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타스님 自警文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 3 강
今亦幸得人身(금역행득인신)이나, 正是佛後末世(정시불후말세)니
嗚呼痛哉(오호통재)라.
是誰過歟(시수과여)아 雖然(수연)이나. 汝能反省(여능반성)하야
割愛出家(할애출가)하며, 受持應器(수지응기)하고
着大法服(착대법복)하야 履出塵之徑路(이출진지경로)하고
學無漏之妙法(학무루지묘법)하면 如龍得水(여룡득수)요
似虎靠山(사호고산)이라
其殊妙之理(기수묘지리)를 不可勝言(불가승언)이니라
人有古今(인유고금)이언정 法無遐邇(법무하이)하며
人有愚智(인유우지)언정 道無盛衰(도무성쇠)니
雖在佛時(수재불시)나 不順佛敎則何益(불순불교즉하익)이며
縱値末世(종치말세)나 奉行佛敎則何傷(봉행불교즉하상)이리오
故(고)로 世尊(세존)이 云(운)하사대
********************************************************************
今亦幸得人身(금역행득인신)이나, 이제 또한 다행히 사람 몸을 얻었으나,
正是佛後末世(정시불후말세)니 정히 부처님 後. 佛前이 아니고 불전이라기보다도 불후거든요. 석가모니부처님은 제9 減劫 100세 중에 탄생 하셨고,
제9 감겁 100세 때에 석가여래가 탄생 하셨고, 앞으로 6000년 지나가면, 부처님당시가 2~3000년 전이 100세 정명이고 지금은 70세 정명이고요. 앞으로 6000년이 지나가면 10세 정명이 됩니다. 그 때부터는 3재가 일어나서 일월이 두 개가 생기고 홍수가 나고 불이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태풍이 불고해서 천지가 한번 뒤집어집니다.
사람 종자가 싹없어진 것 같다가 장마 끝에 풀씨가 많이 와그르르 나듯이 人種이 올챙이 새끼처럼 와그르르 나와서 그 때부터는 100년에 한 살씩 늘어납니다.
1000년에 열 살씩 늘어납니다. 그 때는 복도 더 많아져요. 지금은 갈수록 복이 적어져요. 요새 복이 많은 것 같지요? 사람 수명도 긴 것 같지요? 긴 것이 아니라 지금 짧아지는 징조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한 걸음 더 뛰기 위해서, 일보전진을 하기 위해서 일보후퇴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러듯이 이것이 더 떨어지기 위해서 전부 올라가는 겁니다. 올라가는 것 같지만 그 다음에는 더 쑥 떨어지는 겁니다. 그 다음에 또 올라가는 것 같지요.
제법 올라가는 것 같다가 그 다음에는 또 쑥 떨어지는 겁니다.
이것을 劫火(겁화)라고 그러거든요. 꼭대기에서 점점 내려가요.
올라가는 것 같으면서도 자꾸 내려갑니다. 지금 현재가 올라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려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100년 못가서, 몇 십 년 안 가서,
지금이 70세 정명인데 100년 안가서 아마 사람의 수명이 푹 떨어질 겁니다.
전염병 한 번 쏵 돌았다 하면 天理(천리)가 바꿔지는 거잖아요.
세계적인 전염병이 한 번 쏵 쓸면 세상이 언제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요.
人壽(인수)가, 사람 수명이 8만4천세까지 올라갔다가 거기서 다시 내려오거든요. 내려오는 그때부터 제10 감겁입니다. 지금이 제9 감겁이니까 다음 번 내려올 때는 제10 감겁 아닙니까? 10 감겁 8만세 시에, 8만세 됐을때에 그 때 미륵불이 출세하십니다. 지금부터 햇수로 치면 56억7천만년 후랍니다.
그러니까 그 부처님 나기 전이니까 佛前이고, 석가모니부처님이 3000년 전에 돌아가셨으니까 현재가 佛後지요. 그러니까 今亦幸得人身이나, 正是佛後末世니하는 것이, 부처님 뒤 말세라고 하는 것은 석가모니불 후에 석가모니불법 말세라는 말입니다.
