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는 구약의 인물로서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이사악의 어머니이다. 창세 17장, 18장에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축일은 따로 없고, 아브라함의 축일인 9월 9일에 함께 지낼 수 있다. 곱트 교회에서는 8월 19일에 기념하고 있다.
아타나시아(ATHANASIA)
축일 : 10월 9일
안드로니꼬는 알렉산드리아 사람인데 은세공 일을 하면서 안티오키아에서 살았다. 그는 아타나시아란 예쁜 처녀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으며, 사업도 날로 번창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두 아이가 같은 날에 죽게 됨으로 불행이 닥친 것이다. 아타나시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으나, 두 아이가 천상에 있다는 말을 어느 방문객으로부터 전해들으면서부터 세상을 등지기 시작하였다. 안드로니꼬도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여, 이부부는 집을 떠났다. 그들은 에집트로 가서, 그 당세에도 유명하던 성 다니엘 은수자를 찾아 나섰던 것이다. 이리하여 성 다니엘은 안드로니꼬는 타벤나로 보냈고, 아타나시아는 광야의 회수자들에게 보냈다. 이들은 12년 동안 수도생활을 계속하였다. 후일, 수도자들은 이들 부부 수도자의 유해를 합장하고, 큰 성인 성녀로 공경하였다.
성녀 발레리아 (리모주의)
축일: 12월 9일
성녀는 귀족출신이었으며, 성덕에도 뛰어났다. 성녀가 세례를 받았을 때, 그녀는 약혼중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약혼자에게 결혼을 거부하자 이방인이었던 약혼자는 그리스도에 대한 영적 사랑을 확인하지도 않은채 그녀를 살인하였다. 성 마르지알레(S.Marziale)는 자신을 위해 마련해두었던 묘지에 성녀의 시신을 거두어 묻어주었다.
성녀 레오카디아, 동정, 순교(304년경 순교)
축일 : 12월 9일
그녀는 똘레도의 귀족 집안 딸로 태어났으나, 디오클레씨안의 크리스챤 박해때에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감옥에서 그녀는 성녀 에우랄리아가 메리다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그녀를 본받아 그리스도를 위해 죽기를 소원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그녀는 똘레도의 주요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다.
성녀 나탈리아
축일: 8월 26일 (혹은 9월 8일)
니코메디아의 성 아드리아노의 아내이다. 비잔틴 전례에서는 8월 26일에 경축한다.
성녀 나탈리아는, 막시미아노 로마 황제때 신앙박해로 감옥에 갇힌 남편 성 아드리아노와 동료 신자들을 찾아가, 위로하고 형벌로 받은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나중에는 성녀도 남편의 뒤를 따라 순교한다.
서양 순교록에서는 9월 8일에 성녀의 축일을 경축하고 있다.
성녀 리카르다, 과부(895년 순교)
축일 : 9월 8일
알사스의 백작 딸인 성녀 리카르다는 22세 때에 게르만 왕 루이스의 아들인 찰스 팻트와 결혼하였다. 19년 후, 그는 남편과 함께 로마로 가서 교황 요한 8세로부터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와 황후로 대관하였다. 그후 찰스 황제는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을 위하여 리카르다를 모함에 빠지게 했고, 이에 대한 결백을 증명하기 위하여 타오르는 불길 위를 지나가는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맨발로 불길 위를 걸어갔으나 조금도 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누명을 벗었으나, 남편과는 별거키로 하여 안들로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그녀는 수녀들의 생활을 그대로 실천하고 보속하면서 평화롭게 살다가 선종하였다. 리카르다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수호성인이다.
성녀 레지나, 동정, 순교자(2세기경)
축일 : 9월 7일
라이네라고도 알려진 성녀 레지나는 부르군디의 알리스 지방의 이교인 끌레멘스라는 사람의 딸이다. 그녀는 어느 크리스챤 부인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는데, 어머니가 일찍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부친은 그녀가 크리스챤임을 알고 집에서 쫓아내었는데, 이때 레지나는 자신을 길러준 신자와 함께 양치는 일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계속하였다. 레지나는 그 지방의 최고 관리인 올리브리우스와의 결혼을 거부함으로써 골 지방의 오텅(오툉)에서 참수치명하였다
베가,베아(BEGA,BEE)
축일 : 9월 6일
믿을 만한 전설에 의하면, 베가는 아일랜드 왕의 딸로서,노르웨이 국왕 아들과 결혼하려고 약속한 날에 사라졌다고 전해온다. 그녀는 기적적으로 컴버랜드 연안의 어느 마을로 들어가서, 한동안은 은수자로 생활하다가 성 에이단으로부터 수도복을 입었으며, 세인트 베아 수도원을 세웠다. 원장으로서 그녀는 가난하고 억압받던 사람들을 구제하여 많은 추종자들이 모였고, 생전에 큰 공경을 받았다고 한다.
