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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 상반기 신인상
최해숙
2012년도 상반기
신인상 심사평
사유의 도전, 의식의 내면 풍경
최해숙의 수필 「줄탁동시」 외 4편
심사위원
박 양 근 (수필가. 문학평론가. 부경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최 원 현 (수필가. 문학평론가)
한 상 렬 (수필가. 문학평론가. 계간 『에세이포레』 발행인)
2012년 여름 『수필세계』는 한 명의 걸출한 작가를 뽑아 올렸다. 최해숙의 신인상 당선이 그러하다. 2009년 평사리문학상 수필부문에서 「고치」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의 수필 「줄탁동시」, 「중절모」, 「할미꽃」, 「업(業)」, 「콩 반쪽」의 읽기는 도토리 키 재듯 고만고만하다. 충격적인 소재나 낯선 제재의 해석과는 거리가 있으며 그렇다고 포복할 해학이나 기지가 담겨 있지도 않다. 또 미학적 언어와도 무관하다. 하지만 그의 수필 읽기를 마치면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게 있다. 존재에 대한 각성, 실루엣처럼 무채색으로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정감의 깊이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유형지(流刑地)에서 존재를 사색하듯, 의식의 내면 풍경을 보여 주는 화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한다. 그래 그의 수필은 젊은 수필가의 목소리에서 읽어내는 생기발랄한 환희의 깃발이기보다는 원숙한 삶의 경지를 간파하게 한다. 생활 철학이 그러할까. 다만 중요한 사실은 그의 수필이 적어도 사유의 도전이요, 도발이란 점에서 인간학적 수필의 경지를 감지하게 한다. 이 점이 아마도 평자의 선택 항목에 들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 보라. 지금 우리는 우울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시대가 앓고 있는 이 우울증은 지난 세기의 우울증과는 퍽 다르다. 자신이 우울증을 앓는 지도 알 수 없을 만치 심각한 무감각함에 젖어 있다. 그 무감각은 일종의 삶의 한 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그래 이 시대는 어떤 새로운 사유의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글쓰기는 이런 사유의 도전이요, 도발일 것이다. 어쩌면 주술(呪術)이 가상을 만드는 현실의 소망, 최해숙의 일련의 수필은 이를 닮아 있다.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다. 그는 솜씨가 아주 뛰어난 이였다. 어느 날 아름다운 조각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어찌나 아름다웠던지 그만 자신이 빚은 조각상의 자태에 흠뻑 빠지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여인과도 사랑을 나눌 수가 없게 되었다. 조각상의 여인을 향한 사랑은 날로 뜨거워져만 갔다. 하지만 그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조각상은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다. 용광로처럼 그의 사랑의 열기는 뜨거웠지만 그녀는 냉정하기만 했다. 혼자 사랑에 불타 조바심하던 그는 할 수 없이 여신 비너스에게 가 간청했다. 조각상과 똑같이 생긴 여인을 내려 주십사고……. 그러자 그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한 비너스가 마침내 그 차가운 대리석을 생명이 있는 따스한 육체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예술은 이렇게 주술이 가상으로 여겨지는 순간에 탄생한다. 가상을 만듦으로써 현실의 소망을 이룰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수필은 작가와 현실의 정서적 등가에 놓인다. 자기관조와 자기투영이라는 수필의 지향은 다난한 현실 위에 구축한 정서적, 사변적 깃발이 된다. 살되 어떻게 사느냐 하는 인간 삶의 궁극적 향방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곧 수필문학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수필문학은 자기 얼굴 그리기요, 성 쌓기에 이르는 구도의 과정과 접맥된다. 이는 수필이 존재 해명의 문학이요, 인간학이라는 측면을 배제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하나의 표상이다. 독일의 철학자 지멜(Georg Simmel)은 타인에 대한 해석, 타인의 내적 본질을 분석하는 것을 억제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 의미 있는 초상화를 볼 때마다 우리는 그 표상 뒤에 어떤 속내가 숨어 있는지 알고 싶어 하는 독심술과도 같은 유혹에 속절없이 빠지게 된다.
