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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
기업들이 강연 스케줄 잡기 가장 힘든 강사이자, 방송 매체 섭외 1순위인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SERI CEO ‘최고의 명강사’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301쪽)
문화심리학자
요즘 ‘재미있어야 한다’는 주제의 강의를 자주 한다. 그러다보니 가끔 사람들이 나를 어설픈 교수로 본다. 실력 없이 말재주만 가지고 버티는 허접한 교수 취급하기도 한다. 그러면 정말 열 받는다.
나는 제대로 공부한 문화심리학자다. 독일에서 학위 따는 일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나는 베를린 자유대학 심리학과의 전임강사로 독일 학생들을 가르쳤다. 비고츠키, 피아제, 프로이트를 독일말로 가르쳤다. ……
내 이야기가 그리 ‘간단한’ 말장난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깊은 학문적 성찰의 결과란 뜻이다. (299쪽)
내가
이 책은 한 마디로 꼴값이다. 혹시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망사 스타킹을 보면 환장한다는 이야기 때문에 꼴값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쪽 팔리는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에 대해 뭐라고 할 생각이 없다. 또한 “정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명분 뒤에 숨어 이 땅의 사내들이 뿜어내는 이 과도한 분노와 적개심(105쪽)”과 같은 구절에서 은연 중에 드러나는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에 시비를 걸 생각도 별로 없다.
이 책은 과학적으로 볼 때 쓰레기다. 그래서 내가 꼴값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논리와 실증이라는 과학의 기준은 거의 무시하면서, “문화심리학”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여러 학자들을 인용하면서 과학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더 꼴값이다.
인기가 있다는 이유로
이 글에서는 이 책의 내용 중 일부만 비판한다. 더 많은 시간을 내서 자세히 비판할 기분이 아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행복하기 힘든 것인가? 삶은 왜 이다지도 힘겨운 것인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인간 문명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이를 ‘문명文明의 불만’으로 압축해 표현한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를 억압하는 것을 기초로 생성된 ‘문명’은 그 본질에 있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게 프로이트의 결론이다. (9쪽)
프로이트는 이 종교적 의례에서 종교와 도덕의 기원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모든 것을 독점한 것에 불만을 품은 아들들은 편 먹고 아버지를 살해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아들들은 괴로워한다. 이를 아버지를 상징하는 토템동물을 숭배하는 종교적 의례를 통해 극복하려 한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이것이 바로 종교의 기원이다. (230쪽)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프로이트를 독일어로 가르쳤다는
금실 좋은 노인 부부가 함께 지내다 할머니가 먼저 죽으면 할아버지는 평균 6개월 이내에 다 죽는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먼저 죽으면 할머니는 평균 4년 정도 더 산다고 한다. 의미부여의 리추얼 때문이다. ……
문제는 할아버지의 리추얼은 대부분 할머니와 연관되어 있는 반면, 할머니의 리추얼은 할아버지 없이도 가능한 것이 많다는 사실이다. 리추얼이 다양한 삶은 풍요롭다. 느끼는 정서의 차원이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리추얼은 남성의 리추얼보다 훨씬 다양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여성의 삶은 남성의 삶보다 정서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28~29쪽)
“평균 6개월 이내에 죽는다”도 말이 되고, “6개월 이내에 다 죽는다”도 말이 되지만 “평균 6개월 이내에 다 죽는다”는 문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 정도는 단순한 실수라고 치고 넘어가자.
평균적으로 여자가 더 오래 산다. 그리고 평균적으로 아내의 나이가 남편의 나이보다 적다. 따라서 순전히 수학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할아버지가 죽은 후에 할머니가 더 사는 기간에 비해 할머니가 죽은 후에 할아버지가 더 사는 기간이 짧을 것이다.
