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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록(경전연구회) 녹취22
是儞屋裏家具子니라 三界不自道我是三界요
시이옥리가구자 삼계불자도아시삼계
還是道流의 目前靈靈地照燭萬般하야 酌度世界底人이
환시도류 목전영영지조촉만반 작탁세계저인
與三界安名하나니라
여삼계안명
삼계가 스스로 ‘내가 바로 이 삼계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눈앞에서 아주 분명하게 만물을 비추어 보고 세계를 가늠하는 그 사람이 삼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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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儞屋裏家具子니라 三界不自道我是三界요
시이옥리가구자 삼계불자도아시삼계
그대들 집에 있는 가구다. 무슨 책상과 농. 캐비넷. 컴퓨터. 등등 이런 가구다 이거야. 탐ㆍ진ㆍ치 삼독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 집안에서 내가 사용하고 가구다.“삼계불자도아시삼계(三界不自道我是三界)요”삼계가 언제‘내가 삼계다’라고 말하던가? 우리가 괜히 망상을 일으켜가지고 이름을 지어 놨을 뿐이지.
還是道流의 目前靈靈地照燭萬般하야 酌度世界底人이
환시도류 목전영영지조촉만반 작탁세계저인
또한 그대들의 눈앞에 영영(靈靈)한 것.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운‘조촉만반(照燭萬般)’만 가지를 환히 비쳐. 비 오면 빗소리 듣고, 바람불면 바람 부는 것 알고, 누가 사건 일으키면 또 환하게 알고, 추우면 추운 것, 더우면 더운 것‘영영지(靈靈地)’신령스럽고 신령스러워서 조촉만반(照燭萬般)이야. 만 가지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어. 그러잖아요. 뭐 남의 일까지도 다 안 놓치고 있지. 그리고“작탁세계저인(酌度世界底人)이”세계를 작탁(酌度) 해. 이건 짐작하고 헤아린다 이 말이야. 그렇게 하는 사람이
與三界安名하나니라
여삼계안명
삼계라고 이름 한다 이거야. 그렇게 하는 사람이 있어. 한 사람이 앉아가지고 온갖 것을 다 살피고, 느끼고 감지하는 그 사람이 삼계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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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무명은 없다
大德아 四大色身是無常이라 乃至脾胃肝膽과 髮毛爪齒도
대덕 사대색신시무상 내지비위간담 발모조치
唯見諸法空相이니 儞一念心歇得處를 喚作菩提樹요
유견제법공상 이일념심헐득처 환작보리수
儞一念心不能歇得處를 喚作無明樹니라 無明無住處요
이일념심부능헐득처 환작무명수 무명무주처
無明無始終이라 儞若念念心歇不得하면 便上他無明樹하야
무명무시종 이약염념심헐부득 편상타무명수
便入六道四生하야 披毛戴角이요
편입육도사생 피모대각
“큰스님들이시여! 사대로 되어있는 이 몸뚱이는 덧없는 것이다. 비장과 위와 간과 쓸개와 머리카락과 털과 손톱과 이빨마저도 오직 모든 것이 텅 비어있는 모양임을 보여줄 뿐이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쉰 곳을 보리수라하고, 한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하는 곳을 무명수라 한다. 무명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처음과 끝이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만약 순간순간의 마음을 쉬지 못한다면 곧 무명수 위에 올라가서 곧바로 사생육도(四生六道)에 들어가 털이 나고 뿔이 달리는 짐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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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德아 四大色身是無常이라 乃至脾胃肝膽과 髮毛爪齒도
대덕 사대색신시무상 내지비위간담 발모조치
대덕아 사대색신은 시무상이라. 내지비위간담과 발모조치도
唯見諸法空相이니 儞一念心歇得處를 喚作菩提樹요
유견제법공상 이일념심헐득처 환작보리수
유견제법공상이니 오직 제법공상으로 보나니, 제법공상이죠 뭐.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무안계내지무의식계(無眼界乃至無意識界), 우리가 맨 날 외우죠.“이일념심헐득처(儞一念心歇得處)를”그대들 한 생각 쉬는 그곳을 “환작보리수(喚作菩提樹)니라”무명수와 보리수! 보리수, 보리수 하니까 한 생각 쉰 그 자리가 보리수다.
儞一念心不能歇得處를 喚作無明樹니라 無明無住處요
이일념심부능헐득처 환작무명수 무명무주처
그대들 한 생각 쉬지 못한 그곳을 환작무명수(喚作無明樹)다.“무명무주처(無明無住處)요” 무명, 무명하지마는 무명은 머무는 곳이 없다 이거야.
