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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집 소식 89호 소식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원당리65번지
www.nanum.org / y365@chollian.net
이천양정여고 성극반 "숨직인 외침에 날개를 달자" 공연
-2003년 10월 21일 오후 7시부터 이천 양정여고학생들이 이천시민회관대공연장에서 1부는“숨직인 외침에 날개를 달자”연극을 2부는 초대가수 홍순관의 "숨직인 외침 노래에 싣고"로 행사를 진행 했습니다.행사도중 홍순관씨의 사회로 나눔의 집 할머님 한분 한분을 소개하고 학생들이 손으로 만든 목도리를 선물 했습니다.
여는 글
피해자를 위한 전문요양시설 건립신청 반려에 부쳐
사무국장 : 안 신 권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건립이 경기도와 광주시의 소극적인 자세로 2003년 2월 반려 되었습니다. 나눔의 집은 2002년 사업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전문요양시설”건립을 위해 법인대표이사 송월주 스님과 원장 원행스님을 비롯한 이사스님들 그리고 작가 공지영씨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전문요양시설 부지700평을 매입 하였습니다. 많은 후원자분들이 “전문요양시설”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피해자분들이 현재 고령이고 치매나 중풍으로 전이되는 과정에 있고 당시 성적고초로 인한 대인기피증과 연고자나 수발자 없는 독거노인들이고 질환 발생시 대부분 의료나 복지의 혜택에서 방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부에서 2002년 9월 16일부터 10월 30일 까지 시․군․구 담당공무원들이 피해자 직접면담 실태조사에 의하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83%(109명)가 75세 이상의 고령자들로서 모두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이며,68%(89명)가 동거가족 없이 독거 생활을 하고 있고 피해자들은 대부분 관절염 등 노인성 질환과 더불어 성노예 피해 후유증, 심장병 등을 앓고 있으며, 특히 치매를 앓고 있는 피해자가 7명이며 거동을 거의 못하는 피해자도 24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고 영구임대 아파트 등 주거환경개선이 시급한 피해자가 상당히 존재하고 있으나 대기 순서가 많이 밀려있어 현재로서는 빠른 입주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실태조사를 했습니다.또한 피해자 할머니들 요청사항은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임에 따라 자신의 건강문제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치매 등 각종 질환의 치료를 위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독거생활을 하고 있어 병원 입원시 간병인 지원 등 실질적인 치료지원 희망을 원했습니다.
현재 정부는 치매 및 중풍으로 인한 노인문제를 위해 정부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전문요양시설을 확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영리 사회복지법인에서 전문요양시설을 지울 수 있는 부지만 확보되면 건축비는 국고 50% 지방비 50%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영비는 국고 70% 지방비 30%( 경기도 15%, 광주시 15%)로 지원하고 있습니다.이에 나눔의 집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토지를 매입하였고, “전문요양시설”건축비를 전액 국고나 지방비를 요청하지 않고 나눔의 집에서 일부를 부담하겠다고 신청을 했습니다.그리고 기존 나눔의 집과 역사관이 국고 지원 없이 자부담으로 건축했으므로 이번 만큼은 정부가 지원 해줄 것을 요청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도나 광주시는 일본군‘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만 위한 “전문요양시설”은 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그동안 서울에서 혼자 사시던 문필기 할머니가 8월초 입소를 했고 다른 피해자분들도 입소를 원하고 있어 “전문요양시설”신규건축이 힘들면 현재 정원 10명의 무료양노시설을 30명으로 증원하여 증축을 요구 했으나 증축도 불가 입장 입니다.