성녀 가타리나, 라꼬니지의, 동정(1547)
축일 : 9월 4일
라꼬니지는 1486년에 어느 가난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고, 가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가 낡아빠진 광에서 태어난 것은 묘하게도 그녀의 일생이 몰질적으로 궁핍하며 건강치 못하고 또 이해받지 못한 사람으로 살 것임을 상징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느 누구보다도 풍요로운 삶을 살았다. 그녀는 이미 5살때부터 아기 예수와 성모께 대하여 남다른 신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집안에서 힘든 일을 하거나 굶주림으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그녀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서 큰 위로를 받곤 하였다. 1500년의 성 스테파노 축일에, 그녀는 이 성인에게 기도하였는데, 참으로 기적적으로 성 스테파노가 발현하여 성령께서 특별히 보살펴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때 세 줄기의 빛이 그녀를 비추며, "나는 네 안에 내 거처를 정하고, 너의 영혼을 깨끗하게 밝게할 것이며 생기를 주리라"고 했다.
그 후 가타리나는 신비적인 신랑과의 동정 서원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손가락에는 신비스런 반지가 끼워 있었고, 이때부터 그녀는 가시관과 주님의 오상의 아픔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육안으로는 볼 수 없었다. 그 후 가타리나에게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고 또 영적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짓누르는 악마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는 등, 오랜 병고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그녀는 62세 때 까르마뇰라에서 운명하였다.
비떼르보의 성녀 로사 (Rosa of Viterbo, 동정, 1252년 임종)
축일: 9월 4일
비떼르보에서 태어난 성년 로사는 병을 앓던 8세때에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성프란치스코의 수도복을 입으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후에도 집에서 그냥 지내면서 평범한 여성으로 자랐다. 병이 회복된 그녀는 평신도의 회개 복장을 하였고, 우리 주님의 고난을 더욱 절실히 체험케 되었으며, 죄인들의 무례함과 배은망덕을 대신 속죄하였다. 그후 12세기경부터 그녀는 타오르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길 수 없어 거리로 뛰쳐 나가서 설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그당시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무수한 경고를 하였다. 이때문에 그녀가 집에 감금되었고, 이리하여 로사와 그 부모는 추방되어 소리아노로 갔는데, 그녀는 여기서 그당시의 독재자인 프레데릭 황제의 죽음을 예고하였고, 그것은 꼭 13개월 후에 일어났다. 이때부터 그녀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고향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그후 그녀는 비떼르보에 있던 로사의 성마리아 수녀원 입회를 청하였지만 거절당하였다. 이리하여 그녀의 주임사제가 성당 곁에 수녀원을 만들고 몇몇 동료들과 함께 살도록 주선하였으나, 집으로 돌아와서 곧 운명하니, 그녀의 나이는 17세였다.
성녀 로살리아, 동정(1160년 순교)
축일 : 9월 4일
13세기부터 시실리아에서는 성녀 로살리아 공경이 보편화 되었으나, 옛 순교록에는 그의 생애가 기록되지 않고 있다. 스틸팅 신부의 연구에 따르면, 성녀 로살리아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시실리의 비보나 교외 몬떼 꼬쉬나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후일 그녀는 팔레르모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그녀는 이 도시의 주민을 구했기 때문에 그녀가 팔메로 주민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으며, 그녀의 은둔소 위에 큰 성당을 세웠다.
이다(Ida)
축일 : 9월 4일
이 귀부인은 챨스 마르텔의 손녀딸로서, 알사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챨스 대제의 고관이었으므로, 그녀는 궁중에서 성장하여 에그베르트란 사람과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청상과부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극도의 기도와 고행에 몰두하는 한편,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데 전념하였다. 또 그의 아들은 어머니의고결한 모습을 모고 자신도 수도자가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관을 미리 만들어 두고 그 속에는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음식들을 보관하였다고 전해온다.