無明無始終이라 儞若念念心歇不得하면 便上他無明樹하야
무명무시종 이약염념심헐부득 편상타무명수
또 무명은 시종도 없다 이거야. 우리가 번뇌 무명해가지고 그 번뇌 무명을 얼마나 부정합니까? 아, 무명이 발동했다고 하고 별별 온갖 책임을 전부 무명에다가 다 떠넘기는데“이약염념심헐부득(儞若念念心歇不得)하면”그대들이 염념의 마음을 쉬지 못할 것 같으면“편상타무명수(便上他無明樹)하야”곧 저 무명수에 올라가서
便入六道四生하야 披毛戴角이요
편입육도사생 피모대각
그러니까 한 생각 쉬지 못한 거기에서 바로 무명이 되고 그 무명은 육도사생으로 그냥 그때부터 돌아다니는 거야. 그래서 축생도 되는 거야.“피모대각(披毛戴角)이요”털을 뒤집어쓰기도 하고 뿔을 뒤집어쓰기도 해가지고 축생노릇을 한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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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若歇得하면 便是淸淨身界니라 儞一念不生하면
이약헐득 편시청정신계 이일념불생
便是上菩提樹라 三界神通變化하야 意生化身하야 法喜禪悅하며
편시상보리수 삼계신통변화 의생화신 법희선열
身光自照니 思衣羅綺千重이요 思食百味具足하야
신광자조 사의나기천중 사식백미구족
更無橫病이니라 菩提無住處라 是故無得者니라
갱무횡병 보리무주처 시고무득자
“그대들이 만약 쉬기만 하면 그대로가 곧 청정법신의 세계다. 그대들이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곧 보리수에 올라 삼계에서 신통변화 하여 마음대로 화신의 몸을 나타내리라. 그래서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法喜禪悅]으로 몸의 광명이 저절로 빛날 것이다. 옷을 생각하면 비단 옷이 천 겹으로 걸쳐지고, 밥을 생각하면 백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히 차려지며, 다시는 뜻밖의 병이나 가난으로 오는 병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보리는 어떤 주처가 없다. 그러므로 얻을 것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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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若歇得하면 便是淸淨身界니라 儞一念不生하면
이약헐득 편시청정신계 이일념불생
그대들이 그러다가 만약 쉬기만 하면“편시청정신계(便是淸淨身界)니라”그대로 그 자리에서 청정심계가 돼.“이일념불생(儞一念不生)하면” 그대들 한 생각 생하지 아니하면
便是上菩提樹라 三界神通變化하야 意生化身하야 法喜禪悅하며
편시상보리수 삼계신통변화 의생화신 법희선열
보리수에 올라가서 삼계신통변화 하여 삼계, 탐 진 치가 신통변화를 일으켜가지고서 화신의 뜻대로 나투어서 내가 변화하고 싶은 대로, 마음가는대로 몸을 나타내는 거야. 의생신이라고 하는 것. 이건 교리에서 말하는 의생신하고 약간 다르지마는 의생신. 의생천! 제가 언제 말씀드린 적이 있었죠? 그것도 우리가 한번 유심히 살펴볼 일입니다. 대개 우리가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 없고, 또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경전 상에서 온갖 몸들, 온갖 천상세계를 이야기 하는데 그건 전부 의생신이고 의생천이고 그래요. 그 사람의 의식으로 만든 몸. 그 사람의 의식으로 만든 천상세계 이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런 것을 우리가 부정할 수는 없고, 개인의 것이기도 하고, 그 의식의 수준이 고도로 발달된 사람은 만들어서 제 3자에게도 보일 수가 있어요. 그게 법화경에서는‘다보여래’라든지 또 무슨 대중들을 하늘로, 반공중으로 끌어 올려가지고 뭔가 현실에서 경험하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든지 하는 것. 이런 것을 의생신 또는 의생천이라는 것도 있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그런 이야기 할 개재는 아니고 여기서 의생화신이라고 하는 것은 뜻대로 화신을 나투어서 법희선열하며
身光自照니 思衣羅綺千重이요 思食百味具足하야
신광자조 사의나기천중 사식백미구족
“신광자조(身光自照)니”몸의 광명은 법신의 광명은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스스로 비추나니“사의나기천중(思衣羅綺千重)이요”옷을 생각하면 나기천중(羅綺千重)이요. 비단옷이 천 겹 만 겹으로 입혀지고, 밥을 생각하면“사식백미구족(思食百味具足)하야”온갖 맛있는 음식이 다 갖추어져.
