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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자천의학 원문보기 글쓴이: 계지
피침과도 같은 조그만 칼로 아픈 곳 째고 약 넣어 줘│허리 다쳐 누워서 지내던 여인 약침 맞고 일어서 환부에 뭉친 사혈 뽑고 약으로 풀어 주니 효과 커│중한 신경통이라도 20회 정도 약침하면 완치 가능해 무소욕의 심성으로 주유천하하며 환자 고쳐 줘│연고로 피부병 · 치질 · 버거씨병 · 화상 등 치료하기도 |
◈ 환부에 약 넣어 신경계통질환 치료
김홍석(金洪錫 취재 당시 83세) 옹은 약침 명의이다. 김 옹이 시술하는 약침은 예전에 곪은 부위를 쨀 때 쓰던 피침과 같은 모양의 조그만 칼로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는 부위를 살짝 째고 약을 넣는 방법이다. 김 옹의 말에 의하면, 오랜 임상 경험으로 볼 때 그의 약침은 어떤 의술보다 중풍·요통·좌골신경통·관절신경통·견비통·타박통·허리와 목 디스크·류머티스 관절염 등을 치료하는 데 아주 효과가 탁월한 의술이라고 한다.
허리가 아파서 온 60대 여인을 치료하는 모습을 통해 약침의 방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김 옹은 먼저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엎드리게 한 후, 허리 몇 군데를 손으로 눌러 가며 아픈 부위를 찾아낸다.
그리고 가장 통증이 심한 부위를 침을 하듯이 칼로 살짝 짼 후, 그곳을 중심으로 하여 약 1.5센티미터씩 간격을 두어 상하 좌우(上下 左右)에 각각 2~3군데 살짝 짼다. 그리고 부항기를 흡착시켜 압통점 부위에 뭉쳐 있는 사혈(死血)을 뽑아낸다. 그런 후에 짼 부위에 실처럼 가늘면서도 조그만 토막약을 하나씩 넣고 반창고로 봉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술한 전체 부위를 덮을 만큼 넓게 붕대를 댄 후 상하 좌우로 반창고를 길게 붙여 고정시킨다.
이런 시술은 무릎관절통을 호소하는 사람이나, 좌골신경통을 호소하는 사람이나, 견비통을 호소하는 사람이나, 오금이 당겨 다리를 펴기 힘들다고 호소하는 사람에게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다만 중풍으로 반신 마비된 환자는 먼저 마비된 반대편 쪽에 백회·풍지·풍부·예풍·견정·견우·곡지·후계·환도·위중·족삼리·부양·속골 등의 혈에 일반 침을 하여 기혈을 뚫어 주었다. 그리고 마비된 쪽의 견정·견우·곡지·환도·위중·족삼리·부양 등의 혈에 약침을 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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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부에 뭉친 사혈 뽑아내기 때문에 효과 빨라
약침은 이틀에 한 번꼴로 맞는다. 한번 약침을 하여 짼 부위가 아물지 않은 곳은 다시 째지 않고 대신 탈지면 등으로 닦아 짼 부위를 벌어지게 한 후 부항기를 흡착시켜 죽은 피를 뽑아낸다. 그러고 나서 짼 부위에 다시 약을 넣어 봉한다.
김 옹은 이런 자신의 약침은 통증이 있는 부위에 뭉쳐있는 사혈을 직접 뽑아 줄 뿐더러, 약을 집어넣어 뭉친 사혈을 풀어 주기 때문에 효과가 아주 크고 분명하다고 한다. 완전히 나을 때쯤이면 시술 부위에서 노란 물이 나오는데, 대개 아무리 중한 병이라도 20회 정도 약침을 맞으면 완치가 가능하다고 한다. 반면 양의학적 방법으로 절제 또는 절개 수술한 환자는 기혈의 흐름이 끊겼기 때문에 낫기 어렵다고 한다.
◈ 신경계통질환 치료에 탁월한 효과 발휘
이런 김 옹의 약침은 어느 문헌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의술이다. 물론 재야의 전통의학자인 남상천 선생과 김정언 선생에 의해 각각 경락약침과 팔강약침이란 독창적인 약침이 개발되어 현재 많은 난치병 치료에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경락약침과 팔강약침은 자연 약재를 달여 주사기로 약물을 경혈에 주입한다는 점에서 김 옹의 약침과는 방법상으로 다른 면이 있다.