존재, 유형지(流刑地)에서의 사색
수필문학은 사유와 상상이다. 수필문학에서 사유를 전개할 때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실마리가 문제가 된다. 실마리를 무엇으로 잡느냐에 따라 사유의 전개는 달라진다. 이런 사유는 현실에서부터 출발한다. 문학이 상상의 세계라지만 수필의 경우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세계를 그린다면 애초 수필이 요구하는 존재 파악과 멀어지게 된다. 때문에 수필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게 된다. 여기 현실은 드러남(現)과 숨음(實)의 이중적인 방식으로 주어지게 된다. 수필작가는 드러남 저편에 숨어 있는 실재를 탐구하지만, 모든 탐구는 궁극적으로 드러남 자체에서 그 근거를 구할 수밖에 없다. 하기에 수필문학은 존재론이라는 담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유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사태를 두루 생각함을 뜻한다. 낯선 표현이지만 사유하는 사람을 사유가(思惟家)라 한다. 사유가는 두 가지 그에게 주어진 과제와 운명으로 요약된다(이종승, 『크로스오버 하이데거』, 생각의 나무, 10-11쪽) 그 하나는 그의 앞에 펼쳐지는 사태의 근원을 소급하여 그 시원에서부터 사유하는 것이요, 둘째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앞으로 펼쳐질 사태를 맞이할 채비를 그 사유로부터 길어내는 것이다. 전자가 과거로 소급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사유라면, 후자는 현재로부터 미래를 투사한다는 점에서 계시적 사유일 것이다. 삶의 공간은 기본적으로 윤회생사의 세계인 바르도(Baedo), 곧 유정(有情)이 태어남으로 인해 처할 수밖에 없는 유형지(流刑地)의 모습을 띨 수밖에 없다. 몸을 입음으로 인해 치러내야 할 형벌, 유형(有形)은 또한 유형(流刑)이 된다.
새벽에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조금씩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온종일 반복되는 진통과 씨름하다가 해 그림자가 길게 누울 때에야 병원에 갔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는 바쁠 일도 서두를 일도 없다는 듯 느긋했다.
―「줄탁동시」에서
이윽고 내 몸에서는 분명 열 달을 품었던 달덩이가 빠져나갔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서두에 도입한 아이에 초점이 맞춰져 아이의 출생과 관련한 기막힌 사연을 직조하고 있다. 이어서 이 수필의 사유와 상상은 줄탁동시와 접맥시키고 있다. 울어야 할 아이가 울지 않음은 일종의 유형(流刑)이다. 유형(有形)이 태어남으로써 유형(流刑)은 존재한다. 시선은 아이의 출생 전에 남편이 사 온 병아리에 있었다. 병아리는 날마다 벽지가 찢어진 부분에 부리를 대고 쪼았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구멍에서 흘러내리는 모래가 버석거렸다. 그 즈음 산달이 다 되어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두꺼운 종이로 구멍을 막아 버렸다. 그리곤 며칠 뒤, 산통이 온 것이다. 우연의 사태를 바라보는 화자의 존재 사태에 대한 인식이 특별하다. 별것 같지 않은 화소지만 그의 손에 이르면 변용과 치환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일상성을 뛰어넘는 해석과 철학적 담론이 이내 독자를 매료시킨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눈 위에 남겨 놓은 발자국 되짚듯 지난 며칠을 되짚어 가다 보니 내가 막은 구멍 생각이 났다. 이런 사유로부터 이 수필의 전개는 해결의 기미를 찾게 된다. 바로 불가의 수행 지침서 벽암록의 줄탁동시이다. 주제 제시를 위해 두 예화가 긴밀하게 연접되어 통일성을 이룬 이 수필은 예나 지금이나 온전한 어미가 되지 못함이 더없이 미안하고,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엇길로 나가지 않고 꼿꼿이 커 주어 고맙다.란 해석과 자기화를 통해 공감하게 한다. 이런 사유는 앞의 논의에서 전자에 해당하는 이른바 그의 앞에 펼쳐지는 사태의 근원을 소급하여 그 시원에서부터 사유하는 것이요에 해당할 것이다.
