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종합선물세트 선물 같은 마을
참이슬아파트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현광(가명)씨는 축구 매니아다. 그는 수원삼성의 서포터즈이고, 합정FC라는 아마추어 축구팀 회원이다. 김씨의 홈구장은 소사벌 레포츠공원의 축구연습장이다. 축구연습장이 포화상태면 합정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한다. 일요일 오전 축구경기를 마친 회원들은 소사벌레포츠공원 부근의 조개터 해장국집에서 아침을 먹는다. 10여 년 전부터 조개터에는 식당과 술집, 카페가 빽빽하게 들어섰다. 일요일 저녁에는 가족들과 배미마을 앞의 롯데마트에서 쇼핑을 하고 조개터 식당가에서 외식을 한다. 지난 해 김씨는 둘째아들을 얻었다. 잔병치례가 많은 아들은 성세병원을 지정병원처럼 이용한다. 올 여름에는 폐렴증세 때문에 굿모닝병원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1주일 동안이나 입원하였다.
합정동은 조개터에서 유래
합정동은 구 평택지역에서도 의료, 레포츠, 쇼핑, 유흥의 중심이다. 평택시의 대표적인 종합병원인 굿모닝병원, 아동종합병원인 성세병원이 위치하였고, 소사벌 레포츠타운, 롯데마트, 그리고 조개터 마을의 식당과 술집들이 합정동에 모여 있다. 합정동이 현재처럼 변모한 것은 20년이 채 안 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도시보다는 농촌마을에 가까웠던 합정동은 주민구성에서도 상업인구나 회사원보다 농업인구가 많았다.
빌딩과 아파트 숲에 가려버렸지만 합정동에는 조개터, 통미, 배미, 됏박산, 조산, 창말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었다. 조개터는 소사벌 레포츠공원과 합정초등학교 사이의 마을이고, 배미는 평택고등학교 동쪽, 통미는 합정주공아파트 1, 2단지 건너편, 됏박산은 신평동주민자치센터 인근, 조산은 소사벌레포츠타운 터, 창말은 롯데마트 동쪽에 있었던 마을이었다. 이 가운데 창말과 됏박산, 조산은 폐동(廢洞)되었고 지금은 조개터와 배미, 통미만 남았다.
조개터는 합정동의 중심이다.‘합정(蛤井)’이라는 지명도‘조개터’에서 왔다. 지금 같아서는 합정동에서 조개가 연상되지 않지만, 수 백 년 전까지 만해도 조개터 앞들은 백랑천(현재 소사천으로 추정)의 배후습지였다. 주민들에 따르면 1974년 아산만 방조제가 준공되기 전까지만 해도 소사천과 안성천 일대에는 말조개, 재첩조개가 지천으로 잡혔다고 한다. 조개터는 말조개, 부전조개(재첩), 대합조개를 채취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민중들의 생산활동이 지명으로 굳어지는 것은 다연한 일. 나중에 조개터는 합정동이 되었다. 지명이 한자화 되면서 조개‘합(蛤)’자를 써서 표기했기 때문이다. 배미는 1983년 이전까지만 해도 평택군과 안성군의 군계(郡界)였다. 평택지역에 흔한‘군계’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배미’는 한 배미, 두 배미, 공중배미처럼 경작지의 모양과 넓이를 나타내는 말이다. 통미는 경부선철도 건설과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조개터, 배미, 조산, 창말은 있어도 통미라는 마을은 없다.
구 평택 최초의 근대교육기관 동명의숙
예로부터 합정동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합정동주공아파트에서 배미에 이르는 너른 통한들이 주경작지였다. 을사조약(1905) 뒤 조개터 마을에는 구 평택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조개터의 동명의숙이 그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했던 농투성이들에게 학교는 생경했지만, 신교육만이 미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짧은 그들의 식견으로도 이해되었다. 설립자 김춘희는 낙향한 선비로 구한말 영의정을 지낸 누구의 친척이었다고 한다. 그는 근대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역 유지들에게 통문을 돌려 교육구국(敎育救國)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동참을 호소하였다. 김춘희의 설득에 많은 유지들이 호응을 하였다. 진위군수를 지내다가 안성군수로 전임된 김영진도 거금 20원을 기부하였으며 진위군수도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개터 최씨네 사랑채를 빌려 학교가 개교하자 40여 명의 서민자제들이 몰려들었다. 학생들 중에는 상투를 튼 장년들도 많았다. 학생들은 근대사회로 이행되는 과도기답게 구학문과 신학문을 함께 배웠다.