사람 몸을 얻었으나, 먼저도 얘기를 했지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인도ㆍ천도ㆍ수라. 6도중생 가운데 인신을 얻은 사람이 불법을 배우기가 가장 좋다고 했지요? 축생이나 아귀들은 불법을 받아들일만한 능력이 없고, 또 천상 사람들은 너무나 즐거워서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요. 우리 인간은 괴로움도 많고 즐거움도 있기 때문에 받아들이기가 가장 쉽다고 그러는데 4난득 이라는 것이 있지요.
人生難得(인생난득)이요. 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
丈夫難得(장부난득)이요. 남자 되기가 어렵고, 남자 되어도
健身難得(건신난득)이라. 건강한 몸 받기가 어렵고,
佛法難逢(불법난봉)이라.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불법 만난 가운데서도 正法을 만나기가 더 어렵다 이것이지요. 스님네도 종류가 여러 가지잖아요.
그런데 그 가운데서 제일 일등 중노릇이 뭐냐? 일등 중노릇은 물론 참선해서 見性하려고 하는 大發心한 것이 일등 중노릇입니다. 2등 중노릇은 뭐냐?
2등 중노릇은 기도 잘 하고 항상 불전에 신앙심이 많은 사람이 2등 중노릇입니다.
3등 중노릇은 뭐냐? 3등 중노릇은 학자 노릇하는 것이 3등 중노릇입니다.
불교학자. 경이나 보고 학자 노릇하고 또 법문이나 하고 법사 노릇하는 것도 3등 중노릇에 속해요. 포교사 노릇하는 것도 3등 중노릇에 속해요.
그것은 그래도 1등 2등 3등은 다 상 탈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理判僧(이판승)이라고 그래요.
4등 중노릇은 주지노릇하고 살림꾼 노릇하는 것이 4등 중노릇입니다.
살림살이에만 너무 집착하는 사람이 4등 중노릇입니다.
그것도 大衆外護(대중외호)를 위해서 잠시 소임 사는 것이야 좋은 것이지만,
한 평생 살림살이에 집착해서 그것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4등 중노릇까지는 계행을 청정하게 가져야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계행을 옳게 갖지 못하고 중은 있고 들라쿵날라쿵 하면서 움푹짐푹 하는 그것이 5등 중노릇입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땡초 중노릇이지요. ←이렇게 다섯 가지 중노릇이 있거든요.
그 가운데도 또 여러 가지 분석하는 것이 있어요. 머리만 빡빡 깎았다고 대머리중이 있습니다. 禿居士(독거사)라고 그래요. 禿=머리 깎을 독. 대머리 독. 머리 빡빡 깎아서 머리 벗겨진 것 같다 이 말이지요. 禿居士는 중도 아니고 거사나 한 가지다 이 말이지요. 또 그전에 도시 근방에 가면 극장에 갈 때는 양복 입고 가고, 집에 와서는 중 옷 입고요. 그것을 박쥐 중 이라고 그래요. 鳥鼠僧(조서승)이라고 그래요. 鳥鼠라는 것이 박쥐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됐다 저것이 됐다하는 박쥐 중 이라고 합니다. 또 중이면서 어디 가서 법문 한 마디도 못하고, 불공도 하나 못하고, 불법 얘기 한 마디도 못하는 겁니다. 啞羊僧(아양승)이라고 합니다. 啞=벙어리 아. 羊=염소 양. 벙어리 염소는 모가지 딱 따도 앵 소리 한 마디도 못한답니다. 중도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내지 비구도 8종 비구가 있지요.
今亦幸得人身(금역행득인신)이나, ‘이제 또한 다행히 사람 몸을 얻었으나,’ 할 때는 ‘사람 몸을 얻고 부처님의 정법을 만났으나, 불법을 만났으나’ ←이런 말이지요. 그 가운데 丈夫身(장부신)을 얻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나 뭐 꼭 불알만 찼다고 장부가 아니고, 마음이 참 너그럽고 넉넉하고 풍부하고 마음의 통이 크고 턱~ 하니 아량을 갖는 것이 진짜 장부라고 그랬어요.