更無橫病이니라 菩提無住處라 是故無得者니라
갱무횡병 보리무주처 시고무득자
못 먹어서 오는 병을‘횡병(橫病)’이라 그래요. 횡포한 병이라고 하는데 그런 병이 없나니라. “보리무주처(菩提無住處)라” 시고로 그런 까닭에‘주처(住處)’가 없기 때문에“시고무득자(是故無得者)니라” 얻는 자도 없다 이래요. 그 주처가 있는 곳이 있으면 거기에 가서 무엇을 얻어오거나, 뺏어오거나 해서 얻을 수가 있겠지마는 있는 곳이 없으니까 얻는 게 없어. 그걸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이 보리(菩提)라는 말은 우리가 “깨달음” “도”이렇게 표현하는데 결국 현재의“자기 자신”입니다. 현재 이 순간, 자기 자신의 모습이 예요. 그러니 어디 밖에서부터 얻을 곳은 없는 거죠. 그래서 “보리(菩提)는 무주처(無住處)라” “시고(是故)는 무득자(無得者)로다”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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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보고 듣는 이가 누구인가
道流야 大丈夫漢이 更疑箇什麽며 目前用處가 更是阿誰오
도류 대장부한 갱의개십마 목전용처 갱시옥수
把得便用하야 莫著名字를 號爲玄旨니 與麽見得하면
파득편용 막착명자 호위현지 여마견득
勿嫌底法이니라 古人云, 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實能幽라
물혐저법 고인운, 심수만경전 전처실능유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라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대장부가 또 무엇을 의심하는가? 눈앞에서 작용하는 이가 다시 또 누구인가” 잡히는 대로 쓰며 이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심오한 뜻이다. 이와 같이 볼 수 있다면 싫어할 것이 없는 도리이다. 옛사람이 말하기를‘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 흘러가지만 흘러가는 그 곳이 참으로 그윽하여라. 마음이 흘러가는 그 곳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니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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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流야 大丈夫漢이 更疑箇什麽며 目前用處가 更是阿誰오
도류 대장부한 갱의개십마 목전용처 갱시옥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대장부가 다시 무엇을 의심하는가? “목전용처(目前用處)가”눈앞에 작용하고 있는 그것이“갱시옥수(更是阿誰)오”누구냐? 지금 눈앞에서 작용하고 있는 그것. 그게 누구야 지금? 지금 보는 놈, 지금 듣는 놈, 뭘 움직이고 주머니에 손 넣어서 휴대폰 조물거리는 그놈, 도대체 누구야? 목전용처! 지금 바로 눈앞에서 작용하는 그놈, 뭘 작용하던지 상관없어요. 다 하고 있으니까! 안 하고는 못 베기는 게 또 사람이야. 그 나름대로 다 하고 있어요. 이게 살아있는 물건이라서 그래. 죽어 있으면 아무리 충동을 주어도 가만히 있지마는, 이 산 놈이야 잠들었다고 어디 죽은 줄 알아요? 잠 속에서도 온갖 활동 다 하잖아. 정말 생명력이라는 것 대단한 거야. 그래서 그게 누구냐 이거야?
把得便用하야 莫著名字를 號爲玄旨니 與麽見得하면
파득편용 막착명자 호위현지 여마견득
“파득편용(把得便用)하야” 그걸 쓰게 되면 써라 이거야.‘편용(便用)’잡아서 곧 쓰고, 이게 뭔 말이야? 저기서 삥삥하고 소리 나지요? 바로 들어라 이 말이야. 저런 소리 나거든 팍 듣고, 뭔가 쾅! 하거든 얼른 뛰쳐나가고. 그러지 않아도 다 할 줄 아는 것. 이게 파득편용(把得便用)이야. 잡아서 곧 쓴다 이거야. 그놈, 주인공이 나를 가만 두나 어디? 나를 다 조종하고 관리하잖아요? 그게 파득편용입니다.“막착명자(莫著名字)를”다른 그 외 부처니, 조사니, 보리니, 열반이니, 보살이니, 뭐니 뭐니 하는 그 화려한 수많은 명자를 집착하지 아니하면 “호위현지(號爲玄旨)니”막착명자(莫著名字), 명자(名字)에 집착하지 아니한 것을 이름하여‘현지(玄旨)’라 한다. 아주 깊은 도리라고 한다. 바로 그 자리에 있으니까! 자기가 자기 자리 지키는 것보다 더 깊은 도리는 없어. 호위현지라.“여마견득(與麽見得)하면”이렇게 우리가 이해한다면
勿嫌底法이니라 古人云, 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實能幽라
물혐저법 고인운, 심수만경전 전처실능유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
수류인득성 무희역무우
우리가 조금도 부정하거나 거부하거나 싫어할 법이 아니다. 고인이 말하기를“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이나 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라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무희열무우(無喜亦無憂)라하니라” 우리가 잘 아는 아주 좋은 게송이죠. 22조(祖) 마라나 존자하고 23조 학륵나 존자와의 관계에서 나온 이야기죠.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우리의 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서 굴러가! 지금 아주 얌전하게 임제록 공부를 잘하고 있지만 끝나고 나면 각자 자기 갈 길 잘 찾아서 갈 줄 아는 것.“전처실능유(轉處實能幽)라”그 마음이 굴러가는 그 곳마다 다 그윽하다.
