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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특수요원 출신으로 조국을 위해 일하다가 딸과 부인을 잃은 리암 니슨이 유럽여행 도중 납치당한 딸을 찾기 위해 긴장감을 잃지 않는 액션 퍼레이드를 퍼부었던 영화다. 본의 아니게 극장에서 3번이나 보고, 이후로도 틈날때마다 종종 보는데 그 이후로는 <테이큰>을 기준으로 액션영화를 평가하고 비교하기까지 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던 차에 나온 영화가 바로 원빈 주연의 <아저씨>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며, 액션 스타일도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그리고 캐릭터 설정이나 배경 역시 비슷하면서도 전혀 달라 <테이큰>의 감동이나 전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이 영화만의 독특한 감동 때문에 2배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테이큰>이 마치 하나하나 미션을 깨는 게임과도 같은 느낌이었던 것에 비해 <아저씨>는 보다 우울하고 진지한 분위기였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랄까. 암튼 뭐 그렇게 느꼈다.
이미 이 영화는 수많은 관객들이 보고 호평했으며, 네티즌 평점도 9.5 혹은 그 이상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점수를 받았다(아마 연말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는 것은 필자가 느끼는 것 이상으로 다른 관객들 역시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나왔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그 내용과 멋진 배우에 흥분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인셉션>을 보면서 '와아~어떻게 저런 스토리를 짰을까?'라고 연신 감탄사를 내놓았지만(마치 톰 크루즈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봤을 때의 그런 느낌?), 그 감탄도 잠시. 한국 영화계는 지금 옆집 아저씨가 평정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멋진 액션과 화려한 CG, 탄탄한 스토리 라인, 매력적인 주인공이 영화의 인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라면 <인셉션>이 <아저씨>에 밀릴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영화는 지금 연일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에는 다음의 3가지 이유가 있다.
1. 기존에 보여지지 않았던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우리도 이제 홍콩 영화처럼 조직과 조직간의 암투, 우리가 모르는 뒷세계를 멋있게 그려낼만한 느와르 영화가 나오는구나~'를 깨달았고, 그 영화는 아니나 다를까 호평을 받으며 한국 영화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악마를 보았다>는 아마 두고두고 회자되며 이후 나올 하드고어물의 전신격으로 손꼽힐 것이다.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유명배우를 셋이나 모아놓고 독특한 소재와 아이템으로 무장한 한국형 서부활극 <놈놈놈> 또한 기록이나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두고두고 입에 오르내릴 영화일테고 말이다. <왕의 남자>는 사극이 어떻게 하면 관객들의 돈을 끌어당길 수 있는지, 무엇이 그렇게 관객들을 열광케하는지를 알려준 영화였으며, <괴물>과 <해운대>는 한국에서도 괴수 영화와 블록버스터 재난영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알려준 영화였다. 마지막으로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는 현대사에 있어 전쟁과 분단, 민족 상잔의 아픔 등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동을 주는지를 알려주는 대표적인 영화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만 더 덧붙이면 <쉬리>와 같은 영화가 또 한번 방영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긴 하다(드라마 <아이리스>가 큰 인기를 끌었던 것을 보면 분명 크게 인기를 끌 수 있을 것 같다).
암튼 이러한 영화들이 왜 한국 영화사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기게 되고, 또한 관객들이 저절로 지갑을 열게 했는지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볼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기존에는 없었던 스타일의 영화'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화려한 CG로 무장한 영화, 테러와 폭발, 암살과 무차별 살인 등이 묘사된 영화, 거대한 해일이 도시를 덮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영화 등은 그동안 한국과 맞지 않는 소재였다. 어떻게 한강에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살 수 있으며, 무슨 부산에 쓰나미란 말인가.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고 유행의 흐름도 바뀌어 버렸다. 패러다임이 바뀌었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더 이상 조직간의 암투나 요인 암살, 남-북한의 정치 · 외교적인 긴장감은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연일 변화하는 이상기후나 돌연변이 동물에 대한 내용(그런 면에서 거대 멧돼지를 그린 영화 <차우>도 한자리 차지할 수 있겠다) 역시 이제는 헐리웃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들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그런 흐름에 맞춰 등장한 <아저씨>는 정말 있을 법한 일을 현실적으로 잘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마약 밀수와 불법 장기 매매, 살인과 납치 등등. 헐리웃 영화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식으로 녹아낸 다양한 내용들이 이 영화에서 등장하고 있다.