또한 적응증 면에서도 경락약침과 팔강약침은 약물을 경혈에 주입하여 내분비를 조절해 주기 때문에 내과 순환기계통의 질환에 상대적으로 우수한 치료 효과를 지니고 있다. 반면 김 옹의 약침은 압통점에 뭉친 사혈을 빼낸 후 당처에 약을 봉해 놓는다는 점에서 외과 신경계통질환에 상대적으로 우수한 치료 효과를 지니는 차이가 있다.
결국 김 옹의 약침은 기존의 방법과는 다른 독창적인 의술이라 할 수 있다. 이 특징을 살려 신경계통질환에 단독으로 사용한다든지, 나아가 경락약침이나 팔강약침과 함께 내·외치법으로 보완하여 사용한다면 모든 질병 치료에 큰 성과를 거둘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라 하겠다.
김 옹의 약침이 신경계통질환에 우수한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점은 취재 기간 내내 찾아온 환자들을 통해서 이내 확인할 수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청주시에 사는 김대화(취재 당시 78세 여자) 씨.
◈ 청주시에 사는 조성철(취재 당시 62세 남자) 씨.
또한 며칠 전 저녁에도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도시가스 배관공사를 위해 파 놓은 웅덩이에 빠져 어깨를 심하게 다쳤다고 한다. 그 때문에 어깨에 통증이 심해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이루었는데, 전날 김 옹에게 약침을 맞곤 한결 통증이 누그러졌다고 한다. 그는 틈이 나면 김 옹의 집에 와서 집을 수리해 주는 등 성의를 다하고 있는데, 고마운 마음에 김 옹을 도와주고 있는 사람만도 여러 명 된다고 한다.
◈ 청주시에 사는 이정희(취재 당시 62세 여자) 씨.
또 인근의 절에서 온 이 아무개(취재 당시 63세 여자) 씨는 무릎이 붓고 통증이 심했는데 약침을 4번 맞고 부기와 통증이 상당히 없어졌다고 하고, 인근 마을에서 온 박 아무개(취재 당시 61세 여자) 씨는 평생 과도한 농사일로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약침을 맞고 허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
◈ 60년 전 백일기도하며 의술 터득
김 옹이 약침을 개발하게 된 때는 광복 바로 직전으로 약 60년쯤 된다고 한다. 그의 고향은 충북 보은으로 당시에 그는 동네 친구 8명과 함께 도술을 터득하기 위해 금강산에 들어갔다. 그리고 백일기도에 들어갔는데, 각자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2백~3백 미터씩 거리를 두고 움막을 지었다.
그런데 한 이틀 지나자 3명의 친구가 밤에 무서워 도저히 견딜 수 없다며 하산하였다. 또 다시 한 보름이 지나자 3명의 친구가 무서움을 이기지 못하고 하산하였다. 그리고 2달이 지날 무렵 또 다른 1명이 무서워 견딜 수 없다며 하산하였다. 도술 공부는 무서움을 타면 폐인이 되거나 실패로 끝나기 때문에 말릴 수 없었다.
결국 그만이 남아 백일기도를 계속했는데, 석 달이 될 무렵 기이한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밤에 정화수를 떠 놓고 정신을 집중하며 여느 때처럼 주문을 외고 있는데, 어린 나이에 죽은 수십 명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둘러쌌다. 그는 도술 공부를 하다 보니 그런 일이 생기는가 보다 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서 죽은 사람들이 한 이틀 밤 나타나고 물러가더니, 이번엔 대신 나이가 들어 죽은 수십 명의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그를 둘러쌌다. 그때도 그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죽은 사람도 그의 자세가 변하지 않자 이틀 밤 나타나곤 물러갔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마치기 5일 전쯤 육 척 장수들이 금방이라도 그의 목을 벨 듯이 큰 창과 칼을 치켜든 채 문을 박차고 들이닥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가 한 점 흐트러짐이 없자 그들끼리 한참 동안 뭐라고 수군거리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백일기도를 마치기 3일 전날 밤에 정화수를 뜨러 옹달샘에 갔는데, 엄청나게 큰 검은 구렁이가 똬리를 튼 채 옹달샘을 차고앉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그는 난감했지만 그렇다고 정화수를 뜨지 않을 수 없어 한 손으로 구렁이를 밀치며 정화수를 떴다. 구렁이는 다음날 밤에도 옹달샘에 나타났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정화수를 떴다.
