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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과장님은 부러진 드라이버 샤프트를 뭐라 하진 않으셨다.
다만 날아가버린 드라이버를 조용히 회수하시고는 조용히 한 말씀 하셨다. "집에 가자"
암튼 그 날은 그냥 조용히 연습을 파하고 자리를 피한것으로 기억 하는데 사실 드라이버가
부러져서라기보다 시쳇말로 쪽팔려서 주섬주섬 늘어져있던 클럽들을 챙겼던 것 같다.
토요일이라 많은 골퍼들이 주변에 와 있었고 김과장님이 침까지 튀겨가며 하신 열성 레슨에 다들 자신이 레슨이라도 받는양
가끔씩 나를 홀끗홀끗 보면서 레슨의 효과를 궁금해 하고 있던 터라 주변의 웃음은 더욱 우리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사실 껄껄, 하하, 호호 하는 웃음보다 상견례 하는 날 예비 며느리가 못참고 살짝 뀐 방귀처럼 심각한 상황에 킥킥 터져 나오는 웃음이 더욱 사람을 민망스럽게 한다는 걸 난 그 때 알았다.
각설하고 과장님께는 샤프트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우선 샤프트를 교체하시라 하였다. 사실 골프에 대해 지식이 얕았던 때라 헤드는 비싸도 샤프트는 싸구려 낚시대 가격 정도로 알고 있던터라 그리 걱정은 하지 않았으나 며칠 후 드라이버 헤드보다 샤프트가 훨씬 더 비싸다는 것을 알았다. 난 6년의 골프구력에 가장 비싼 한 타를 그 때 이미 경험한 것이니 골프 입문자 중에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빨리 한타의 소중함을 알아버린 사람이 되었다.
연습장은 여전히 재미없는 곳이었다.
1/4 스윙은 이제 겨우 1/2스윙과 섞어가며 스윙하는 것을 허락받았고 더 이상은 아직 허락되지 않았다.
드라이버 샤프트는 내가 너무 큰 힘을 써서 스윙하는 바람에 부러먹은 것이고 한 번만 더 그런 기회가 온다면 얼마든지 호쾌한 장타를 칠 수 있다 여겼다.
가끔 프로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에 7번 아이연을 풀샷하기도 했는데 그 쾌감은 무척 강했다. 그 당시에 풀스윙을 하면 주변에서 다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고 '저 사람 초보인지 알았는데 스윙을 보니 프로네' 하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았다. ㅋㅋ
그러다 보니 프로님이 조금이라도 안계시면 난 풀스윙을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은 날이면 타격의 강도는 더욱 커졌다. 몇 번 프로님에게 걸려서 "어허~ 아직은 풀스윙하시면 안됩니다." 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는데 '프로님이 한번에 다 가르치면 나중에 더 가르칠게 없어 손님이 떨어지니 아껴서 가르친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연습은 끝없는 인내를 가져야 했지만 봄이 오고있는 연습장 밖에는 참 재미있는 게 많았다. 연습장에서는 햇병아리 초보 소리를 들었지만 바깥에서 친구들을 만나 당구나 볼링같은 다른 운동을 할 때는 고수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연습장 가는게 그닥 달갑지 않았다. 드문 드문 가던 연습장이 더욱 가기 싫어지던 어느 날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00(주) 00부 이과장이다. 이과장은 일하면서 알게된 사회친구인데 나보다 한달정도 먼저 골프를 배웠다. 그리고 운 좋게도 동남아에 있는 해외지사 출장길에 그 짧은 구력에 이미 라운딩을 한 두번 맛 본 나보다는 나름 고수이다. 골프는 하루 먼저 배운 사람이 하루 늦게 배운 사람에게 레슨할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라 하지 않던가? 당시 이 과장은 골프에 관해서는 모든게 나보다 선배였던 사람이다.
"어~ 박사장 골프한지 좀 됐다며? (사실 2주 되었는데 그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과장은 6주 정도 되었었던 때다)
낼 모레 유성CC 몇시 몇분 이야. 권과장하고 내가 가는데 박사장하고 한 분 더 모시고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초대를 내가 왜 받았을까? 의문이 든다. 골프채를 든게 2주라는 거지 사실 연습장을 등한시 하고 있어서 아직 7번 아이언 풀스윙도 제대로 못배운 상태 아닌가? 정말 몰라도 너무 몰랐고 무식해도 너무 무식했던 시절이었다.
이과장, 권과장은 해외지사에 출장가서 골프를 한번 쳐 보더니 잘 때마다 필드가 이마 위로 오로라처럼 펼쳐진다고 했다. 그걸 나에게 경험하게 해 주겠다는 게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웃기지만 이과장이 더 웃긴다.
골프채 잡은지는 2주지만 제대로 잡아본건 세번 정도인데 머리올려 준단다. 이 얼마나 황당한 시츄에이션 인가?
그런데 우리는 용감했다. 정말 무식해서 용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눈물나게 무식했다.