실능유(實能幽)라! 그윽하다. 거기에 의미가 있다 그게 현지다 이 말이야. 앞에서 현지(玄旨)라고 그랬잖아. 바로 그 놈!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고, 보일 듯 보일 듯 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그러면서도 그 놈이 다 알아서 또 해! 실능유(實能幽)야. 뭘 어떻게 달리 표현할 것이 없어. 다 능히 그윽하다. 깊다! 유현, 선의 7대 정신 중에 유현이라고 그러죠. 손에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아니한 그것이 다 알아서 하고 있고“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라하니라”그러나 그 흐름을 따라서 본성은 “아, 이거구나!” 손에는 안 잡혀도 “바로 이거구나!”하고 딱 인식이 된다면 그건 뭐 학이 되었던, 뭐 학이 날아갔다고 그랬죠. 사람이 되었다고 기뻐할 것도, 학이 되었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이거야. 그러면 말도 될 수 있고, 소도 될 수가 있고...
그런 표현들 많잖아요. “조사스님은 죽어서 어디로 갔습니까?”아랫마을에 말이 될 수도 있고, 소도 될 수 있다고. “그러면 그 뜻이 뭡니까?” 아이, 타게 되면 타고, 몰고 가면 몰고 가고, 때리게 되면 때리고, 그것이 소나 말이 일상사다 이거야. 이렇게 되면 무슨 축생이라고 인간과 비교해서 축생이라고 하는 차별성이 전혀 없어.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야. 그런데 단 조건이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하면 우리가 무엇으로 흘러가든지 자기의 그 무위진인, 참 주인공, 거기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이것만 있으면 끝이다 이거야. 참, 이 임제록은요 아주 명쾌하고 간단명료하고 시종일관 종지가 한결같고 그렇습니다. 그 점이 참 명쾌한 어록이고, 만고에 더 덮을 수 없는 그런 “어록의 왕이다”라고 이야기해도 부족함이 없는 정말 그런 훌륭한 어록이죠. 그래서 나의 욕심 같아서는 스님들이 전부 임제록 법사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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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2 주인과 객이 서로 보다
道流야 如禪宗見解는 死活循然하니 參學之人이 大須子細어다
도류 여선종견해 사활순연 참학지인 대수자세
如主客相見할새 便有言論往來호대 或應物現形하며
여주객상견 편유언론왕래 혹응물현형
或全體作用하며 或把機權喜怒하며 或現半身하며
혹전체작용 혹파기권희노 혹현반신
或乘獅子하며 或乘象王이니라
혹승사자 혹승상왕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선종의 견해로는 삶과 죽음이 돌고 도는 것이니, 참선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자세히 살펴야 한다. 주인과 손님이 서로 만나면 곧 말을 주고받는데. 혹은 사람에게 맞추어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전체작용(全體作用)을 하기도 하며, 혹은 기연과 방편으로 기뻐하거나 성내기도 하며, 혹은 몸을 반쯤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혹은 사자를 타기도 하고, 혹은 코끼리를 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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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대인관계에 있어서 조실이나 또는 법을 펴는 사람으로서 대인의 경우를 여기다 좀 소개를 했어요. 그냥 참고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道流야 如禪宗見解는 死活循然하니 參學之人이 大須子細어다
도류 여선종견해 사활순연 참학지인 대수자세
선종의 견해는 사활(死活), 사(死)는 부정하는 것이고 활(活)은 긍정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요. 그러니까 사(死)는 공의 입장이라면 활(活)은 유의 입장이고 늘 그게 상관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어느 하나로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놓고“참학지인(參學之人)이”공부하는 사람이 “대수자세(大須子細_어다”크게 모름지기 자세히 살펴야한다. 사람을 대하는데 예를 들어서 제자를 제접하던지, 아니면 신도를 제접하던지 간에 이런 예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如主客相見할새 便有言論往來호대 或應物現形하며
여주객상견 편유언론왕래 혹응물현형
예컨대 주객이 서로 볼 때“편유언론왕래(便有言論往來)호대”곧 말이 오고 가죠. “스님, 계십니까?”이렇게 묻는다고 합시다.“ 혹응물현형(或應物現形)하며”사물에 의해서 형상을 나타내. 그대로 사람이 오는데 따라서 시자를 보내기도 하고, 자기가 나가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시키기도 하고 그렇게 하는 거야.