수필 「업(業)」 또한 이런 유형지의 모습, 인연의 고리를 주제로 하고 있는 하이데거의 존재 사태에 접맥되어 있다. 이 수필 역시 우연찮은 화자와 병아리의 인연을 화소로 하고 있다. 그 교차점에는 남편이 있다. 남편은 화자에게 있어 비교적 우호적이지 못하다. 시중의 닭고기가 입맛에 맞지 않아 병아리를 키워 잡아먹을 심산이었다. 화자는 이를 일종의 외도로 보고 있다. 어느 해는 장터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를 사 왔고, 어느 해는 고무 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라를 사 왔다. 그네들의 처한 상황이 안쓰러워 덜렁 사 와서는 이내 온 마음을 쏟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남편은 병아리에게 정성을 다 쏟았다. 그러던 어느 날 횃대에 앉아 있어야 할 닭이 보이지 않았다. 닭장 안에는 깃털만 분분했다. 애꿎은 담배만 태우는 남편의 마음이 화자에게도 전이된다. 화자는 이쯤 하여 자신의 속내를 풀어낸다. 온 마당을 돌며 배설을 해 놓아 바쁜 아침 시간을 축내더니 잘되었다며 모진 말을 뱉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 안타깝고 서운하기는 내 마음도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라고. 이 수필 역시 도입한 예화의 서두에는 아기가 등장한다. 그 어떤 영화(榮華)보다 그녀를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전생에 시녀의 화신으로 빚을 받으러 왔다는 고백은 아이와 병아리의 상관적 관계를 통한 유형지의 인연의 고리일 것이다. 전자의 「줄탁동시」에서 보듯 우연적 결합을 유형(流刑)을 통해서 존재의 문제를 해명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간파하게 한다. 하지만 주제 구현에 있어서는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
좋은 수필은 아무리 세계가 주목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다 해도 작품에 담은 모든 것과의 완전한 조화 속에서 울림을 일으킨다. 외부 세계는 우리의 행동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예술작품에서는 오로지 반응만이 있을 뿐이다. 이 반응에 놀라운 것은 그 솔직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삶의 여백은 작가의 내밀한 혼의 울림이 담겨 있다. 세계는 인간 내적 욕망의 외적 표명에 대하여 철저히 중립적이다. 그러나 예술의 반응은 너무나도 민감하다.라고 언명했던 데드 올랜드의 말을 상기하게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작품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아무도 똑같은 강을 두 번 건너지 못한다.에 이르게 된다.
의식의 내면 풍경
문학은 철학의 명제처럼 논리적인 언어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오히려 모순적이고 비약적인 언어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문학은 파괴된 내면을 조심스럽게 깁고 피 흘리는 상처를 닦아내는 데 더 효과적인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치며 아우성치고, 그러나 그 위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강처럼 인간의 온갖 모순된 삶을 싸안고 흘러간다. 그래 때로는 갇혀 있던 슬픔의 물꼬를 조금씩 틀 수 있는 게 문학인지도 모른다.
수필 「중절모」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신사의 중절모를 통해 문득 부친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 중절모는 아버지의 대리자이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무료한 시간, 공원을 배회하던 아버지. 어머니가 정성스레 손질한 모시옷을 받쳐 입고 까만 양복에 지팡이를 짚은 화자의 부친은 언제나 노신사였다. 하지만 자신의 멋에만 취했을 뿐, 가족을 보호하지는 못했다고 술회한다. 게다가 인근에 시앗을 둔 사연으로 인해 동네 사람들의 입초시에 올라야 했다. 이와 대비적으로 모든 것을 가슴으로 삭여야 했던 어머니의 고난은 어떠하였으랴. 끝내 어머니는 가산을 일궈 도시로 옮겨 앉아 식솔을 대신하여 삶의 짐을 도맡았다고 한다. 반면 부양 능력이 없어 어디고 마음 붙일 수 없던 아버지―성정이 호방하고 풍채도 좋아 밖에서는 따르는 이가 많았지만, 가족을 부양할 가장으로서는 낙제생이었다―는 담장 안에 세월을 묶었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중풍이란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이런 가족사의 대비적 관계가 이 수필의 주류를 이루면서 관계 형성의 아픔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만일 이 수필이 서사로만 진행되었다면 보통의 수필과 하등 차별화되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수필은 이쯤 하여 부친에 대한 회고담이 정서적으로 직핍되고 있다.
