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및 작성) 크메르의 세계
캄보디아 국립경찰과 혹 룬디 전 경찰청장
The National Police of Cambodia
본 기사는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관련 내용을 완역한 후 "크메르의 세계"가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증보한 것이다. 글쓰기의 기술적 문제로 논문 수준의 자료근거를 첨부하진 않았지만, 모든 정보들은 일정한 근거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것임. |
사 켕(Sar Kheng) 내무부장관(좌측)이 넷 사워은(Neth Savoeun) 현 경찰청장(우측)의 중장 진급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08년 11월 23일에 <꺼 스떼피업 신문>(Koh Santepheap newspaper)의 분낙(Bunnak)이 촬영한 것이다. 2008년 11월 9일 혹 룬디 전 경찰청장이 헬기사고로 사망하자, 넷 사워은 장군은 경찰 총수에 취임하면서 대장으로 승진했다. |
● 개 요
(사진) 캄보디아 국립경찰 로고
캄보디아의 사법권은 캄보디아 국립 경찰이 관할하고 있다. 총 64,000명의 인원에 6개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캄보디아 국립 경찰은 내무부의 산하조직이지만, 훈 센 총리의 보위조직 성격이 강해 경찰청장의 위상이 경우에 따라서는 내무부장관을 능가하는 경우도 존재했고(특히 연립정부 하의 공동 내무부장관 임명 시절), 거의 독립된 조직으로 운영된다. 훈 센 총리의 최충복 중 한 사람이었던 전임 경찰청장 혹 룬디(Hok Lundy) 장군이 2008년 11월 헬기 사고로 사망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고, 어떤 면에서는 내무부 장관보다 정치적으로 우위에 서는 경우조차 있었다. 이후 경찰청장은 훈 센 총리의 조카사위인 넷 사워은(Neth Savoeun) 장군으로 교체됐다. 그는 훈 센 총리의 형인 훈 넹[Hun Neng] 껌뽕 짜암 도지사의 사위이며, "캄보디아 인민당"(CPP) 상임위원회(총 36인) 위원으로 당서열 36위에 올라 있다.
1. 조직과 기능
국립 경찰은 다음과 같은 6개 국으로 나눠진다.
(1) 보안(security): 정보업무를 담당할 것으로 추정됨
(2) 교통운송(transport): 라오 몽 하이 박사가 "경제경찰"이라 부른 부서로 보이는데, 일부 세관
업무와도 중복되며, 교통경찰의 기능도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됨.
(3) 공공질서(public order): 시위나 폭동진압을 담당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라오 몽 하이 박사가
경찰청장 직속의 "특수분과"라고 표현한 부서로 추정됨.
(4) 국경(border): 라오 몽 하이 박사는 "이민국 경찰"과 "국경경찰"이란 2개의 부서를 거론했는데,
실제 관찰해보면 "이민국경찰"(Immigration police)과 "관광경찰"(Tourist Police)이
존재함이 발견된다. 아마도 이 2종의 경찰이 국경경찰국이라는 더 상위의 조직에
포함될 것으로 추정됨.
(5) 행정(administrative): 일상적인 법과 질서의 유지업무. 각 마을 단위의 파출소들에서 주민 동향을
파악하고 문서로 만들어 보고하는 역할도 겸함. 공산체제 관행의 연속임.
(6) 사법(judicial): 범죄수사를 담당. 용의자를 체포, 구금, 조사 및 심문 후 초기 수사보고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함. 세무서나 어업부, 산림청 등에도 이들이 파견되어 근무함.
(사진) 관광경찰의 로고
사법경찰의 경우 형식적으로는 "대법원 검찰부"(prosecutor-general's office)의 관할 하에 있지만, 실제로는 경찰청장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 이는 캄보디아 검찰이 사법경찰부의 통제권을 갖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2. 국립 경찰의 문제와 비판
2.1. 마약거래 개입문제
캄보디아 국립 경찰은 부정과 부패로 악명이 높다. 2005년에 캄보디아 "사회발전센터"(CSD)가 수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공조직의 부패도에 대해 캄보디아인들은 사법기관, 세관 및 세무당국에 이어 3번째로 경찰을 꼽았다.(크메르의 세계 주석: Center for Social Development, Corruption and Cambodian Households, Phnom Penh 2005, p.45, p.48.) 캄보디아 국립 경찰이 마약거래, 납치 및 인신매매, 그리고 부정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미국 중앙정보부(CIA)의 2009년 보고>에도 경찰의 메스암페타민(=아이스, 히로뽕) 거래 개입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일선으로 갈수록 심각한데, 캄보디아 경찰공무원의 봉급은 월평균 미화 20달러 정도에 머물고 있어 구조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마약거래 조사기관들과 이에 관련된 여타 경찰들 사이에 공개적 싸움이 발생한 사건도 수차례 문서로 남아 있다.
2.2. 비 판
캄보디아 경찰은 용의자를 수사하고 증거수집 활동을 함에 있어서 그다지 절차를 준수하지 않는다. 또한 난폭성과 뇌물수수로도 악명이 높다. 2005년 6월의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보고에 따르면, 경찰 구치소에서 고문은 보편적인 것이라 한다. 또한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지역 경찰들이 외국인 관광객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와, 미성년자와의 성관계 범죄에 관해서는 매우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고 있다. 이는 국제사회와 NGO들의 압력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뇌물의 금액이 크기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범죄에 대한 벌칙이 징역 7년 이상 등 상당히 중하게 적용되는데, 최근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체포된 전직 미국인 경찰관 노인이 캄보디아 경찰관의 총을 훔쳐 구치소 안에서 자살하기도 했다.
