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정신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이랜드에서 가장 인기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흔히 이랜드 하면 박성수 회장을 연상하지만 박 회장보다 더 인기가 많은 사람이 고희를 눈앞에 둔 박종섭(69) 실장이다. 얼마전 비공식적으로 실시된 사내 인기 투표에서 그는 당당히 박 회장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실장’이라는 직함을 통해 그가 거창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1990년 이랜드에 입사한 이후 박 실장이 줄곧 해온 일은 안내와 관리였다. 간단하게 말해 회사 ‘수위’다. 처음에는 정문 앞에서 출입하는 사람들을 위해 근무했고 지금은 건물내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다.
사실 박 실장의 직무 자체는 ‘거창한’ 일이다. 이랜드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이 바로 박 실장이기 때문이다. 박 실장의 태도 하나 하나에 이랜드의 이미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는 너무나 중요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박 실장은 단순한 수위가 아니다. 직업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겠다는 ‘비즈너리’(비즈니스 선교사) 의식과 강한 ‘수위 철학’으로 똘똘 뭉쳐진 프로다. 그는 하나님의 청지기란 사명으로 지난 세월 동안 이 일을 해왔다.
그의 수위 철학 1호는 성실이다. 8시까지 출근해도 되지만 입사 이후 줄곧 6시15분에 출근해 회사를 돌아보았다. 저녁 6시30분 퇴근할 때까지 그냥 있지 않고 회사를 살핀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혹 지저분한 곳이 없는지도 검사한다. 회사내 크고 작은 시설은 물론 회사 앞마당에서 기르는 강아지들이 잘있는지까지 점검한다. 이랜드의 고용인으로서가 아니라 주인으로서 이같은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박 실장이 이랜드에 오게 된 것도 성실했기 때문이었다. 박 실장은 이랜드에 오기 전까지는 서울의 한 아파트 수위로 일했다. 마지못해서 일을 하는 여느 수위들과는 달리 아파트 입주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아파트에는 이랜드 박성수 회장이 살고 있었다. 박 회장은 아파트 주민들을 가족과 같이 생각하며 일하는 박 실장을 스카우트했다. 그와 같은 성실함의 소유자라면 회사도 잘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일이라도 성실하게 수행할 때 전혀 예상치 않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박 실장은 보여줬다.
박 실장의 수위 철학 2호는 미소다. 그는 항상 미소짓는 모습으로 한사람 한사람을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물로 생각하며 최선을 다한다. 이랜드 사원 어느 누구도 박 실장이 화내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수위로서 회사에 들어오려고 하는 수많은 잡상인을 ‘물리쳐야’ 하지만 결코 화내지 않고 차근차근 타일러서 내보낸다. 아들 딸 같은 사원들에게도 먼저 웃으면서 인사한다. 진정한 서비스 정신에 충만되어 있다.
홍보실 김용범 과장은 1993년 입사한 이후 박 실장이 당시나 지금이나 웃으면서 사원들을 맞고 있다고 말한다. 이랜드를 찾는 사람들은 박 실장의 미소를 보고 이랜드가 웃음이 넘치는 일터라고 생각한다.안내 데스크에서 함께 일하는 이시철씨도 박 실장을 ‘스마일 실장’이라고 부르며 자신도 그와 같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수위 철학 3호는 기도다. 박 실장은 집에서 나오기 전에 30∼40분씩 반드시 기도하고 하루를 계획한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기쁨과 평화를 전달하게 하소서”라며 기도하고 사람들을 맞이한다. 기도하는 박 실장은 자신을 도구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소망한다. 그는 수위라는 직분을 이용해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전도하려고 한다.안내 데스크를 맡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직업상의 ‘특권’을 전도의 기회로 사용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의 순복음부천교회 집사인 그는 믿지 않는 이랜드 사원은 물론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밥 사주고,성경책 사주면서 전도한다. 교회에 나가겠다면 그냥 보내지 않고 반드시 함께 교회를 찾는 등 정성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성경을 일일이 쓰고 외우고 있다.
박 실장은 이랜드에서 일하면서 박 회장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새벽에 출근하고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것도 박 회장에게서 배웠다. 박 실장은 박 회장이 새벽 4시30분 정도에 출근한다면서 이랜드 사람들은 모두 ‘새벽형 인간들’이라고 말한다.
그는 수위로 지낸 지난 세월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번도 자신의 일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단다. 여러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이냐고 반문한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면에서 박 실장은 진정한 프로다. 아내 천선윤 권사와 2남1녀의 자녀도 아버지의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고희를 앞둔 나이지만 박 실장에게는 청년과 같은 미소가 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잔잔한 미소의 소유자다. 남은 인생동안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겠다는 그에게서 노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에 대한 열정이 있고 기쁨의 유통자가 되겠다는 ‘수위 선교사’ 박 실장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영웅이 아닌가. 비록 세월은 그의 주름살을 늘게 하겠지만 사람 사랑하는 열정을 가진 마음과 맑은 미소는 시들게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