세라피아(Serapia)
축일; 7월 29일 혹은 9월 3일
엘피디오 로마총독 치하에서 친구인 사비나 성녀와 함께 순교한 순교 성녀이다.
라헬(레이첼, Rachel)
축일: 9월 2일
1) 야곱의 애처로 요셉과 베냐민의 모친이다(창세 30,22-25).
2) 가나안으로 여행하는 도중에 여브랏 부근에서 베냐민을 낳고 난산 끝에 죽어서 그곳에 장사되었다(창세 35,16-20).
◇ 야곱의 둘째 아내 - 불신앙으로 슬피우는 어미의 표상 라헬은 라반의 둘째 딸로서 근친혼과 일부다처가 허용되었던 고대 근동지방의 풍속을 따라 야곱의 둘째 아내가 되었다. 소녀 시절 어느 날, 메소포타미아 하란 지방 어느 광야에서 아버지의 양떼를 먹이고 있을 때 고종사촌 오라버니인 야곱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야곱은 외사촌 누이동생인 라헬의 아릿다움에 반하여 무려 14년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라반에게 봉사했다. [그로부터 야곱은 라헬에게 장가들 생각으로 일을 했다. 칠 년이라는 세월도 며칠밖에 안 되듯 지나갔다. 그만큼 그는 라헬을 좋아했던 것이다](창세 29,20) 이 글귀를 보아 그 누구보다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아하고 현명한 라헬이 이스라엘 족장의 아내로서 부족했던 점은 시조모인 사라처럼 하느님의 섭리에 앞서 불신앙적 수단 방법을 자행했다는 것이다. 라헬은 언니 레아가 계속하여 루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를 출산하자 심히 시기하여 어느 날 밤 남편을 자신의 여종 빌하의 방에 들여보내어 아들을 낳도록 했다. [그러자 라헬이 말하였다. "저에게 몸종 빌하가 있지 않습니까? 그의 방에 드셔요. 빌하가 혹시 아기를 낳아 제 무릎에 안겨 줄지 압니까? 빌하의 몸에서라도 아들을 얻어...](창세 30,3).
빌하를 통하여 얻은 아들이 단 납달리이며, 이들은 훗날 레아의 시녀 실바가 낳은 아들 갓 아셀과 함께 북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 비로소 라헬의 태에서 예정과 섭리의 아들이 태어났다. [하느님께서는 라헬도 돌보시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열어 주셨다. 마침내 라헬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는 "하느님께서 나의 부끄러움을 씻어 주셨다" 하면서 아기 이름을 요셉이라 부르고 "야훼께서 나에게 아들을 하나 더 점지해 주셨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하였다.](창세 30,22-24). 여기에서도 우리는 인위적 잉태와 신앙적 잉태의 차이점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으며, 그리고 하느님께선 신중하게 구원사의 매듭을 풀어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하나의 라헬의 결정적 과오는 하란을 떠날 때 그녀의 아버지의 우상 드라빔을 훔친 일이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훗날 라헬의 후손들이 망하고 북방민족의 포로가 되었을 때 그녀는 애곡하는 어머니의 표상이 되었던 것이다.
라헬은 "암양"이라는 뜻입니다. 라반의 둘째 딸이요 레아의 동생이었습니다. 레아도 함께 야곱의 아내였습니다. 라헬은 미모가 드러나게 아름다운 여자였습니다. 야곱이 하란 근교 우물가에서 외삼촌 집으로 피신해 가다가 라헬을 처음 대했을 때 야곱이 그를 사랑할 만큼 그 외모가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므로 야곱이 라헬을 위해 7년을 봉사할 때 수일같이 여겼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야곱의 애정을 측정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라헬은 명랑하고 쾌활했고 사교적이었습니다. 반면에 이기적이고 질투심도 많았으며 감정 표현을 거침없이 할만큼 대담한 여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야곱이 라헬에게 시달렸으며 다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남편을 독점하면서도 언니 레아를 불편하게 만든 여자입니다. 라헬이 자기 고향을 떠날 때 친정집에서 드라빔을 훔쳐 자기 몸에 숨겨 가지고 나온 것은 대단한 욕심이었습니다(창세 31,19). 드라빔은 데라빔이라고도 하는데 사람 모양으로 세워놓은 작은 우상이었습니다.