或全體作用하며 或把機權喜怒하며 或現半身하며
혹전체작용 혹파기권희노 혹현반신
또 혹전체작용(或全體作用)”바로 자기가 나가서 자기 모습그대로 보이는 전체작용의 경우도 있고,“혹파기권희노(或把機權喜怒)하며”‘기권(機權)’이라고 하는 것은 방편을 잡아서‘희노(喜怒)’기쁨도 보이고 성냄도 보인다 이거야. 건드려본다 이거지. 상대를 건드려본다 이런 뜻입니다.“혹현반신(或現半身)하며”자기의 모습을 반만 보이는 거야. 다 보이지 않고 몸이나 마음을 보이던지 간에 다 나타내지 않고 조금만 보이는 거야. 자기의 모습을! 그렇죠. 우리가 아주 생 낮선 사람이 와서 물으면, 예를 들어 주지 스님을 찾으면 본인이 주지인데 “주지 스님 계십니까?”하면 “주지 스님, 글쎄요! 좀 전에 보였는데요.” 이렇게 하는 거야. 이게 혹현반신(或現半身), 반만 보이는 거야. 그런 예들이 많죠. 저 사람이 무슨 차비를 얻으러 왔는가? 그러면 주지스님은 어디 나갔다고 할 수도 있고. 허허허~ 선지식에게 도를 물으러 오는 사람에게도 그 수단은 똑 같습니다. 사람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상황을 봐서 대처하는 거죠. 그런 것을 구체적인 예는 아니면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或乘獅子하며 或乘象王이니라
혹승사자 혹승상왕
혹은‘사자(獅子)’를 탄다. 문수의 경지를 보인다 이거죠. 가릴 사(獅)라고도 하고. 문수의 경지를 보이기도 하고,“혹승상왕(或乘象王)이니라”보현의 경지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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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有眞正學人이 便喝하야 先拈出一箇膠盆子하면
여유진정학인 편할 선염출일개교분자
善知識이 不辨是境하고 便上他境上하야 作模作樣하면
선지식 불변시경 편상타경상 작모작양
學人便喝에 前人不肯放하나니 此是膏盲之病이라
학인편할 전인불긍방 차시고맹지병
不堪醫니 喚作客看主니라
불감의 환작객간주
“만약 진정한 학인이 있어서 대뜸‘할’을 하여 아교풀을 담은 단지를 하나 내놓으면 선지식은 그것이 경계[미끼]인 줄 모르고 곧 그 경계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지어 낸다. 이것을 본 학인이 다시‘할’을 하여도 앞의 선지식은 이를 놓아버리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사도 고칠 수 없는 불치[膏盲]의 병이다. 이런 경우를‘객이 주인을 본다[看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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如有眞正學人이 便喝하야 先拈出一箇膠盆子하면
여유진정학인 편할 선염출일개교분자
만약에 진정학인, 눈 밝은 사람입니다. 눈 밝은 사람이 곧‘할’을 해서“선염출일개교분자(先拈出一箇膠盆子)하면”먼저 한 개의 아교단지를 떡 내놓는다 이거야.‘할!’을 딱 하는 거야. 그러면‘할’에 떨어지거든요. 그래 “뭐 하러 왔소?” 이렇게 말한다 이거야. 그러면 그 말에 그만 속아가지고 “아이구! 뭐 사람 말이야 뭐 하러 왔는지, 덕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덮어놓고 뭐 하러 왔다니!”아교단지라는 말은, 무슨 말을 던졌던지 간에 거기에 딱 달라붙어서는 말을 따라 가는 거야. 그래갖고 그만 화를 뭣같이 내는 거야. 그렇게 하면 여유 있고 노련한 사람은 “저 친구가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나?”하고 속으로는 그런 여유가 있는 거야. 그런데 그런 여유가 없이 화를 내면 그만 화내는데 덩달아서 같이 화를 내는 거지.“아이, 사람이 뭐 하러 왔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화부터 내느냐고?”그냥 같이 그렇게 따라가는 것을‘아교단지’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善知識이 不辨是境하고 便上他境上하야 作模作樣하면
선지식 불변시경 편상타경상 작모작양
선지식이 그 경계를 가려내지 못하고 바로 그 경계에 의지해서 모양을 지을 것 같으면
學人便喝에 前人不肯放하나니 此是膏盲之病이라
학인편할 전인불긍방 차시고맹지병
학인이 곧‘할’을 하며, 앞에 있는 사람이‘할’을 놓지 않고, 뭐 똥개가 똥 덩어리를 물고 그냥 늘어지듯이 그렇게 하나니“차시고맹지병(此是膏盲之病)이라”이것은 참으로 고칠 수 없는 몸속에 깊이 박힌 병과 같은 것이다.