리추얼(ritual, 의식)의 차이가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결론에 이르기 전에 이런 뻔한 요인들부터 고려해야 한다. 이런 요인들을 통계학적으로 통제한(control) 후에도 홀로 남은 할머니가 홀로 남은 할아버지에 비해 더 오래 사는지 따져야 한다. 문화심리학에서도 수학을 무시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을 텐데 …
그리고 여자의 리추얼이 남자의 리추얼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증거가 있나? 이 때 리추얼의 정의는 무엇인가? 하다못해 조작적 정의라도 하나 내 걸고, 표본의 수가 작더라도 그 정의에 따른 통계를 하나라도 대야 할 것 아닌가?
남녀의 평균 수명과 부부의 나이 차이가 홀로 남는 할머니가 더 오래 사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실제로 여자의 리추얼이 훨씬 더 다양하다고 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여자의 리추얼이 할머니의 장수의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상관 관계에서 곧바로 인과 관계로 도약해서는 안 된다. 인과 관계는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
“의미부여의 리추얼 때문이다”라는
후회는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결정적인 기능을 한다. 외부로부터 병균이 우리 몸에 침입했을 때 몸의 면역세포가 분주히 활동하여 몸의 건강을 지켜내는 것처럼, 후회는 정신적인 병이 들지 않도록 우리 마음을 지켜내는 심리적 면역체계로 기능한다. 그래서 인간은 후회를 할 수밖에 없고, 또 해야만 한다. (38쪽)
골 때리는 기능론이다.
진화 심리학계에서는 후회에 대해 훨씬 더 그럴 듯한 기능론을 제시한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왜, 어디서, 언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던 사람이 그렇지 않았던 사람에 비해 미래에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인간이 후회를 하도록 진화했다는 식의 가설이다.
여자들의 후회는 그래서 짧다.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보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를 더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스트레스 상황에 훨씬 더 잘 적응하고, 남자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사는 것이다. (41쪽)
여자들이 오래 사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감탄’ 때문이다. 찜질방에 가보면 안다. 옆자리의 아줌마들의 수다가 하도 시끄러워, 들고 있는 책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다. (286쪽)
여기에서도 주장만 있지 근거는 없다.
진화 생물학자들은 훨씬 더 그럴 듯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컷들의 경쟁이 대체로 암컷들보다 더 치열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가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검증할 수 있다. 예컨대 암컷들이 수컷들에 비해 더 치열하게 경쟁하는 종들을 살펴보면 된다.
왜 이토록 남자들은 큰 가슴에 집착하는 것일까? ……
사는 게 재미없기 때문이다.
삶에서 어떠한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이 땅의 사내들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큰 가슴으로의 퇴행’이다.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
이러한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안 때문에 한국 남자들은 큰 가슴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 큰 가슴에 머리를 깊이 처박고 울고 싶은 것이다.
인간이 가장 완벽한 소통을 경험하는 곳은 어머니의 가슴이다. 심층심리학적으로, 어머니의 젖을 빨 때 아기는 자신을 가장 완벽하게 이해해주는 또 다른 사람이 세상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
세상과 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신념은 바로 어머니의 가슴에서 시작된다. 소통이 어려워질수록 인간은 불안해진다. 이 불안함을 극복하는 방법은 지극히 원초적인 방식으로 나타난다. 어머니의 가슴에서 완벽했던 정서의 소통 경험에 대한 기억이 큰 가슴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59~60쪽)
사는 게 재미 있는 남자는 큰 가슴에 집착하지 않나? 나는 그런 통계를 본 적 없다.
여자도 엄마의 젖가슴에서 자랐는데 왜 여자들은 큰 가슴을 보고 남자만큼 감동(?)을 못 받나?
진화 심리학계에서 떠도는 설명 중 내가 제일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핸디캡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꼬리가 화려한 수컷 공작이 더 건강한 것과 마찬가지로 가슴이 큰 여자가 더 건강하기 때문에 선호한다는 가설이다. 잘록한 허리에 대한 남자의 선호도 그런 식으로 설명하는 진화 심리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신체 특성들이 건강 및 번식력과 상관 관계가 있다는 것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건강을 위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셀 수 없이 많은데, 왜 하필 그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마라톤에 열광하는 것일까?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 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느끼고 싶은 것이다. (62쪽)
마라톤을 하는 사람이 마라톤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불안하다는 통계가 있나?