● 혹 룬디 전 경찰청장 : 죽어서도 훈센과 함께 부귀영화를
1. 인물개요
(좌측사진: 크메르의 세계 추가) 혹 룬디 전 경찰청장이 한국인들이 희생됐던 껌뽀웃의 PMT 여객기 추락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프놈펜으로 귀환하고 있다. 2008-6-26. 훈 센 총리의 최측근 중 한 명이었던 그는 2008년 11월 헬기추락사고로 사망했다. 바로 뒤에 보이는 헬기가 추락한 그의 전용헬기이다. [사진출처] 크메르어 언론 Ka-set.
캄보디아 국립 경찰을 설명함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전 경찰청장 혹 룬디(Hok Lundy: 1957–2008.11.9) 장군이다. 1994년부터 2008년 11월 9일 헬기 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그는 캄보디아 국립 경찰의 총수이자 훈 센 총리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이전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 시절에는 스와이 리엉(Svay Rieng) 도지사를 지냈다. 지난 몇년 간 인권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여러 일원들은 훈 센 총리로 하여금 그를 제거토록 수많은 조용한 압력들을 보냈지만, 훈 센 총리는 꿋꿋하게 그를 자리에 앉혀두었었다. 라오 몽 하이 박사와 같은 캄보디아 인권운동가는 그의 사망이 캄보디아 경찰 개혁의 계기가 되길 희망했을 정도이니,(UPI 2009-11-19 참조) 그와 캄보디아 경찰의 역학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짐작해볼 수 있다. "캄보디아인민당"(CPP) 상임위원회(총 36인) 위원으로서 당서열 20위였던 그의 서열은 그대로 비워져 있다.
(사진) 2009년 1월 9일 거행된 훈 센 총리의 장녀 훈 마나(우측 신부)와 사망한 혹 룬디 장군의 장남 디 위찌어 쩨뜨라(좌측 신랑)의 결혼식 모습. [껌뿌지어 트머이 신문(Kampuchea Thmey newspaper)]
훈 센 총리와 그는 1979년 베트남에서부터 인연을 맺었고, 1997년 쿱테타 때는 훈 센 총리측 병력 일부를 지휘하기도 했다. 훈 센 총리는 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훈 센 총리는 2009년 1월 9일에 혹 룬디 장군의 장남 디 위찌어 쩨뜨라(Du Vichea Chetra)와 자신의 장녀인 훈 마나(훈 마네, Hun Mana: 바이욘TV 대표이사, 1980년생으로 추정됨)를 결혼시킴으로써, 그 가문에 대해 사후에도 여전한 애정을 표시했다. 이 결혼식이 훈 마나로서는 재혼이었는데,(주i) 이미 몇년 전에 훈 마나의 남동생이자 훈 센 총리의 2남인 훈 마닛(Hun Manit)이 혹 룬디 장군의 딸인 혹 찐다위(Hok Chindavy)와 결혼한 상태이기 때문에, 혹 룬디 가문은 훈 센 총리 가문과 겹사돈을 맺은 집안이 되었다. 혹 룬디는 슬하에 3남 2녀를 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i) 훈 마나는 1999년 3월에 모응 삼판(Moeung Samphan: 육군 대장, 현 국방부차관)의 아들인 모응 꼼피어(Moeung Kompheak)와 결혼했던 전력이 있다. |
2. 행 적
1997년 쿱테타 직후 푼신펙당(FUNCINFEC)은 혹 룬디가 제1총리였던 노로돔 라나릿(Norodom Ranariddh) 왕자를 암살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혹 룬디는 도리어 푼신펙이 훈 센 총리 및 사 켕(Sar Kheng) 장관, 그리고 자신을 암살하려했다고 맞고소했다.
2006년 2월, 혹 룬디는 마약거래 및 인신매매에 연루된 혐의로 미국 입국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6년 3월에 "미연방 수사국"(FBI)은 테러와의 전쟁에 기여한 공로로 그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그 후 2007년에 그는 미국 비자를 발급받고 미국에서 개최된 대테러 대책회의에 참석했다.
한편 전직 프놈펜 지방경찰청장이었던 헹 뽀우(Heng Pov)는, 혹 룬디가 캄보디아의 지도급 인사들을 포함해 70명 이상을 살해한 사건들에 연루됐다고 고발했다. 이에 대해 혹 룬디는 1명의 법관을 포함해 여타 살인사건들에 가담한 혐의로 헹 뽀우를 맞고소했다.
(우측사진은 로이터통신이 촬영한 혹 룬디 장군의 모습이다.)
"휴먼라이트워치"(Human Rights Watch)는 혹 룬디야말로 "캄보디아가 보여줄 수 있는 절대적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묘사하고, "그의 상관인 훈 센 총리를 제외하고는, 캄보디아 내에서 이만큼 법치주의를 무시할 수 있는 인물은 없을 것"이라 논평했다.
2008년 11월 9일, 혹 룬디 장군이 탑승한 전용헬기가 추락하여 속 사 음(Sok Sa Em) 장군, 기장과 부기장을 포함해 총 4인이 사망했다.
혹 룬디 장군의 장례식에서 촬영된 혹 룬디 가문의 유족들.
캄보디아 데일리(Cambodia Daily) 2008-11-11. |
혹 룬디 장군 장례의 조문객들이 타고 온 차량들이 자택 근처에 가득 주차해 있다. <꺼 스떼피업 신문>(Koh Santepheap newspaper)의 분낙(Bunnak)이 촬영한 것이다. |
혹 룬디 장군의 헬기가 스와이 리엉의 바웻(Bavet) 근처에서 추락했다. 사고를 수습 중인 모습. 사진은 <꺼 스떼피업 신문>(Koh Santepheap newspap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