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들의 巨文島 白島 여행
2008년 7월12일 토요일.
용산역에 6시40분까지 나오라는 거시기 박제건총무의 휴대폰 메시지를 받고 상도동에서 택시를 타니 이른시간이라서 그런지 10분정도 밖에 안 걸려 30분경에 도착했다.
이은수부부 박창식부부 경연욱부부 박제건부부 그리고 우리부부 도합10명이 이곳에서 KTX를 탄다.
유근무부부는 광명역에서 탄단다
우리들 좌석이 모두 뒤로 앉아 가게 되어 있어 불만들이 많다.
사실 뒤로 가는 것이 불편할 건 하나도 없다.
7월은 우기 철이라 좋은 날씨 잡기가 어려운데 오늘은 적당히 구름이 낀 좋은 날씨다.
차장으로 보이는 세상이 싱그럽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들판, 논에는 모가 어느새 어른 정강이 까지 올라왔다.
기차는 경기평야 그 넓은 들판을 눈 깜박 할 사이 쏜살 같이 지나가 버린다.
농촌 마을 앞 느티나무와 정자가 시원해 보이고, 감나무며 밤나무 대추나무 올해는 유난히 열매가 많이 달렸는지 척 느러져있다.
이렇게 열차가 대전을 거쳐 광주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경.
광주역에서 우리를 맞이한 가이드는 15인승 봉고차 차주.
15인승이라지만 보조의자 3개와 운전석을 빼면 11명이 탈 수 있을 뿐이다.
7월 중순 기온이 섭씨 30도 이상을 오르내리는 찜통더위에 어른 12명 그리고 짐 보따리, 불평이 안 터져 나올 리 없지.
가이드가 듣던 말 던 모두들 짜증 한 마디씩 한다.
드디어 박 총무가 여행사에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여행사지요? 서울서 ktx 타고 내려온 거시기 회원들인데요. 네, 안녕하지 못해서 그런데요. 어른12명을 11인승 봉고에 태우면 어쩌자는 겁니까?”
“예 죄송합니다. 성수기고 기름 값도 많이 올라서...”
여행사 사장 변명을 하는 모양이다.
“두 말 할 것 없이 내일은 25인승으로 바꿔주세요. 비용 더 드는 것은 이쪽에서 부담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박 총무가 전화를 끊는 표정으로 봐서 얘기가 잘 된 모양이다.
옆자리 이은수 박사, 국토 종단 순례 중에 합류한 탓인가 몹시 피곤한 모습이다.
이런 찜통 차 안에서도 달게 잠을 잔다.
우리는 2시간 만에 여수에 무사히 도착했다.
여수항 부두앞 식당에 준비된 매운탕과 게장 백반으로 점심을 먹고 부두 여객 터미널 안에 있는 여행사로 들어갔다.
여행에 대한 브리핑을 한다고 해서 들어보니 여행사 사장, 자기회사 홍보만 늘어놓는다.
거문도행 여객선 150명쯤 태운 후 여수항을 출발한다.
배는 푸른 남해 바다 물살을 힘차게 가르며.
배는 나로도와 손죽도 그리고 조도에 잠시 들려 여행객과 화물을 조금씩 내려놓고 2시간 만에 거문도항에 도착한다.
거문도는 서도와 동도가 부부처럼 누어있고 하고 가운데 작은 애기 섬 고도가 끼어 있다.
면적은 서도 동도 고도 합쳐 12km2 정도.
거문도는 1885년 고종황제가 당시 러시아의 극동 진출을 견제하기 위하여, 영국함대가 거문도에 3년간 주둔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그 당시의 영국인 3명의 묘지가 아직도 거문도에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주로 서도에 많이 산다.
세 개 섬 인구가 천 오 백 명 가량인데 대부분 관광객을 상대로 식당 숙박업에 종사하고 극히 일부만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15년 전 만해도 만3-4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살았었다고한다.
서도에 중학교와 초등학교 하나씩 있고 동도에는 초등 분교가 하나 있다.
나중에 손죽도가 고향인 우리 동문인 송정남이가 들려 준 바에 의하면 거문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학생수가 10여 명씩 밖에 없을 거고 동도의 분교는 한두 명밖에 없을 거란다.
30-40년 송정남이가 손죽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적 만해도 여수 앞바다에는 조기며 갈치 등 고기들이 많이 잡혔는데 지금은 근해에서는 전혀 고기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기씨가 말랐다고 한다.
남태평양에서 고기떼가 우리나라 근해로 오기 전에 먼 바다에서 큰 배들이 인공위성으로 추적하여 먼저 잡아버리기 때문에 영세어민들이 근해에서 작은 배로 잡을 고기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도 빈익빈 부익부가 심각한 모양이다.
여관에 여장을 풀고 바로 백도 행배를 탔다.
백도행배는 정원이 100명 정도의 작은 배다.
40중반쯤 먹어 보이는 선원하나가 우리 여행객들에게 백도를 홍보 잘 해달라고 넙죽 큰절을 한다.
백도에 대해서 잠시 소개를 하더니 이내 본심을 드러낸다.
한치 한 접시에 만원이라면서 소주와 함께 판다.
손도 안 씻고 간이 스티로폴 냉장고에서 한치를 꺼내 더러운 도마에 올려놓고 썩썩 썰어 몇 접시를 판다.
현미경으로 보면 그놈의 손이나 도마, 칼에 병균이 득실거릴 거라고 생각하니 목에서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우리 거시기일행은 누구도 나처럼 먹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놈의 행동에 관심을 안 보인다.
배가 많이 흔들린다.
놈은 너울 성 파도라 위험하지 않으니 안심하란다.
우리부부는 여수에서 배 멀미 약을 사먹어서 조금도 멀미를 하지 않았다.
