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염정의 정경
찌는 듯한 더위 속 토요일 오후, 가볍지 않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물염적벽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천연기념물 ‘화순이서 은행나무’가 있는 야사리 삼거리에서 20분 정도 화순온천 쪽으로 가다가 동복호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조금 가니 왼편에 물염정(勿染亭)이 나온다. 물염정이 자리하고 있는 뒤편에서 앞으로 돌아 들어가도록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다.
뒤에서 보는 그 물염정의 좌대는 물굽이가 휘몰아치는 절벽위로 숲이 우거져 있고 병풍처럼 둘러있는 기암괴석, 계곡과 주위를 흘러가는 물굽이, 그리고 그 위를 날아가는 백로 등이 운치를 더해 정말 아름다운 선경을 이룬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정자를 세운 선인들의 심미안과 격조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물염정이 들어 앉아 있는 곳 즉 물염정의 좌대이다. 물굽이가 휘몰아치는 절벽위로 숲이 우거져 있고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기암괴석 속에 정자를 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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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으로 들어가니 짙은 숲속에 정자의 지붕만 보이고, 앞에 있는 3개의 비석이 나를 먼저 맞이한다. 오른쪽에서부터 ‘물염정 전승비’(勿染亭 傳承碑), ‘물염정 3현선생 사적비’,그리고 맨 좌측에 ‘창립5주년 물염회 기념비명’ 비가 있다. 그 중 가운데에 있는 사적비의 좌대에는 ‘물염정 시가’가 새겨져 있다.
화려하고 잘 단장된 비석을 보면서 물염정을 짓고 그 위에 올라 한점 티끌도 물들지 말자고 노래하던 선비들이 이 꼴을 봤다면 얼마나 노했을까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다.
드러나지 않게 조그만 편액에 기록해 두면 좋을 걸, 정자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치장하고 자랑한 꼴은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다. 특히 제일 왼편에 서있는 ‘창립5주년 물염회 기념비명’은 비의 이름도 그렇고, 조잡하고 격에 떨어진 서체 등을 보면 정말로 없어야 할 비석인 것 같다.
△ 물염정 앞의 전경 : 오른쪽에서부터 ‘물염정 전승비’(勿染亭 傳承碑), ‘물염정 3현선생 사적비’,그리고 맨 좌측에 ‘창립5주년 물염회 기념비명’ 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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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염정 전승비’(勿染亭 傳承碑)
물염정 전승비는 하얀 좌대위에 동그란 두개의 고임석이 있고 그 위로 까만 오석에 앞뒤로 물염정이 새워지고 전승된 사연이 새겨져 있다.
서기 1995년 10월 31일에 금성나씨 남강공의 15세손인 나영채가 짓고, 소암 김영춘이 글씨를 썼으며, 남강공담양문중과 물염정보존기념회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 ‘물염정 전승비(勿染亭 傳承碑)‘의 앞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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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염정 전승비의 뒤에 새겨진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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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 전승비’(勿染亭 傳承碑)
물염정은 화순군 이서면 물염리 후 동복댐 상류에 위치하여 강수가 3면을 회포하며 정자 앞에 물염연을 이루고 황어굴 상에 석벽이 병풍을 둘러치는 듯 경승이 빼어나 소금강이라고 하여 전남도내 문화재로써 유일무이하게 가치성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 유명한 시인 소동파가 송영한 시처럼 수려하다하여 통칭 물염적벽이라고 한다.
조선 명종조 병인에 물염공 송정순이 축정하여 퇴휴지소로 사용하여 오다가 외손자 창주공 나무송 구화공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셨다.
그 내용을 보면 불행히 아들이 없고 다만 한 여식이 있을 뿐인데 오랜 병으로 10생구사한 나머지 너희들을 얻고 보니 즐겁고 다행함이 그지없도다. 역연 너희들은 성질이 명민하고 정의가 두터우며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사람은 운명에 따라 그 생명의 길고 짧음을 기약하기 어려우므로 이제 동복에 있는 물염정소와 주위에 있는 집과 전답 그리고 수직하는 종은 물론 몸종들까지 너희 형제에게 물려주노니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여 옛 선현들을 본받아 사용하되 후일에 자손 중 잡담이 있거든 이 성문사로서 증명하게 하라는 양도기를 써 주셨다.
물염정 원운(原韻)의 나창주 詩에 “數間茅屋(수간모옥)을 結東皐(결동고)하니 門巷(문항)이 依然似謝陶(의연사사도)라. 江雨夜來(강우야래)하니 漁綎濕(어정습)하고 洞雲朝散(동운조산)하니 玉峯高(옥봉고)라. 童收落葉燒紅栗(동수락엽소홍율)하고 妻摘黃花泛白?(처적황화범백료)하네. 林下(임하)에 早知如此樂(조지여차락)이면 靑袍身世(청포신세)가 豈曾勞(기증노)하리.”의 원운이 있다.
한편 물염정을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이후 창주공 나무송과 구화공 나무춘 형제의 퇴휴지소로도 사용해왔으며 400여년에 걸쳐 금성나씨 담양문중(남강공 나덕용)에서 관리 보존해 오고 있다. 또, 담양군 대덕면 채동 선영하에 400려년간 안장된 물염공은 외손들에 의해 봉사되고 있다.
서용국, 김재노 정승의 대 정치가를 비롯 석주 권필, 택당 이직, 농암 김창협, 삼연 김창옹, 연재 송병선 제현들의 게액된 시를 훑어보더라도 대 정객들의 고뇌를 달래는 광장으로 석학들의 학문의 강론장으로 시인묵객들의 풍류의 산실로서 역사적인 강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 뿐인가 실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도 물염정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물염기를 썻는가 하면 저 유명한 시인 난고 김병연 김삿갓도 이곳에 시를 읊고 돌아가다가 한 많은 세상을 떠났다.
△ 물염정으로 올라가는 돌계단과 풀섶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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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염정으로 오르는 길은 자연석 돌계단이 투박하게 놓여 있고 사이사이로 잔디가 돋아 있어 운치있게 보이며 정자의 이름과 정말 잘 어울린다. 멀리 정자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배롱나무가 화사하게 피어 있고 왼쪽에 향나무가 있다.
돌 계단을 올라서니 멀리 보이는 정자 앞뜰이 평평하게 잘 다듬어져 있다. 중앙에 자연석을 깔고 그 사이사이를 콘크리트로 매운 길이 놓여 있고 그 좌우로 잔디가 가꾸어져 있어 시원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그 정자의 좌우로 고목아 다된 벚나무가 버티고 서있다. 모양은 짜이고 운치가 있어 보이나 벚나무가 아닌 노송이 에워싸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정자를 향해 왼편으로 말라죽은 소나무 한그루가 을씨년스럽게 서있다. 차라리 베어냈으면 좋겠다 싶다. 후원으로 돌아가니 비로소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는데 그 것마저 우리 소나무인 적송이나 해송이 아닌 것 같아 아쉬웠다.
△ 물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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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 팔작지붕에 골기와를 올렸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대청형 정자로서 전형적인 누정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정자의 정면 중앙에 ‘勿染亭’이라고 해서로 쓴 커다란 편액이 걸려 있다.
물염정의 '물염(勿染)'은 이 정자의 옛 주인이었던 송정순 선생의 호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세상 어느 것에도 물들지 않고 티끌 하나 속됨 없이 살겠다는 뜻이리라. 당시의 정쟁 시대와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 정치무대에서 물러나 조용히 쉬면서 속되지 않게 은거하고자 지은 정자라고 한다.
△ 물염정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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