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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번호 |
제 목 |
발표년도 |
공간 배경 |
주 인 공 |
주 제 |
창작의도 |
작품분량 | ||
이름 |
성별 |
연령 | |||||||
1 |
나의 어머니 |
1929 |
가정 |
나 |
여 |
20대 초 |
여권의식 |
부모의 기대와 여성 활동의 갈등 |
11쪽 |
2 |
꺼래이 |
1934 |
대륙 가정 |
순이 |
여 |
20대 초 |
망국유랑민 |
30년대 망국 유랑민의 애환 |
25 |
3 |
복선이 |
1934 |
가정 |
복선이 |
여 |
20대 초 |
여자의 일생 |
남편에게 달린 여자의 행복 |
6 |
4 |
채색교 |
1934 |
가정 |
천돌이 |
남 |
20대 초 |
결혼의 조건 사랑과 운명 |
빈곤 속에서도 고운 사랑을 가꾸는 기층민의 모습 |
23 |
5 |
적빈 |
1934 |
농촌 가정 |
매촌댁 |
여 |
늙은이 |
가난을 인내하는 여성상 |
30년대 극궁핍한 농촌 |
17 |
6 |
낙오 |
1934 |
가정 |
정희 |
여 |
20대 초 |
여권 의식 |
30년대 여성 지식인의 갈등과 고민 |
12 |
7 |
악부자 |
1935 |
농촌 가정 |
경춘이 |
남 |
30대 초 |
가난과 부부애 |
30년대 농촌의 궁핍한 농업노동자 |
21 |
8 |
정현수 |
1935 |
소읍 가정 |
정현수 |
남 |
20대 |
지식인의 자기신념 |
30년대 중산 지식인의 자기중심적 사고 |
21 |
9 |
의혹의 흑모 |
1935 |
도시 가정 |
연순 |
여 |
20대 초 |
유학생활 |
부유한 동경유학생들의 일상 |
20 |
10 |
학사 |
1936 |
소읍 가정 |
이병환 |
남 |
20대 후 |
학벌 우월 의식과 현실의 차이 |
식민지 지식인의 허장허세 |
17 |
11 |
호도 |
1936 |
가정 |
옥남이 |
여 |
20대 후 |
가난과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여성 |
남성에 앍매인 단조로운 여자의 일생 |
11 |
12 |
정조원 |
1936 |
소읍 가정 |
경순 |
여 |
20대 초 |
결혼 조건인 정조의 순결 |
순결에만 과도집착하는 결혼관 극복
|
20 |
13 |
어느 전원의 풍경 -법률 |
1936 |
가정 |
김상렬 |
남 |
40대 |
가부장제 속 여성의 고통과 수난 |
이혼과 부채를 통해 본 법률의 교묘성 |
14 |
14 |
광인수기 |
1938 |
가정 |
나 |
여 |
30대 후 |
가부장제와 고부 갈등 |
순종형 아내와 며느리의 고통 |
25 |
15 |
소독부 小毒婦 |
1938 |
가정 |
색시 |
여 |
10대 중 |
맹목적 사랑의 결과 |
사랑 없는 결혼생활의 비극성 |
18 |
16 |
일여인 |
1938 |
소읍 가정 |
여인 |
여 |
30대 초 |
망한 집 마님의 허세와 허영 |
지방 상류층 부인들의 서양식 생활 |
13 |
17 |
혼명에서 |
1939 |
가정 |
나 |
여 |
30대 초 |
창작욕과 현실의 갈등 |
험난한 환경과 여성의 자아 성취의식 |
34 |
18 |
아름다운 노을 |
1939 |
가정 |
순희 |
여 |
30대 초 |
현실과 감각적 사랑의 갈등 |
나이를 초월한 예술적 미의식의 사랑 |
51 |
19 |
상금 삼 원야 |
1935 |
농촌 |
정첨지 |
남 |
40대 중 |
빈자를 이용하는 지주의 간계 |
지주의 농간과 농업 노동자의 빈곤 |
4 |
20 |
가지 말게 |
1937 |
농촌 가정 |
순삼이 |
남 |
30대 중 |
만주 유랑가기 직전의 농촌마을 모습 |
궁핍하나 서로 위로하는 농촌 인심 |
4 |
21 |
멀리 간 동무 |
1935 |
농촌 가정 |
응칠이 |
남 |
10대 초 |
농촌 가정의 궁핍과 만주 유랑 |
궁핍해서 만주로 유랑 가지만 배움의 뜻을 꺾지 않는 소년 |
7 |
22 |
푸른 하늘 |
1935 |
농촌 가정 |
명학이 |
남 |
10대 초 |
건전하고 성실한 생활의 중요성 |
의지와 용기로 삶을 개척하는 소년 |
17 |
3. 1930년대 식민지 조선 농촌 사회 속의 남과 여
192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인 ⌜나의 어머니⌟이후 5년 뒤인 1934년부터 사망기인 1939년까지 6년 동안 22편의 소설이 발표 되었는데, 소설 속 시간적 배경이 발표 년도와 매우 근접하고 있다. 또 작가의 연령 변화에 따라 작품 속 시간적 배경이 순차적 전이를 보이고 있다.
