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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에세이] 잔꾀장이 , 여우/유준호
1960년대 이전까지도 어지간한 산속에는 여우가 살면서 심심찮게 마을로 내려와 가금류(家禽類)인 닭을 주로 물어갔다. 놓아먹이는 집밖의 닭뿐 아니라 닭장의 닭도 용케 꺼내 잡아 물고 도망쳤다. 우리 집도 산 아래 있었기에 닭장의 닭을 심심찮게 이놈들이 와서 물고 갔다. 우연히 나는 우리 닭을 물고 뒤란을 거쳐 산비알로 달아나는 여우를 보고 쫓아간 일이 있는데 이놈이 약을 올리는 건가 얼마쯤 도망가다 뒤를 빤히 돌아보고 앉아 있다가 거의 따라붙을 때쯤이면 또 도망쳐 사람 약을 올리곤 하였다. 그 때 나는 날 약 올리려고 그러는 줄 말고 여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그놈의 그 행동은 먹이를 감추기 위해 기회를 엿보는 것이었다. 여우는 약간 부식된 고기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딘가에 묻어두려고 그랬다 한다. 가끔은 여우가 묻어놓은 곳을 찾아 닭을 찾아오기도 하지만 이놈이 감추는 기술이 얼마나 좋은지 감쪽같이 묻어놓고 달아나 허탕 칠 때가 많다. 여우는 하는 행동이 얄팍하여 사람의 부아를 돋우는 짐승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6. 25 때 많은 수가 희생당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마을 뒤 골짝에 숨어살던 것들도 사냥의 주 대상이 되어 언제부턴가 서서히 없어져 가더니 지금은 야생 여우는 씨가 말랐다.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를 맞아 겨우 동물원에서나 보이고 있다. 금석지감(今昔之感)을 자아낸다.
꾀부리면 부릴수록 미워짐을 몰랐더냐. 눈치 살살 살피며 왜 꼬꼬 물어갔니. 너 업보 이기지 못해 후생 찾아 떠났더냐.
자취마저 아득하게 어디로 감췄더냐. 원시의 깊은 골에 웅크려 숨었니. 강산에 유혹의 눈매 보여줄 날 언제더냐. -여우에게-
사실 여우는 우리에게 변덕이 심하고 교활하며 음흉한 짐승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애교 넘치는 매혹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꿈에 나타나는 여우는 여전히 부정적인 이미지가 판을 치고 있다. 그래서 꿈에 여우를 보면 남에게 의심을 받고, 여우와 싸우면 교활한 사람과 다툼이 있으며, 여우가 닭을 물고 가는 꿈을 꾸면 교활한 자에게 자기의 일자리를 빼앗기거나 재물을 사기당할 위험이 있다고 믿었다. 여우는 개과의 동물로 개와 생김새가 유사하나 털이 많은 꼬리, 뾰족한 귀, 짧은 다리, 좁은 주둥이를 가진 동물로 교활함의 상징이 되어 민담 전승의 전담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 여우의 종류는 상당히 많은데 흰 꼬리 여우, 박쥐 귀 여우, 북극여우, 회색여우, 검은 꼬리 여우, 뱅골여우, 인도여우 등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살던 토종 여우는 한국여우라고 명명하고 있다. 한국여우는 일본여우와 북극여우 중간쯤 되는 모양을 가진 여우로 일본여우 쪽에 가까운 종이다. 여우가 이 땅에서 눈에 띄지 않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6. 25 이후 농약, 청산가리를 먹은 꿩 등을 먹으며 조금씩 감소하기 시작하여 지금은 아예 그 개체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때 벌목 공화국이 되어 벌거숭이산이 태반이었다. 아마 이런 여우 서식지가 사라진 것도 그 일익을 담당한 듯하다. 여우가 옛날엔 우리 주변에 살았기 때문에 여우와 연관된 설화가 적지 않다. 백제 시대 여우고개 설화가 있는데, 마을에 이돌고라는 상인이 고개를 넘으며 물건을 팔았는데 집에 와 받은 돈 전대를 끌러보니 모두 나뭇가지와 돌 등이었다. 그 고개에는 여우가 많이 사는 구미호 골짝이라 구미호가 사람으로 변신하여 그 짓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여우 구슬 신화가 있는데 그 내용은 한 학동이 서당을 다니다 예쁜 처녀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다. 처녀가 입맞춤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다시는 안 만나겠다고 위협하니 어쩔 수 없이 허락했는데 학동은 처녀 입 속에서 여의주를 꺼내 물고 하늘을 먼저 보았으면 하늘 일을 알게 되었을 텐데 땅을 보아서 땅의 일만 알게 되었다. 그 때 그 처녀는 구미호였다는 이야기이며, 게와 여우의 경주 설화도 있는데, 산에 사는 여우가 바다에 사는 게에게 경주하자고 신청을 하자 게가 여우보고 앞장서라 하고 게는 얼른 여우 꼬리를 물고 여우가 달릴 때 매달려 있다가 여우가 게가 어디쯤 올까 궁금하여 뒤로 돌아서자 얼른 앞에 내려 "이제 오느냐?"고 번번이 야유하자 저 놈은 발이 여덟이라 빠를 수밖에 없다고 하며 백두산 쪽으로 여우는 달아났다는 이야기이다. 여우가 꾀 많은 약은 동물이라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설화이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 예를 보여준 것이다. 그렇지만 여우는 늘 꾀 많은 동물의 자리는 지키고 있다. 아마 여우가 꾀가 많다고 하면 그 까닭은 여우는 늘 혼자 사는 동물인데 그러다 보니 혼자 사냥하고, 혼자 몸을 지켜야 하기에 의심도 잔꾀도 많이 생겨 교활하게까지 된 것인 듯싶다. 우리 전래 동화에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죽었니? 살았니?"하는 것이 있는데 우리나라 야생 여우는 그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주 멸종이 되었는지 잘 눈에 띄지 않고 있다. 어쩌다 지리산 어느 골짝에서, 또는 휴전선 근방 어디에서 보았다는 풍설은 있지만 그 실체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참말로 죽었니? 살았니? 물어보아야 할 참이다. 보도에 의하면 가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여우의 모습이 카메라 렌즈에 잡힌 적이 있다는 소식이 있다. 반가운 소식이다. 여우가 한참 창궐(猖獗)할 때는 우리들은 그 여우를 참 골치 아픈 존재로 여겨 퇴치의 대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우주의 자연계는 모든 생물, 무생물이 다 있을 자리에 있어야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되었다고 본다. 그렇기에 어느 하나라도 이 땅에 부족하면 그것이 다른 것에 양향을 끼쳐 조화를 파괴하니 이는 마침내 인간 파괴의 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늘 해야 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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