모월 모일 유성CC
30여년간 산림연구원(?) 땅이었던 그곳은 키높은 소나무가 무척 많아 한번 소나무숲으로 들어가면 골프공으로 나무 맞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딱 딱"하고 나는 "딱따구리" 를 잡을 수 밖에 없는 곳으로 초보에겐 무지 잔인한 골프장이다.
3월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잔디는 아직 누렇고 짧아서 내가 생각하던 필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이과장과 권과장은 이미 동남아 출장에서 처음 경험해본 골프의 맛에 푹 빠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동남아에서 앞뒤팀 방해받지 않고 1캐디 1백에 공을 몰면서 가면 캐디가 공을 못친다고 뭐라 하길 하나 한국처럼 경기과 직원이 오토바이 끌고와서 눈치를 주기를 하나? 이런 천국같은 환경에서 골프를 처음 쳐본 우리의 이과장과 권과장은 한국에서의 라운드를 동남아 어느 시골 골프장의 라운딩과 거의 동급으로 생각한 거 같다. 치다가 힘들면 그늘집에 앉아 망고주스 한잔 마시며 뒷팀이 오면 먼저 가라고 패스해주고 다시 기력이 나서 일어서면 얼굴이 순수한 캐디가 옅은 미소로 화답하며 따라오는 그런 동남아의 골프장 말이다.
그들은 아직 닭몰이를 할 수 밖에 없는 한국의 골프장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바도 경험한 바도 없었고 그 비싼 돈을 내고 골프를 치면서 닭몰이가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옷차림들을 보니 웃음이 났다. 평소 멋장이인 권과장은 어디서 구했는지 그럴싸한 겨울 골프복을 입고 있었고 바지도 나름 두툼한 것이 어느정도 준비를 한 것 같았다. 그런데 나머지 셋은 지금 사진으로 보니 거지중에 상거지 꼴이었다. 평소에 운동이라면 운동복을 입고 하는 것만 해봤지 누가 입던 옷 그대로 입고 하는 운동을 해봤단 말인가? 그런데 권과장을 제외한 준비가 안된 나머지 셋은 직장에 출근하기에 깔끔한 무채색 계열의 젊잖은 옷들만 있지 정작 3월 골프의 그 어중간한 시절에 입을만한 옷이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스타트에 모였고 오늘 얼마나 잘칠지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유성CC는 대전에서 30년 이상된 골프장으로 이렇다보니 20대에 캐디를 시작해 50대 초반인 캐디까지 있다. 그 오랜 시간을 유성CC한곳에서 잔뼈가 굵으신 분들이니 퍼팅라이는 물론이요 공이 어디로 날라가는지 대충 보면 어떻게 공을 찾는지 오래된 소나무 사이에서 여지없이 공을 찾아오는 신기를 가진 분들이 많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간혹 연로하신 분을 만나면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셔서 우리가 먼저 눈치를 보고 산으로 들로 뛰어 다녀야 한다는 거...
첫 티샷!
그것도 골프장에서의 첫 티샷~ 이 얼마나 간 떨리고 설레이는 순간인가?
그런데 이런 위대한 순간을 우리팀만 맞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뒷팀에서 바로 보이는 자리에 서서 첫 티샷을 해야 하다보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특히 초보시절엔 더욱더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팀은 4명이 다 초보다. 그것도 왕 왕 왕 초보다. 무면허 운전 세명이서 '초보운전' 딱지 부치고 떼빙(한꺼번에 드라이브 하는 것을 동호회에서 이렇게 부르더라)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Hole 파4 329m 급격한 내리막 슬라이스홀
이과장 슬라이스 우탄으로 OB난듯
권과장 쪼로 뱀샷으로 20m 전진
내가 모시고간 모임 사장님 슬라이스 관광샷
난 뒤에서 쳐다보는 미인 아줌마들 땜에 헛스윙!ㅋㅋ(골프 변명이 108가지라지요?)
헉~! 이건 아니었다. 내 예상대로 였다면 빨래줄 타구로 멋지게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갈라야 했다. 그런데 헛스윙이 모야?
1번홀 티박스 뒤에서는 이미 난리가 났다. 네사람이 모두 제각각의 묘한 폼으로 중무장하고 타구또한 제각각이어서 잔뜻 기대를 모으다가 내가 한바뀌 휙도는 헛스윙후 무게중심을 잃고 휘청거리자 또다시 웃음을 참느라 입을 틀어막고 허벅지를 꼬집으로 자해를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캐디는 이미 웃음을 참다못해 얼굴이 누렇게 떠 가고 있었다.
그 때 찍은 티샷사진을 난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다.
1. 어드레스 : 다리를 정말 벌릴만큼 벌렸다. 이건 골프 스탠스라기보다 스모선수의 스탠스에 가깝다.
3. 그립 : 그런거 없다. 그냥 내가 가장 편안한 그립인거 같은데 아직까지 이런 그립을 하고 볼을 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3. 백스윙 : 어드레스시 있던 머리 위치에서 머리가 한 세개는 우측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이걸 스웨이라고 표현하기에는 한참이 모자란다. 이건 정말 있는 힘을 다해 치려고 머리를 옮길 수 있는 만큼 옮긴 것이다.