남자라고 설사 몸뚱이는 身手丈夫(신수장부)나 心不丈夫(심불장부).
몸뚱이는 장부지만, 마음이 졸장부가 있거든요. 쪼다 같은 장부. 그런 것은 옳은 장부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설사 몸뚱이는 장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여자의 몸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풍요롭고 넉넉하면 그것이 진짜 장부다 그랬거든요. 그런 조건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佛後末世에 나서 그야말로 마음에 드는 인연 맞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는 이런 세상에 났으니 嗚呼痛哉(오호통재)라. 참 슬프고 슬픈지라. 애통한지라 그 말이지요.
嗚呼라하는 말은 “슬프다.” ←이런 말입니다. 아~ 슬픈지라.
是誰過歟(시수과여)아? 이것이 누구 탓이냐? 누구의 허물인가?
雖然(수연)이나. 비록 그렇긴 그렇지만
汝能反省(여능반성)하야 네가 능히 반성을 해서, 한 생각 턱 반성해서
割愛出家(할애출가)하며, 모든 애욕. “愛” 할 때는 탐욕의 근본이 “애”니까요. 탐욕도 다섯 가지 탐욕이 있잖아요.
財ㆍ色ㆍ身ㆍ名ㆍ壽(재색신명수). 5가지 탐욕인데. 5가지 탐욕 가운데서도 근본이 애욕이거든요. 5가지 탐욕 가운데 근본 애욕을 베어버리면 다른 탐욕도 다 베어지는 것이니까요. 그것을 다 끊어버리고 出家를 했으며, 집을 벗어나왔으며
受持應器(수지응기)하고, 응량기를 받아가지고, 발우떼를 應器라고 하거든요.
應受供養器(응수공양기)라. 부처님을 應供(응공)이라고 한다 그랬지요?
여래ㆍ응공ㆍ정변지 그러지요? 應供. 공양에 응할만 하다. 그러니까 밥을 받아 잡수실 자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應受供養이라. 공양을 응당히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갖는 밥그릇이다. 쉽게 말해서 부처님 밥그릇이다. 이 말이지요. 그런데 그 뒤에는 비구들도 먹는 그릇을 應量器(응량기)라고 그랬는데 應量. 량에 맞추어서 대발우ㆍ중발우ㆍ소발우가 있어요.
적게 먹는 사람이 큰 발우떼 가질 필요 없잖아요. 자기 양에 맞을만한 그릇을 가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전에 “말[斗]쟁이 壯士(장사)” 라는 일꾼이 있었는데, 여기 축대를 쌓은 돌들을 저 밑에서 여기까지 혼자 다 지고 올라왔어요.
그 사람의 지게는 보통 지게와 다르게 다리도 굵습니다.
“이거 지고가면 10원 더 줍니까?”
“앗따, 10원 더 줘? 달라는 대로 더 주지.”
“져 보죠.” 불끈 지는데 발꿈치가 땅에 푹 빠져요. 쏙 들어가요.
“아이고 무거운데” 하면서 여기까지 쉬지도 않고 올라옵니다. 그 사람이 밥 먹는 것을 보면 밥그릇이 요즘 우리 밥그릇으로 대여섯 그릇 더 들어갈 양푼입니다.
숟가락도 큰 것으로 푹 떠서 꿀꺽 먹습니다. 그런 사람은 보통 우리 밥그릇가지고 되겠습니까? 덩치가 큰사람은 밥그릇도 커야 되거든요.
대량기ㆍ중량기ㆍ소량기. 양이 큰 그릇, 적은 그릇. 부처님당시는 말 수가 요즘 말하고는 물론 차이가 있겠지만 부처님은 두 말. 중량은 한말 반. 소량은 7되 반 그랬다고 했어요. 양 작은 사람이 7되 반 먹었다고 그랬어요.
부처님 키가 열여섯 자니까 요즘 잣수로 친다 하더라도 그 정도는 먹어야 될 겁니다. 부처님 키가 열여섯 자 됐으니까 사천왕 보다 더 클 겁니다.
사천왕 보다 더 크니까 밥 두 말 안자시고 되겠습니까?
