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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무희 옷처럼” 아름답다는 무의도. 서울 수도권 주민들에게 하루 나들이 코스로는 제격인 섬이다. 여름 철 해수욕은 물론 사계절 낚시, 등산을 통해 여유와 낭만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가거나 서울에서 승용차를 타고 영종도 연륙교를 지나 잠진도 선창에서 무의도 가는 배를 탄다. 배는 5분 내지 10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나 마을 버스로 무의도 등성이를 넘어서면 바로 해변이다. 이곳에서 썰물 때 걸어서 실미도를 갈 수 있다.
세상이 좋아져서 배 한번만 타면 들어가는 섬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울(인천)-영종도-거잠포-잠진도-무의도-실미도를 건너여하는 만만찮았던 섬이었다. 오죽하면 이 섬을 684 북파부대 훈련장으로 삼았겠는가. 영화에서 지옥훈련을 하던 31명 대원 가운데 두 사람이 훈련장을 야밤 이탈해 썰물 때 무의도로 건너가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실미도는 아랫도리로 서로 이어져 있다.
생채기 짓이긴 갯벌에서 싱싱한 굴과 조개캐기
무의도에서 썰물 때만 갈 수 있는 실미도 사이에 조만간 다리를 놓는다고 한다. 어쨌든 실미도로 가는 길목은 무의도이다. 서울에서 2시간이면 족하다. 무의도에는 실미해수욕장과 하나개해수욕장이 있다.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 나들이에 좋다. 얕은 바닷가이지만 망둥어가 잘 잡히고 썰물 때 바지락 줍는 재미도 쏠쏠하다.
실미 해수욕장은 무의도 서쪽에 있다. 주민들은 큰무리 해수욕장이라고도 부른다. 2Km에 이르는 은빛 백사장이 초승달처럼 휘어져 있다. 100년 넘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해변 뒤를 받치고 있다. 수심이 30~35m에 불과하고 갯벌에는 낙지 민챙이 게 고동 바지락 등이 널려 있다.
섬사람들은 암반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한다. 도착 시간이 맞지 않아 썰물 때 바다로 나갈 수 없는 설움(?)을 달래고자 백사장에 별도로 풀장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물때는 수시로 바뀌는데 요즈음 오전 11시20분 전후 2~3시간 정도 바닷물이 나간다. 밤에 횃불 들고 갯벌을 돌아다니면 소라와 밭게를 주울 수 있다. 다만 실미도 길목 굴 양식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의 삶의 터전임으로 조개를 캘 수가 없다.
호젓한 실미도를 거닐고 갯바위 낚시의 여유
실미도는 해수욕하기에는 어울리지 않고 호젓한 산책코스이다. 바위가 많은 탓에 기암괴석을 구경하거나 거기에 나붙은 조개를 따는 일이 추억거리일거다. 해안선이 2㎞에 불과해 연인끼리 손잡아 줘가며 바위 타기로 섬을 돌거나 바위에 앉아 밀어를 속삭이면 안성맞춤.
행여 낚시를 좋아한다면 갯바위 낚시에 좋다. 낚싯대 드리우고 남으로 펼쳐진 서해 바다 섬과 섬을 스쳐 지나는 배들을 구경하는 동안 입질이 올 것이다. 우럭 망둥어 광어 전어가 많이 잡힌다.
실미도는 무인도이다. 그러니 연안부두에서 실미도 가는 배편을 묻지는 말라. 무의도행은 있어도 실미도행은 없으니까. 실미도 영화를 보고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사실 실미도에서 영화를 다 찍었던 것은 아니다. 그나마 몇 개 세트마저 최근 철거되었다.
영화 실미도에서 산악훈련은 강원도, 법정세트는 부산, 버스 탈취와 군함 등장은 인천, 대방동 유한양행 앞 진압군과 교전 장면은 부안. 그리고 해변과 산악 훈련 장면을 제주 파주 실미도에서 번갈아 가며 촬영한 것이다. 수중침투는 지중해, 겨울훈련장은 뉴질랜드 만년설 로케이션이었다.