나눔의 집이 92년 서울에서 전세집으로 탄생되기 까지는 많은 분들의 성원으로 이루어 졌으며 현재 이곳에 정착 할때도 정부가 아닌 우리 후원자분들의 도움으로 부지와 쉼터, 역사관을 마련 했습니다. 이제는 정부차원의 도움이 필요 할때 라고 생각 합니다. 피해 당사자들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은 모두 패소 했고, 일본정부가 피해자들에게 공식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국제사회의 판결에도 일본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일본 관료들의 망언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65년 한․일 조약문건을 공개해 달라는 피해자들의 요청에 우리 정부는 공개 할 수 없다하고, 광복이 된지 58년의 세월과 이문제가 세상에 알려진지 13년이 지난 지금 정부차원의 진상조사와 피해자 조사 발굴도 없는등 무관심에 할머니들은 국적포기를 제출 하는 등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은 더해 갑니다. 또한 2001년 10월 12일 김원웅 의원외 68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 등에 관한 법률안은 행자위에 아직도 계류 중 이며 이번 16대 국회에서 자동폐기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수난사와 우리 여성의 수난사를 겪은 할머님들을 방치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방관자이며 한․일과거사등 역사바로세우기를 거부하는 것이라 생각 합니다. 나눔의 집은 피해자분들의 생생한 증언과 역사 박물관을 통해 전 세계에 한․일과거사, 전쟁, 여성인권을 알리고 있습니다. 전문요양시설건립은 당장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시설이지만 할머니들 사후에는 우리 모두의 쉼터와 인권교육의장이 될 것 입니다.
역사를 위한 작은 외침
공연을 준비 하면서......
이천양정여고 교사 김진순
한 해 두 해 아이들의 연극을 힘겹게 무대에 올리면서 이제는 열 손가락을 모두 꼽아야 될 만큼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지나온 시간만큼 아이들이 커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작품 한 작품 무대에 올려질 때마다 연극이라는 공동창작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이 자라나는 것을 보면서 연극 활동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또 하나의 교육의 장이 되었음에 보람을 느낍니다.
이번 작품은 ‘정신대’라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 속으로 들어가 그 시대의 인물로서 역사의 아픔을 공함하고 관심을 갖는데 가장 큰 의의를 두었습니다. 정말로 그 시대에 그 인물이 되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연습했습니다. 무관심과 버려짐으로 이 땅의 구석진 어둠 속에서 한 서린 슬픔에 치를 떨어야 했던 꽃다운 소녀들의 아픔을 느끼면서 민족과 이웃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새삼 깨달아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또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지금까지도 여전히 무관심 속에 슬픈 이야기를 간직한 채 살아 가고 계신 그 분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다시는 이와 같은 ‘슬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하게 기도해 봅니다.
이제 연극과 함께 10년을 지내면서 ‘우리들의 소리’만이 아닌 ‘함께하는 소리’를 외치고 싶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운 싸움을 하고 계신 할머니들을 대신하여 비록 작은 외침이지만 우리의 온 몸짓으로 그분들의 저린 심정을 표현 하고자 힘썼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통하여 함께 아파하고 ‘정신대’의 문제가 더 이상의 그분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여기며 함께 눈물 흘릴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 합니다. 아울러 이 공연을 통하여 ‘나’ 와 ‘이웃’ 그리고 ‘국가’ 와 ‘세계’에 대하여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바른 가치관을 정립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으로 보는 나눔의 집 동정
서울 용산 중경고등학교 역사 탐구반 학생들이 방문하여 본인들이 직접 만든 10대들의 역사 리포트인 "남겨진 슬픔, 못다 전한 이야기"책을 할머님들에게 전달. 이 책은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그리고 징용, 징병으로 희생당한 할아버지들을 만나 인터뷰하며 역사의식에 눈떠 가는 10대들의 눈물나는 역사 보고서 입니다.
-방문광주지방공사 직원들이 2002년도 생활관 전구 교체에 이어 2003년도에는
역사관 전구 교체를 무료로 했습니다.-자원봉사
광주화웨협회 나눔의 집 무료 꽃심기-자원봉사
(사)천안여성의전화 성폭력 상담원 어머님들 나눔의 집 방문
- 김군자 할머니증언
매주 수요일 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참석 하시는 나눔의 집 할머님들-2003년 10월8일 579차 수요집회
양정여고 성극반 학생들이 연극을 마치고 나눔의 집 방문 할머님들에게 후원금을 전달하고 큰절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방문
매주토요일마다 방문하여 침과뜸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용인에버랜드 최정권 과장이 이번에는 할머니들을 에버랜드로 초청 -나들이
광주에 있는 하얀미술학원 원생들이 나눔의 집을 방문 재롱잔치를 했습니다.
-방문
방문기
“후세에는 이런 고통이 다시 없기를.....”
진경미
ꡐ나눔의 집ꡑ이라는 곳은 옛날 일제시대때 전쟁으로 강제로 끌려가서 희생당한 처녀들, 지금은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들이 계신 곳이다.