대량은 두 말. 중량은 한말 반. 소량은 7되 반. 양에 맞추어서 먹는 그릇이라고 해서 應量器라고 합니다. 두 가지 뜻이지요? 應受供養器. 공양을 응당히 받을만한 사람이 먹는 그릇. 부처님 밥그릇이라는 말이고, 그 다음에 應量器. 양에 맞추어서 먹는 그릇. 이렇게 應器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리고
着大法服(착대법복)이라. 대법복을 착한다 입었다 이 말입니다.
着이라는 것은 입었다 이 말입니다. 大法服이라는 것은 가사를 대법복이라고 그러는데, 우리 스님들이 입는 가사가 세 가지가 있거든요.
僧伽梨(승가리)ㆍ鬱多羅僧(울다라승)ㆍ安陀會(안타회)그래요.
승가리를 대 법복이라고 그럽니다. 僧伽라고 하는 말은 스님이라는 뜻이고,
梨耶(리야)그러는데 梨耶라고 하는 말은 “항복 받는다.”이런 뜻입니다.
“항복 받는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 하면 설법을 해가지고 대중을 항복 받는다는 말입니다. 청정승가로서 설법해서 대중을 항복 받는 옷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승가리는 9條(조) 13조 15조 17조 21조 25조. 9조이상의 가사를 승가리라고 합니다. 7條衣(조의)는 예복. 예불할 때 입고, 5조의는 보통 때 입는 옷이고요. 우리는 장삼을 입기 때문에, 장삼은 본래 법복은 아니거든요. 장삼은 본래 법복은 아닌데 장삼 위에다가 이 법복을 입을 때에, 大衣입을 때는 昇座說法(승좌설법)을 할 때 큰 법상에 올라가서 설법을 할 때, 이 가사가 크니까 가사 자락이 법당을 덮다시피 하니까, 사람은 작아도 가사 자락이 촥~ 늘어나니까 엄청나게 거인처럼 보이지요. 근사하게 보이지요.
옛날에 관정복이라는 것이 있는데, 임금이 관정할 때 입는 법복이 있는데 남방 같은 데 가면 네팔 국왕이 즉위식 할 때 입는 옷인데요.
속에는 기마 복처럼 다리가 나오고 아주 딱 붙는 옷을 입었는데 그 위에 입는 가운의 길이가 댓발 되는가 봐요. 그것이 계단 전체를 다 덮었어요. 촥~ 덮었어요. 걸어 갈 때는 뒤에서 동남동녀가 가사 자락을 붙잡고 가는 겁니다.
예식장에 웨딩드레스도 비슷하니 그렇잖아요. 그런 식입니다. 그것이 대 법복입니다. 웨딩드레스도 법복이라면 대 법복이지요. 대의지요. 보통 때 입는 옷은 아니거든요. 뒤에서 붙잡아 줘야지 그냥 늘어뜨리면 축대 밑에까지 아마 계단을 덮을 겁니다.
법상에 올라갈 때 대 법복을 입고, 그 다음에 왕궁에 출입할 때 대 법복을 입습니다. 그 다음에 취락 걸식할 때, 취락에, 동네에 가서 걸식을 할 때 공양을 받을 때에 입는 것인데, 취락 걸식할 때에 입는다는 것은 현실 참여를 해서 많은 중생들에게 설법교화를 할 때 대 법복을 입고, 위엄을 차리고 설법을 한다 이 말입니다. 왕궁에 출입할 때 입는다는 것은 포교. 부처님정법을 포교할 때, 말하자면 왕궁에 의지해서 포교하는 것이 제일 큰 포교가 되니까요. 취락 걸식은 현실 참여. 왕궁에 출입할 때는 포교 전법. 법상에 올라갈 때 입는다는 것은 傳道(전도). 부처님의 정법을, 전도법문 할 때 입는 것이 대 법복이고, 그러니까 우리 옷으로 치면 장삼이 대 법복에 속하고, 두루마기가 7조 鬱多羅僧에 속하고, 일상복 정도는 安陀會에 속하고요. 안타회라는 것은 일상복이라는 뜻입니다.