가정을 지켜주며 아기 가진 여인들의 행운을 빌어준다는 우상이었습니다. 라헬은 이 드라빔을 하체에 숨겨 끝까지 아버지를 속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태도에서 라헬의 간교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교훈과 적용]
첫째, 미모와 많은 자질을 갖추었으면서도 후덕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둘째, 미신적인 드라빔을 도적질해 나온 것은 위험한 혼합신앙이었습니다. 믿음은 순수해야 합니다.
데보라(혹은 드보라)
축일: 9월 1일
구약인물로서 판관기 4장과 5장에 나오는 여예언자이며 판관으로 활약을 하였다. 판관으로 활약하면서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에서 건져내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
요안나(Joan)
축일 : 9월 1일
플로렌스의 귀족가문인 소데리니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릴 때부터 선행을 좋아하고 또 하느님을 열심히 공경하였다. 그녀가 장성하자 부모들이 혼인을 시키려고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고 수녀가 되려고 하였다. 이즈음에 성녀 율리아나 팔코니에리가 성모의 종 3회를 설립하였으므로, 그녀는 이 공동체에 가입하였다. 그녀는 즉시 온갖 방법으로 수덕생활에만 전념하고, 병자를 돌보았다. 그녀는 자원하여 가장 힘든 일을 맡았다. 그녀는 26년 동안이나 이 공동체의 원장으로 일하여 성녀 율리아나의 표양을 따랐다.
영국의 첫번째 크리스챤 국왕 성 에텔베르토의 손녀딸인 그녀는 자신의 놓은 성덕 때문에 그녀의 출생이 더욱 돋보인다고 한다. 그녀는 노스움브리아의 외교인 왕자와 결혼해야 한다는 부친의 뜻을 거역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그의 신에게 기도하여 이 통나무로 긴 발을 만들수만 있다면 나는 결혼하겠읍니다." 이리하여 그녀는 부친의 동의를 얻어내어서 켄트의 포크스톤 연안에 수녀원을 짓고 거기서 살았다. 그녀는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고행과 기도로써 성덕을 쌓았다. 그녀의 수녀원은 덴마크인의 침약으로 없어졌으나, 1095년에 베네딕또 수도원이 이곳에 세워졌다
성녀 루드밀라(LUDMILA, 860-921)
축일: 9월 16일
순교자. 그녀는 슬라브 왕장의 딸로 태어나, 보헤미아의 공작 보리보이와 결혼하였는데, 남편도 자신이 다니던 성당의 성 메토디오로부터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들은 보헤미아의 첫번째 성당을 세웠다. 그러나 왕가에서는 이 신흥종교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반대하기 시작했고, 설상가상으로 남편마저 운명하였다. 그녀는 덕스럽고 배움이 많은 부인이었다. 그녀는 늘 주민들을 돕고 있었기에, 백성들은 그녀의 높은 덕을 늘 칭송하였다. 그러나 크리스찬을 싫어하던 왕가의 손에 죽임에 당하고 말았다. 그녀는 체코에서 더많은 공경을 받고 있다.
성녀 골룸바, 꼬르도바의, 순교자(853년 순교)
축일 : 9월 17일
골룸바는 스페인 태생으로 자기 친척들이 티바노스에 세운 공동체에서 수녀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 공동체가 무어족들에 의해 폐쇄되는 불운을 맞게 되자, 그녀는 꼬르도바의 무어족 사령관에게 가서, 모하멧은 거짓 예언자라고 주장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하다가, 참수당하였다. 그녀의 시체는 과달귀빌 강에 던져졌다. 이처럼 용감한 순교자는 아주 드물다.
성녀 수산나
축일: 9월 19일
동정녀. 순교자. 성녀의 아버지는 아르테미오라고 부르는 이교도 사제이고 어머니는 히브리 사람이었다. 부모님을 여윈 뒤에 어떤 사제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고 세례를 받았다.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남자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성녀는 남장을 하고 요한이라는 가명으로 수도승 생활을 한다. 이러한 사실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고, 그런데 어느날 남장을 하며 생활하던 성녀로부터 겁탈당했다고 어느 여인으로부터 모함을 받으면서 이러한 모든 사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모함은 자신이 여성임이 밝혀지면서 해명되었고 자신의 성별도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이스의 Eleuteropol로 옮겨가서 그녀는 부제품을 받는다. 복음을 전파하며 살다가 알렉산드로라고 하는 지방 통치자에게 붙들려서 온갖 고문을 겪으면서 감옥에 갇히고 거기서 죽음을 맞는다. 비잔틴 전례에서는 9월 19일 혹은 12월 15일에 기념하고, 로마전례에서는 9월 19일에 기념한다.
