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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에 대하여 공부하실 때
‘하나의 사상이나 가르침 혹은 종교’가 인류문명사에서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여야만 합니다.
하나는 ‘우주란 무엇인가?’와 다른 하나는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설명과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사상이나 가르침 혹은 종교’는 지속적인 생존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불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 힌두교, 조로아스터교 등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설명과 답’을 제시하고 있는 ‘하나의 사상이나 가르침 혹은 종교’입니다.
그 중에서 오리지날 ‘동양의 사상이나 가르침 혹은 종교’인 유교는 <주역(周易)>이라는 음양이론을 바탕에 깔고서 전개되기 때문에 가장 광범위한 ‘인류의 사상이나 가르침 혹은 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동서양에 모두 전파되었지만 유독 동양에서 쉽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진 이유도 동양에 이미 <주역>이라는 바탕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그리스 철학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과 설명은 나름대로 제사하지만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데 실패하였기 때문에 보다 광범위한 답과 설명을 제시한 기독교에 흡수되거나 기독교가 전파되는 바탕 역할을 하는데 머물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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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우주란 무엇인가?’와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에 대한 ‘설명과 답’을 제시하는 방식은 ‘오온’입니다. 요약하면, ‘실존(實存)의 문제’를 ‘오온’으로 설명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오온’이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에 대한 답>이라고만 설명합니다만, 그러한 설명은 ‘부분적인 설명’으로써 ‘거의 불교를 모함하는 수준의 설명’입니다. <주역(周易)>을 설명하면서 음(陰)만 설명하고 양(陽)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다고 한다면, 그러한 설명은 ‘거의 <주역(周易)>을 모함하는 수준의 설명’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주역>이 어려운 이유는 ‘음양(陰陽)을 동시에 다루어야 하는 관점’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역 아함을 읽다보면 간혹 ‘오온(五蘊)’을 ‘오음(五陰)’이라고 번역하신 분이 있음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 번역어를 보면서 ‘참으로 만만치 않은 번역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는, ‘오음(五陰)’이라는 번역어는 ‘다섯 그림자, 다섯이라는 무아(無我) 혹은 비아(非我), 다섯이라는 반쪽’을 의미하는 번역어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는 양(陽)의 측면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번역어가 바로 ‘오음(五陰)’이라는 번역어였는데, 제가 현재까지 이해하고 알고 있기로는 ‘팔정도와 37조도품’이 양(陽)의 측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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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정도라는 것이 오온에 대한 막가(magga)라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두시고 공부하시면 팔정도의 각 덕목들이 보다 쉽게 이해되시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정견(正見)은 ‘오온을 올바르게 본다’는 의미의 용어입니다.(나머지 덕목들도 역부여시) 이러한 저의 지적은 편리한 이해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1) 팔정도가 ‘오온’만을 대상으로 하는 막가(magga)는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습니다만 ‘오온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무리는 없는 말입니다.
(2) 정확하게는 <팔정도는 ‘오취온’을 대상으로 하는 막가(magga)>입니다. ‘오온’과 관련되는 ‘12연기의 제법들’인 ‘취(取)’가 관련된 개념이 ‘오취온’입니다.
(3) 고성제(苦聖諦)의 내용은 ‘오취온’이지 ‘오온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문제점이 있습니다만, 고멸성제(苦滅聖諦)에서 고(苦)라는 것이 ‘오취온’이라면 <‘오온’이라는 고(苦)를 멸하는 막가(magga)가 팔정도>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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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오온에 대하여 공부하실 때’ <12연기의 제법들이 ‘오온’과 관련이 깊은 법들>이라는 점을 잘 염두에 두시고 공부하시면 12연기의 제법들이 쉽게 이해되시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무명(無明)은 <‘오온에 대하여 오온이 고이고, 집(集)한 것이며, 멸(滅)하는 것이고, 멸도(滅道)가 있는 것임’을 모르는 것>[=경전의 규정임]입니다.(나머지 법들도 역부여시) 이러한 저의 지적은 편리한 이해를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몇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1) 무명이 ‘오온’만을 대상으로 하여 고집멸도를 모르는 것만 의미하는 용어는 아니라는 점입니다.[일체(=육육)와 일체법(=육육법)과 ‘12연기의 제법들’에 대한 ‘고집멸도를 모르면’ 그것도 무명임]
(2) 사성제(=명, 明)의 반대말이 무명(無明)입니다. 명(明)인 사성제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명(明)이란 ‘오온’만을 대상으로 하는 용어가 당연히 아니지만 ‘오온’에 대하여 명(明)을 지니지는 것은 맡는 말이므로 무리는 없는 말입니다.