안타회는 5조. 울다라승은 7조. 예복에 속하도 승가리는 대 법복에 속합니다.
발우떼 들고 대 법복을 입고 나설 것 같으면 이것이 새의 두 날개입니다.
중 재산은 전체가 그것뿐입니다. 가사입고 발우떼 들고 척 나서면 天下叢林이 飯似山(천하총림반사산)이요. 천하 어디에 가더라도 발우떼에 밥 담아주면 먹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어디 가든지 잠자리가 있고 먹을 것이 있고요.
그렇게 하고 도 닦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이 두 가지는 버리지 말고 언제든지 가지고 다니라는 것이지요. 발우와 가사. ←이것이 중 재산의 근본이라고 그랬거든요.
受持應器(수지응기)하고 着大法服(착대법복)이라. 응량기를 받아가지고 대 법복을 입는다. 그렇게 하고 履出塵之徑路(이출진지경로)라.
塵世(진세)를 벗어나는 지름길을 밟는다. 진세를 벗어나는, 번뇌 망상에 시달리는 진세. 오욕락에 시달리는 이 진세. 紅塵(홍진)의 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먼지 티끌세상이다 이 말입니다. 먼지만 난다고, 망이 난다고 먼지가 아니라 서울에는 먼지하고 공해가 심하기도 하지만 꼭 먼지가, 먼지가 아니라 잡다한 번뇌 망상. 번뇌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세상을 塵世라고 그러고, 또한 벼슬감투 때문에 서로 지지고 볶고 으르렁 거리는 것을 홍진의 세상이라고 그럽니다.
그런 세상을 턱 벗어나는 지름길을 받는다 이겁니다. 벗어나는 길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첩경.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 그것을 받는다 이 말입니다. 참선해서 견성성불 하는 길이지요.
學無漏之妙法(무루지묘법)하면 무루의 묘법을 배울 것 같으면, 샘이 없는 묘법을 배울 것 같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
如龍得水(여룡득수)요 似虎靠山(사호고산)이라 無漏之妙法(무루지묘법)이라.
샘이 없는 묘법이다. 함이 없는 묘법이고 해탈의 법이고 열반의 법이 無漏法입니다.
함이 있는 것. 하는 것이 있는 것은 다 함이 있거든요. 재미가 있는 것은 재미없을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함이 있는 법은 끝이 있게 마련입니다. 허망하고 무상한 것이 有爲法(유위법)입니다. 一切有爲法(일체유위법)은 如夢幻泡影(여몽환포영)이라. 꿈과 같고 환과 같고 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금강경에 그랬잖아요.
一切有爲法은 如夢幻泡影이라. 그러나 일체 無漏法은 無爲法(무위법)입니다. 바로 함이 없는 법이거든요. 성현의 길이거든요.
一切賢聖이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이라.
일체현성들이 다 함이 없는 무위법으로서 차별이 있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도 무루법을 터득한 사람이고, 공자ㆍ소크라테스ㆍ부처님. 세계의 성자들이 다 무루법을 통달하기는 했으나 무루법이 역시 무위법이니까요.
각각 차별이 있다 이거거든요. 많은 차별이 있습니다. 천층만층 구만층의 차별이 있다 이 말입니다. 불이라고 해도 똑 같은 불이 아니거든요.
불이라고 하더라도 日月과 같은 밝음이 있는가 하면 20촉은 100촉짜리. 1000촉짜리 앞에 가면 맥가리가 없잖아요. 햇빛 같은 것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잖아요.
대 낮이야 불 아무리 켜 놔봐야 소용없잖아요. 그와 같이 차별이 있는 것이다 이 말입니다. 반딧불도 불은 불입니다.
無漏의 妙法을 배우면 如龍得水(여룡득수)요 似虎靠山(사호고산)이라 용이 물을 얻음과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함과 같더라. 범이 산을 의지해야만 소리 지르기도 하고, 내리 뛰기도 하고 자유자재 할 것 아닙니까?
범이 아무리 호랑이라도 철창신세 동물원에 갇혀있어 보세요.