달리기는 중독성이 강하다. 어떤 사람들은 달리기를 하다가 오르가즘에 버금가는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대단한 성취감도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을 좋아한다. 어떤 사람들은 살을 빼고 싶어한다. 내가 보기에는 이런 요인들이 자학보다는 마라톤 열풍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어쨌든
스포츠마사지, 각종 스파 시설로부터 안마시술소, 퇴폐이발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피부를 자극하는 서비스 산업의 엄청난 호황이다. 동네마다 다 있는 운동장만 한 찜질방도 크게는 이 범주에 넣을 수 있다. 도대체 왜 갑자기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나는 이를 ‘피부자극결핍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의사소통 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네 번째 현상이다. ……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무도 나를 만져주지 않는다. (65쪽)
매춘이 갑자기 나타났다고? 문명 이래로 매춘은 늘 있었다. 문명 이전에는 직업적인 성판매자는 없었겠지만 매춘과 비슷한 양상은 있었을 것이다.
여러 진화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남자는 여러 명의 여자와 성교를 할 때 큰 번식 이득을 보며 그래서 여자에 비해 남자가 더 많은 상대와 성교하고 싶어지도록 진화했다.
아, 그러나 이 아저씨들에게 감탄을 연발해주는 곳이 단 하나 있다. 룸살롱이다. 화려한 화장을 한 젊은 아가씨들은 밤마다 끝없이 외친다.
“어머, 오빠!”, “오빠는 왜 이리 멋있어?”
이 싸구려 감탄에 환장한 사내들은 넥타이를 풀어헤친다. 지갑까지 풀어헤친다. (288쪽)
감탄을 안 해주는 젊고 예쁜 종업원과 감탄을 열심히 해주는 못생긴 할머니 종업원이 있다고 하자. 남자들은 누구의 서비스를 원할 것인가? 내가 보기에는 할머니가 더 인기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남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번식이지 감탄이 아니다.
그리고 왜 여자는 안마시술소와 룸살롱에 잘 안 가나? 수다를 열심히 떨어서 감탄을 다 받았기 때문에? 남편이 다 만져줬기 때문에?
신체 부위를 담당하는 뇌의 부위는 각각 다르고, 그것의 크기 또한 다르다. …… 그 그림을 보면, 우리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주 만져주길 원한다고 여기는 성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의외로 작다. ……
뇌가 가장 많은 신경을 쓰는 부위는 손과 입술, 혀의 순서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끊임없이 만지고 싶은 것이다. 키스도 그래서 하는 것이다. 보다 많은 뇌를 사용하여 느끼고 싶은 까닭이다. 더 많이 느끼고 싶은 젊은 연인들은 혀도 아주 자주, 다양하게(!) 사용한다. 뇌에서 차지하는 혀의 비중을 보면, 왜 혀를 사용해야 하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입술만큼이나 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66~67쪽)
손, 입술, 혀를 담당하는 뇌 부위가 큰 이유는 명백해 보인다. 손은 도구 등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입술과 혀는 말을 하는 데 쓰인다. 따라서 정보 처리를 많이 해야 한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맛을 통해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기 때문이다. 영양가가 풍부하고 독이 거의 없는 음식을 먹어야 잘 번식한다.
해당 부위를 담당하는 뇌 부위의 크기에서 성감의 정도를 추론해내는
남자들은 불안하다. 정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명분 뒤에 숨어 이 땅의 사내들이 뿜어내는 이 과도한 분노와 적개심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불안이다.
