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는 친구들과 경찰놀이를 하고 있었다. 느티나무 근처는 그늘이 짙어 놀기 좋았다. 시원한 바람도 솔솔 불어준다. 해가 서산에 넘어가려면 아직 멀었다. 조금 전 부르릉 연기를 내며 승용차 한 대가 교문 밖으로 사라지자 학교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성주는 오늘도 경찰이다. 그것도 경찰대장이다. 말 잘 듣는 호수를 부하로 삼았다. 그리고 만만한 병준이와 승민이를 도둑으로 정했다. 병준이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데 승민이는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나만 도둑놈 하라는 법이 어딨어? 이제 내가 경찰 할게."
"너는 도둑놈 두목 하면 되잖아?"
"두목도 싫어. 경찰할거야."
도둑이 되면 경찰에 늘 쫓겨 달아나야 한다. 그러다가 잡히면 오랏줄에 꽁꽁 묶여 끌려가야 한다. 다른 친구들이 볼까봐 부끄럽다.
그 대신 경찰은 장난감 총이지만 팔을 높이 들고, "저놈 잡아라!" 하며 쫓아다니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경찰역할을 한사코 성주가 맡아놓고 한다.
"그럼 누가 도둑놈 할거니?"
"호수를 시키면 되잖아."
"안 돼. 호수는 내 부하야."
"그럼 난 싫어. 집에 갈 테야."
고집을 부리던 승민이는 기어코 집에 아주 가버렸다. 그래서 성주는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그래도 아쉬운 대로 병준이를 도망가게 해놓고 느티나무 밑 계단에서 작전을 짰다. 작전이라는 게 항상 그렇다. 먼저 호수가 뒤따라가면 성주는 도둑이 가는 길을 앞질러 가서 사로잡는 거다. 그런데 오늘따라 병준이도 도망 가다말고 되돌아오고 있었다.
"왜 도망 안 가니?
성주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병준이 얼굴표정이 수상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
"저기 창고 안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어."
"사람 소리라고?"
호기심을 가지자 호수가 끼어 들었다.
"혹시 유괴범 아닐까?"
그 말에 성주는 어림없다는 듯 타박을 주었다.
"유괴범이 왜 창고 안에 있니? 길가에 차 타고 있어야지."
그래도 호수는 이상하게 몸이 떨려왔다. 그래서 다시 자기 생각을 꺼냈다.
"그럼 간첩이 아닐까?"
간첩이라는 말에 갑자기 성주의 눈빛이 빛났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먼저 고양이 걸음으로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어쩌려고 그래?"
호수는 다리가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두 아이를 번갈아 보던 병준이는 호기심을 달고 성주를 따라 창고 쪽으로 갔다. 두런두런 목소리가 들린다. 가끔 웃음소리도 난다. 여럿이었다. 성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 신통방통하다. 자물통은 채워져 있는데 어떻게 안으로 들어갔을까? 이들은 수수께끼를 풀려고 둘러앉았다.
"간첩은 아니다. 우리말을 하고 있어."
병준이도 한마디하였다.
"그래 나도 들었어. '너 차례야, 빨리 해.' 그런 말을 들었어."
그 말을 듣자 호수는 안심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을 풀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간첩은 어떤 말을 하는데?"
그 물음에 성주는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때껏 간첩이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일본말을 할까, 영어를 할까? 곰곰 생각하던 성주는 손뼉을 탁 쳤다.
"아, 맞다. 북한말을 해. 텔레비에서 '오마니' 하는 걸 들었어."
호수와 병준이는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성주는 경찰대장감이었다. 성주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다.
"저건 중학생 형님들이다. 화투를 치고 있어."
호수는 간첩이 갑자기 형들이 되어버리자 긴장이 풀리면서 웃음이 나왔다. 성주는 화가 났다. 중학생들이 화투를 치다니. 더구나 우리 학교 창고 안에서 말이야. 성주는 궁리하느라 두 손으로 턱을 괴고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얀 구름이 푸른 하늘에 떠 있었지만 성주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어느덧 서쪽 꼬까산 산그늘이 운동장 가운데에 금을 그어 놓았다. 햇살이 얇아지자 한풀 더위도 가셔졌다.
"선생님께 이르자."
호수가 제안을 했지만 성주는 걱정이다. 지금 선생님들은 다 집에 가고, 숙직하는 아저씨만 한 분 남아 있다. 신고하려 갈 때 창고 안에 있는 나쁜 형들이 도망가면 어쩌지.
"경찰놀이 할거야, 안 할거야?"
병준이는 창고 안의 일보다 경찰놀이를 하고 싶다. 답답하게 앉아 있는 성주를 보고 채근이다. 그때 번개처럼 성주의 머리에는 '나 홀로 집에' 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가족이 여행을 떠난 집에 홀로 남아 있다가 집에 들어온 도둑들을 혼내 주는 장면은 정말 멋졌었다.