이런들 어쩌리. 그런들 어쩌라. 갯바람에 무심히 흔들어대는 실미도 나뭇가지들 바라보며 이데올로기 망령이 무엇이고 이로 말미암은 우리 젊은이들 켜켜이 쌓인 아픔이 무엇인지, 그 생채기들을 짜디짠 갯물에 털어 내면서 잠시 분단의 흔적을 되짚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테마가 있는 섬 기행이 아니겠는가. 하나개 해수욕장에는 빨간 지붕이 인상적인 아일랜드캐슬이 있는데 이곳에서 안성기, 설경구 씨 등 제작팀이 묵었던 곳이다.
드라마 ‘천국의 계단’ 무대, 아름다운 해변과 어촌 풍경
실미도에서 나와 무의도 오른쪽 섬모롱이를 돌아서면 하나개 해변이다. “하나밖에 없는 큰 갯벌”이라는 뜻이다. 봄가을에 ‘맨손 바닷고기 잡기 대회’가 열리는 곳인데 4㎞에 이르는 바다를 그물로 막아 숭어를 잡는다. 그만큼 갯벌이 기름지고 숭어가 많다는 이야기. 해변 폭 100m, 백사장 길이는 1.2㎞에 이르는 해변이다.
해변은 활처럼 휘어져 있는 모양새로 은모래가 햇살에 눈부실 때 장관이다. 백사장이 매우 완만하고 송림에 둘러싸여 있다. 최근 드라마 ‘천국의 계단’ 촬영을 했던 곳이다. 2층 별장 형태로 지어진 세트가 있다. 이국적 바닷가에서 권상우 씨가 밀물이 들어올 때까지 피아노를 치던 그곳이 바로 이 해변이다.
썰물 때 ‘동죽’이라는 조개와 소라 바지락 낙지을 캘 수 있다. 밀물 때 넘실대는 파도와 평화롭게 통통대는 어선들을 마주할 수 있다. 수면 위를 발길질하며 비상하는 갈매기 모습도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어촌 풍경들이다. 해변가 식당에서 자연산 굴과 조개 요리의 별미도 맛볼 수 있다. 굴맛이 매우 좋아 인기다. 갓 잡아온 굴을 경우 1㎏당 1만원 안팎이면 세 식구 정도가 양껏 먹을 수 있다. 낙지 역시 미식가들에게 인기였는데 예쁜 여성들이 산낙지를 손에 감아 입에 쑥 밀어 넣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무의도는 본디 굴 생산지로 유명한 곳. 그래서 주민들은 굴밥을 만들어 먹는다. 농촌에서 밤을 썰어 넣어 밤밥을 만들 듯 황해도 식생활에서 영향을 받은 이곳 사람들은 밥에 신김치를 썰어 넣어 굴밥을 만들어 먹는다. 이밖에 조개탕, 동죽전, 동죽무침, 활어회도 인기이다. 최근 조개구이 포장마차도 들어서 낭만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배낚시를 나갈 경우 바로 앞 바다에서 숭어 우럭 농어가 낚싯줄을 당기는 입질의 전율을 맛볼 수 있다.
갯바람 맞으며 오르는 산길에 마주하는 서해 작은 섬들
하나개 해변을 빠져 나와 등산을 즐길 수도 있다. 전문 산악인의 경우 5시간 정도 걸리는 호룡곡산~국사봉 능선이 인기이다. 초보자나 가벼운 체력소모만을 맛보고 싶은 사람은 호룡곡산 코스만 올라도 섬 여행의 또 다른 맛보기를 할 수 있다. 한나절이면 무의도에서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섬 구경도 하고 땀도 뺄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닌가.
등산 코스는 하나개 바로 뒤편에 산림청이 만들어 놓은 자연생태 관찰로를 따라 가면 된다. 호랑바위~신선약수 쪽으로 가는 길이다. 호룡곡산은 244m, 국사봉은 230m. 그리 높지 않는 산을 오르는 동안 꿩의 무리와 희귀한 곤충들을 구경할 수 있다. 정상에서 기지개를 활짝 펴고 바다를 향해 두 눈을 크게 떠 보라. 인천국제공항과 인천항, 푸른 바다에 아스라이 출렁이는 실미도 팔미도 영흥도 자월도 이작도 등 작은 섬들이 출렁여 온다. 가슴 탓 트이고 그 아름다운 섬으로 금방 풍덩 빠지고만 싶어질 것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박상건의 섬과 등대이야기’를 연재해왔는데 ‘무의도․실미도’편을 읽고 글이삭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독자분이 ‘무의도 기행’에 관한 이야기를 댓글로 올려준 바 있다. 영화 실미도, 드라마 천국의 계단 현장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무의도를 최초로 연극작품으로 소개한 함세덕 작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가 전한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한다.