기존에는 없었던 순수한 한국적인 액션영화, 그러면서도 현실적인 내용을 잘 그려낸 영화라는 측면에서 관객들과 소통하는데 이질감이 없었고, 오히려 관객들이 열광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원빈? 더 이상 미소년이 아니다. 그만을 위한 영화.
한때 블록버스터라는 이름을 내걸고 영화 <트로이>가 개봉되었지만, 관객들은 그 안에서 매력적이고 멋진 주인공 아킬레스(브래드 피트 역)에 환호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제작자 입장에서 아쉬울 수도 있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원빈을 위한 영화였고, 원빈이 혼자 힘으로 이끌어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 더 관객들은 열광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원빈은 지금까지 나약하고 청순하고 매력적이며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미소년의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쟁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그는 강인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카리스마있는 형(장동건 역)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 때문에 변해가는 형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영원히 이별하는 역할을 맡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이번에는 180도 변해 버렸다. 전직 특수요원(무술교관으로서 무술시범이 너무 잔인해 참관하던 국회의원이 심장 쇼크를 일으킬 정도의 무시무시한 사람) 출신으로 아픔을 겪고 조그마한 전당포를 운영하던 그에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마약 밀매와 불법 장기 밀매, 경찰과 국정원의 조사, 듣도 보도 못한 놈들의 공격,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을 '아저씨'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와준 소미의 납치...
영화 <테이큰>은 따지고 보면 영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앞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영화였다. 영화 초반 유명 가수의 경호를 맡게 된 전직 특수요원 브라이언 밀스(리암 니슨 역)의 선방, 직업상 가족에게 소홀한 그를 버리고 돈 많은 놈에게로 간 와이프, 철부지에 왈가닥인 딸내미 킴(매기 그레이스 역)과 그녀를 두둔하며 아버지를 몰아세우는 와이프 등등.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과 그의 신변에 대한 내용이 공개되고 뒤이어 거짓말까지 하면서 유럽 여행을 가는 킴이 납치를 당한다(딸내미 여행 보내려고 거짓말에 동참한 전 와이프는 결국 전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게 되고...어처구니가 없구만). 그렇게 영화 초반부에 앞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날꺼요~'라는 프롤르그가 친절하게(?) 깔렸기 때문에 영화를 보면서 '하나하나 미션을 깨는 게임' 같다고 느꼈던 것이다. 순서에 의거해 차례처례 정리가 된 액션 영화랄까? 하지만 <아저씨>에 그런 친절한 소개는 없었다. 차태식이 전에 뭘 했고, 왜 지금 전당포를 하는지 등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소미의 엄마가 어떤 여자였고, 왜 마약 밀매에 껴들었는지도 안 나온다. 하지만 사건은 일단 벌어지고, 차태식은 관객과 똑같은 루트를 통해 사건의 중심으로 한발 한발 다가간다. 그 점이 <테이큰>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스토리 라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거기다가 나이 많은 아버지가 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젊고 매력적인 옆집 아저씨가 자신과 전혀 피 한방울 안 섞인 옆집 소녀를 구한다는 설정이 더 극적인 긴장감과 감동을 주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역할을 원빈이 했기에 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극장 안의 여심을 뒤흔든 바로 그 장면. 음. 멋지긴 하다>
3. 뚝심있게, 일관되게 스타일을 지켜낸 영화.