걸음만 늦어지는 게 아니었다. 긴 팔을 흔들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가에 시린 햇살 같은 애잔함이 묻어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휘청거리며 차에 오르는 아버지는, 팔도가 좁다며 자유롭게 누비고 다니던 힘 있던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을 삼킨 듯 목이 화끈거렸다.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는 원망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중절모」에서
부성애가 이 수필의 말미에 애잔하게 깔려 있다. 딸과 아버지의 인연의 고리, 삶의 무게로 인해 고통받아야 했을 어머니. 이런 가족 관계의 인연이 배태(胚胎)하는 사유의 깊이는 상상과 어우러져 존재 규명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가슴 뿌듯한 추억 한 자락 만들어 주지 않았어도, 물려준 재물이 없어도, 영육을 나누어 준 아버지는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 내 마음의 고향임을 저 중절모가 깨우쳐 준다.는 결미의 여운을 담은 언사가 주제 구현을 위한 메시지로 충분하다.
이처럼 세상살이에 있어 얽힌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치밀성이나 주제 의식의 강렬함이 효과적일 것이다. 최해숙의 수필은 이런 측면에서 다소 긴장감이 풀어진 느낌이 없지 않으나 진솔한 개성의 노출, 자기투사(自己投射)라는 관점에서 작가의 인격과 함께 사유와 상상을 읽게 한다. 흔히 문(文)은 인(人)이다라는 말이 있듯 문장이 곧 인격의 표현이며 고매한 인격에서 깊은 글이 나오고 천박한 인격에서는 얕은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즉 글이란 혼(魂)의 울림이요, 영(靈)의 외침이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해숙의 수필은 일상성에 치우친 취약함에 없지 않으나 얽힘을 풀고 조화를 이루기 위한 메시지를 읽게 한다. 이런 인격의 표현과 자기투사라는 경향성은 다음의 수필 「할미꽃」이나 「콩 반쪽」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개미 한 마리 얼씬 않아 고요한 때는 나도 슬슬 부아가 끓는다. 내가 저희들을 어찌 키웠는가. 손발이 거북 등짝이 되도록 온갖 험한 일 하면서도 저희들 앞날이 신작로처럼 쭉쭉 뻗어 가기만을 일구월심 빌고 또 빌었는데, 아들은 고사하고 딸들마저 코빼기도 안 비추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가도 팍팍한 세상 사느라 오죽 힘이 들면 그럴까, 마음을 다독인다.
―「할미꽃」에서
화자는 지금 병상에 누워 있다. 하얀 벽을 마주하고 있다 보면 육신의 아픔도 그러려니와 병원이란 공간이 자연 삶에 대해 여러 가지를 사색하게 한다. 무엇보다 눈이 만만치 않다.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물체를 또록또록 볼 수 없으니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자연 보이지 않으니 소리라도 들어야겠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꿈속에서도 듣고 싶은 자식들의 목소리가 모깃소리처럼 앵앵거린다. 이런 상황 자체가 화자로 하여금 심리적 부담을 준다.
그래 그의 의식의 내면에는 자식을 떠올리게 한다. 한숨 자려는데, 옆 침상에서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 노랫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노인네가 어지간히 심심했나 보다. 사람이 그리운 모양이다. 이쯤 이 수필은 늙음과 관계의 연줄을 끌어냄으로써 존재의 문제에 대한 사유와 상상을 불러온다. 주제 구현을 위한 구조적 밀도감이 다소 느슨하긴 하지만, 화자의 의식의 내면 풍경을 섬세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런가 하면 「콩 반쪽」에서는 목욕탕 풍경을 통해 나눔의 의미에 대한 내면의 갈등과 그 해소를 보여준다.
나누지 못하는 것은 물질뿐이 아니다. 현대는 가상 공간의 활용이 일상화된 시대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많은 이들이 다양한 내용의 글을 올린다. 마음을 흔드는 음악에 귀감이 되는 글과 정보를 전하는 글 등, 몇 날을 다듬고 정성을 들여 올렸을 그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면, 더욱이 그것이 용기를 주는 내용이면 글을 올린 이들은 알게 모르게 힘을 얻을 것이다.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 마음 한 자락 내려놓으면 될 터이나, 메마른 내 마음은 그마저도 주춤거린다.
―「콩 반쪽」에서
최해숙의 수필 속에는 이렇게 작가의 고뇌와 창조 정신이 담겨 있다. 그의 수필은 순수 지향이지만 주관과 객관이 조화되어 있다. 이런 인간 존재의 의미를 밝혀내고자 하는 수필 작업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저 안두에서 직조한 수필이 아니라, 고뇌와 진통을 넘어선 삶의 의미에 대한 천착이 그의 수필 세계라고 하겠다.
