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와 관련된 설화로 담양에 전해오는 재미난 이야기는 황금리 금괴이야기이다. 이야기는 담양군지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전우치는 이조 11대 중종때 실존 인물이었다.
담양전씨의 후손으로 송도에서 태어나, 도술이 능했지만 장성의 신거무(장성군 진원면)와 같이 세상을 잘못 태어나 옥살이를 하였다. 연대는 확실한 것이 없지만, 전우치에 대한 전설이 수북면 황금리에 남아 있다.
황금리는 대전면과 광주시 우치동 봉산면의 경계에 있는 평야부 중심 마을로 창평에서 송강정 앞을 지나는 죽녹강과 담양읍 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금룡강(영산강)이 합수되는 지점이다.
전우치는 고려때 삼지정사를 지내 담양군에 봉해진 담양전씨 시조 전득시의 후손이다.
전우치는 대전면 삼인산이 만물생지로 살만한 땅임을 알고 때를 만나면 쓰기 위해 여러 곳을 돌며 금기둥과 금대들보를 파묻었다는데 그 지점이 지금의 수북면 황금리라는 것이다. 이 황금대들보는 넓이 7척, 길이 5척의 바위같은 금괴라는 것으로 하나만 파내면 당장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치는 이처럼 가난한 백성과 나라를 위해 힘썼으나 민심이 우치에게 쏠리자, 우치를 반란을 꾀하는 자라고 모함하는 일이 있어 조정에서는 그를 잡아 가두고 옥사케 하였다. 들녘에는 농사가 잘되어 황금 물결이 출렁인다. 현 담양향교 터가 전씨 시조의 묘소가 있었다는 사실은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입증하듯 향교 앞 100m 지점에는 삼은전선생 유해비가 세워져 있고, 담양읍에는 30대 후손으로 전기철씨가 거주하고 있다. (담양군지(1980년) 787 - 788쪽에서 발췌함)」
전우치가 넓이 7척, 길이 5척의 바위같은 황금 대들보를 묻어뒀다고 전해지는 수북면 황금리 마을 전경.
이상과 같은 이유로 담양 지역민들은 전우치가 담양 전씨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이들이 있으니 바로 남양 전씨들이다. 다음은 남양전씨들이 주장하는 전우치 이야기이다.
「전우치전의 주인공 전우치는 전가생의 넷째 손자로 진사이며, 문장과 시문이 뛰어났고 신출기묘한 도술행각을 통하여 조정과 지방관서의 부패를 시정하고자 죽음을 마다하지 않은 의협심으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빈민구제에 나섰으나 종내에 이르러 왕을 속인 죄와 혹세무민죄로 몰려 죽음을 당하였다. 그 화가 가문에 미칠 것을 염려하여 부친의 묘비를 외딴곳에 묻어버렸으며 세분 형들은 밀장되어 수대를 내려왔기에 실묘실비되는 영락의 가문이 될 번한 위기도 있었다.
전우치가 기묘한 도술로 전국을 주행할 무렵, 고향에 잠시 들렀다 떠날 때 고향 동쪽고개 넘어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길가 언덕에 가지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꽂고 주문한 것이 소생하여 수령이 500여년 된 웅장하고 수려한 은행나무(밑 둘레 8m, 지름 2.3m, 높이 25m)로 자라 현존하고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이 은행나무를 ‘충청남도기념물 제152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으며 일명 ‘전우치 은행나무’ 라고 한다.(남양전씨 상계씨족사에서 검색)」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길가 언덕의 은행나무. 도기념물로서 ‘전우치 은행나무’라고도 알려져 있다.
남양전씨들의 주장은 그가 세상에서 숨어버린 뒤 관의 추궁이 두려워진 친척들은 그가 남양전씨가 아니라고 변명하는 바람에 한때 전우치는 담양전씨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으나 근래에 남양전씨로 확인되었으며, 이 무렵부터 남양전씨는 중앙정치무대와 거리를 두고 초야에 묻혀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 길가 언덕에는 정말로 전우치 은행나무가 있어 세간의 흥밋거리가 되고 있다. 충청남도에서는 이 은행나무를 ‘충청남도 기념물 제152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 은행나무와 관련해서 필자는 충남관광 포털싸이트에서 재미난 내용을 발견했다.
「성동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문장과 시문이 뛰어나면서 도술 또한 능통한 전우치가 심었다고 전해 오는 은행나무이다. 기묘사화(1519)에 연루되어 고향으로 도망가던 중 쉬면서 가지고 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았다고 한다. 지팡이를 꽂으면서 이 지팡이가 자라면 전씨가 번창할 것이며, 죽으면 전씨는 남의 그늘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떠났다고 하는데, 그 후 지팡이에서 잎이 돋고 가지가 자라 지금의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담양 전씨 문중에서는 해마다 음력 1월 15일이면 이 은행나무 앞에서 문중의 안녕과 번영을 축원하는 행단제를 지내고 있다.」
위와 같이 은행나무의 소유와 관리자가 담양전씨로 기록된 것에 대하여 2년전 남양전씨 측에서 항의성 게시글을 올린 것이 발견되었으나, 충남도에서는 이에 대하여 아직까지 아무 답변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남양전씨 사람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네이버 백과사전의 검색내용은 전우치의 본관을 다음과 같이 남양으로 수정된 것이 발견된다.
「본관 남양. 송도 출생. 중종 때 서울에서 미관말직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송도에 은거하며 도술가로 널리 알려졌다. 하루는 신광한의 집에서 식사 중 입에 넣은 밥알을 내뿜자, 그것이 각각 흰나비로 변하여 날아갔다고 한다. 또 가느다란 새끼 수백 발을 던지고 동자를 시켜 하늘에 올라가 천도를 따오게 했다고 한다. (네이버백과사전)」
지난 2009년 개봉한 영화 ‘전우치전’의 한 장면. 영화배우 강동원씨가 주인공 전우치 역할을 맡았다.
결국 어려운 시기에 집안의 우환을 피하기 위해 족보에서도 버려졌던 전우치는 이제 서로 자기 집안사람이라고 우길 만큼 시대가 변해 다시 이 땅에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한번 족보에서 버려졌으니 과연 어느 집안으로 다시 부활해야 할지는 전우치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일일까?
아니다! 전우치는 자신을 아끼는 곳으로 다시 부활할 것이다. 시대에 버림받고 집안에서 버림받은 전우치가 부활할 수 있는 곳은 자신의 존재의 의미와 이루지 못한 미완의 꿈을 기억하고 사랑해주는 곳에서 다시 부활할 것임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