
얼마전에, 병원 프로그램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의사분들의 노고를 알수 잇었다.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10시간 이상씩을 수술에 매달리는 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서사시였으며, 드라마였다.
수술 결과가 좋으면, 죽을 생명이 소생하여 살아난다.
의사도 울고, 환자의 가족들도 춤을 춘다.
그러나 수술받던 환자가 죽으면, 의사도 함께 운다.
나는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다짐을 했다
'살리는 목사가, 되어야겠다'
'살리는 교회를, 세워야겠다'
살리지 못하는, 의사를 상상해 보았는가?
살리지 못하는, 병원을 상상해 보았는가?
환자가 병이 중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의사의 능력부족이나 실수로 환자가 죽었다면 어떻겠는가?
교회나 목회자 또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목회자도, 영을 살리는 의사이기에....
요즈음 하루에 한 두번씩은, 서울에서 전철투신 사고가 발생한다.
뿐만아니라, 동반자살이 급증하여 어린생명들이 희생되고 있다.
견딜수 없이 괴롭다.
그분들의 죽음에 대하여 자유로울, 목회자나 교회가 있을까?
그분들의 죽음은, 나에게 많은 짐을 가져다 준다.
도대체 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목사로서,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물론 어느시대나 그런 일은 있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전염병 돌듯한, 이런 때는 없었다.
천하보다 귀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죽음으로 생을 접으려 하고 있다.
그뿐인가, 교회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영혼의 고갈로 인하여, 서서히 숨을 고르고 있는가?
물론 교회가 이 모든 문제들을, 통쾌하게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 사람이라도, 교회와 목회자의 영향력으로
죽을 길에서 살길로, 전환될수는 있지 않을까?
길이 없다.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수가 없다.
수는 기도의 시간을, 도적질 하지 않는것 뿐이다.
하나님이 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이셔야 한다.
아~
직무유기하지 않는 목회자,
근무태만하지 않는 성도들을, 더 많이 세워주셨으면 좋겟다.
오늘도 나의 직무유기로 인하여, 또 한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을수 있고
나의 근무태만으로 인하여
또 한명의 생명이, 고통가운데서 헤어나지 못할수 있다.
이러므로 성령충만하지 않은 목회자는, 직무유기 죄인이요.
성령충만하지 않은 성도는, 근무태만 죄인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무릎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성령충만을 부어주시기 때문이다.
성령충만은, 너와 나, 우리 모두를 살리는 신통한(?) 통로이다.
하버드생 보다 우리는 더 명문인, K대생(광야학교)아닌가?
그렇다면, 잠을 얼만큼 줄여야, K대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수 있을까?
잠과의 전쟁에서 이길수 없는 병사는, 어떤 영적전쟁에서도 이길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잠을 줄여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주님, 나 자신만을 위하여
너무 많이 먹고, 자고, 쓰고, 살았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다이어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와 복음을 위하여 덜 먹고, 덜 자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그것이 주의 일임을 알게 하소서.
날마다 죄송함으로, 감사함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onuhara목사님
첫댓글 주님, 회개합니다. 주님의 강한 군사가 되려합니다. 새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