1930년대는 민족사적으로도 40년대 태평양 전쟁기의 혹독한 시련을 앞두고 사회 모든 분야가 지속적으로 괴멸해가는 양상을 보이는데, 그 중에서도 하부구조를 이루는 농촌사회의 피폐는 심화되고 있었다. 1935년을 전후해서 일제는 궁핍한 조선 농민들을 대량으로 만주로 송출하려는 이주 정책을 실시했다. 그러한 농촌 현실을 묘사한 작품으로는 27세인 1934년에 ⌜꺼래이⌟ 등 5편, 28세인 1935년에 ⌜악부자⌟ 등 6편, 모두 11편으로 발표 소설의 50%를 차지한다. 즉 1933년 26세에 결혼하여 농촌 소읍인 반야월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던 1935년을 전후한 백신애의 소설적 관심사는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농촌 문제, 농민들의, 농촌 가정의 극빈곤에 있었다.
농촌 극빈 가정의 만주 이주 문제가 어는 정도 가라앉은 다음인 29세 1936년에 발표된 작품으로는⌜학사⌟ 등 4편인데, 소설적 관심사가 농촌 사회의 극빈곤 문제에서 농촌 소시민적인 가정 문제로 이동하였다. 1937년에 발표된 ⌜가지 말게⌟ 는 주제에 비해 매우 짧은 형식을 가지나 이전의 극빈곤과 만주 이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을 한 31세인 1938년에는 ⌜광인수기⌟ 등 3편, 사망기인 32세 1939년에는 ⌜혼명에서⌟와 ⌜아름다운 노을⌟ 등 2편을 발표하였다.
개인적으로 매우 곤란한 지경에 이른 그 당시 그의 소설적 관심사는 결혼관과 가정 문제였다. 신혼부부 주변의 농촌 가정 문제를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관찰 묘사하던 1935년의 ⌜악부자⌟ 등 3편과 달리 1938,39년의 작품은 일반적인 가정 문제를 넘어서 애정과 결혼의 관계, 여성적 자아의식, 그리고 속으로는 성적 욕구가 충일하더라도 겉으로는 그것을 억압해야 하는 30대 초 여인의 내면세계 갈등을 심도 있게 그리고 있다.
백신애 소설 대부분의 시공간적 배경은 그의 연령 변화에 따른 생활환경 변화에 따른다. 결혼 전, 결혼 중, 결혼 후의 가정 문제를 주요 글감으로 삼고 있다. 그 가정이 평온한 시대가 아니라 1930년대라는 식민지 궁핍의 시대였기에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거나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봉건성과 근대성이 혼재된 시대였기에 특히 여성들에게는 갈등과 애로가 심하였다.
백신애 소설 22편 가운데 시대성과 현장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작품은 비교적 안정된 생활환경 속에서 집필하여 34, 35년에 발표한 ⌜꺼래이⌟ 등 11편이다. 이후의 작품은 지나치게 사생활적인 요소가 나타나 작품의 시대성과 현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1935년을 전후한 시대의 조선 농촌 사회의 붕괴 모습을 가장 핍진하게 묘사한 이 11편의 작품이야말로 백신애가 한국문학사에 뚜렷하게 남아야만 하는 증좌가 된다. 그 당시에도 농촌의 극빈곤을 묘사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백신애의 작품이 더 뚜렷한 까닭은, 창백한 도시 인텔리들은 조선의 농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시혜적 입장에서 소설을 썼지만 백신애 그는 직접 농촌 현장에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소설을 썼기 때문이다.