최초 무의도 소재 작품 함세덕의 ‘무의도 기행’
“극작가 함세덕의 1941년 작품 ‘무의도 기행’은 당대 최고의 인문지 <인문평론>에 발표되었죠. 무의도 가난한 열일 곱살 소년이 주인공이죠. 그 소년을 가르친 적이 있는 교사가 여름방학을 맞아 이 섬을 찾아왔다가 소년의 비극적 죽음을 알고 기행문을 쓰듯 소년의 일대기를 극화시키는 것으로 극의 토대를 설정했어요. 바다에 두 아들을 잃고 딸마저 중국의 유곽에 팔아야 했던 가난한 어민 일가족의 고달픈 삶이 소재이죠. 하나 남은 셋째아들마저 물에 보내고 싶지 않음에도 보내야 하는 가난한 부모의 처지와 형들의 죽음으로 상처받은 소년이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떠나 죽는 과정을 절실하게 그린 수작입니다.”
“소년은 바다를 등지기 위해 인천항구로 와서 석 달 동안 방황했으나 마땅한 취직 자리를 구하지 못해 다시 섬으로 돌아오죠. 섬의 돌팔이 의사는 그를 데릴사위 삼기 위해 그가 타고 나가야 하는 외삼촌의 동아잡이 배 밑창이 헐었다고 겁을 주죠. 죽음의 불안에 떠는 소년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부엌칼을 들고 저항해 보지만, 모친의 설득으로 결국 배를 타게 됩니다. 마지막 ‘낭독’ 부분에서 소년이 파선한 널조각을 타고 헤엄치다 죽은 것으로 밝혀집니다. 서정성을 풍기는 간결하고도 시적인 대사, 섬사람들의 토착 말씨도 사실적입니다.”
“이 작품 외에도 함세덕의 작품들은 그가 철들면서 성장한 인천 바다 연안과 인근 섬 일대를 무대로 삼고, 그곳 주민들의 현실적 삶을 소재로 쓴 게 많죠. 그의 작품들에는 작약도, 무의도, 용유도, 강화도, 연평도, 팔미도, 덕적도 등이 나타나고, 쇳뿌리, 산허구리, 범바위, 장사래, 곰나루, 터진개, 우금, 버들방죽, 가구리, 너구리섬, 가무락섬 등과 같이 고유한 지명이 그대로 쓰여져 있죠. 함세덕씨는 1915년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상고(현 인천고)를 나왔지요.”
“해방 후 월북했다가 한국전쟁 중 인민군과 함께 남하해 1950년 6월말에 죽었어요. 신촌 근처에서 수류탄 사고를 당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서 사망했답니다. 함 작가는 지금은 망우리 묘지에 묻혀 있다고 합니다. 뛰어난 서정적 리얼리즘 작가인데, 35살에 비극적으로 꺾였지요. 참,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동승’도 함세덕 선생이 1939년에 쓴 작품입니다. 아마 아직도 월북작가에 대한 금기 때문에 영화홍보에서는 별로 원작자 얘기를 안 했을 겁니다. 이것도 분단이 원죄지요.”
여행은 삶의 엑기스를 마시는 또 다른 여정
무의도로 오가는 도로는 좁다. 따라서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고 되돌아오는 시간대는 오후 2~3시에 맞추는 것이 좋다. 체증 길은 내 생전에 죽도록 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대신 잠진도 선창을 나와 해송이 우거진 거잠포 해변 조개구이 집에 자리를 잡고 무의도에서 길게 빠져 나오는 승용차 행렬을 구경하거나 거잠포 앞 바다로 뚝 떨어지는 노을을 감상해 보라. 체증도 피하고 조개구이도 한 판 먹으면서 피로가 싹 씻기는 기분을 맛볼 것이다. 가족과 조개를 한 판 구우며 노을 속에서 이런 시 한 편 지어 보았다.