사성제를 깨닫게 되면, 오온을 싫어하여 떠나게 되어[=염리(厭離)] 혜해탈합니다. 경전에 그렇게 설해집니다. 그런데 혜해탈에 대하여 연구해 보면 ‘12연기의 제법들’을 해결하는 것으로 설해집니다. 그러한 이유는 <12연기의 제법들이 ‘오온’과 관련이 깊은 법들>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설명은 <12연기의 제법들이 ‘육육법들’과 관련이 깊은 법들>이고, 육육법의 맥락에서 ‘오온’이 설명됩니다. ‘육육법들’은 모두 행(行)들이 지어낸 것들입니다. 나아가 ‘식과 명색의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들이고, ‘명색(=육입)을 조건으로 식이 생겨남’으로 인하여 전개되는 법들입니다. 소위 ‘안(眼)과 색(色)을 조건으로 한 안식(眼識)’이라는 말에서 <‘안(眼)과 색(色)’이 ‘명색’이고 ‘안식(眼識)’이 ‘식’>입니다.
위의 두 경우인 ㉠팔정도라는 것이 오온에 대한 막가(magga)라는 점과 ㉡<12연기의 제법들이 ‘육육법들’과 관련이 깊은 법들>이라는 점을 미리 사전에 아시고서 ‘오온에 대하여 공부’하셔야 합니다.
오온이라는 것은 ‘색수상행식을 말하는 것이다’는 식의 설명은 실로 유치원 교재에 나오는 말이고, 대학원 교재에는 ‘색수상행식은 공(空)[=색즉시공(色卽是空)]이다’라고 언급됩니다만, 하나는 너무 쉬운 말이고 하나는 너무 어려운 말입니다.
그 중간 쯤 되는 설명이 ㉠팔정도라는 것이 오온에 대한 막가(magga)라는 점과 ㉡<12연기의 제법들이 ‘육육법들’과 관련이 깊은 법들>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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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온에 대하여 어떤 분들은 ‘색은 물질을 말하고 수상행식은 정신적인 것을 말한다’고 설명합니다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지어내서 하는 설명이고요, 색은 색(사대와 사대소조)이고 수상행식은 명(名)이라는 것이 경전의 설명입니다.
명(名)이라는 것도 ‘정신적인 것’이라고 설명하고[☞본 카페의 글에서 제가 그렇게 설명했습니다.] 의(意)라는 것도 ‘정신’이라고 번역하면 곤란합니다. 명(名)과 의(意)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밝히고서 그러한 설명용어나 번역용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저도 역시 명(名)이라는 말을 ‘정신적인 것’이라고 카페에서 설명했고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것이지만, 그러한 설명이 얼마나 웃기는 설명인가 하는 것은 명(名)에 속하는 행(行)을 보면 압니다. 행에는 신행(身行)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신행(身行)이 ‘정신적인 것’이라고 설명하면 코미디죠.