1929년의 ⌜나의 어머니⌟, 1934년의 ⌜낙오⌟, 1935년의 ⌜의혹의 흑모⌟, 1939년의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에서 나타난 여성적 자아의식과 여권의식이 1934년의 ⌜복선이⌟, 1936년의 ⌜호도⌟, 1936년의 ⌜어느 전원의 풍경⌟이라는 현실과 만나 이루는 거대한 고뇌 구조 속에서 얽혀있으면서도 1934년의 ⌜채색교⌟, 1936년의 ⌜정조원⌟, 1938년의 ⌜소독부⌟, 1939년 ⌜아름다운 노을⌟에서 진실한 사랑과 결혼을 그리워한 소설적 지평에서, 한 가정의 딸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집안의 며느리로서의 처지와 의식 있는 한 여성으로서 가치관이 서로 충돌하여 일으키는 숱한 갈등과 고뇌를 겪다가 끝내 요절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개인사적 비극을 읽을 수 있다.
모두 다 어려운 시대였지만 백신애 그는 덮쳐오는 비극에 ‘소설’이라는 무기로 처절하게 대항하였다.
그 저항이 처절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주변 환경의 외재적인 면에서 찾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작가의 내면적인 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작가 성격자체가 심한 불균형, 즉 가치관의 기저가 이질적 요소를 함께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질적 요소의 두 축은 봉건성과 근대성이다. 봉건성은 부상인 아버지와 어린 시절부터 10년 동안 수학한 한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8살 때부터 10년 동안 받은 한문 소양과 한학은 그의 의식의 틀을 형성하였다. 지방 소읍 출신에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도 그만한 지적 소양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한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근대성은 신학문을 배운 오빠 백기호의 영향과 강의록, 사범학교 강습소 수학, 여성 활동, 일본 유학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고등교육을 받지 못하고 거의 독학으로 지식과 의식을 습득한 결과, 근대성에 대한 강렬한 지향의지에도 불구하고 봉건성이 심저에서 강력하게 작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질적 요소의 불균형은 작가 자신의 현실 생활과 작품 세계에 많은 동인으로 작동했다. 그 작동의 격차가 심해 현실 생활에서는 고초를 겼었지만 그것이 창작 동인으로 작동되었을 때는 좋은 소설들이 생산될 수 있었다.
4. ‘자아’와 ‘사회’ 두 관점의 병행
그의 소설적 관점은 작가 자신의 생각과 생활을 중심으로 한 ‘자아’와 생활하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타아’, 즉 ‘사회’ 두 가지이다. 관점은 두 갈래이지만 모든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부분이 그의 분신이거나 주변 인물이다. 둘 다 관찰자 입장에서 묘사, 서술하고 있으나 ‘자아’ 관점의 작품들은 사소설, 자전소설적 성격을 많이 띄고 있다.
그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기의 직접 경험담을 기록하였다고 할 수 있는 ‘자아’ 관점의 작품으로 두드러지는 것은 첫작품인 ⌜나의 어머니⌟와 ⌜꺼래이⌟로 결혼 전에 발표되었다. 이 두 작품의 주인공은 20대 초의 미혼 여성으로 봉건 전통적인 여성관을 탈피하여 자의식과 개척의지를 추구하고 있는데 작가 당시의 모습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결혼 후 신혼기인 1934년에는 신혼의 달콤함 보다는 부모의 강제에 의해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고 봉건적 가부장제에 갇혀 자아발전을 할 수 없는 회의와 갈등이 담긴 ⌜복선이⌟,⌜채색교⌟, ⌜낙오⌟가, 1935년에는 그 회의와 갈등이 차츰 심화되어 결혼 일상에 대한 권태로 전이되기 시작한 ⌜정현수⌟, ⌜의혹의 흑모⌟가 발표 되었는데 주인공은 공히 작가의 연령대이다. 29세인 1936년에는 그러한 회의와 갈등이 더욱 구체화된 ⌜호도⌟, ⌜정조원⌟, ⌜어느 전원의 풍경⌟이 발표되었는데 여기서도 주인공은 20대 중후반기의 여성이다.
이러한 회의와 갈등이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현실 결혼 생활에 외현화한 탓인지 1937년에는 만주 유랑을 앞둔 농촌 빈곤 가정 이야기인 ⌜가지 말게⌟외에는 발표작품이 없다. 아마 사소설, 자전적인 성격을 짙게 띈 작품들이 발표되면서 봉건 가부장제적인 남편과 많은 갈등과 문제를 일으키는 바람에 그 해는 작품을 생산할 여력이 없었는 것 같다.
남편과 별거를 시작하고 이혼 수속을 밟기 시작한 1938년에는 그의 결혼 생활을 반추하는 듯한 작품인 ⌜광인수기⌟, ⌜소독부⌟, ⌜일여인⌟ 등이 발표되었다. ⌜소독부⌟에서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살인’이란 결말로 보여주고 있으며, 작가 자신의 연령대인 30대 초 여성이 주인공인 ⌜광인수기⌟에서는 가부장제 속에서 고통을 당하는 순종형 아내와 며느리상을 보여준다.