“거잠포 해변에서 조개를 굽는다/뒤집어져 굳게 입 다문 조개가 아가리를 벌린 것은/오랜 침묵을 두 동강 낸 참나무 숯불 때문이었다/이녁을 태워 조개의 마음을 읽어간 숯불이/제 속 다 태운 후에 조개는 비로소 속살을 열었다/속살 구워내고 껍질을 버리면서/내가 버려야 할 껍데기 하 많으랴/나 한번쯤 먼저 마음 연 날 얼마이랴/매운 연기 휘젓는 파도 소리를 따라가니/노을에 젖어들고 있다//떠나야 할 때 떠날 줄 아는 노을 속에/온몸 태워 빨려 들어가던 저 파도소리/비워야 할 때 비울 줄 알고/미세한 생애까지 최후까지 물보라치던 파도소리가/내 눈빛 수없이 감아 돌리며 젖어간다/이 바다, 갯바람 풀무질에 뻘겋게 쇳물 튀고 있다”(박상건, ‘거잠포에서 조개를 구우며’ 전문)
찬찬히 조개를 들여다보면 그냥 입을 벌리는 게 아니었다. 숯으로 생을 마감한 동그만 참나무가 뜨거운 불꽃을 피우며 한줌 재로 사라지는 과정에서 꽉 다문 제 입을 벌리는 것이었다. 조개에게도 생명이 있고 제 삶의 방식이 있었던 것. 그리고 노을이 졌다. 때가 되면 질 줄 아는 노을을, 떠날 때가 되면 떠날 줄 아는 파도가 철썩철썩 풀무질을 했다. 우리도 움켜쥐고만 살 일이 아니다. 여행은 바로 이런 자연 앞에서 삶의 엑기스 마시는 일이 아닐는지...
● 미니상식/ ‘실미도 684 북파부대’에 대하여
1968년 김신조 등 무장공비 31명 청와대 습격했고 생포된 김신조는 침투 목적을 묻는 기자 질문에 “박정희 목따러 왔수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격분한 박정희는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을 불러 특수부대를 만들어 3개월 안에 “김일성이 목을 따 오라” 지시했다.
그렇게 임시로 창설된 실미도 684 특수부대. 정식 명칭은 2325 전대 209 파견대. 68년 4월에 창설됐다해서 ‘684부대’이다. 훈련원과 동일한 수의 기간요원이 함께 했다. 교육대장, 소대장, 통신병 의무병 보급병 등으로 구성되었다. 부대와 훈련은 공군이 맡았다.
북한 모형도를 만들어 놓고 독도법 호신술 산악훈련 폭파기술 사격술 등 지옥훈련을 했다. 특히 사격 실력은 백중백발. 훈련 3개월만에 김일성 주석궁 침투 실력을 갖췄으나 남북회담 추진 등 한반도 여건 변화로 부대지원이 끊기고 북파 계획이 전격 취소되었다.
연달아 침투 작전이 보류되면서 격분한 훈련원들은 창설 3년 4개월만에 난동사건을 일으켰다. 상호 총격전 끝에 기관원 12명이 살해되었다. 그렇게 71년 8월 23일 살아남은 훈련원 24명은 무의도에서 배를 타고 나와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해 청와대를 향했다.
대방동 유한야행 앞에서 진압군과 대치 중 전원 자폭, 살아남은 4명도 이후 사형되었다. 당시 소대장 김방일 씨의 증언으로 이 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러나 33년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 무장공비로 발표하고 보도했던 언론과 권력의 해명이 변변찮고 그런 침묵 이 길어질수록 영화 관객은 늘고 유족들의 슬픔은 저 바다처럼 깊어가고 있다.
● 무의도,실미도 가는 길
○ 승용차
① 서울 올림픽대로(김포공항 방면)=>방화대교=>인천국제공항=>영종대교=>용유, 무의도 이정표=>=>무의도, 잠진도 이정표 좌회전=>잠진도 선착장=> 무의도
② 서울 방화대교=> 노오지 I.C=>북인천 I.C=>잠진도선착장=>무의도
○ 버스
- 인천, 동인천역(306번 버스)=>인천공항 경유=>덕교동(거잠포) 하차=>10분쯤 도보
○ 여객선
① 영종도 거잠포=>무의도 ② 인천 연안부두=>무의도
무의도해운(032-751-3354) 우리고속훼리(032-887-28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