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평범한 학교에 관한 기사가 월스트리트저널(2007년 11월), 뉴욕타임스(2008년 4월), 뉴스위크(2008년 8월)에 잇따라 실렸다. 대원외고 유학반의 미국 8개 명문대 진학률이 미국 사립학교를 빼고는 세계 최고인 14.1%이고, 미국 학력고사(SAT) 평균성적은 미국 명문사립 필립스엑스터고(高)의 2085점보다 높은 2203점이라는 것이다. 대원외고는 올해도 아이비리그 대학에 38명이 진학하는 등 유학반 94명 전원이 미국 명문대에 합격했다. 최근 5년간의 수능에서 전국 2363개교 가운데 1357개교가 언어·수리·외국어 3개 영역 모두 1등급인 학생을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대원외고는 34.4%인 887명이 '3개 영역 모두 1등급'이었다.
대원외고 학생들은 3년 동안의 수업 가운데 40%를 영어·전공어·제2외국어에 할애한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영어와 전공 언어에는 매우 익숙해지고 제2외국어도 웬만큼 낯설지 않게 된다. 대원외고의 교육 성과는 뛰어난 아이들이 모여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경쟁하는 데서 나온다. 시험 때면 교무실로 찾아와 질문하는 아이들이 줄을 서고 저녁 자율학습 시간엔 복도를 지나는 것이 미안할 만큼 소음 하나 없다.
외고생이 공부 기계로만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국제반 3학년 정재철군은 치어리더, 농구, 영자신문, 드림&액트(봉사활동)의 4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반 3학년 류승호군, 박지민양은 오케스트라와 사물놀이 동아리에 참여한다. 어느 동아리는 여름방학 때 2주간 거제 지세포중학교로 가 하루 4시간씩 2개 학급 30명 중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지금 중국에선 일부 공립 소학교도 1학년부터 원어민 교사가 영어를 가르친다. 상하이에선 1998년부터 이중언어(bilingual) 수업을 해왔다. 경제력과 인구를 생각하면 우리 외교관이나 상사 직원은 중국의 10배, 일본의 3~4배 경쟁력을 갖춰야 버텨낼 수 있다. 지금 추세면 머지않아 영어에 원어민(原語民)만큼 능통한 중국인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아니면 그보다 더 많아질지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 다음 세대가 무슨 힘으로 그 경쟁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외고 신설은 선거의 단골 공약이다. 지방 외고들은 지자체가 나서서 설립한 공립이 많다. 그만큼 외고에 진학하겠다는 수요가 많다. 외고를 없애면 외고 입시경쟁은 자사고, 비평준화 지방명문고로 옮겨갈 것이다. 상류층은 연간 4만~5만달러를 부담하면서 자녀를 미국 기숙사립학교로 보내고 있다. 중산층은 이걸 쫓아 하다 다리가 찢어질 판이다. 초·중·고의 조기(早期)유학생이 3만명을 헤아린다. 국내에서 더 싸게 더 잘 가르치는 학교가 더 많아진다면 이런 고통과 낭비도 크게 덜어질 것이다.
외고의 첫째 문제는 지역 편중이다. 대원외고만 해도 신입생의 49.8%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출신이고, 강남3구를 뺀 서울지역이 30.4%, 지방은 19.8%이다. 두번째 문제는 학생선발 방식이다. 대원외고 국제반 99명 3학년생 가운데 유학·연수 경험이 없는 '토종'은 15명밖에 안 된다. 입학시험의 영어듣기평가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미국엘 갔다와야만 합격할 수 있다는 말도 듣는다. 이것이 외고의 존폐(存廢)까지 거론되게 만드는 요인의 하나다. 과감하게 뜯어고쳐, 외고가 영어를 잘하는 학생을 더 잘하게 하는 학교에서 영어를 보통 정도 하는 학생을 받아 영어에 탁월한 학생으로 키우는 학교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신입생의 상당수를 저소득층에서 충원하는 '사회적 배려' 입시도 도입해야 한다. 입시에 합격한 저소득층 학생에게는 지자체가 그 학비의 일부를 부담하거나 기업들에서 장학금을 유치하는 시도도 활발하게 전개해야 한다. 외고 입학생이 없거나 극소수인 서울의 각구(各區), 또는 지방에도 지역균형선발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입시전형 방법을 바꿔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외고가 가난한 집 아이가 국가 재목으로 성장하고, 교육의 계단을 밟아 올라가 사회적 지위를 끌어올릴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2007년 졸업생인 김은지양은 인천 강화에서 농사짓는 평범한 농부의 딸로 과외 한번 받아본 일이 없었다. 하버드에 진학한 김양은 로스쿨을 나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외고는 학생선발 방식을 바꿔 김양처럼 어려운 환경의 학생들이 더 많이 외고의 교정을 내달아 창공에 미래의 꿈을 활짝 펼칠 수 있게 하는 활주로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외고 존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좋고 더 수업료가 싼 외고를 더 많이 더 골고루 만들어 부모의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더 많은 학생들이 더 좋은 교육환경의 헤택을 누릴 수 있게 할 것인가를 논의할 때다. 지금보다 10배 많은 외고를 만들어 그 신입생의 절반이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돌아가게 한다면, 그만큼 이 나라는 기회의 평등에 다가가는 셈이다. 자원(資源) 하나 없이 선진국 문턱을 밟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교육이 더 훌륭한 인재를 더 많이 길러내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10년, 20년 후 대한민국의 대들보로 어엿하게 성장한 이들이 외교의 현장에서 국익(國益)을 지켜내고, 비즈니스의 현장에서 8000만 국민의 일거리를 만들어내고, 국제적 학문 토론의 자리에서 더 유창하게 자기의 견해를 발표하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외고 논의는 이제 발상(發想)의 차원을 바꿔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