20세 가 되기도 전에 여성 단체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베리아 방랑을 감행한 그로서는 단조롭고 답답한 결혼 생활 자체가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혼을 하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작가 자신과 같은 연령대인 30대 초 여성이 주인공인 ⌜혼명에서⌟와 ⌜아름다운 노을⌟에서 사랑과 결혼, 여성적 자아의식과 창작의지에 대한 집착이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철저하게 작가 자신의 처지와 의식을 표현한 ‘자아’ 관점의 작품과 달리 ‘사회’ 관점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사회 지향 의식을 갖고 생활공간 주변에서 관찰한 다양한 모습의 인물상이 표현되어 있다.
‘사회’ 관점의 작품들은 1934년부터 1936년까지 3년 동안 집중적으로 발표되어 백신애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결혼을 하고 농촌 소읍사회에서 안정된 생활을 시작한 1934년에 발표된 ⌜꺼래이⌟와 ⌜채색교⌟에서는 20대 초의 여성을, ⌜적빈⌟ 에서는 매촌댁이라는 여성 늙은이를, ⌜악부자⌟, ⌜상금 삼 원야⌟, ⌜가지 말게⌟에서는 30대 후반의 남성을, ⌜정현수⌟와 ⌜학사⌟에서는 20대 후반의 농촌 지식인 남성을, ⌜멀리 간 동무⌟, ⌜푸른 하늘⌟에서는 10대 초의 남성을 등장시켜, 주인공이 모두 여성인 ‘자아’ 관점의 작품과는 달리 양성, 다양한 연령층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주인공들은 1930년대 중반의 식민지 농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자신의 사랑과 뜻과 상관없이 부모에 의해 강제된 결혼, 소설적 가치에 몰이해한 남편을 떠나 이혼을 결행한 1938년부터 벌어진 작가의 생활환경과 건강 악화에 따라, 여권의식이 충일하던 20대의 여성 주인공들을 내세워 시대를 고민하며 의미 있는 여성적 삶을 탐구하던 이전의 ‘자아’ 관점 작품들과 다양한 장점을 가진 ‘사회’ 관점의 작품 생산이 중지되고, 작가 자신의 개인적 고뇌가 듬뿍 담긴 ‘자아’ 관점의 작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작가 자신에게도 비극이었지만 후일의 독자들로 하여금 1930년대 후반기의 식민지 농촌 사회의 모습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고 말았다.
5. ‘여성적 가치’와 ‘시대와 사회’ 두 고민의 얼굴
백신애 소설은 ‘여성의 가치’와 ‘시대와 사회’란 두 개의 고민을 안고 있다. 그 두 고민은 모두 남과 여가 이루는 ‘가정’, 즉 결혼 전, 결혼 중, 결혼 후라는 시공간적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데뷔작인 ⌜나의 어머니⌟에서부터 시작된 ‘여성’적 삶의 양태, 즉 ‘여성적 가치’에 대하여 고민한 작품으로는 ⌜꺼래이⌟, ⌜복선이⌟, ⌜채색교⌟, ⌜적빈⌟, ⌜낙오⌟, ⌜의혹의 흑모⌟, ⌜호도⌟, ⌜일여인⌟, ⌜정조원⌟, ⌜어느 전원의 풍경⌟, ⌜광인수기⌟, ⌜소독부⌟,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 등 15편으로 ‘시대와 사회’와 겹쳐지는 작품들도 있지만 발표작 22편중에서 68%, 2/3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여성인 작가의 관심과 고민이 ‘여성적 가치와 의미’ 쪽에 쏠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작가의 ‘여성적 가치’는 ‘여권의식’과 ‘사랑과 결혼’, ‘여성적 삶’이란 세 주제에 투영되어 있다.
비록 식민지 시대이지만 서양문물과 의식이 이미 많이 도입되어 개화의식이 사회 저층에까지 침투한 상태이지만 봉건적 가치가 여전히 사회에 충만한 가운데에서, 여권 의식을 가진 여성이 어떠한 삶의 태도를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초기작인 ⌜나의 어머니⌟에서 시작되어 ⌜꺼래이⌟, ⌜낙오⌟, ⌜의혹의 흑모⌟,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까지 이어지고 있다.