갑판에 나가니 뱃바람이 차갑다.
멀리 희색 백도가 보인다.
바다위에 성처럼 올라와 있는 바위섬, 파랑과 비바람에 깎여 자태가 곱우나 나무나 풀이 거의 안보인다.
무인도 백도는 거문도와 50km 이상 떨어져 있지만 고독해 보이지는 안는다.
크고 작은 10여개의 형제 섬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가운데 백도가 있고 북쪽에 있는 게 상백도가 남쪽에 있는 게 하백도 각각 몇개씩 무리져 있 다.
바위섬 백도는 물위 50-100m가량 수직으로 노출되었는데 바위색갈이 홍도나 독도와 달리 옅은 희색이다.
상 백도 큰섬에는 등대도 있고 등대지기가 오르내릴 수 있도록 경사면에 철제 사다리도 설치되어있다.
배가 백도주변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선장은 백도의 바위 모양을 열심히 설명한다.
산 또는 섬에 있는 바위모양은 어느것이나 천태만상을 띠고 있게 마련이다.
해설자들은 그런 바위모양에 거북이 뱀 사자니 코끼리 등 동물, 심지어 사람의 생식기이름을 붙여 놓고 전혀 닮지도 않은 것을 똑 같다고 우겨대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해설자의 소리는 콧등으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는 관광객의 관심을 끌어보려고 숙달된 입담으로 연신 지껄인다.
홍도는 바위 색이 붉고 모양도 풍화가 많이 되어 뾰족하고 절리나 균열이 많지만 백도는 풍화도 덜되고 암석의 색깔도 다르다.
40분 쯤 걸려 백도를 구경하고 배는 다시 거문도로 돌아왔다.
현지 삼호식당에서 활어회와 갈치회 등으로 저녁을 거하게 먹으니 졸음이 오는데 친구들은 수판이 그칠줄 모른다.
여자 거시기들도 오늘은 취하고 싶은가보다.
술잔들이 오고간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아내도 맥주 한잔을 다 마신 모양이다.
얼굴이 화끈거려 밤바람을 씐다며 혼자 어두운 밖으로 나간다.
강석만 여사와 황계영 여사가 나보고 아내를 찾아보란다.
밖으로 나가니 작은 어촌의 바닷가가 어두워 아내를 찾을 수가 없다.
두리번거리다 여관으로 갔나하고 여관까지 가보았지만 보이지 않아 그냥 돌아 왔더니 조금 있다 아내가 들어온다.
갈치의 고장이라서 그런지 갈치 회 맛이 별미다.
갈치는5-6년은 자라야 크기도 크고 맛도 제 맛이 나는데 우리가 먹는 갈치는 보통2-3년 자란 것이란다.
여행에 지친 뭍 여행객 섬에서의 하룻밤이 꿈길 같다.
다음날 아침 5시30분에 아침등산을 했다.
갈치 어판 장에 하얀 은 갈치가 스티로폴 상자에 어름과 함께 포장되고 있다.
근해에서 는 잡히지 않는다는데 먼바다에서 잡아 가지고 온 것인가?
전날 가이드가 약2시간 코스의 등산로 가르쳐 준대로 우리는 등산을 했다.
산이라고 해발 100m도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산자락까지 끼어 우리는 안개 속으로 희미한 길을 찾아 산행을 했다.
경융호 회장과 김부자 여사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평소 아침산행을 좀처럼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지만 오늘 친구들과 좋은 공기 마시며 안개 낀 산길을 걸으니 마치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이 된 느낌이다.
더욱이 거시기들과 하는 산행이니 더 좋다.
아침부터 거문도 신선과 함께 노닐다 내려와 샤워를 하고 먹는 아침밥도 역시 꿀맛이다.
10시40분. 여수행 배를 타고 어제와 반대로 조도 손죽도를 지나서 여수까지 가지 않고 나로도에서 내렸다.
순천의 낙안읍성을 들리기 위해서다.
나로도항에 내리니 깨끗하게 꾸며진 25인승 미니버스가 우리를 기다린다.
어제와는 달리 모두들 널찍하게 자리를 잡은 거시기들은 꾸불꾸불 산길을 돌아가는데도 불평 한마디 없다.
고흥반도 굽은 산길 돌고 돌아 민속마을 낙안읍성에 1시가 넘어서 도착하니 시장기 돈다.
도시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인데도 관광객이 제법 있다.
민속마을 내 한 식당 18가지 반찬에 컬컬한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는데 낙안읍성 옛날 사또 행차를 재현하는 행사가 벌어지니, 박제건 총무 밥 먹다 말고 사진기를 들고 우왕좌왕한다.
식사 후 민속마을 이리저리 다녀보니 옛 풍습 재현한다고 성곽도 쌓아놓고 관청도 지어 놓고 가금류 우리도 만들어 놓고 닭 꿩 공작 강아지 등을 가두어 놓긴 했는데 하나 같이 너무 조잡스럽다.
정성도 보이지 않고 두번 볼 가치가 없어 보인다.
문화재는 역시 진품이라야 하나보다.
외국인에게 보이기는 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임경업장군이 이곳에서 사또로 선정을 폈다고 해서 선정비가 세워져 있긴 하다.
그것도 모조품 같다.
우리는 낙안읍성을 끝으로 관광은 다 마치고 광주로 와서 광주에서 KTX를 탔다.(2008.7.13)
첫댓글 정리하느라 수고 했어유. 이제는 슬슬 직업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유.
늘 여행후기로 복습잘하고 있어요. "거시기들의 여행기" 책 출판하면 어떨까요?ㅎㅎㅎ 그런데 윗부분에 경연욱부부가아니고 경융호부부고요 경융호부부도 광명역에서 탔답니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