헬레나(Helen)
축일 : 9월 24일
볼로냐 출신인 그녀는 17세 때에 결혼하였는데, 이들 부부는 거의 30년 동안 매우 훌륭한 크리스챤 가정을 꾸미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다. 이들 부부의 애정은 너무나 깊어 모든 이들이 그들을 우러러 공경하였는데, 남편이 죽은지 얼마 후에 그녀 또한 무덤에 묻혀 위대한 부부 사랑을 증거하였다고 한다.
성녀 유스티나 (파두아의)
축일: 10월 7일
순교자. 파두아 지방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는 유스티나는 사도 성베드로의 제자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네로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는 사실밖에는 일려진 게 없다.
피데스(Fides)
축일 : 10월 6일
이 성녀의 공경은 중세기에 확산되어, 특히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녀는 아마도 아퀴텐느의 아쟝에서 순교한 듯 보이나 순교사회는 신빙성이 결여된다고 한다. 성 바오로 대성당의 지하 성당이 이 성녀의 본당이었다는 말도 전해온다. 순교는 디오클레씨안의 크리스챤 박해 때 이루어졌고, 벌겋게 달군 놋쇠 위에서 고문을 받다가 거룩하게 순교하였다. 성녀 알벨따 역시 그녀와 함께 처형되었다(3월 11일).
성녀 플로라(볼리외의) (Flora of Beaulieu)
축일: 10월 5일
성녀는 1347년에 임종함. 성녀 플로라는 누구나 칭찬받는 착한 어링이로서 성장하여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장성하여 부모들이 결혼시키려고 노력하였으나 완강히 거부하면서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볼리외에 있던 성 요한의 구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한 번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 평탄하다는 그릇된 생각에 빠진 적이 있고, 동시에 세속의 쾌락을 탐하려는 불같은 유혹으로 깊은 실망감을 맛보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들은 그녀가 위선석이라고 혹평하였으나, 자신의 영혼 상태를 잘 알아본 어느 고해신부의 도움으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 어느 해, 모든 성인의 날에 탈혼에 빠졌는데 성녀 체칠리아 축일까지 약 3주간이나 계속되었다. 또 한번은 8마일 밖의 어느 성당에서 사제가 미사 도중에 축성한 성체 조각을 떨어뜨린 사실을 알게 되어 경건하게 모신 일이 있다. 이때부터 그녀의 초자연적 식별력이 돋보이게 되었다. 또 성령을 묵상할 때에는 땅에서 4피트나 떠오른 사실도 있다. 그러나 가장 신비스런 영적 체험은 구세주의 몸에 받으신 상처를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고 있엇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38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다.
성녀 글레오파트라, 과부(4세기경)
축일 : 10월 19일
막시미누스 치하의 박해 때 순교한 성 바로의 유해는 글레오파트라라고 부르는 어느 신자 과부에 의하여 털로 만든 가마니에 숨겨서 아드라하로 옮겨졌다. 이곳에는 그녀를 비롯하여 많은 크리스챤들이 살았으므로 그들은 순교자의 무덤을 중심으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성녀의 아들 요한이 군인이 되었을 때, 그녀는 바로를 공경하는 대성당을 짓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 성당을 완공한 날에 그 아들이 갑자기 병을 얻어 죽어버렸다. 그녀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몸부림치다가 하느님께 당신의 외아들을 살려주십사고 늘 기도하였다: "당신이 내게 보여 준 사랑을 내가 잊은 듯 싶은가? 내가 그대의 아들을 살려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았는듯 보이는가? 보라. 이제 그 응답이 왔다. 그는 이제 기력을 되찾았다. "성녀는 "이제 만족합니다. 그러나 나도 이제 성인과 내 아들과 함께 있게 해주십시오"하자, "안된다. 나는 네 아들과 함께 있어야 하니, 좀 더 기다리면 우리가 영접할 것이다" 하고 성인이 대답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성녀는 지금까지의 모든 슬픔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오로지 순교자에 대한 사랑으로 여생을 살다가 운명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성 바로와 아들 요한 곁의 대성당에 안장하여 공경해 왔다.
첫댓글 라헬, 레이첼 이름 이쁘다.
예쁜 이름 많네요~~
내생일에도 성녀가 있는줄 몰랐네... 알았으면 할걸...
성녀 만나고싶어요!
오호.... 이름 이쁘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