不堪醫니 喚作客看主니라
불감의 환작객간주
능히 치료할 수가 없으니“환작객간주(喚作客看主)니라”이것은 뭐라고 부르는고 하니‘객이 주인을 간파한다’ 다시 말해서 학인(객)은 눈이 밝고 안에 앉아있는 선지식, 주인. 주지라고 할까? 주인은 눈이 어두운 경우다.‘객간주(客看主)' 객이 주인을 간파하는 경우다. 그게 한 가지 예고, 저 앞에서 전체적으로 여섯 번 들었어요. ①. 혹은물현형(或應物現形) ②. 혹전체작용(或全體作用) ③. 혹파기권희노(或把機權喜怒) ④. 혹현반신(或現半身) ⑤. 혹승사자(或乘獅子) ⑥. 혹승상왕(或乘象王) 그 다음에 두 번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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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是善知識이 不拈出物하고 隨學人問處하야 卽奪이라
혹시선지식 불염출물 수학인문처 즉탈
學人被奪에 抵死不放하나니 此是主看客이니라
학인피탈 저사불방 차시주간객
“혹은 또 다른 경우는, 선지식이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학인이 물으면 묻는 대로 곧 빼앗아 버린다. 학인이 빼앗기고는 한사코 놓아버리려 하지 않으면 이것을‘주인이 객을 간파한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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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是善知識이 不拈出物하고 隨學人問處하야 卽奪이라
혹시선지식 불염출물 수학인문처 즉탈
혹시 선지식이 있어가지고서 어떤 사물을 내놓지 않고, 학인이 어떻게 물어오는가에 따라서 그 묻는 것을 부정해버리는 거야.‘즉탈(卽奪)’곧 빼앗는다고 하는 말은 부정한다 이 말이야. 그럴 것 같으면
學人被奪에 抵死不放하나니 此是主看客이니라
학인피탈 저사불방 차시주간객
빼앗김을 입어가지고서 안 놓치려고, 안 놓치려고! 자기를 부정하니까, 안 놓치려고 안 놓치려고 기어이 그냥 죽자 사자 붙들고 늘어지나니 이것은 주인이 객을 간파하는 경우다. 이런 선지식은 눈이 밝고, 학인은 눈이 어두운 경우다 이런 이야기죠. 또 세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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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 삿되고 바른 것을 알라
或有學人이 應一箇淸淨境하야 出善知識前이어든
혹유학인 응일개청정경 출선지식전
善知識이 辨得是境하고 把得抛向坑裏하면
선지식 변득시경 파득포향갱리
學人言, 大好善知識이로다 卽云, 咄哉라 不識好惡로다
학인언, 대호선지식 즉운, 돌재 불식호오
學人便禮拜하나니 此喚作主看主니라
학인편예배 차환작주간주
“혹 어떤 학인이 일개 청정한 경계를 선지식 앞에 내놓으면 선지식이 그것이 경계인 줄을 알아차리고 집어다가 구덩이 속에 던져버린다. 그래서 학인이‘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이십니다’라고 한다. 그러면 학인이 절을 하는데 이것을 ‘주인이 주인을 간파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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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有學人이 應一箇淸淨境하야 出善知識前이어든
혹유학인 응일개청정경 출선지식전
혹 어떤 학인이 하나의 청정경계에 응해가지고서“출선지식전(出善知識前)이어든”청정경이라고 하는 것은 이건 아주‘할’이나 이런 것 보다는 아주 뭐라고 할까? 불보살의 경지 같은 훌륭한 경지, 거기에 맞추어가지고서 선지식 앞에다 떡 “관세음보살이 어떻고...” 뭐 이렇게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善知識이 辨得是境하고 把得抛向坑裏하면
선지식 변득시경 파득포향갱리
그 이야기를 다 알아 듣고 분별한다 이거야. 그리고는“파득포향갱리(把得抛向坑裏)하면”구덩이 속에다가 그 사람의 말을 뭐 관세음보살이 어떻다. 저떻다 해도 그것을 다 부정해. 던져버린다 이 말이야. 그런 관세음보살의 경지를 이야기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선지식은 그걸 부정하고 그것 싹~다(모두~다) “아, 그까짓 것 그것 별것 아니야!” 하고 다 집어 던져버린다. 구덩이 속으로! 그러면
學人言, 大好善知識이로다 卽云, 咄哉라 不識好惡로다
학인언, 대호선지식 즉운, 돌재 불식호오
학인이 말하기를 “대호선지식(大好善知識)이로다” 야! 굉장한 선지식이다. 관세음보살 같은 그런 경지를 저렇게 부정해버리니까 “대호선지식이다”이렇게 표현한다는 거지. 그렇게 할 것 같으면 선지식이 있다가 말하기를 “아이고, 참 네가 어떻게 하는지 떠 보려고 그렇게 했지. 안 됐다! 좋고 나쁜 것도 몰라보는구나! 내 말을 못 알아듣고, 내가 공갈치는 소리도 못 알아듣고 저렇게 훌륭한 선지식이라고 그렇게 하니 참 그만 하구만!” 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거야.