학교에서 정신대라 하여 끌려간 사람들에 대해서 잠깐 배운적이 있다. 다 크지도 않은 처녀들이 하루에 수십명을 상대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궁이 헐어 애기도 낳지 못한다는 말을 들을 때 일본놈들 나쁜 일본놈들... 이라고 열변을 토했었다. 그런데 그런 할머니들을 선뜻 만난다고 하니,, 왠지 다가가기가 두려워졌었다. 그런데 박물관을 둘러본 나는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조그마한 방에서 공포와 고통을 하루에도 몇차례 겪였다는 것은 정말 마음 아픈 일이었다. 해방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은 수치심을 매일 가슴에 품으며 살아야만 했다. 구런 수치심을 사람들한테 말한다는 것은 더 큰 수치심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 왜곡 현실속에서 김학순 할머니가 드디어 처음으로 증언하셨다는 선생님 말씀과 그 뒤로 위안부 할머니들은 각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말씀에 나의 마음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얼른 할머니들을 뵙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ꡐ이옥선ꡑ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위안부생활은 안타깝고 할머니의 주름을 더 많이 만들었지만 그 위안부 생활이 할머니의 인생을 끝까지 불행하게 만들지 못했다.
할머니는 다음 후세에는 제발 없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많은 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존경스러웠다.
포토 에세이
김군자 할머니
올해 8월 13일, 군자 아가씨는 국적을 포기했다.
일본 정부의 굳어진 태도에 기다리다 지쳐 "한국정부도 일본정부에 더 압력을 넣어"라는 뜻으로 국적을 포기했다.
"일제시대 때는 나라가 없던 탓에 고생 많았지?라고 말하는 군자 아가씨.
일제로부터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되찾은 '국적'을 그녀는 포기하고 말았다.
"마리오야, 너도 일본 국적 같은 거 버려 뻐려"
"그러고 싶은데, 그러면 나눔의 집에도 못 있게 되는데뀉, 외국인 이잖아요"
"그럼 말고"
차라리, 둘이서 국적을 버리고 이민이라도 가볼까나.
2003년 10월 할머니들 이모저모
1. 박옥련 할머니
금강산을 다녀오신 뒤로 무릎이 부쩍 아프시다고 하시는 할머니.
그래서 그런지 걸으실 때 할머니 허리는 더 숙여진다.
“ 아이고, 이제 나도 다 됐나벼... 자꾸 기울진다니께.
그래도 자꾸 움직여야혀. 그래야 괜찮아져” 하시며,
뒷산에 밤이며 도토리며, 은행을 주으러 올라가신다.
“옛날에 말이여. 여기가 밤 천지였어. 그냥 막.. 발에 채이고 그랬는디.
올해는 우짜 없을까? 없~~어” 하며 실망하신 할머니.
그래도 할머니는 산에서 막대기하나 주워 지팡이 삼아 길을 나선다.
2. 한도순 할머니
홧김에 전주 집에 내려가 사신다고 짐까지 싸놓으셨던 할머니.
막상 가려니 발길은 떨어지지 않고,
안 간다고 말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으셨던 모양.
먹는 걸 너무 좋아하던 할머니가 그 좋은 걸 마다하고 속앓이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 그냥 여기 좋아. 나 안 가고 싶어. 그렇게만 말씀하시면 돼요”했더니
곧 바로 “ 그러면 돼? 나 여기가 좋아. 가기 실혀” 하신다.
그 후 할머니는 짐을 풀었고 조용히 예전의 식욕으로 돌아오셨다.
3. 김순덕 할머니
할머니는 최근 윗니가 모두 흔들려 이빨을 몽땅 뽑으셨다.
안 그래도 작고 주름진 얼굴. 더 작아 보이신다.
어느날, 틀니가 완성되고 할머니 윗입술의 살이 뾰로퉁 올라보였다.
“아이구! 아파. 틀니가 커서 아파” 하신다.
자리가 잡을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단다.
아마 할머닌 그때까지 당분간 고생을 하셔야 할 것 같다.
할머니~~! 빨리 쾌유하세요. 그래야 맛난 음식도 많이 먹고.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사시죠.
4. 박두리 할머니
요즘 잦은 악몽으로 몸과 마음이 아프셨던 할머니.