음...그러니깐 이 영화는 액션, 드라마의 장르에 속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이런 액션 영화들을 보면 중간중간 로맨스가 끼어든다거나, 코믹적인 요소가 섞여 극적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면을 볼 수가 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첩보 영화 시리즈인 <제임스 본드>를 보자. 이건 아예 처음부터 본드와 본드걸이 등장해 액션 중간중간 훈훈한 눈요기(?)를 선사한다. 본 아이덴티티로 시작하는 제이슨 본 시리즈와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 물론 여기에도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하지만, 그녀는 다음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촉매제 역할을 하면서 영화의 인기를 견인한다. 마치 <올드보이>에서 최민식과 강혜정이 부녀 지간인지 모르고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즉, 이런 액션 영화를 보면 으례 겁나 멋진 남자 배우가 등장하고, 그와 사랑에 빠지는 겁내 매력적인 여자 배우가 등장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영화를 이끌어 가는데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부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냉정한 킬러로 등장한 그는 복수에 똘똘 뭉친 이병헌과 비교했을 때 보다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런 면에서 <아저씨>는 뚝심있게 원빈 하나에 집중 조명하면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영화 초반 소미의 엄마가 추파를 던지는 장면도 있지만, 가슴 속에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사는 원빈에게 다른 여자는 눈에도 안 들어올 것이다. 원빈은 철저하게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그 선을 사랑하는 마음은 죄없는 어린 아이들에 대한 그의 눈물과 말없는 표정으로 표현되고 있었고 말이다. 어차피 부모도 버린 애들 몸값이 얼마나 하겠냐면서 떠들어대는 악인에게 '너는 지금 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어~'(정확한 대사인지는 기억 안 남)라고 말하며 냉정한 응징을 가하는 원빈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독한 영웅, 그 자체였다. 어떻게 보면 아들을 잃고 변모하게 되는 <데스센텐스>의 아버지 닉(케빈 베이컨 역)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암튼 원빈은 그 캐릭터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모습을 잃지 않는다. 무뚝뚝함 속에서 스며 나오는 애정이 잔잔하게 영화 전반부를 흐르고 있다고 해야 할까? 마지막으로 나쁜 놈을 응징하고 살아있는 소미를 향해 한 그의 첫 마디는 '오지마. 피 묻어'였다. 이 얼마나 캐릭터에 충실한 대사란 말인가.
자잘한 것들 다 치워내고, 순수하게 액션과 드라마적인 요소만 뽑아내 잘 버무린 영화였기에 그 순수함에 관객들이 열렬하게 호응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리 와 ~한번 안아보자." 하면서 원빈은 그의 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갈무리한다>
마지막으로 몇마디만 더 하자.
이 영화에서 필자가 보는 내내 눈길이 갔던 배우가 하나 있었다. 태국의 국민배우 나타용 윙트라쿨이 바로 그인데 여기에서 그는 킬러 람로완 역을 맡아, 영화 내내 원빈과 철저한 대립구도를 세웠다. 특히 그는 비록 범죄 조직에서 일하고 있으나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준 소미에게 연민을 느껴 그녀의 목숨을 살려주고, 영화 후반부 태식과의 대결에서는 총을 버리고 1:1 정면 승부를 펼쳐 새로운 킬러상을 표현해냈다. 특히 영화 후반부 원빈과 펼친 대결은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액션씬으로서 영화의 대미를 장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멋쟁이 킬러 람로완>
필자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선배한테 재밌다고 하자, 선배는 '어설프게 총 쓰고 칼이나 몽둥이로 싸우는게 테이큰과 비교되니 별로였다.'라고 했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필자는 오히려 그래서 더 이 영화가 재밌었고, 친근하게 와 닿았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헐리웃 영화에서 나오는 애들처럼 총 들고 설치는 그런 위험한 나라가 아니지 않는가. 보다 현실적인 영화, 헐리웃식 액션영화를 베끼지 않고 순수하게 충무로식 액션영화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더 재밌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이 글을 보시게 될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 영화를 봤을텐데, 혹시 못 본 분들이 있다면 한번쯤은 보시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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