學人便禮拜하나니 此喚作主看主니라
학인편예배 차환작주간주
그래 학인이 곧 예배한다. “아이구! 내가 걸려들었구나!”하니“차환작주간주(此喚作主看主)니라”이것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거야. 주인이 주인을 간파하는 경우다. 이렇게 했는데 뭐라고 할까? 어찌 보면 둘 다 제대로 된 상황이 아니죠. 그러나 표현을‘주간주(主看主)’라고 이렇게 했습니다. 주인이 주인을 간파하는 그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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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有學人이 披枷帶鎖하야 出善知識前하면
혹유학인 피가대쇄 출선지식전
善知識이 更與安一重枷鎖라 學人歡喜하야
선지식 갱여안일중가쇄 학인환희
彼此不辨하나니 呼爲客看客이니라
피차불변 호위객간객
大德아 山僧如是所擧는 皆是辨魔揀異하야 知其邪正이니라
대덕 산승여시소거 개시변마간이 지기사정
“혹 또 어떤 학인이 목에 칼을 쓰고 발에 족쇄를 찬 채 선지식 앞에 나타나면, 선지식이 그 위에다 다시 칼과 족쇄를 한 겹 더 씌워버리는데도 학인이 기뻐하여 피차가 서로 분간하지 못하면, 이것을‘객이 객을 간파한다.’고 한다.
큰스님들이시여, 산승이 이와 같이 예를 든 것은 모두가 마군과 이단을 가려내서 삿된 것과 바른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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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有學人이 披枷帶鎖하야 出善知識前하면
혹유학인 피가대쇄 출선지식전
혹 어떤 학인이, 네 번째입니다.“피가대쇄(披枷帶鎖)하야”수갑이 채워지고 고랑을 차서 선지식 앞에 떡 나왔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저기에 그냥 온갖 그런 상식과 지식과 견해에 속박되어 얽혀있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수갑이 채워지고 고랑이 채워졌다. 그래서 선지식 앞에 떡 나타났다 이 말이야.
善知識이 更與安一重枷鎖라 學人歡喜하야
선지식 갱여안일중가쇄 학인환희
그러면 선지식이“갱여안일중가쇄(更與安一重枷鎖)라”거기에다가 다시 한번 더 씌우는 거야. 더 근사한 이야기를 하고 무슨 아미타불이 어쩌느니 하고 또 좋은 법도를 가지고 그 사람에게 짐을 한 번 더 씌워주는 거라. 그러면 학인이 환희해서 “아이구! 그런 세계도 있습니까? 그런 세계도 있습니까?”하고... 예전에 부산에서 정우거사라는 분이 사경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신통이 생겼어. 그래서 병을 잘 고쳐. 자기도 병 고치는 능력이 있는지도 몰랐어. 자기 집으로 가는데 이웃집 노인이 쓰러졌는데 잠깐 동안 만져주었는데 그만 거뜬한 거야. 그 소문을 듣고는 모두들“나도 그 사람한테 가서 한번 만져야겠다.”고 해서 그렇게 오는 사람들을 만져주니까 금방 낫고, 금방 낫고 해서 나중에는 막 수천 명씩 오고 그랬어요.
그래 5천명이 자기 집에 왔을 때 제가 가 봤어요. 가끔 제가 한 번씩 가보는 거야. 가면 인산인해(人山人海)야. 그래서 구덕운동장에서 병 치료하는 행사를 했어요. 자기 집에서 도저히 다 못해가지고서 그게 TV에도 나오고, 신문에도 나오고 그랬습니다. 내가 그분에게 대장경을 소개를 했어요.“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제가 소개를 해 주었어요. 장경 소개해줬다고 항상 제 은혜라고! 뭐 소개해 준 게 무슨 은혜야! 내~~ 제 은혜라고 하면서 지금도 하루에 전화가 몇 통씩 오고 그래요. 전화 스무 통 쯤 오면 한번 받고, 스무 통 쯤 오면 한번 받고, 나는 그러지. 허허허~ 요즈음은 서울에서 살아요. 서울에 살면서 치료는 그렇게 안 하는데...