심리적인 이유라도 할머니의 건강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순덕할머니가 방 안에 고추씨를 태워 잡귀를 물리치는 약식굿을 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할머니를 조금 안정시킬 수 있었는데..
조금씩 입맛을 찾으신 할머니. 양념통닭을 드시고 싶다고 하신다.
그 날이후 5일내내 어두운 시골길을 달려 양념통닭을 사드려야 했다.
5. 지돌이 할머니
평소에 한도순 할머니와 자주 다투셨던 할머니.
한도순 할머니가 짐을 싸고 속앓이를 하자 당신도 속상하셨던지...
“ 밥을 먹으라고... 그러면 안된다고.. 으..음 안된다고..” 하시며
조용히 한도순 할머니 방에 들어가 시름에 누워계시는 할머니에게
품안에서 연시 두 개를 꺼내 드리는 것이 아닌가.
평소엔 못 본 척 하시며, 거리두어 앉으셨던 지돌이 할머니셨다.
조용하지만 강단있고 속정 깊은 할머니. 바로 지돌이 할머니시다.
6. 박옥선 할머니
잦은 소화불량으로 예정된 금강산 인권캠프도 못 가신 할머니.
최근 무척 기운도 없으시고 수척해보이신다.
그래서 그런지 할머니의 법당 출입도 잦아지시고...
그래도 수요시위와 아침,저녁 산책은 거르는 법이 없으시다.
모든 근심걱정을 하루빨리 날려버리시고
예전처럼 밝은 웃음 보여주세요. 건강하시구요. 할머니!
7. 배춘희 할머니
본격적인 가을이 접어들자, 나눔의 집의 패션리더 배춘희 할머니도
가을 패션으로 접어드셨다. 화장도 가을톤을 바꾸시고....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아래 마당에 앉아 음악을 들으시는 할머니.
“가을에 있잖아. 이런 노래말고.. 왜 있잖아.. 약간 쓸쓸하고 그런 노래있잖아”
조금이라도 소리가 작을라치면
부리나케 사무실로 올라와 소리를 높이라고 성화시는 할머니.
배춘희 할머니는 역시 누가 뭐라해도 가을의 여인이시다.
8. 김군자 할머니
최근 할머니는 산책방법을 바꾸셨다.
가다오다 한번씩 쉬셨는데 한번도 쉼없이 걷고 또 걸으신다.
“쉬면 소용없대. 안 쉬고 걸어야 된데... 자꾸 기운 없다고 누워만 있음 안돼.
쓸모없는 인간되고.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누가 챙겨” 하신다.
할머니의 강인함이 오늘의 할머니를 있게 한 것 같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하면서도 땅을 딛고 일어서는 오뚜기처럼.
오늘도 할머니는 해질녘 마을 어귀를 힘차게 걷고 또 걷고 계신다.
9. 이옥선 할머니
최근 금강산을 다녀오신 할머니.
금강산에서 에피소드 하나.
할머니는 금강산에서 눈을 맑게 하는 작은 술병처럼 생긴 꿀을 사셨는데
안경을 안 가지고 온 터라 안내문을 읽으실 수 없었던 할머니.
등산하는 내내 목이 말랐던 할머니. 꿀로 목을 축이며 금강산에 오르셨는데..
이내 심장이 뛰고 머리가 어지러웠다고.
이상해서 북한 안내원에게 물으셨단다.
“할머니래요.. 이건 약꿀이지요. 4배정도 되는 물에 타서 드시라요.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시요”
“그래도 내 죽지 않았지? 봐라! 말짱하지 않니? 얼마나 다행이니?”
할머니, 살아오셔서 감사합니다.
10. 강일출 할머니
요즘 혈당 조절을 잘하시고 계시는 할머니.
아침 저녁으로 오가며 밤이랑 은행을 열심히 주으신다.
으~~~~ 은행 냄새는 지독하지만,
할머니는 부자낸 것처럼 차곡차곡 은행 쌓아가는 재미를 톡톡히 보고 계신다.
고구마 농사도 잘되어 한아름 캐시고,
무우가 얼렁 얼렁 자라 시원한 무우맛을 보고 싶어하신다.
풍성한 가을을 만끽하고 계시는 강일출 할머니시다.
11. 문필기 할머니
나눔의 집으로 완전히 이사도 하시고 이제 생활도 잘 적응하시고 계신다.
