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레19:32)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32절)
현세대를 가리켜 윤리도덕이 무너진 개인 이기주의 시대라고 한다. 어른을 공경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기본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남을 신뢰하기보다 경계하고 의심하는 풍조가 팽배하여 자기 자신만을 지키기 위하여 고독한 삶을 살아간다. 대화의 상대가 없고 마음속 깊은 고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외로운 생활을 하다가 돌보는 이 없이 고독하게 죽음을 맞이 한다고 한다. 한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정붙이고 살아갈 사람이 없어 강아지에게 정을 쏟으며, 손주들보다 더 애정을 갖고 돌보며 사는 시대라고 한다. 심지어 요즈음에는 강아지가 병들었다고 담임목사에게 기도해 달라는 성도가 있고, 정든 강아지가 죽었으니 장례치뤄 달라는 성도가 있다고 한다.
인간이 무엇인가?
우주 공간에 있는 천하 만물 중에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유일한 존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가족을 기초하여 사회공동체를 형성하여 수직적인 신뢰와 수평적인 유대관계를 맺고 살아가도록 창조된 소중한 존재이다. 사람이 본분을 지킬 때 사랑과 정이 통하지만, 본분을 상실하면 불신과 다툼만 생긴다.
인천순복음교회 고(古) 최성규 목사는 성경에 기초한 효(孝)사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인성교육 전문대학원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학교 설립정신은 성경의 효에 입각하여 기독교 원형인 사랑실천을 바탕으로 한다고 하고, 교육목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고, 부모, 어른, 스승 공경과 어린이, 청소년, 제자 사랑과 가족 사랑, 나라 사랑, 국민 사랑, 자연 사랑, 환경보호, 이웃사랑, 인류봉사라고 한다.
가정이 건강하면 사회가 건강하지만, 가정이 병약하면 사회 전체가 혼란스럽고 질서가 무너진다. 이 때에 교회는 사회의 중심에 서서 말씀에 기초한 효도에 대하여 가르쳐야 한다.
첫째, 부모를 경외하고, 노인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가르쳐야 한다.
32절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장은 거룩한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2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부모를 경외하고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히고 있다. ‘공경(恭敬)’이란 ’몸가짐을 조심스럽게 하여 받들어 모시다’ 이며, ‘경외(敬畏)’란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십계명에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바울은 이를 강조하며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엡6:2)라고 하였다. 노인 공경은 하나님의 뜻이다.
부모공경의 실천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다. 자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정직하고 선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 부모는 자녀 교육을 잘 시켰다는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형제간의 우애와 친구들간의 교우관계 이웃간의 인간관계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사랑과 존경받는 것을 보면 부모의 마음에는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솔로몬의 잠언이라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10:1)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건전한 신앙생활과 교회에서 성도간의 아름다운 자녀의 모습을 보며 부모는 새벽에 성전에 올라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된다.
둘째, 노인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32절a,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늙은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서 ‘센 머리’는 ‘노인’ 또는 ‘늙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문제는 ‘늙었다’를 ‘낡았다’로 생각하는 것이다. 노인을 ‘낡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것이 문제이다.
노인이 되면 대체로 힘을 잃는다. 육신적인 쇠퇴는 치명적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힘을 쓰기가 어렵다. 노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스스로 위축되기 쉽다. 노인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것은 큰 상처를 주는 것이므로 조심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노인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노인들은 사회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따돌림을 받고 있다. 그것은 노인들에 대한 거부, 천시, 냉대, 무관심, 무례함 등이다. 여기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왕성하게 일하다가 노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좋은 환경 속에서 살면서 사회에 진출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그가 낳은 자식은 자신 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키우고 가르쳐서, 더욱 훌륭한 인물로 키워냈다. 그러는 동안 세월이 흘러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들을 보면서 기뻐할 겨를도 없이 힘없는 노인이 되었다. 아픈 줄도 모르고, 배고픔도 참고, 수치스러운 일이 있어도 자식들을 위하여 뼈 빠지게 일하는 동안, 머리는 백발이 되고, 허리는 할미꽃처럼 굽어지고, 거동조차 힘겨워하는 노인이 되었다.
국가의 위기에서 피 흘리고, 산업의 현장에서 땀 흘렸던 그들의 공로로 먹고 살만한 정도가 되니, 지나온 역사를 망각한 채 이제는 쓸모없는 ‘낡은 존재’로 취급받는다. 역사는 쉬지 않고 흐른다. 지금의 젊음이 내일은 노인이 된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과거를 잊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아 너는 나에게 잊혀지지 아니하리라”(사44:21b)하셨다.
하나님은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라”고 엄하게 말씀하신다.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이며, 특별한 복을 받는 비결이며, 자신의 미래를 사랑하는 것이다.
셋째, 노인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32절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여기서 ‘얼굴’은 ‘인격’이라는 뜻을 갖고있다. 특히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그들의 노고를 기억해야 한다. 노인들의 주름살과 거친 피부는 그들의 노고의 이력서이다. 또한 노인 공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의 기본자세이다. 노인을 공경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도 요한은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라고 하였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면 곧 주님을 대접한 것으로 인정하신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 그러나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18:6)라고 하셨다. 남을 실족하게 한 사람에게 내리는 엄한 벌을 뜻한다. 연약한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으로 인정된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복종심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이는 자신은 물론 후손에게 물려주는 축복의 통로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노인을 경시하면 저주를 받고, 공경하면 복을 받는다. 노인 아버지를 가벼이 여겼던 함과 그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았다(창9장). 대머리 선지자 엘리사를 조롱하던 아이들이 저주를 받았다(왕하2장). 그러나 노인을 공경하면 하나님이 받으시고 장수와 평강의 복을 주신다.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부모는 자녀의 본이 되고, 자녀는 부모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꿈의 동산이 되길 소원한다.
예수사랑선교회 임웅빈 목사
카페주소 : cafe.daum.net/새중앙총회 또는 daum에서 새중앙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