봉건적 부모의 통제와 여성 활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 비록 가족이라는 타의에 의해였지만 좁은 향토지역이란 한계를 넘어 넓은 대륙의 분위기와 풍물에 든 ‘순이’에게서 약관 스무 살에 시베리아 방랑을 감행한 작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안정된 직장과 결혼이라는 제약을 과감하게 박차고 자아발전을 위해 일본 유학을 감행하는 정희와, 자아발전에 대한 의욕은 있으나 현실에 안주하여 머뭇거리는 경희 두 사람을 서로 대비한 ⌜낙오⌟에선,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신지식 여성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그 연장인 ⌜의혹의 흑모⌟에선 유학 생활의 활발한 모습을 그리며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는 신여성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혼명에서⌟와 ⌜아름다운 노을⌟에선 자의식을 각성한 30대 초 여성의 창작욕과 미적 감각의 사랑이 현실적 한계와 교차하면서 일으키는 갈등과 고뇌를 그리고 대변하고 있다.
위의 소설들에게서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여권의식’이다. 아버지에게, 남편에게 종속 존재로서가 아니라 여성 역시 남성과 동등하게 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주장이 전편에 흐르고 있다. 여성 활동, 시베리아 방랑, 일본 유학을 결행한 작가의 직접 경험이 전편에 진하게 녹아 있다.
‘사랑과 결혼’은 생물이라면 모두에게 절실한 문제이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더욱이 그것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에게는 ‘사랑과 결혼’이 매우 절실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꺼래이⌟, ⌜채색교⌟, ⌜정조원⌟, ⌜소독부⌟, ⌜아름다운 노을⌟이 있는데 모두 정신적 사랑의 가치를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결혼 전인 것은 ⌜꺼래이⌟, ⌜채색교⌟, ⌜정조원⌟ 등 3편이고 결혼 중인 것은 ⌜소독부⌟ 한 편, 결혼 후인 것은 ⌜아름다운 노을⌟ 한 편이다.
결혼 전의 세 작품에서 강조된 것은 아름다운 정신적 사랑과 순결이다. 꺼래이 처녀가 생명을 구해 준 러시아 병사에게 느낀 짧은 연정과 정조 관념을 초월한 하룻밤의 보은 행위, 빈곤과 곤란 속에서도 고운 사랑을 가꾸며 채색교를 꿈꾸는 기층민 남녀, 몸의 욕구 억제란 봉건윤리에 얽매여 지나치리만큼 정조의 순결에 집착하는 두 남녀의 모습을 그린 세 작품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주제는 진실한 사랑이고 그것이 결혼의 전제조건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한 사랑 없이 맺어진 결혼 생활의 결국 어떤 결말에 이르는가를 비극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소독부⌟이다. 부모의 강제에 의해 마음에 없는 남자에게 시집갔으나 집요하게 맴도는 혼전 사랑 때문에 결국 살인 공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색시’에게서 이혼에까지 이르게 된 작가 자신의 자화상 또는 변명을 읽을 수 있다.
비로소 봉건 결혼관이라는 쇠사슬로부터 자유가 된 30대 이혼녀인 작가가 추구하는 ‘사랑관’이 ⌜아름다운 노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몸의 욕구와 정신적 미의식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주인공 순희에게서, 진실한 사랑이란 나이와 조건을 초월하는 지고지순의 것이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그 메시지의 한계라 한다면, 미적 관점이 중심인 정신적 사랑의 가치만 다루었지 살아 숨쉬는 생물로서의 여자가 갖는 육체적 본능은 애써 무시했다는 점이다. ⌜소독부⌟에서 ‘색시’가 마음에도 없는 남편에게 시집와 시도 때도 없이 성교를 강요당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처럼 작가 자신도 진실한 사랑도 없이 결혼하고 의무적으로 하는 결혼 생활, 특히 남편의 강요에 의한 성생활로 심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사랑과 결혼’을 주제로 한 작품들에서 작가는 진실된 사랑이란 정신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결혼 생활, 쌍방이 만족하는 성생활이어야만 여성은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주고 있다.
인류의 반, 사회 구성체의 반을 차지하면서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여성적 삶’은 작가에게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자기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개척해나가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에게, 사회에게 얽매인 종속체로서의 여성적 삶의 모습이 어떻게 제약을 받아 왜곡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 계열의 작품으로는 ⌜복선이⌟, ⌜적빈⌟, ⌜호도⌟, ⌜어느 전원의 풍경⌟, ⌜광인수기⌟, ⌜소독부⌟,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 등 8편으로 37%, 약 1/3을 차지하고 있다.
20대의 젊은 여성이 주인공인 ⌜복선이⌟와 ⌜호도⌟에서는 무능한 남성에 의한 가난과 가정폭력 등에 고스란히 당하거나 시달릴 수밖에 없는 종속적 존재로서의 여성상을, 10대 색시가 주인공인 ⌜소독부⌟에서는 혼전 교제하던 남성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해 결국 살인 공범이 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수동적 모습을 보여준다.