"경찰에 신고하자."
호수의 말에 성주는 옳다 싶었다. 경찰에 신고하면 저 형들은 수갑에 채워 머리를 숙이고 파출소로 잡혀가겠지. 학교도 퇴학을 맞아 가지 못하고…… 거기까지 생각하자 그만 그 형들이 불쌍해졌다.
그래서 다시 스스로 그 형들을 골탕먹일까 궁리하였다. 경찰에게 잡혀가지 않고, 다시는 창고 같은 어스름한 곳에서 못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쫓겨 나온 동물들끼리 힘을 모아 도둑들을 물리친 브레멘 음악대도 생각이 났다. 셋이 지혜와 힘을 모으면 무엇이 될 것도 같다. 그런데 마땅한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얀 치자 꽃이 핀 곳에 두 아이가 한가롭게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성주의 눈에는 그 모습이 낯설어 어디 먼 여행을 떠나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꼬마들이 그네를 타고 점점 높이 하늘로 치솟더니 그대로 성주를 보고 날아왔다. 줄이 끊어졌나 걱정이 되어 바라보는데 놀랍게도 그 꼬마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성주 앞까지 와서는 망치를 내밀었다.
"이 망치로 저 창고 문을 잠궈."
그리고는 점점 멀어지더니 원래처럼 그네를 타고 있었다. 성주가 벌떡 일어났다. 그 때 그네를 타던 아이들이 이쪽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멍하니 입을 벌리고 바라보던 성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망치는 없었다.
"망치를 가져와."
"왜, 망치로 저 형들을 치려고?"
"아니 문을 잠궈야겠어."
"문을 열쇠로 잠궈야지, 웬 망치를?"
병준이가 엉뚱한 성주를 보고 걱정을 하였다. 그러자 성주도 방금 말한 것이 이상하여 그네 타는 곳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네 타던 아이들이 없어졌다.
"참 이상한 일도 있네."
"뭐가 이상해?"
병준이 말에 성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자물쇠를 살피던 성주는 쾌재를 불렀다. 형들은 자물쇠를 그대로 둔 채 경첩의 못을 따서 창고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저 못을 쳐서 막아버리면…….
성주는 아이들 앞으로 와서 방금 본 것을 말했다.
"망치만 있으면, 저 형들을 창고 속에 가둬 둘 수 있어."
"그렇다면 돌멩이를 쓰면 되잖아."
성주는 호수가 말한 대로 매끌매끌한 돌멩이를 주워 다가갔다. 뽑힌 못은 세 개였다. 단번에 박아야 한다. 경첩의 못을 본래 박힌 자국에 살짝 맞추었다. 그때까지 형들은 노느라고 정신이 팔려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모양이다. 하나, 둘, 셋, 탕!
그러자 안에서 후닥닥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잽싸게 문 쪽으로 밀치러 왔다. 그러나 두 번째로 탕 소리가 울리자 야무지게 못은 들어가고 문짝은 끄덕도 없었다.
"하하하 너희들은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어른소리를 멋지게 흉내내어 성주는 고함을 질렀다.
"좋게 말할 때 문 열엇!"
처음에는 기세 좋게 나왔다. 발로 문을 쾅쾅 차기도 했다. 그러나 바깥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그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곳이 없다. 뒷문이 높다랗게 달려 있었지만 작았고, 그나마 쇠창살이 쳐져 있었다. 성주와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나와 숨어서 엿보고 있었다. 못이 박혀버리자 뜻밖에도 문은 돌문처럼 끄덕도 없었다. 아리바바와 사십인 도적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 하며 주문을 외어야만 열릴 것 같다. 갇힌 중학생들은 그 암호를 모르는지 발길질로 힘을 빼고 있었다. 도대체 밖에 누가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언뜻 듣기에는 아이들 목소리 같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니 어른 목소리인 것도 같다.
"잘못했습니다. 문 좀 열어 주세요."
아이들이라도 빌어야 했다. 여기서 밤을 샌다는 것은 억울하다. 그때서야 성주는 쫓아가 숙직실 문을 두드렸다.
"아저씨, 창고 속에 나쁜 형님들을 가두어 놓았어요."
"어쩌다가 창고 속에 갇혔단 말이고? 가 보자."
덜컹 문이 열리자 다섯 명의 중학생들이 풀이 죽어 서 있었다. 아저씨는 바깥에 있는 아이들과 창고 속의 아이들을 번갈아 보았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같았다. 그들은 꿀밤을 한 대씩 얻어맞고 다시는 나쁜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물론 성주와 호수, 병준이는 칭찬을 받았다. 성주는 흐뭇했다. 오늘은 진짜 훌륭한 경찰놀이를 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