◈ 선몽 통해 약방문 얻어
그런 과정을 거치고 백일기도의 마지막 날 밤, 하얀 수염이 상반신을 덮을 만큼 길고 풍채가 좋은 노인이 나타나더니 “너는 활인덕(活人德)을 타고났으니 나가서 의술을 하라”며 어떤 병에는 어떤 약을 쓰라고 죽 불러 주었다. 노인이 불러 주는 약들은 받아 적지 않아도 기억에 또렷이 남을 만큼 선명하게 머리에 각인되었다. 노인은 약을 다 불러 주고는 나가려다가 다시 들어오더니 “네게 한 가지 잊은 게 있구나. 강원도 원주 어느 곳에 가면 어떤 이가 있으니 찾아가라. 후세에 큰 은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곤 노인은 사라졌다.
◈ 무소욕의 심성으로 주유천하하며 환자 고쳐 줘
김 옹은 백일기도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는데, 형편없는 몰골을 보곤 고향 사람들이 도술을 한번 부려 보라며 놀려댔다. 그는 놀림감이 되는 것이 싫기도 하고, 또 노인의 말대로 설마 병이 나을까 하는 생각으로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노인이 다시 나타나더니 “네가 내 말을 불신하는가 보구나. 앞으로 병든 이를 고쳐 주지 않으면 너는 평생을 불구자로 살 것이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환자를 보면 노인이 알려 준 대로 약을 조금씩 써 보았다. 그런데 노인이 말해 준 약은 신기하게도 환자들에게 잘 들었다. 점차 그는 인근에 이름이 나면서 많은 환자들을 보아 주기 시작했고, 결국 생각치도 않게 의술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약침도 그 당시 개발했다고 한다.
노인의 말이 결코 허튼 게 아니라고 느낀 그는 노인이 말한 대로 원주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갔다. 실제로 그곳에는 노인이 말한 대로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사람은 90이 넘은 노 씨 성을 가진 부자로 70대의 아들과 60대의 손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김 옹은 그곳에 여러 번 찾아가 여러 날 머물면서 앞으로 일어날 천지운기(天地運氣)의 변화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당시 노인은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며,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이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천기(天機)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그는 무소욕(無所慾)의 심성으로 때로는 농사를 지으며, 때로는 도(道)를 펴기 위해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환자들을 만나면 고쳐 주었다.
◈ 디스크로 꼼짝 못하던 경찰서장 고쳐 줘
일례로 20여 년 전 강원도 철원에 갔을 때 허리 디스크로 인해 걸음조차 못하는 그곳의 경찰서장을 만났다. 그 서장은 유명하다는 병원은 다 다녔으나 낫지 못한 채 하반신 마비의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김 옹은 그곳에서 약 한 달간 머물면서 서장을 약침으로 완벽하게 걸을 수 있게 고쳐 주었다.
병이 다 낫자 서장은 “선생님 처음엔 제 몸을 고쳐 주는 분이 계시면 제 재산의 반을 드리겠다고 아내와 약속했으나, 병을 고치고 나니 마음이 달라지네요. 제 성의로 준비했으니 이것이라도 받아 주세요” 그러면서 치료비 외에 사례금을 내놓았다. 열어 보니 5백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는 서장의 호의를 뿌리치고 나왔으나, 아들을 시켜 억지로 그를 고향까지 차로 태워다 주곤 사례금을 그의 방에 놓고 정신없이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 후로도 서장은 1년에 한 번씩은 인사차 꼭 다녀간다고 한다.
또 20여 년 전 경상북도 점촌에 갔을 때는 그곳 보안대 문관을 만나 고쳐 주었다. 그때 문관은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누워 지내고 있었다. 김 옹에게 걷게만이라도 해 주면 원이 없겠다고 했는데 완전히 고쳐 주자, 다른 곳에 가지 말고 환자를 얼마든지 모아 줄 터이니 자기 집에서 평생 같이 살자고 했다. 그때 그곳에서 3년간 머물면서 중풍이나 류머티스 관절염 등에 걸린 환자를 수없이 고쳐 주었다고 한다.