얼굴에 홍조도 띠고 잘 주무신다.
아픈 허리만 나으면 같이 산책도 하고 싶다시는 할머니.
할머니, 어서 나으셔서 같이 산책도 가고
밤도 은행도 따러 가요.
할머니, 뭐든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
후원 및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을 알려드립니다
■직접방문을 통하여(2003년 9월20일~2003년 10월20일)
한일대학생협200,000 종로로타리클럽200,000 능광스님100,000 입정교정회502,940 미하라아이코40,000 한우성기자100,000 가라즈시민회100,000 동아시아워크삽55,000 한일문화교류100,000 윤영로30,000 구로중학교학부모100,000 광주고등학교1-10반40,000 전교조사립관동지회150,000
■지로(우체국)를 통하여(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정진회20,000 박흥식10,000 회명사10,000 인과선원10,000 무명10,000 김효신10,000 안호영10,000 김조얼7,000 이용철5,000 정순자10,000 김영식10,000 허유미10,000 유영자10,000 정병배20,000 제놈바이오텍50,000 구현호20,000 배우식20,000 신용식20,000 보타사10,000 황성규10,000 곽융희20,000 강재숙10,000 김은희30,000 이예은가족20,000 박성수5,000 백경희10,000 김수정50,000 이승헌50,000 임지숙10,000 강민성10,000 정동채10,000 한지연10,000 이경화5,000 이순화20,000 김지선10,000 장경은20,000 강성희10,000 조이수10,000 박수원10,000 권소희30,000 이단춘3,000 정규열5,000 이동열5,000 임병한5,000 임호순5,000 드림맥스50,000 권팔기25,000 허현주20,000 횡성보광사30,000 정명희20,000 최루시아5,000 이경옥10,000 장재순10,000 염기윤10,000 손지원10,000 정솔10,000 이영춘10,000 박시양10,000 최귀아5,000 양승진10,000 김영빈20,000 무명3,000 김용완50,000 김형숙30,000 (주)대동주택100,000 김양숙20,000 강원도대학생협학생위원회20,000 최기영20,000 박기석20,000 박정원30,000 전덕채10,000 귀명례20,000
■농협을 통하여(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강화민예총420,000 최희선5,000 김민경10,000 김무조11,000 최은실5,000 조아름30,000 백진국10,000 이하야나20,000 박민영10,000 한용임60,000 장문순10,000 이현정3,000 이재완7025,000 한탑스님50,000 김의화20,000 노재성10,000 권미련10,000 영화사500,000 성혜란15,000 만아사40,000 김이태10,000 박성진5,000 김명규5,000 천연희20,000 박귀숙5,000 이여옥20,000 최희선5,000 김명희20,000 강은화30,000 조숙희50,000 한영선30,000 장지수10,000 김석권10,000 박영양20,000 조정자5,000 이구선100,000 이옥자30,000 홍봉란10,000 이길자10,000 연세매지JOY20,000 이정미10,000 한영선30,000
■국민은행을 통하여(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고병헌10,000 이영미2,000 한연오(햇빛회)50,000 유수옥30,000 박종권10,000 김명헌20,000 고경환2,000 박복식10,000 이세경2,000 이상경10,000 이근익10,000 안옥순10,000 김남선10,000 유은혜5,000 김명헌20,000 전영신10,000 정영화5,000 이영미2,000 한연오(햇빛회)50,000 박종권10,000 이지희20,000 이인순10,000 김만성10,000 서미10,000 이중계20,000 이영미10,000 정연경20,000 강민하30,000 조영기15,0000 팔달사청년회30,000 오꾸야마요꼬10,000 전현주10,000 김은경20,000 안언수10,000 이계욱10,000 안설아70,000 김현숙30,000 이충열30,000 이정열5,000 박선영10,000 이정20,000 황유경10,000 윤동춘10,000 기양10,000 최수길10,000 정형균10,000 이지희20,000 홍종선10,000 선불교70,000 민성환20,000 김현심10,000 최소옥5,000 이순영10,000 서미10,000
