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같이 살았으면 ┃여천무비(如天無比) 풀어씀┃
11. 항상 중생들을 수순하다 (3)
何以故(하이고)오 菩薩(보살)이 若能隨順衆生(약능수순중생)하면
則爲隨順供養諸佛(즉위수순공양제불)이며
若於衆生(약어중생)에 尊重承事(존중승사)하면 則爲尊重承事如來(즉위존중승사여래)며
若令衆生(약령중생)으로 生歡喜者(생환희자)면 則令一切如來(칙령일체여래)로
歡喜(환희)니라
“왜냐하면 보살이 만약 중생들을 수순하게 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중생들을 존중하여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만약 중생들을 기쁘게 하면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니라.”
부처님은 왜 존재하는가. 왜 존재했었는가.
또는 보살들과 조사들과 내지 일체 성인들은 왜 존재하는가.
그것은 모두 중생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불교가 존재하는 것도 중생들을 위한 것이고
일체 성인들의 가르침이 존재하는 것도 중생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중생들을 위하지 않는 부처님과 조사와 성인들은 있을 수도 없지만 존재할 가치도 없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려는 보살들은 모든 일이 중생을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부처님과 같이, 조사들과 일체 성인들과 같이 오로지 중생들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보현보살을 닮아가려는 모든 사람들은 진정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은
중생들에게 공양 올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중생들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부처님께 수순하는 일은 중생들을 수순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중생들을 위한 일은 곧 부처님을 위한 일이며
부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므로 참다운 불공은 중생들에게 공양 올리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참다운 불공”이라는 글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입니다.
내 집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피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아다니는 생명들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 없는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이리 가도 부처님 저리 가도 부처님, 부처님을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 없으니
불공의 대상은 무궁무진하여 미래 겁이 다하도록 불공을 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렇듯 한량한 부처님을 모시고 항상 불공을 하며 살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께 한없는 공양구를 올리고 불공하는 것보다,
곳곳에 계시는 부처님들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이 억 천만 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복이 많다고 석가세존은 가르쳤습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올바른 불교사상이며 부처님 마음이다.
중생들을 수순하는 일은 곧 부처님을 수순하는 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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