⌜적빈⌟에서는 매촌댁 늙은이를 등장시켜 30년대 식민지 조선의 궁핍 속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끈질긴 여성상을, ⌜어느 전원의 풍경⌟, ⌜광인수기⌟에서는 결혼 생활이 비교적 오래인 30대 초의 주부를 등장시켜 봉건적 가부장제 아래에서 고통과 수난을 당하는 아내와 며느리의 모습을 보여 준다.
30대 초의 지식인 여성 두 명의 등장시킨 ⌜혼명에서⌟와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여성적 의식의 흐름을 통해, 예술적 창작 의지가 험난한 주변 환경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가 하는 문제, 아무리 미의식에 바탕을 둔 정신적 사랑이라도 결국 연령의 차이, 사회적 시선 등 환경 조건이라는 사회적 현실과 어떻게 상충하고 있는가, 여성적 사랑의 속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여성 심리 문제가 제시되어 있다.
6. 백신애 소설의 정수인 ‘시대와 사회’ 의식
여성 작가로서의 한계라기보다 관점과 고민의 집합체인 ‘여성적 가치’를 다룬 소설들과 달리, ⌜꺼래이⌟, ⌜복선이⌟, ⌜채색교⌟, ⌜적빈⌟, ⌜낙오⌟, ⌜악부자⌟, ⌜정현수⌟, ⌜학사⌟, ⌜정조원⌟, ⌜일여인⌟, ⌜상금 삼 원야⌟, ⌜가지 말게⌟, ⌜멀리 간 동무⌟, ⌜푸른 하늘⌟ 등 14편으로 생산 소설 총량의 64%, 2/3를 차지하는 ‘시대와 사회’를 다룬 이들 작품 속에는 식민지 조선의 농촌사회를 구성하는 한 지식인 소설가로서의 의식과 고민이 사실적으로 담겨있다.
‘시대와 사회’를 다룬 작품들과 시대와 사회의 반인 여성을 다룬 ‘여성적 가치’ 계열의 작품이 많이 중첩된 것은 역시 작가 자신이 여성적 시각을 통해 시대와 사회를 보았기 때문이 아닐 수 없다.
이 계열의 작품들은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사회 모습’과 ‘지방 중산층 소시민의 모습’ 등 두 가지 하위 관점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백신애 소설의 백미, 가장 빛나는 업적인 ⌜꺼래이⌟, ⌜채색교⌟, ⌜적빈⌟, ⌜악부자⌟, ⌜상금 삼 원야⌟, ⌜가지 말게⌟, ⌜멀리 간 동무⌟, ⌜푸른 하늘⌟ 등에는 고난에 찬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사회의 궁핍한 모습’이 리얼리티하게 묘사되고 있다. 도시에 살면서 관념적인 시각과 국외자적인 태도로 접근한 일군의 소설가들과는 달리 농촌 사회 현장에 섞여 살면서 직접 체득한 사실들이 진솔하게 표현되어 있다.
⌜채색교⌟에서는 빈곤한 장돌뱅이의 삶과 사랑을, 일제에 의한 간교한 식민 지배와 유산 지주계급들의 탐획으로 더욱 피폐해가는 농촌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 ⌜적빈⌟, ⌜악부자⌟, ⌜상금 삼 원야⌟에서는 극빈 소작농보다 삶이 고달픈 농업 노동자의 모습을, 특히 ⌜꺼래이⌟, ⌜가지 말게⌟, ⌜멀리 간 동무⌟에서는 극빈곤에 견디다 못해 타의로 고향을 떠야만 하는 만주 유랑민의 간고한, 그런 속에서도 농촌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인 인정과 협동을 포함한 삶의 모습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가지 말게⌟와 ⌜멀리 간 동무⌟ 두 편은 1935년에 일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시작된 만주 이민 정책이 농촌 사회에 미친 영향을 나타내나 그것이 이웃간의 인정 차원에만 머무르고 좀 더 근원적인 면에 닿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양적인 면에서 매우 얇아 본격 소설이라고 하기엔 아쉬운 점이 많다.
이 분야, 피폐해져가는 농촌 사회의 모습과 만주 유랑민들의 모습을 좀더 천착했더라면 백신애 소설의 지평이 한층 풍성해졌을 것이다.