◈ 폐결핵에 걸려 죽어 가던 청년 기사회생
25년 전 조치원의 신흥사에 머물 때는 폐결핵에 걸려 거의 죽어 가는 청년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당시 음력 7월 8일에 중년 부인이 절에 와서 불공을 드리고 난 후 펑펑 울고 있었다. 사연인 즉 자신의 아들이 폐결핵에 걸려 죽기 직전이라고 하였다. 따라가서 보니 실제로 피골이 상접하고 혼수상태에 처해 있었다. 억지로 입을 벌려 약을 먹여 주고는 아마 내일이면 변화가 있을 것이라 일러 주고 돌아왔다. 부인의 남편은 서울의 큰 병원에서도 못 고쳤는데 어떻게 보잘것없는 사람이 고치겠느냐며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찍 부인이 절에 달려오다시피 찾아왔다. 아들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아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데 주어도 되는지 물으러 온 것이다. 그래서 한 이틀은 좁쌀로 죽을 쑤어 주고 그 이후엔 조금씩 쌀밥을 먹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 후 청년은 완쾌되었고, 조치원에서 큰 포목점을 하던 부모는 김 옹을 융숭히 대접했다고 한다.
또 30년 전 침구사협회에서 자격시험을 볼 때는 중풍·류머티스 관절염·목 디스크 환자에게 약침을 시술하여 그 자리에서 효과를 나타내 보이기도 하였다. 처음에 중풍마비 환자에게 약침을 하여 팔을 움직이게 하자, 심사위원이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에게도 시술케 하였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도 약침을 맞고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목 디스크 환자에게도 시술케 하였다.
목 디스크 환자 역시 약침을 맞고 통증이 덜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심사위원 모두가 “도대체 무슨 약이고, 어떻게 치료하기에 그렇게 신통하냐”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결국 당시 협회의 자격시험에 응시한 1백97명 가운데 그만이 즉효를 나타내 보였다고 한다.
◈ 피부병·치질·버거씨병·화상 치료 연고 개발하기도
한편 김 옹은 약침 이외에도 무좀·동상·피부병·중이염·치질·버거씨병·화상 등에 두루 쓸 수 있는 연고를 개발하여 환자를 치료하고 있기도 하다. 연고 역시 약침처럼 해당 질환의 치료에 효과가 아주 높다고 한다. (취재 기간 중에 연고의 효과에 대해서도 확인하려 했으나, 연고의 특성상 구입한 환자가 가정에서 직접 치료하는 관계로 내방한 환자나 인근의 사람을 통해서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김홍석 옹의 시술도구. 왼쪽부터 피부병
치료 연고, 약침약, 핀셋, 부항기, 흡착기▶
마지막으로 김 옹은 그가 약침에 쓰는 약은 사향 등 10여 가지 약재로 만들고, 연고는 살구씨 등 10여 가지 약재로 만든다고만 말할 뿐 정확한 약재와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함구하였다. 대신 정신 공부를 통해 얻은 것이기 때문에 약을 이으려면 정신 공부를 해야지 다른 사람이 그대로 한들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김 옹의 의술이 그의 사후에는 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쉬움이 들었다. 아쉽지만 약침이란 독특한 의술이 우리의 의료 문화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확인한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그의 집을 나섰다.
1.이 글은 저희 연구소 김석봉 소장이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향토명의를 소개하고자 쓴 글입니다. 따라서 찾아가 치료받는 것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따르며, 치료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병력 차이로 인한 효과 또는 치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3.김홍석 옹이 사시는 지역은 충북입니다. 김홍석 옹 댁의 전화번호와 찾아가는 자세한 방법, 그리고 소화불량증 · 고혈압 · 신경통 · 와사증 등 김홍석 옹의 경험 비방을 열람고자 하시는 분은 여기를 클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열람을 원하시는 회원님께서는 먼저 로그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회원이 아니신 분은 민속의학사랑모임에 가입하신 후 열람하시기 바랍니다. 열람에 따른 후원 회비는 5,500원입니다. 회원님께서 후원해 주신 성금은 향토명의 발굴을 위해 소중히 쓰여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