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깊은 학문의 고장인 장성. 장성의 형상은 두 마리의 용이 고을을 감싸고 있는 모양이
라 하여 명당중의 명당에 속한다. 일찍이 조종생( 趙從生)은' 산회수곡자천성( 山回水曲自天
成)' 이라고 했다. " 산이 둘러 있고 물이 굽이쳐 스스로 하늘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빼어난 경관이 으뜸이라한다
구름도 바람도 쉬어 넘는다는 갈재는 전남의 관문이자 교통의 요충지이다. 그 숨찬 갈재
가 이제는 터널로 뚫려 쉽게 넘나든다.
몇 해 전 11월 하순경 하룻밤을 갈재에서 새운 적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양으로 오
가려면 갈재를 넘어야 한다. 갈재에 예고도 없이 첫눈이 내렸던 것이다. 늦은 시간 서울을
출발한 내가 탄 버스 외에도 갈재를 넘으려는 차량의 행렬이 끝없이 늘어 서 밤을 새웠다.
많은 눈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월동장비가 없는 차들이 훠이훠이 갈재를 넘을 수는 없었다.
발이 묵인 사람들은 밤새 대책 없는 추위에 떨었다. 나는 바람이 바람을 부르고 바람을 다
스리는 갈재를 보았다. 옆자리에 앉은 친정이 장성이라는 아줌마에게 갈애바위의 슬픈전설
도 들었다.
몸이 뜨거운 아름다운 기생 갈애는 뭍 사내들의 넋을 빼는 여자였다한다. 갈애의 사랑을
얻기에 들뜬 남정네들은 정사는 물론 생업도 등한시한다는 자자한 소문에 조정에서는 그녀
를 제거하라 명하게 되었다. 결국 쪽진 머리에 칼자국이난 얼굴로 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갈재를 넘나들며 무심히 보았던 고속도로변 좌측 커다란 바위 봉우리 하나가 갑자
기 애절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윽고 아침이오자 병풍처럼 둘러진 하얀 노령산맥 위로 떨
어지는 햇살은 아 ! 수천 수만의 황금비늘을 떨구고 있었다.
선비정신이 살아있는 장성에서는 먼저 서원을 두러보기로 했다. 황룡면의 필암서원( 사적
제 242호)으로 갔다. 한국 유학(儒學)의 큰 스승은 관서 지방에 율곡 이이, 영남 지방에 퇴
계 이황, 호남지방에 하서 김인후와 노사 기정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필암서원은 사림의 정신을 도학과 문학에서 꽃 피우게 하였던 하서 김인후를 모시는 서원
이다. 호남의 대표적인 사액서원으로 하서( 河西) 김인후 ( 金麟厚: 1510- 1560)를 따르던
문인들과 호남의 유림들이 건립하였다.
이 건축은 유교 건축의 전형으로 조선시대 서원의 기본구조를 모두 갖추었다. 사당과 강
당을 중심으로 동재, 서재, 경장각, 장서각, 우암 송시열이 쓴 현판이 걸렸다는 확연루(廓然
樓) 등의 건물은 보수공사 중이었다. 오랜 풍상을 견뎌온 목조건축물의 공사로 인종이 하사
한 묵죽도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확연루 앞 홍살문과 공자의 행단(杏亶)을 본따서 문묘나
향교에 심었던 늙은 은행나무는 세월을 넘어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서원의 성역화 공사가 마무리되면 학생들은 수련원인 서원에 머물며 선비정신을 체험하
여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남도의 정신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하서 김인후. 그분의 고결한
사상적 향훈이 후손들의 귀감이 되고 전승된다는 사실은 감사할 일이다.
다음 내가 찾아간 곳은 노사 기정진 선생을 기리기 위한 고산서원이었다. ' 서울의 수많은
눈이 장성의 눈 하나만 못하다는 말( 長安 萬目 不如 長成一目)을 있게한 노사 기정진 선생.
그분은 외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깊고 드높았다. 고산서원의 닫혀진 대문을 지나 낮
으막한 담 넘어로 담대헌을 바라본다. 그 앞에는 선생이 안동에 다녀오다가 지팡이로 썼던
것을 마당에 꽂아놓았는데 자랐다는 위성류나무가 수양버들처럼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었
다. 그분의 학문이 우리 정신 세계에 긴 흐름으로 남은 것처럼.