지까짓 놈이 영검이 나나요? “으르렁” “으르렁” 하고 철창을 뚜드려 봐야 아무 소용없고 나오지도 못하니 불쌍하지요. 아이들이 작대기로 대가리 톡 톡 때려도 “으르렁” 하고만 말지 지까짓 놈이 영검이 나나요? 산을 의지한 호랑이. 이것은 막 소리 소리 지르고... 용은 물론 하늘에서도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뿌리고, 땅에서도 자유자재하고 물속에서도 자유자재 하지만 용왕 먹인다 하면 물에서 먹이잖아요. 용은 물이 근본입니다. 양서동물이라고 해도, 용이 물속에 들어가면 용왕궁이 지 마음대로니까 땅에서는 아무래도 자유가 좀 적은 모양이지요?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자유가 많은 모양입니다. 용이 물을 얻음과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함과 같다.
其殊妙之理(기수묘지리)는 不可勝言(불가승언)이니라 그 수승하고 미묘한 이치는, 殊妙. 수승하고 미묘하다. 수승하고 미묘한 이치는 不可勝言이니라 가히 말로 이룰 수 없느니라. 말로 다 할 수 없다.
學無之妙法이라 묘한 법이라고 그랬는데 어떤 것이 묘한 법이냐?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있어요. ←이것이 묘한 법입니다. 바람이 있으면서도 안 보이니까 없잖아요. 없는 것 같으면서도 그놈이 불면 시원하고 바람이 불어서 작용을 하니까 그것이 묘하잖아요. 우리 마음도 그렇다 이 말입니다.
우리 마음자리도 있다고 하려니 눈에 안 보이고 없다고 하려니 그놈이 들어 가지고 사람을 좋게도 하고 궂게도 하니까 묘하잖아요. 그것이 묘한 법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眞空妙有(진공묘유)라고 합니다. 眞空妙有. 참으로 공한 가운데 묘하게 있다는 말입니다. 그 眞空妙有의 묘한 이치. 이것은 참 가히 말로 못한다.
이 세상에 유법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법은 다 無常(무상)한 법이거든요.
세상 법은 다 무상하고 허망한 법이거든요. 없으면서도 있고 있으면서도 없는 그 도리. 그것이 묘한 도리다. 이런 묘한 법. 무루의 묘법을 배울 것 같으면 용이 물을 얻음과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함과 같다. 유위법이라고 하는 것은 함이 있으면 다 함이 있기 때문에 큰 굿 잔치 할 때는 재미가 좋지만 다 보고나면 허망하거든요. 굿 하고 난 뒤에 쓸쓸하다고 허전하다고 허전함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지만. 무루 묘법은 샘이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든든하고 가득하고 원만하고 거기에서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것을 禪悅樂(선열락)이라고도 하지요. 선의 기쁨. 선의 즐거움. 其殊妙之理(기수묘지리)는 不可勝言(불가승언)이니라
人有古今(인유고금)이언정 사람은 古今이 있을지언정 法無遐邇(법무하이) 법은 遐邇가 없나니, 멀고 가까운 것이 없으며, 人有愚智(인유우지)언정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로운 이가 있을지언정 道無盛衰(도무성쇠)니 도는 성하고 쇠함이 없나니,
雖在佛時(수재불시)나 비록 부처님이 계실 때라 하더라도
不順佛敎則何益(불순불교즉하익)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순종하지 아니하면 무엇이 이익 될 것이며, 縱値末世(종치말세)나 비록 말세를 만났으나
奉行佛敎則何傷(봉행불교즉하상)이리오 부처님의 가르침을 奉行할 것 같으면 무엇이 상하겠는가? 지금 우리가 佛後(불후) 末世를 한탄 했으니까 하는 말씀입니다. 불후말세니 불전불후니 시대가 지금 말세에 났느니 해가지고 걱정을 하지만, 사람이 古今이 있지 법은 멀고 가까운 것이 없는 것이다.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지언정 道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진리는 성하고 쇠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말세라고 하는 얘기가, “말세”라. “말법”이라 하는 것이 정법이 1000년이요 상법이 1000년이요 말법이 10000년이라고 그랬어요.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1000년 동안은 부처님의 정법이 그대로 있다는 겁니다. 그대로 있어서 그 때에 출가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行과 果를 다 성취한다는 겁니다. 부처님의 행에 의지한 결과를 다 성취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2000년. 1000년후 사람들은 부처님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과 부처님의 이치를 다 알고 이해는 하고 그것을 따지고 말은 하더라도 그것을 행에 옮겨서 결과를 얻는 데는 부족하다는 겁니다.