■제일은행을 통하여(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박미숙20,000
■조흥은행을 통하여(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김동옥10,000 오사라5,000 김봉석20,000 이성미10,000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전문요양원(치매․중풍)건립을 위해 동참해주신분들
후원계좌 : 농협221157-51-032241 나눔의 집】
■(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박민영10,000 한성대이개향교수5,000,000 박도제,유명상10,000
【중국거주 일본군위안부할머니들의 생활과 의료비 지원을 위한 후원사업을 벌입니다
후원계좌 : 농협221157-51-027886 나눔의 집】
■(2003년 9월19일~2003년 10월20일)
박민영10,000 한용임15,000 백진국30,000 이상교5,000 김석향50,000 박의식10,000
자원봉사 해 주신 분들입니다.(2003년 9월19일~10월20일)
하남양지청소년봉사회(게시판,식사,노력봉사-매달)
용인에버랜드 최정권과장(침,뜸봉사-매주)
서울영화사합창단어머니회(식사봉사-매달)
하남시 은방울회(미용봉사-매달)
그리니와크리니의 즉석자장면(식사봉사-매달)
천호동천주교팀-(노력봉사-매달)
김선주-주일봉사(노력봉사)
김은경-사무업무보조 및 할머니 도우미
하남시정보고등학교 1학년5반-노력봉사
광주고등학교1학년8반,9반,10반-노력봉사
남바코지-홈페이지관리보조
김지혜-노력봉사
방문해 주신 분들입니다 (2003년 9월19일~10월20일)
9월19일 한일대학생협특별위원회
9월22일 나하라아이코
9월23일 리츠메이칸대학교
9월24일 카라쯔시민의회한국평화의여행
9월26일 마쯔바라고등학교
10월2일 하남시정보고등학교
10월7일 인천인화여고
10월9일 천안여성의집
10월10일 구로중학교 학부모회,신일중학교
10월11일 실상사작은학교, 부천동여자중학교
10월12일 전교조사립관동지회
10월17일 대전성모여고
후원물품(2003년 10월5일-11월2일)
10/5 수원 권기철님 계란4판
10/5 서울 종암동 이영순님 속옷 및 양말 대 1박스
10/5 이천 한일 문화연구회 정진화 고문외 일본인들 베지밀1박스, 수건5개
10/5 광주 빵사랑 베이커리 변환규님 빵,포도,두유,우유등 각각1박스
10/7 인하여고생들 음료2박스, 쵸코1박스, 사과,바나나
10/7 동덕여대생들 식혜1박스, 과자 1박스
10/9 광주시 4-H 지도자 협의회 고구마3박스
10/10 구로중 어머님들 떡
10/11 광주고 1학년 10반 담임선생님 건강음료 2박스
10/14 광주 하얀미술학원 원장님 감1박스
10/16 서울 종암동 이영순님 할머니들 옷
10/16 서울 천호동 애우회 어머님들 과일2박스, 음료대1박스, 떡, 콩나물, 묵
10/17 사랑의실천국민운동본부 “사랑의 쌀나누기” 20kg 20포대
10/17 부산광역시 남구 이형경님 과자1박스
10/18 한지연님 3cc 주사기 150개
10/21 남인숙님외 2분 두유2박스
10/22 서울 구로동 문인근님 비누2박스
10/23 한글 채경자 선생님 떡2박스
10/23 광주 경화여고 연극반 빵1박스
10/25 광주 김흥수님 청소기 1대
10/27 광주 조영자님 떡1박스
10/30 성남 YMCA 사탕1박스
11/1 광주고등학교 1학년 10반 선생님 음료2박스
11/1 광주고등학교 1학년 2반 복사지 1박스, 귤1박스
11/2 군포고등학교 선생님과 학생들 설탕,사탕,식용유,세제,차등
11/2 수원 권기철님 감 1상자
역사관 2층 미술전시실 타임터널
-육근병(陸 根丙)작품
음악과 영상을 통해 침묵하는
할머님들과 무언의 대화공간
공지사항
나눔의 집을 위한 다음카페를 개설했습니다.
앞으로 많이 가입해 주세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우리 피해자 할머니들의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카페 및 사이버자원활동 활성화를 위해 회원가입 배가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1인 1명이상 릴레이 회원가입 하기를 부탁 합니다)
주소는
http://cafe.daum.net/houseofsharing
누구나 가입이 가능 합니다
매달 발행되는 소식지는 여러분들이 만들어 가는 공간 입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나 좋은 글이 있으면 y365@chollian.net로 보내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