아무튼 6년간 골프장 다니면서 이런폼 저런 폼 다 봤지만 이 사진의 폼이 내가 본 폼중에 두번째로 웃기다. 이러면 당연히 첫번째가 궁금해지는데 한 4년전 청원의 실크리버CC에서 나를 능가하는 여성분을 본 적이 있다. 강렬한 노란색 골프웨어로 쫙 빼입고 오신분인걸로 기억하는데 백스윙시 머리 위에서 한바퀴 클럽헤드를 돌리고 내려오는 그 폼은 지금도 결코 따라할 수 없는 경지로 이제까지 본 폼중에 정말 잊혀지지 않는 강렬함으로 남아있다.
각설하고 우리는 달렸다. 뒷팀에 챙피해서 얼굴을 안 보이려고 달렸고, 공을 찾아 산으로 들로 달렸다. 우리가 티샷을 하려는데 뒷팀이 오면 다시 그 우스꽝스런 꼴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앞만보고 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옆으로 옆으로만 달렸다.
그날 똑바로 달리는 사람을 우리는 결코 보지 못했다. 그린에서 잠깐씩 얼굴을 본 것 같은데 그럴때면 1.4후퇴때 헤어진 아들놈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그린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우리는 또 하염없이 달렸다.
처음에는 이미 필드경험이있는 권과장과 이과장은 달리기를 종용하는 캐디에게 "너무 닭몰이를 하는 거 아니냐" 며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런 말에 얼굴이 붉어질 캐디가 아니었다. 경력 20여년의 유성CC 베테랑 캐디는 "아따 사장님! 앞팀 뒤통수 본지가 첫홀빼곤 없슈~" 하고 계속 달리기를 재촉했다. 상황을 판단한 이과장, 김과장은 더 빨리 달렸다. 그들은 달리면서 동남아에서 쳐본 대통령골프와 너무나 다른 한국의 골프에 자괴감까지 느끼는 듯 했다.
그렇다. 우리는 초보였다. 그것도 쌩 초짜였다. 달리지 않으면 산으로 들로가는 볼을 쳐 볼 기회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또 공앞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티 하나를 꼽는데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TV보면 프로들은 충분히 생각하며 연습스윙도 3~4번은 기본이니 우리는 그걸 따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공은 본대로 가고 우리의 공은 멋대로 갔다.
어찌 쳤는지 기억도 없는 전반이 끝나니 땀이 비오듯 흘렀다. 이제는 그린에서 만나도 서로 말이 없다. 아니 말을 할 기력이 더이상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캐디이모도 점점 말이 없어졌다. 우리도 캐디이모도 체력이 고갈된 것이다.
쓸쓸했다. 골프가 비싼돈주고 이렇게 뛰며 달리는 외로운 운동인지 몰랐다. 누가 골프가 운동이 안된다 했던가? 누가 골프가 쉽다고 했던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우리가 TV를 보면서 그러려니 그렇게 생각한 거지...
TV를 보면 티샷을 쳐놓고 두사람이 느긋하게 걸으면서 "이번 사업건은 우리에게 좀 밀어주시죠" 하며 여유있게 말을 하곤 한다. TV가 우리를 버려놔도 한참을 버려놓은 것이다. 우리의 생각과 현실의 골프는 너무나 다른 색깔이었다.
슬펐다. 쳐도 쳐도 빼뚤빼뚤 가는 공이 슬펐고, 우리의 어설픈 폼이 슬펐고, 냉탕에서 온탕으로 바삐 오가는 우리가 슬펐고, 캐디이모를 빼고 어느 누구도 초짜인 우리를 가르쳐 줄 수 없는 고만고만한 실력들 이라는 현실이 슬펐다.
먹이를 찾아 헤매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처럼 우리는 달렸다. 우리팀은 주로 소나무숲 안에서만 골프를 쳤다. 페어웨이에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뒤팀에서 사람이 없는 줄 알고 무차별 폭격을 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힘들고 재미없고 무시당하는 골프를 계속하게 만든 한 샷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셀 수 없는 타구속에 단 하나의 굿샷의 느낌이다. 특히 드라이버가 스윗스팟에 정확히 맞았을때 가볍게 던져지는 채의 느낌과 파란 하늘위로 솟구쳐 오르는 하얀 공의 궤적은 아름답게까지 느껴졌다.
우리팀의 스코어 카드에는 아무도 스코어가 없었다. 전반 몇 홀을 기록하려던(?) 흔적은 있는데 캐디이모는 그것마저 포기해 버렸다. 아니 노련한 캐디이모도 도저히 우리의 타수를 셀 수가 없었을 것이리라. 그래서 난 첫번째 라운딩에 몇 개를 쳤는지 알지 못한다. 단지 몇번 하늘로 뜬 샷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그렇게 생초보들의 라운딩은 끝이났다.
(답글 많이 달아주세요. 많이 달아주시면 4편을 좀 더 일찍 쓸 힘이 납니다. 덥네요. 건강챙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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