여기에 불교용어가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입니다. <신(身, 까야)은 색(色)을 지니고 있다>라고 경전에 설해집니다. 그런데 그 관련경문을 유심히 읽어 보면 석존께서 제자들이 신(身)을 ‘정신적인 것’으로 오해할까봐 하신 설명이거든요. 그런데 요즈음은 그 반대로 신(身)을 ‘육체적인 의미의 몸’으로 해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결국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명하는 바는 사실상 코미디에 가까운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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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다른 이름’에 ‘안처(眼處), 안계(眼界), 안근(眼根), 안내입처(眼內入處)’[이하 동일]라는 표현이 있음을 잘 구분하셔야 합니다. 같은 이치로 ‘오온의 다른 이름’에도 ‘색온(色蘊), 색계(色界), 색신(色身)’[이하 동일]이라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와 같은 ‘오온’을 통틀어서 부르는 다른 이름에 ‘명색(名色)과 세간(世間)’이라는 호칭이 있습니다.[☜이와 같은 호칭 이외에 ‘공, 타인, (독)화살, 악마 등등’의 호칭도 있습니다.] 거기에서 ‘명색(名色)’이란 심의식의 입장에서 ‘오온’을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그 ‘명색(名色)’이 ‘법’[=이 ‘법’을 관찰하는 방법이 ‘계(界), 처(處), 연기(緣起)’입니다.]이라는 지적도 역시 심의식의 경계라는 입장에서 ‘오온’을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오음(五陰)이라는 이름의 명색(名色)’에 대한 양(陽)의 측면인 ‘멸(滅)과 관련된 팔정도 등’은 일단 먼저 ‘오온’을 심의식의 경계로 전환시키어 ‘법’[=이 ‘법’을 관찰하는 방법이 ‘계(界), 처(處), 연기(緣起)’입니다]으로 보아야 가능해 집니다. 그래야만 <불선법들(=‘팔사도’에 의하여 생겨나는 법들)의 뿌리인 ‘탐진치’가 핵심 배후>가 됨을 알 수 있고, 그러한 점을 파악하여야만 ‘팔정도’(=대표적인 선법들임)의 당위성이 제기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오온’을 ‘세간(世間)’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이는 마치 물리학자 분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를 ‘우주와 동일시하는 관점’과도 같습니다. 같은 것인데 ‘양적인 측면에서 우주가 많다는 것 뿐’입니다. 한 컵의 소금물이나 바다는 차이점이 없습니다만 양은 바다가 많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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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손가락에 가시가 찔려 있으면 그 쓰라림 때문에 ‘가시를 뽑는 일’이 급선무가 됩니다. 카드 회사에서 밀린 카드대금을 독촉 받으면 ‘연체금을 변재 하는 일’이 급선무가 되기 마련입니다. 그 이외에도 병고나 경제적 궁핍이 ‘공부를 방해하는 경우’는 많습니다. 그러한 점들을 제거[=출가]하고서 막상 공부를 시작해도 ‘다른 괴로움’이라는 것이 역시 공부를 방해하기 마련입니다.
불교는 ‘오온’을 취(取)한 상태인 ‘오취온’이 ‘고이고 독화살’이라고 말합니다. 그 문제부터 제거해 나아가는 것이 급선무이고 올바른 순서라는 겁니다. 그 ‘오취온’이 탐진치로부터 연기됨을 보는 것이 <법을 본 것이고 연기를 본 것>입니다. ‘오취온’의 다른 이름이 ‘유신(有身, 현재의 까야)’입니다. 명신과 색신으로 구성되어 있는 ‘오취온’은 자아와는 관련이 없는 것이고 도리어 악마이며 고이고 독화살에 불과한 것이라고 설명됩니다. ‘오온’은 우리 중생들이 삼계라는 ‘세간(世間)’에 참여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색에는 사대(四大)와 사대취색(四大取色)이 있는데, 거기에서 사대취색이 바로 ‘오취온’이고 사대가 ‘우주’입니다. 불교는 그러한 설명을 하면서 ‘팔정도’를 제시합니다. 인류 문명사에 영원히 빛날 문화유산인 ‘팔정도’는 <‘우주란 무엇인가?’와 ‘나는 누구인가?’란 의문에 대한 불교적 답>입니다.
첫댓글 언젠가 아위지남의 <무소유란 오온에 대한 소유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글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 ‘오취온’이 탐진치로부터 연기됨을 보는 것이 <법을 본 것이고 연기를 본 것>입니다라는 말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탐진치를 그냥 열심히 사띠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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