敎ㆍ理ㆍ行ㆍ果(교리행과). ←이 네 가지가 있는데, 부처님의 교법과 부처님의 교법의 이치. 이론적으로 따지는 것과 부처님의 교리를 수행해가지고 결과를 얻는 교ㆍ리ㆍ행ㆍ과. 네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부처님의 정법시대에는 行과 果가 그대로 있지만, 상법시대에는 부처님의 교리만 있고, 부처님의 理와 行은 있어도 말하자면 果가 부족하다는 겁니다. 그랬다가 2000년 후에는 敎만 남아 있어요. 부처님의 교법만 남아 있지, 부처님의 이치도 지마음대로 풀이가 되어 버렸지 부처님의 교리를 똑 바르게 해석하는 사람도 적다는 겁니다.
또 이것을 다섯 가지로 나누는 법도 있어요. 오 500년이라고 그러는데 500년이 다섯 가지라는 말입니다.
첫 5백년은 解脫牢固(해탈뇌고)라고 그러는데 해탈하는 시대라는 말입니다.
그 때는 누구든지 출가를 해서 부처님 법을 닦으면 다 해탈을 얻었다 이겁니다. 그다음 5백년에는 해탈을 잘 못었더라도 禪定牢固(선정뇌고). 선정을 잘 닦는다 이겁니다. 선정을 닦아서 해탈을 얻는 사람도 있고, 못 얻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지요. 그래서 선정은 잘 닦고 행은 잘 닦는다 이겁니다.
해탈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果고 선정이라고 하는 행이거든요.
그런데 천년 후의 5백년에는 多聞牢固(다문뇌고). 다음은
塔寺牢固(탑사뇌고). 탑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그런 일들만 많이 한다는 겁니다.
2500년 후에는 鬪諍牢固(투쟁뇌고). 싸움들만 많이 한다는 겁니다.
지금 싸움 많이 하는 것이 투쟁뇌고 인지 모르지요. 그리고 천 년 전 삼국시대에 절을 짓고 탑 많이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국도 그렇고 인도도 그렇고 타일랜드 저 쪽에도 다 천 년 전에 모두 만든 것들입니다. 지금 역사적인 아주 유명한 것들이 그 때 것이지 후에 것은 별로 없어요. 없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때 그렇게 탑사뇌고가 성행했었어요.
오 500년이라는 것이 그렇게 있거든요. 말세라는 것이 투쟁뇌고 시대가 말세입니다. 말법. 말년이 투쟁뇌고다 이 말입니다.
如龍得水(여룡득수)요 似虎靠山(사호고산)이라 할 때는, 용이 물을 얻고 범이 산을 의지함과 같다할 때는 참 그야말로 대 자유자재를 말한 것인데,
우리가 마을에서 사는 것은, 세속에서 사는 것은 한 가정에 꼭 매어서 살기 때문에 한 가족에 꼭 매어살고 한 여자한테 그냥 꼭 잡혀서 살아야 되고 오늘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어떤 회사에서 장가갔다고 그러니까 “흥 니도 오늘부터 두 발목 꽉 잡혀놨다.” 이러더군요. 마누라한테 꼭 잡혀서 꼼짝 못한다 이 말입니다.
그러듯이 그야말로 처자권속이라고 하는 것은 수갑과 같고, 꼼짝 못한다 이 말입니다.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한 감옥과 같고 자유가 없어요.
전부 그냥 울안에 갇힌 호랑이와 같은 것이지요.
그래서 옛날 스님네들이 그런 말도 했지요.
籠鷄有食湯鍋近(농계유식탕화근)이요. 닭장 속에 있는 닭은 모이는 주니까 먹을 것은 있는데, 끓는 냄비속이 가깝다 이 말입니다. 머지않은 장래에 식탁에 오른다 이겁니다.
