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돌파 인생(19)
아들과 시외버스 타고 강원도 무향자연학교 탐방
송현(시인.무향자연학교장)
1.
나는 이따금 우리 아버지를 생각할라쳐면 마음 한 구석이 애잔하게 젖어온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어디가 본 적도 없고 여행을 해본 적은 더더욱 없다. 그래 그런지 아버지에 대한 멋진 추억이 별로 없다. 하기야 6.25 사변 이후 시대 상황으로 보아 우리 집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2.
우리 아들 하슬린과 원주 무향자연학교(내가 만든 학교)에 가 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엊그제 무향과수원에 배꽃이 피기 시작한 것을 보고 왔다. 하루 이틀 사이에 배꽃이 더 피었을 것 같다. 하슬린이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기에 나는 걍 시외버스를 함께 타고 가는 것이 더 운치가 있을 것이라 했다. 말이 운치이지 실제 속뜻은 딴 데 있는 줄을 하슬린은 알 것이다. 나는 가족이 택시나 승용차에 다 타고 가는 것은 반대한다. 불길한 상상이긴 하지만 나는 2대 독자이고 하슬린은 3대 독자인데, 만약 교통사고라도 나면 우리 집 대가 끊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면 절대로 하슬린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장거리 여행은 하지 않을 참이다. 우리는 동서울터미널에서 11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나는 수원에서 하슬린은 서울에서 각자 출발하여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 원주가는 시외버스를 타기로 했다.
3.
11시 45분행 버스를 탔다. 그러고 보니 하슬린과 시외버스를 함께 타본 것은 처음이었다. 모처럼 부자간에 어깨를 부딪으며 시외버스를 타고 여행을 하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덩치 큰 남자끼리 앉아 그런지 좌석이 좀 비좁게 느껴졌다. 우리는 자연스레 무장해제를 한 탓인지 도반처럼 친구처럼 편안해졌다. 버스 기사에게 문막 임시 정류소에 세워 달라고 미리 부탁해서 그런지 친절하게 문막 안말 임시 정류소에 차를 세워주었다.
4.
문막 읍네로 가서 과일 가게에서 딸기와 오린지를 샀다. 택시를 타고 무향리로 갔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과수원 초입이 시작된다. 지난 겨울에 눈이 왔을 때의 절경을 말로 설명해주었다. 설경 못지 않게 봄 경치도 장관이었다. 하슬린은 연신 탄성을 지르며 멋진 풍경들을 찍기 시작했다. 들머리 입석에 내가 새긴 문귀를 보고 하슬린은 사진을 찍었다.
"여기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미꾸라지 가재 한마리까지
무향마을의 소중한 재산입니다.
무향자연학교"
5.
하슬린은 무향과수원의 여기 저기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멋진 장면들은 다 찍어서 하예진 누나 보여줘야해요."
점심을 내가 차려서 하슬린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하슬린은 뭔가 나를 돕겠다고 했다.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고 했더니, 아니라면서 뭘 도우면 좋겠냐고 했다. 창고에 가서 목낫과 갈구리 등을 챙겨 나와서 과수원 뒤 골짜기를 함께 치우기로 했다. 나는 목낳으로 갈대를 뿌리 가까이까지 바싹 치고 하슬린은 갈구리고 검불을 긁어내고 물길을 손 보는 작업을 했다. 금방 온 몸에 땀이 젖었다. 그러고 보니 하슬린과 함께 이런 일 해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하슬린이 등뒤에서 말했다.
"아버지, 왜 일을 그리 급하게 하세요? 천천히 하세요. 그리 급히 하시면 몸살 하시겠어요."
"응, 빨리 끝내기 위해서 그런다. 이게 게으르로 미련한 사람 일하는 방식이다."
나는 무슨 일을 시작하면 몸 아끼지 않고 하려는 버릇이 있다. 시작하지 전에는 한없이 꾸물거리지만 일단 일을 시작하면 물불을 안가리고 몸 아끼지 않고 미련하게 일을 하는 편이다. 이런 나를 아들은 금세 알아본 것이다.
6.