더 이상 아무도 이 땅의 남자들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불고 있는 ‘엄마 열풍’이 바로 그 증거다. 돌아보면 온통 엄마 이야기뿐이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식을 위해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이는 <마더>와 같은 영화도 나왔다. 엄마와 관련된 연극을 보려는 사람들의 줄이 끊이지 않는다는 신문기사도 자주 눈에 띈다. 엄마의 희생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사람들은 밤새도록 눈물을 흘리며 감동한다. ……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다. 당시 IMF 위기로 인해 온 나라가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웠다. 그때 사람들은 ‘아버지’를
찾았다.
20세기의 남편들은 월급봉투를 ‘던져주며’ 자신의 존재를 느꼈다. …… 아직까지 남자들의 육체적 ‘힘’이 가치를 만들어내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다. 그런 사회를 사회학에서는 ‘산업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21세기는 더 이상 산업사회가 아니다. (105~106쪽)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분노가 과도하다고? 무슨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과도하다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부자들하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20세기에는 육체적 힘이 중요했는데 21세기에는
아니라고? 그런 면이 있긴 하다. 하지만
21세기에 갑자기 어머니의 시대가 되면서 아버지가 살 자리가 없어졌단다. 그래서 불안에 휩싸인 남자들이 “정의와 민주주의와 같은
명분 뒤에 숨어” “과도한 분노와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단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시위와 파업이 정말 “과도”하게 일어났던 때는 1987년 이후 약 5년 동안이다. 그리고 그 파업 물결에서는 육체 노동자들이 중심이었다.
이토록 치명적인 약점을 가진 그가 도대체 어떻게 그토록 위대한 세기의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
존재 확인의 기술이 달랐기 때문이다. ……
처칠의 존재는 그림을 그릴 때 확인되었다. 사회적 지위가 사라져도, 사랑하는 아내가 배신해도, 그에게는 마지막 존재 확인의 방식이 있었다. 그림 그리기. ……
처칠이 위대한 이유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120~121쪽)
여러분은 여기에서 영웅이 되는 비결을 배우게 된다. 다 필요 없다. 그림만 그리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원근법은 객관성과 합리성이라는 근대성의 기초를 만들어낸 것이다.
서양이 동양을 식민지로 만들어 초토화시키는 계기도 바로 이 원근법 때문이다. …… 바로 이러한 원근법의 부재는 객관성과 합리성에 기초한 과학적 사고의 부재로 이어지고, 서양의 앞선 과학기술에 형편없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167~168쪽)
이번에도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마르크스 이론이 21세기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 사라진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21세기에는 ‘노동시간’이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론은 노동시간이 아닌, ‘지식’이 가치를 창출해내는 새로운 시대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낭만적인 이론이었다. (241쪽)
20세기 초반에 마르크스 이론이 나왔다고? 이번에도 단순한 실수라고 치고 넘어가자.
21세기에는 지식이 가치를 창출하는 반면 20세기에는 노동이 가치를 창출했다고? 20세기가 구석기 시대였나? 20세기 산업에서 지식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정말 모른단 말인가? 이런 것까지 이야기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20세기에는 엄청난 기술 발전이 있었고, 그 기술 발전은 곧 상품으로 이어졌고, 그 상품은 곧 돈으로 이어졌다. 20세기에 가난한 나라가 부자 나라와 벌이는 경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노동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노동시간이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말도 안 된다. 서비스 산업의 발전은 오히려 노동시간이 더 중요해지게 만들었다. 공장에서는 인간이 했던 일을 기계가 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서비스 산업에서는 아직까지 그런 일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로봇이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지만 로봇 미용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감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 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어설픈 구라가 아니다. 인간 문명의 비밀은 바로 이 ‘감탄하기’에 있다. (274쪽)
도구 사용, 언어 사용이 인간만의 능력이 아니라면 도대체 다른 포유류와 구별되는 인간문화는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275쪽)
모든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난다. 그래서 인간의 문명이 생긴 것이다. (276쪽)
뒤늦은 인간의 조련으로도 인간 수준에 버금가는, 때에 따라서는 인간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인지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원숭이의 어미에게 빠져있는 것이 있다. 감탄이다. (282쪽)
유인원들(
침팬지도 잘만 가르치면 인간처럼 말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학자가 있었다. 그들은
침팬지 갓난아기를 자신의 아기와 같이 키웠는데 오히려 인간 아기가 침팬지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그들의
실험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침팬지의 도구 사용 능력, 언어 학습 능력, 추론 능력 등은 인간에 훨씬 못 미친다. 이런 선천적 차이 때문에 침팬지 사회에는 양자 역학과 컴퓨터가 없는 것이다. 감탄의 유무가 어떤 사소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침팬지도 수화를 어느 정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휘 수가
천 개를 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또한 인간처럼 매우 복잡한 문장 구조를 이해하지도 못한다.