野鶴無粮天地寬(야학무량천지관)이라. 들의 학은 먹을 양식은 없어도 천지가 너그럽더라. 누구 모이 안 주니까 먹을 것은 따로 없지요. 그러나 훌훌 날아다니면서 천지가 너그럽거든요. 우리 출가한 사람이 논이 있나 밭이 있나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지만, 그렇지만 배고파서 굶어죽은 중이 어디 있나요?
흉년에 부황 들어서 10리에 사람하나씩 죽는 세상이 되어야 100리에 눈먼 중하나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눈먼 중이나 굶어 죽을까 눈뜬 중은 굶어 죽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 도 닦는 사람은 諸天(제천)이 與衣食(여의식)이니까요. 하늘이 의식을 주기 때문에요.
故(고)로 그런 연고로, 그러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世尊(세존)이 云(운)하사대 세존께서 말씀하시기를, 世尊이 云하사대 하는 것은 부처님이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이 말인데 이것은 부처님의 유언. 부처님이 마지막 하신말씀을 遺敎(유교)라고 그래요. 유교경이라고 하는 경이 있어요.
[불입열반약설교계경]이라고 하는 경이 있는데 그것을 유교경이라고 그래요.
그 유교경에 여러 가지, 비구들이 조심해야 하고 공부해야 하는 얘기들을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신 경이 있어요. 그것이 이 초발심자경 다음에...
그런데 그 유교경에 보면 석가모니불이 초전법륜하사 도 아약교진여하시고, 석가모니불이 최초에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아약교진여 5비구를 제도하셨고, 최후설법하사 도 수발다라하시니, 수발다라 라는 사람을 최후에 제도를 했다. 그랬거든요. 5비구라는 사람들은 부처님 성불하기 전에 부처님을 시봉하던 다섯 사람이 부처님이 공양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만 타락했다고 자기네들은 녹야원으로 가버리고, 가버리고 나서 자기네들 끼리 따로 수도 한다고 하고 있는데, 부처님이 인연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을 제도해야 되겠다. 인연이 더 가깝고 근기가 수승한 사람들은 자기가 배웠던 울뜨남자. 아남가남이라는 두 신선들이 있었거든요.
울뜨남자 밑에서 3년 동안. 아남가남 밑에서 3년 동안 요가를 배웠습니다.
그네들이 근기가 수승하고 無想定(무상정)ㆍ비비상정을 다 성취한 사람들이니까 그 사람들을 제도해야 되겠다 마음먹고 ‘울뜨남자를 제도할까?’ 하고 설산으로 가려고 하니까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아~, 울뜨남자는 박복해서 7일전에 죽었다.” 그러거든요. 7일전에 죽어서 그래서 부처님 법문을 못 들어요.
그 다음에 ‘그럼 아남가남을 제도해야 되겠다.’ 생각을 먹고 가려고 하니까 또 공천이 있기를 “아남가남은 박복해서 사흘 전에 죽었다.”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근기가 수승했던 그 사람들. 자기가 6년 동안이나 배웠던 스승들. 그 사람들에게 자기가 깨달은 법을 가르쳐 주려고 했더니 죽어버렸다니 할 수 없이 그 다음에 5비구들을 제도하러 갔거든요. 그래 5비구들을 제도하러 가니까 5비구들은 “저 구담 사문이 온다. 우리 일어나서 인사도 하지말자. 타락한 사람인데 인사할 것이 있나?” 이랬는데...
|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_()()()_
()
고맙습니다 ()()()
사람은 어리석고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지언정 道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의 진리는 성하고 쇠하는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籠鷄有食湯鍋近/野鶴無粮天地寬....새겨야 할 가르침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_()()()_
_()()()_
無漏(무루)의 妙法(묘법)을 배우면 如龍得水(여룡득수)요 似虎靠山(사호고산)이라. 함이 없는, 샘이 없는 묘법을 배우면 용이 물을 얻음과 같고 범이 산을 의지함과 같더라._()()()_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_()_
감사합니다..._()_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