사경은 우리가 보면 외도 짓이고 사도인데 어쨌든 그런 영험이 있더라고요. 내가 직접 눈으로 봤어. 거기에 가면 KBS에서 찍은 것 전부 다 올려져 있다고요. 그런데 그분이 나보고 자기 식으로 공부 안 한다고 계속 자기 공부한 걸 가지고 나한테 일러주고 그래요. “스님! 왜 이런 공부 안하냐고? 아미타경에 보니까 뭐 이 지구의 몇 천배, 몇 만 배의 그런 세계를 설명해 놨는데 이걸 아느냐고? ” 끊임없이 자기 공부한 걸 이야기 해 오는 거야. 계속 가쇄를 더 씌우는 거야 나한테다가! 그래 나는 계속 벗어버리지. 벗어버리고, 벗어버리고 듣지도 않고... 허허허~ 여기는“갱여안일중가쇄(更與安一重枷鎖)”다시 더 또 다른 무거운 쇠고랑을 채운다 이 말이야.
신도들에게 좋은 이야기 많이 들어가지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 해서 아침에 신행 상담하는 라디오 들어보면 자기 집에서 하는데 수 십 가지가 되는 거야. 관세음보살 몇 번 외우고, 절 몇 번하고, 천수경 얼마 외우고, 다라니 몇 번 하고 그 다음에 뭐 외우고, 뭐 외우고 좋다는 것 여러 사람이 소개해 준거니까 그것 다 하는 거야. 이것이 그 이야기라! 하하하하~ 첩첩이 짐을 갖다 쌓고 쇠고랑을 채우고, 목에다 고랑을 채우고, 발에다 고랑을 채우고, 막 그냥 온갖 좋은 금에다가 다이아몬드를 박은 그런 오랏줄을 가지고 참 그 오랏줄은 좋지. 순금에다가 다이아몬드를 박아가지고서 오랏줄을 만들었으니까. 그래도 그것은 사람을 묶는 오랏줄이라고 하는 사실, 임제록은 그거예요.
금에다가 다이아몬드를 박은 오랏줄을 만들었어도 그건 사람을 묶은 오랏줄이지. 오랏줄뿐이라고! 자유만 못하지. 금에 묶여있으면 뭐가 좋아요? 발가벗어도 아무것도 안 묶인 자유가 좋지. 바로 그런 점입니다. 이 임제록이 위대한 것은 그거예요.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대자유” “활발발한 그 본성의 자유”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본 모습이며 참 생명이고 이것을 깨우쳐주고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좋은 것에 많이 구속되어 있어요. 좋은 곳에 구속이 많이 되어 있어. 그게 뭐야? “갱여안일중가쇄(更與安一重枷鎖)라”다시 더 한 겹의 쇠고랑을 더 얹어 놓는다 이거야. “학인환희(學人歡喜)하야”학인이 기분 좋아하는 거야.
彼此不辨하나니 呼爲客看客이니라
피차불변 호위객간객
학인환희해서“피차불변(彼此不辨)하나니”서로서로 분별해내지 못해. 가르쳐주는 사람도 쇠고랑을 채우는 것인지, 또 자기도 쇠고랑을 더 차는 것인지 분별을 못해. 그것을“호위객간객(呼爲客看客)이니라”객이 객을 간파하는 것이다.“객간객(客看客), 주간주(主看主)”내가 이렇게 해석을 해 놓고도 사실은 좀 시원치는 않아요. 이게 간파하는 것이다. 저 앞에서의 두 경우는 간파한다고 하면 되었는데, 뒤의 두 경우는 간파한다고 하면 좀 재미가 없는 해석이라. 이것 누가 해석을 좀 잘 해봐요.“호위객간객(呼爲客看客)이니라”뜻은 제가 해석을 다 했으니까!
大德아 山僧如是所擧는 皆是辨魔揀異하야 知其邪正이니라
대덕 산승여시소거 개시변마간이 지기사정
산승이 이와 같이 든 것은“개시변마간이(皆是辨魔揀異)하야”말을 가려내고, 또 진실이 아닌 것. 진실과 다른 것을 가려내가지고서 사(邪)와 정(正)을 알게 하는 것이다. 지기사정(知其邪正), 사와 정을 알게 하는 것이니라.
첫댓글 _()()()_
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實能幽라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一輪月님,고맙습니다._()()()_
그렇습니다,,, 우리는 '좋은 것'에 아주 많이 '구속되어' 있습니다!
菩提無住處 是故無得者_()()()_
인륜월님 오래만에 보니 더 반갑 습니다. 님은 복받을겨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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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菩提)무주처(無住處),시고(是故)무득자(無得者)/“대자유” “활발발한 그 본성의 자유”. 항시 감사드립니다. 공부 잘하고 갑니다._()()()_
心隨萬境轉이나 轉處實能幽라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마음은 만 가지 경계를 따라 흘러가지만 흘러가는 그 곳이 참으로 그윽하여라. 마음이 흘러가는 그 곳을 따라 성품을 깨달으니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一輪月님! 수고하셨습니다.._()()()_
감사 합니다._()()()_
隨流認得性하면 無喜亦無憂라하니라... 一輪月님!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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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亦無憂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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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