극빈곤에서 허덕이는 농촌 가정의 모습을 동정하면서도, 영천 지역 부상의 딸이자 안정된 직장인 금융인을 남편으로 둔 유산 계층에 속한 여성답게 작가는 그의 수필 ⌜금계납⌟과 ⌜촌민들⌟에서 농촌 사람들의 부정적인 모습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대와 사회를 걱정하는 지식인의 책임 차원에서, 작가 자신이 직접 살면서 체험한 농촌 사회의 부정적인 생활 태도, 수동적이며 나태한 모습을 비판하고 살 길을 제시하는 ⌜푸른 하늘⌟을 통해 의지와 용기로 삶을 개척하는 건전하고 성실한 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대구 근교 소읍인 반야월에서 신혼 생활을 한 작가는 ‘농촌 소읍 중산층 소시민적 삶의 모습’을 나타낸 작품을 여러 편 썼다. 그 계열의 작품으로서는 ⌜정현수⌟, ⌜학사⌟, ⌜정조원⌟, ⌜어느 전원의 풍경⌟, ⌜일여인⌟, ⌜아름다운 노을⌟ 등이 있다.
⌜정현수⌟, ⌜학사⌟ , ⌜정조원⌟에서는 20대 후반의 젊은 남성을 등장시켜 중산층 지식인의 자아의식과 현실의 차이를, ⌜어느 전원의 풍경⌟, ⌜일여인⌟, ⌜아름다운 노을⌟에서는 중년층의 남녀를 등장시켜 물질적 빈곤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빈곤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고 고뇌하는 지방 중산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1930년대 중반이라는 시대 사회적 환경과 조건 속에서 일정한 지식을 가진 중산층으로서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갖고 앞길을 개척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작품마다 진하게 묻어 있다는 것이다.
7. 식민지 극빈곤 농촌사회를 버티는 잡초의 힘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군상 가운데 가장 뚜렷한 성격을 가진 ⌜적빈⌟의 ‘매촌댁, ⌜낙오⌟의 ’정순’, ⌜가지 말게⌟의 ‘갑동’, ⌜멀리 간 동무⌟의 응칠, ⌜푸른 하늘⌟의 ‘명학’은 백신애 그가 1930년대를 사는 한 소설가로서 추구하고자 하는 창작목표인 ‘여성적 가치’와 ‘시대와 사회’가 잘 혼합된 인간상이다.
작가는 그들을 통해, 빈곤한 식민지 농촌의 현실을 단순히 묘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빈곤을 버티는 힘이, 미래를 기약하는 힘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문명이 앞선 일본 동경에 유학하여 신지식을 흡수하고자 하는 의지를 실천한 ‘정순’을 통하여 구시대를 걷어내고 신시대에 역동적으로 맞이하는데 여성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비록 무식하고 가난하지만 본능적인 생존의지를 갖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하물며 ‘똥힘’조차 자기화하는 이 땅 모성의 상징인 ‘매촌댁’을 통하여 식민 지배를 받는 이 땅 농촌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 가노라면 언젠가는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는, 식민 지배를 끝내고 새로운 경제적 질서를 맞이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이러한 메시지는 ⌜푸른 하늘⌟의 ‘명학’과 ⌜가지 말게⌟의 ‘갑동’, ⌜멀리 간 동무⌟의 ‘응칠’에게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의지와 용기로 앞길을 개척해 나가는 성실한 소년 ‘명학’에게서는 근면과 성실, 그리고 용기를, 살길을 찾아 만주로 유랑을 떠나는 순삼이 가족을 따뜻한 인정으로 보내는 ‘갑동이와 마을 사람들’ 에게서는 조선 농촌 사회를 지탱하는 마지막 힘인 공동체 의식을, “이 궤 속에는 내 책이 들어 있단다. 만주 가서도 틈만 있으면 공부할 터이다.”하고 힘 있게 말하는 ‘응칠’에게서는 운명 개척의 의지를 가진 이 땅의 젊은이에게 펼쳐질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1930년대 중반을 함께 사는 이 다섯 명의 인물들이 뜨겁게 만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백신애 소설’은 꽃을 활짝 피웠다. 비로소 ‘여성적 가치’와 ‘시대와 사회’가 손을 잡고 소설 세계를 걸어 나와 식민지 농촌 현실 속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8. 1930년대 10년 동안 찬란하게 타오른 푸른 불꽃을 생각하며
흔히 천재는 요절한다고 하는데 적어도 예술에서는 그 말이 맞다. 왜냐면 진실한 예술가라면 일신의 안녕보다 ‘예술혼의 완성’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결국 요절에 이르고야 마는 까닭은 ‘일신의 안녕’이란 가시적이고 실제적인 것인데 비해 ‘예술혼의 완성’이란 비가시적이고 비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남성 예술가에게도 그러한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될 진데 하물며 여성, 그것도 봉건 가부장제가 엄격하게 작동하는 1930년대를 산 백신애에게는 그 법칙이 한층 가혹했을 것이다.