이번에는 주자창 앞에 있는 무향연못을 넓히는 구상을 말하였더니 하슬린이 장화를 신고 연못으로 내려갔다. 처음에는 하슬린이 작업하는 것을 흐뭇한 표정으로 구경하다가 나도 삽을 들고 연못으로 내려갔다. 두 사람이 손발이 척척 맞아 그런지 금세 잡업이 끝이 났다. 연못이 약 삼분의 일정도 더 넓어졌다 하슬린은 몆번이나 혼자 하겠다고 했지만 한사코 내가 거들겠다고 했다.. 농사꾼의 작업량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겠지만 내딴에는 엄청 힘이들었다. 어깨가 쑤시고 허리가 끊어지는 듯 하였다.
7.
하슬린 사정이 무향자연학교에서 하루 밤 자고 갈 수가 없어서 저녁에 서울로 가기로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시외 버스 같이 탄 기억도 없어, 아버지 생각을 하면 언제나 애잔한데, 너는 이제 애비와 시외버스도 함께 타보고, 과수원에서 함께 작업도 하고 ,연못 넓히기도 하고, 돌 비석 바로 세우기도 하였으니 나보다는 낫다. 언젠가 내가 죽고 나면 오늘 우리가 서울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서 시외버스를 타고 강원도 원주까지 와서 보낸 하루의 추억만해도 네 기억 속에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하슬린은 오늘 무리를 한 탓인지 차창에 기대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8.
잠든 하슬린의 옆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나는 우리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순간 순간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을 터인데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순간 순간 아들과 거리를 좁히려고 무던히 애를 썼을 것이다. 나는 우리 어버지의 그런 마음을 읽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버지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소박한 사랑을 전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다.아들에게 다가가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쓸쓸했겠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를 생각하니 내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하슬린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이놈은 내 마음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www.songhyun.com)
첫댓글 결혼해서 철들어야 알겠죠.. 선생님의 나이만큼 되면 더 알것이고요..ㅋㅋ
아버지는 순간 순간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오려고 했을 터인데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순간 순간 아들과 거리를 좁히려고 무던히 애를 썼을 것이다. 나는 우리 어버지의 그런 마음을 읽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버지가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저도 이부분은 놓치고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알면서도 아버지와 거리를 좁히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내 자식이 그렇게 하는 것을 느끼면서 깨닫고요. 감동깊게 읽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둘만의 여행~멋있어요.
엄마와 딸처럼~쫑알쫑알의 여행은 아니지만,
무게가 느껴지는 추의 움직임처럼...ㅋㅋ
우리집 아빠와 아들~둘만의 두번째 여행에서 세번째로 가는중입니다.
두남자의 여행도 무게가 느껴지는 추처럼...ㅋㅋ 과연 추의 무게는??
우리 아버지도 저희 어렸을 적에 가족을 다 태우고는 절대 움직이지 않으셨어요.송현선생님처럼 한가족이 한차에 다 타고 다니다간 큰일난다는 주의셨거든요. 좀 구닥다리라고 생각했지만 식구가 6명이라서 그럴 수도 없는 처지였어요.그래서 자식을 4명까지 두셨나........무향자연학교가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는데요...나중에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께서 아버지에 대한 회상속에서 애잔함을 느끼듯이 시간이 흐른후 아드님이 선생님의 연배가 될때쯤이면 아마도 똑같은 회상에 젖지 않을까 싶네요. 여행을 통한 부자지간의 무언의 속삭임이 들리는듯 합니다.
아이들과 여행을 같이가려함은 먼후일 함께한 시간을 기억해달라는 작은 바람이 숨어있답니다.ㅎㅎ
지금의 낙과 먼 훗날 아련한 그리움...
오늘 다시금 밀려오는 그리운 부모님 모습 !!!
우리 남편이 항상 여행할 때 애들한테 이런 말은 해요.얘들아~~엄마랑 아빠랑 기회가 되면 여기를 또 올 수도 있겠지만 혹여 못 온다면 너희들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들이랑 같이 올때 예전에 우리 부모님과 이곳에 왔었지 하며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