봉암서원은 임진왜란 때 화차와 총통을 만들었다는 망맘 변이중 선생을 모시는 서원이다.
그 분은 수학에 조예가 깊고 학문을 몸소 실천하신 분이다. 언젠가 그 분의 후손인 변시연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높은 연세에도 만나는 사람에 대한 기록을 일기 쓰듯 깨알 같이 메
모하는 유학자이시다. 아직 식지 않는 학문의 열의가 대단한 분이었다.
장성은' 홍길동의 고장'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허균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불의에
용감히 도전하는 저항인의 상징이요, 의적으로 모든 사람의 동정과 갈채를 받았던 인물이다.
이 홍길동이 소설 속의 가상인물이 아니라 장성에서 태어난 실존인물이라 한다. 홍길동의
조부가 무진참화에 연루되어 그 아들 홍상직이 장성으로 피신해 은거했다는 것이다.
찾아간 생가는 기둥과 석가래가 앙상한 공사 중이었다. 집터 주위의 대숲과 늙은 감나무옆
에서 홍길동의 출생을 백암산 자락의 푸르름으로 보고왔다.
발걸음은 다시 금곡리 영화마을을 찾아간다. 장성인 임권택 감독이 '태백산맥'을 촬영하였
고, '내 마음의 풍금'이라는 서정시 같은 영화의 촬영장이다. 금곡리에 가면 먼저 만나는 것
은 수령이 200년은 되었다는 느티나무이다.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아래 정자가 있어 마을을
찾아든 길손이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전통마을의 향수에 젖을 수 있는 곳이다.
낮으막한 초가집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천천히 따라 걷는다. 문도 없는 초가집에
들어갔다. 좁은 마루에는 여름햇살이 가득한데 하얗게 삭아가는 노파가 혼자 졸고 있다. 마
당의 개도 짖지 않는다. 유년의 고향 같은 금곡 마을에서 내 마음은 더 없이 풍요로웠다.
손바닥만한 다락 논에 푸르게 자라는 벼와 논둑에 심어진 콩의 풋냄새, 손톱만한 은행이
다닥다닥 열린 푸른나무, 장독대 옆에서 선 커다란 수국의 무리를 보았다. 아마 십여년 족히
자랐을 물빛 수국의 탐스러운 꽃으로 초가집 풍경은 아름다웠다. 가난했지만 따스함으로 기
억되는 마을을 찾는 이유는 자연으로 하나되어 살았던 위안과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장성에 와서 백양사에 들르지 않을 수 없다. 백암산 아래 천년고찰 백양사는 대한불교 조
게종 18교구의 본산이다. "누구나 떠날 때 입는 옷에는 호주머니가 달려 있지 않는 법" 이
라는 만암 스님과 ' 참사람'을 가르치는 서옹스님 등 걸출한 선승을 많이 배출한 절이다.
불자가 아니라도 목은 이색과 정몽주의 글 등이 있는 쌍계루가 마알간 물에 떠 있는 풍경
만으로 속세를 잠깐 잊게 할 것이다. 천연기념물인 비자나무 숲을 거닐다가 솔잎차 한잔으
로 백암산의 청정한 기를 마셔도 좋다. 새봄에 솟아난 소나무의 새순과 한봉이 혼합된 솔
잎차는 담백한 향과 맛이 일미인 건강차이다.
건강한 여름을 나기 위한 보양식은 다양하다. 오늘은 장성의 맛을 찾아 떠나자
장성의 향토음식은 장성댐 아래에 있는 미락(味樂)단지에 모여있다. 먹는 즐거움이 모인 곳
이라는 이 곳은 20여곳의 음식점이 있는 지역이다. 장성의 먹거리로 군에서는 메기찜 외에
도 흑염소, 용봉탕, 장어구이를 추천하였다. 장성호에서 직접 잡은 싱싱한 물고기로 미각을
돋운다는 집을 택한 것이 청암가든( 061) 393-8823 )이었다. 가물치회 와 메기찜이 맛있다
한다.