그가 ⌜자서소전⌟에서 말한 ‘그렁저렁 이십 세가 척 되니 무엇인가 쓰고 싶고 발표도 하고 싶은’ 마음, ‘그저 내 스스로 타고난 열정 그것만 가지고 말 못할 억압과 혼자 분투해왔다고나 할까요, 내 문학의 길은 돌아보면 고초롭고 쓸쓸한’ 환경 속에서 그래도 그만큼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 두 개, ‘여성적 가치’와 ‘시대와 사회’를 깊이 있게 파고든 작품을 생산했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 여성으로서 ‘여성적 가치’에 대해 할 말은 하고 싶었고, ‘시대와 사회’를 아파하는 한 지식인으로서 식민지 극빈 농촌사회의 상황을 소설로 써서 고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한 고민이 담긴 작품들을 생산하면서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부모와 남편으로부터 외면과 질시를 당했다는 데에 그의 개인적인 고통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개인적으로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며 쓴 소설들이지만, 식민 지배가 극한의 고통과 빈곤으로 치닫는 1930년대의 농촌 사회의 내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을 통해서 당시의 독자들과 후세의 독자들은 그 당시의 모습을 조감할 수 있다는 것은 문학이, 소설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은, 그가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하고 조금 더 살았다면 ‘여성적 가치’와 ‘시대와 사회’를 묘사, 고발하는 작품을 더 많이 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후인들의 아쉬움일 뿐, 그 당시의 현실은 한 여성 소설가에겐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다.
좋은 소설을 남기고도 요절과 지방 문인이라는 핸디캡, 살아 친일파로 반공문학가로 행세하지 못한 이력 때문에 문학사에 정확하게 기록되지 못한 서러움을, 다행히 고향 영천 지역의 후배 문인인 시인 이중기와 평론가 백현국 등이 그의 가치를 알아 새롭게 떠올려 동서남북 발품을 팔아서 흩어진 작품과 자료들을 모아 ⌜백신애 문학축제⌟를 해마다 열고 한 권의 ⌜백신애 선집⌟을 낸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자 백신애 그로서도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진실한 문학에게 중앙과 지방의 구별이 무슨 가치가 있으련만, 다수가 명예와 부를 위해 서울로 집중하는 이 경박한 시대에 영천 지역의 문인들이 뜻을 모아 ⌜백신애 소설문학⌟을 기리는 여러 사업을 알차게 추진하는 것은 지역 문단이야말로 우리나라 문단의 든든한 근본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많은 여성 소설가들이 지극히 사적인, 신변잡기적인 소설들을 대량 생산하는 이 시대에, 소설 문학에 집착하는 진정한 여성 소설가라면 어떠한 의식과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를 1930년대 10년 동안을 불꽃으로 살다간 백신애의 실제적 삶과 그 투영인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영천의 뜻있는 인사들이 어렵게 마련한 ‘백신애문학상’이 백신애 소설의 정수인 ‘시대와 사회’를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선, 정수 중의 백미인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농촌 사회 모습’을 오늘에 잇기 위해선, 백신애의 고민이 현재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어떤 소설들에 상을 주어 현창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와 사회’라는 거대한 격랑 속에서 홀로 표류하는 ‘여성적 삶’을 독하게 항변하는 백신애의 목소리를 듣노라면, ‘여성적 가치’와 ‘여성적 삶’에 관심을 갖고 사는 의식인의 전형이랄 수 있는 그의 모습이 이전 시대의 황진이, 허난설헌에 겹쳐진다. 간고한 시대, 더욱이나 여성에겐 잔혹한 시대를 살면서, 과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펼쳐질 어느 시대에나 동일한 압력인 자아로서의 ‘여성적 가치’와 타아로서의 ‘시대와 사회’를 더불어 고민한 백신애의 삶과 문학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
하여튼 우리 한국사에서 일제가 식민지 조선을 악착같이 지배하는, 봉건과 半봉건이 교차하는 1930년대는 문학에 집중하는 진정한 글쟁이로 하여금 불꽃처럼 작품을 쓰고 끝내 요절하도록 하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질곡의 시대였다.
삼가 ⌜백선애 선집⌟ 한 권 묵직한 책에, 더 넓은 소설 지평을 향해 푸른 불꽃으로 살다 간 백신애에게 70년 만에 작은 향을 사른다.
2009년 11월 23일 신새벽
양백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