동명의숙은 설립 후 얼마 되지 않아 김춘희가 사망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교사와 주민들이 발 벗고 나서 의연금을 모금하여 학교를 확충하고 서울에서 우수한 교사를 초빙하여 교육의 질을 향상시켰다. 나중에는 주간교육이 불가능한 하층민을 위해 노동야학까지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합정동 주민들의 배움의 요람 동명의숙은 일제강점 이후 폐교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어쩌면 1913년에 설립 인가된 평택공립보통학교에 통폐합되었을 수도 있는데 기억하는 이가 없다.
합정동의 획기적 발전은 1990년대 이후부터
1974년 비전동 삼각산 기슭의 평택고등학교가 배미마을 앞으로 이전하였다. 평택지역에서 명망 높은 공립고등학교의 이전은 농촌마을이었던 합정동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1990년 전후에는 통미와 됏박산 주변에 합정주공아파트 1~4단지가 조성되었고, 조개터와 하신작로 사이에는 한미아파트가 건설되었다. 통미와 국도 38호선 사이에도 신안아파트, 성동아파트같은 빌라형 주택이 건설되었다. 2000을 전후해서는 동일공고 건너편에 참이슬 아파트와 SK합정아파트가 건설되었고, 2004년에는 구 전화국 건물에 합정SK뷰 주상복합아파트가 입주하였다. 대단위 공동주택의 건설은 도시화를 촉진시켰고 인구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다. 거주인구의 직업도 농업인구보다 회사원, 공무원, 교사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
2000년대에 조개터 마을이 재개발되었다. 조개터의 재개발은 기존 마을들처럼 자연마을을 해체하고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을 건설하지 않고, 마을공동체를 살린 상태에서 빌라형 주택과 상가를 중심으로 개발된 점이 특징이었다. 개발된 상가는 대부분 식당과 술집, 카페로 탈바꿈했다. 조개터의 상가, 식당가 이용층은 젊은이의 거리인 평택1번지나 새시장골목과 달리 30, 40대 이상의 직장인이나 가족들이 많다. 평택여중사거리 남쪽에는 유명 보습학원이 밀집되었다. 그래서 골목에는 방과 후 보습학원에서 풀려난 아이들이 장사진을 친다.
조산아래 소금자거리에 공설운동장이 건설된 것은 1979년이다. 초기 3만석 규모의 종합운동장으로 야심차게 출발한 공설운동장은 이후 수영장, 축구연습장, 하키연습장,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더해지며 소사벌 레포츠타운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아직도 공설운동장이라고 부른다. 조미료는‘미원’, 세제는‘퐁퐁’이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소사벌 레포츠타운 옆의 평택청소년문화센터는 2001년에 개원하였다. 청소년들은 문화센터에서 학습활동과 각종 동아리활동을 하며 내일의 꿈을 키운다. 배미마을 앞에는 롯데마트가 있다. 롯데마트는 지제동의 이-마트, 비전동의 뉴코아 아울렛과 함께 평택지역 아울렛을 대표한다.
합정동 동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굿모닝병원은 평택동의 박애병원과 함께 평택시를 대표하는 종합병원이다. 굿모닝병원 병원은 1980년 통복동에 개원한 평택성심병원과 평택동의 평택한일병원에 기원을 두고 있다. 1990년에는 평택한방병원을 개원하였으며, 2002년 합정동에 병원건물을 신축하고 굿모닝병원으로 고쳐 이전하였다. 소사벌 레포츠공원 부근의 성세병원은 양진소아과 원장 양진씨가 소아과전문병원으로 개원하였다. 또 성동초등학교 사거리에서 평택여중 사거리 사이에는 예일산부인과, 미즈산부인과, 그리고 정형외과 전문인 으랏차병원이 있어‘의료타운 합정동’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2012.9. 하이모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