가물치의 한자 이름은 예(禮)를 갖춘 고기란 뜻으로 예어( 魚)라 한다. 밤만되면 머리를
반드시 북향으로 내민다하여 예를 갖추고, 물고기는 알로 부화하는데 반하여 사람처럼 새끼
를 낳고, 일부일처로 암수가 같이 있으며, 여느 고기는 부화하면 새끼 곁을 떠나는데 아비
가물치가 새끼들이 자랄 때까지 지켜주는 부자유친(父子有親)을 알고 고기의 쓸개는 쓰디쓴
데 가물치의 쓸개만은 달아 급성 인두염, 만성 신장염, 치질 등 많은 병에서 구해주니 오륜
을 갖추었다 고 한다.
불가(佛家)에서도 가물치를 영물시하는데, 가물치 몸에 붙은 비늘수가 108개인 불교의 성
스러운 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다 가물치는 그 생김새 때문인지 뱀과교합해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가물치가 나타나면 가뭄이 든다는 속전(俗傳)이 복합되어 한국 사람들은 약용 외
에는 가물치 먹기를 꺼려왔다.
가물치는 보신용으로 푹 고아 만든 곰이 좋다. 단백질과 칼슘의 함량이 다른 물고기보다
월등히 많고 소화성도 좋다. 이런 점으로 임산부나 발육기의 청소년에게 아주 좋은 보신식
품이다.
가물치의 별미를 보기 위해서는 가물치회가 애용되고 있다. 가물치회는 가물치의 껍질을
벗기고 살만 도려내어 야채에 싸먹는 것과 막걸리에 빨아낸 다음 초고추장에 무치는 것이
있다. 막걸리에 빠는 것은 가물치의 비린내와 잡맛을 제거해 주는 역할을 한다.
양념이 가미되지 않은 가물치회(한 접시 25,000원)는 담백하면서도 쫄깃쫄깃하고 입에 착착
달라붙듯 싱싱했다.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마당 앞의 텃밭에서 상추와 쑥갓을 뜯고, 통통한
고추를 땃다. 텃밭에서 기른 싱싱한 야채를 식탁에 올리니 고향집에 온 것 같다.
메기찜(25,000원)은 즉석에서 끓이면서 먹는다. 수삼, 대추, 외에 20여가지의 각종 양념과
미나리, 팽이버섯 등 야채를 넣어 맛은 깊고 잡 냄새가 없다. 예전에는 자연산 메기만을 썼
지만 요즈음에는 물량이 부족하여 양식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향토음식이란 그
지방에서 나는 재료에 대대로 전래되는 조리법으로 만든 토속음식이 아닌가. 영산강의 상류
황룡강은 물이 맑고 물고기들이 풍부해 천렵장소로 이름 나 있는 곳이다. 황룡강이 흐르는
오래 전부터 내려온 메기요리, 민물고기는 이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9년 째 음식을 만든다는 안주인에게 맛의 비결을 묻자 장과 고추장, 된장을 직접 담가서
쓰고 재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 조미료의 사용을 될 수 있으면 줄인다고 한다. 대부분의 음
식점에서 " 우리집에서는 절대 조미료를 안 써요"하는 뻔한 거짓말을 많이 들었기에 수줍은
듯 다소곳이 말하는 그분의 말이 더 신뢰가 느껴졌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가 즐비한 장성에서는 긴 여름 해도 늘려 써야한다. 장성을 관통
하는 황룡강 줄기는 쉬엄쉬엄 흘러가지만 조선 제일의 요월정 원림과 물결을 보고 근본을
안다는 관수정, 십여리에 기암괴석과 폭포가 늘어서 있다는 남창계곡 등은 언제 보고 갈 것
인가. 백양단풍이 훨훨 백암산을 태우고 집집마다 붉디붉은 감이 초파일 연등처럼 늘어선
가을이면 다시 오리라.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나, 가을 들녘에 선 듯 쓸쓸한 사람은 장성으로 오라. 축령산
상록수림의 청정함과 타는 산의 마음이 단아한 기품으로 그대의 사랑을 더 높게 끌어올리리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