침팬지도 생각을 하고 인간도 생각을 하지만 둘은 매우 다르다. 그리고 그 차이가 인간의 고도로 발달한 문명으로 이어졌다. 왜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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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런 분이 교수라는 것도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도 참 안타까운 현실이네요.
이 책을 즐겁게 읽은 저는 비판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무분별하게 이해한 듯 싶네요. 책에서 위안을 느끼는 게 목적이라면 이 책은 훌륭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명색이 과학에 대해 생각한다는 제가 이 책에서 비판점 하나 못 찾는다는 것은 그냥 허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도 재밌게 본 책입니다만...... 굳이 그를 위한 변명을 좀 해주자면, '장르'가 다른 거 같습니다. 일종의 문학이랄까?ㅋㅋㅋ 과학의 잣대로 비판을 해 대면 좀 가혹한 걸지도요ㅋㅋㅋ
뭐, 이런 식의 거친 사변으로 글 써대는 '학자'님들이야 널리고 널렸으니,,,,,,,, 근데 독일의 대학에서 배웠다는 그 '문화심리학'이란 게 대체 무슨 학문인지 의심스럽긴 하군요.
제가 인용했듯이 김정운 교수는 "내 이야기가 그리 ‘간단한’ 말장난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깊은 학문적 성찰의 결과란 뜻이다."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스스로 문학이 아니라 과학이라고 분명히 밝힌 거죠.
그리고 설사 그 구절이 없었다 하더라도 과학의 교권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과학 장르입니다. 책 표지에 "소설" 또는 "시집"이라고 밝혔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요. 이 책은 책 제목에 "문화심리학"이라는 단어까지 넣었죠.
깊은 학문적 성찰이라는 것이 제가 보기에도 과학이 아닌 문학인 것 같습니다.
글은 훌륭하게 잘 쓰는 분 같습니다만
책 제목은 소설같은데 저자가 심리학자라서 어떤 내용인지 너무 궁금해, 2,400엔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서 읽은 책이에요...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물 건너 왔구나 하며 기대하며 샀더랬는데..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가벼움의 정체가 비판하신 부분을 읽고 이해가 되었어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즘 기자가 소설을 쓰고 소설가가 시대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정말, 이 분도 학자가 아니고 소설가라고 해야 할 거 같아요..
마라톤의 중독성은 대개 Runner's high로 해석됩니다.
저는 매운 맛에 대한 중독성을 같은 차원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홀로사는 할머니가 홀로사는 할아버지보다 많은 이유 중의 하나가 나이차이라는 해석에 동의합니다.
얼핏 위험한 직종인 듯한 군인들이 아무 위험 없이 사는 일반 민간인보다 평균 수명이 길다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군인들은 대개 젊지요. 민간인 중에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문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과학은 맞는지요?
http://en.wikipedia.org/wiki/Cultural_psychology
<Handbook of Cultural Psychology>
Shinobu Kitayama(Editor), Dov Cohen(Editor)
나중에 이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백지론적 성향이 강한 학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