끝으로 한마디, 우리는 누구나 일상적 삶을 살아가고 그 삶의 이야기가 수필이 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수필이 일상을 소재로 하여 창조된다는 점이며, 그 속에 숨어 있거나 묻혀 있는 삶의 진실과 본질을 미적으로 관조하여 인식과 깨달음의 언어로 들려준다는 점일 것이다. 이 경우 일상이란 늘 낯익거나 통속적이고 타성적이어서 감동을 지니기가 그리 쉽지 않다. 다만 동일한 대상과 사물일지라도 이를 작가 자신이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어떻게 새롭게 직조하느냐에, 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을 것이다.
수필을 향한 최해숙의 보폭에 힘이 실리길 기대한다. 지켜볼 일이다.
심사평│한상렬
신인상 당선소감
내 안의 또 다른 나
최 해 숙
2009 평사리 토지문학상 대상(수필부문) 수상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귀가 얇은 게 탈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욕망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감각이 있네.라고 하신 스승님의 말씀 한마디가 참 인 줄 믿고 지옥인지 극락인지 가늠도 않은 채 풍덩 발을 담그고 말았습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음을 알지 못한 채 삶의 파고에 밀려 비틀거리며 살았습니다. 그 즈음 아주 조금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다른 나를 챙기기엔 여유로운 현실이 아니었기에 외면하였습니다. 아니 움직이지 못하게 꾹 눌렀습니다.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움직이는가 싶더니 가슴을 비집고 들어앉았습니다. 늘 알 수 없는 한기에 시달렸었는데 갱년기 증상처럼 열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오며 가며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슴속에 무언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을 꺼내 보는 게 어떠냐고 귀띔을 해 왔습니다. 달리 길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못 이긴 채 따라나섰습니다.
처음에는 가슴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일이 개구쟁이 세발자전거 타기만큼이나 쉬워 보였습니다. 글을 쓰며 미운 사람 마음껏 미워할 수 있고, 배가 터지도록 욕을 할 수 있어 속이 후련했습니다. 문학이, 수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문외한이었기에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문외한의 착각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네에서는 팔등신 미녀도, 근육질 미남도 잘난 사람이 아닙니다. 제 마음에 차고, 다른 이의 가슴을 채워 줄 수 있는 글을 써야 잘났다 합니다. 한데 근기 없는 사람이 고치에서 실 뽑듯 글을 뽑아낼 수 없으니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습니다. 내 안의 나를 끌어내는 방법을 온몸으로 일러 주시는 스승님께 좋은 글로 보답을 할 수 없는 현실은 또 다른 무게로 가슴을 눌렀습니다. 어쩌다 내가 이 동네로 들어왔을까.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을까…….
저는 끈기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힘들다 싶으면 도망갈 궁리부터 합니다. 글다운 글이 써지지 않으니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를 앞세워 발을 빼려고 했습니다. 언제라도 들고 나갈 보따리를 가슴 한 귀퉁이에 숨겨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지난 몇 년간 글쓰기를 배우며 누린 마음의 평화가 고통의 무게 못지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는 울타리 안의 세상이 전부였습니다. 내 아픔이 가장 컸습니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내 아픔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작은 아픔일망정 드러낼 때는 소금에 절인 듯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아물게 하는 방법도 터득했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어느 누구를 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 아픔을 치유하고, 나를 가다듬어 세우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어떤 핑계로도 스스로를 허물어뜨리지 않을 지지대를 세우는 일이기에 도망가려던 마음을 등 뒤로 감추었습니다.
저는 무엇이건 건성 건성입니다. 글 쓰는 이들이 지녀야 할 섬세하고 예리한 자질도 타고나지 못했습니다. 감성의 메마르기는 가물에 갈라진 논바닥보다 더합니다. 문학의 향기 운운하는 글은 영 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등 뒤에 감춘 마음을 드러내어 도망가려고 안달을 할지도 모릅니다. 참 많이 걱정되지만 견뎌 보겠습니다. 배움의 끈을 놓지만 않으면 그 마음 또한 다스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직은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흙탕물이 이는 웅덩이입니다. 한 줌 한 줌 흙덩이를 들어내다 보면 맑은 물이 고이고, 누군가의 목마름을 적셔줄 우물이 될 수 있겠지요. 그 우물에서 따사로운 햇빛도 긷고, 시원한 바람도 길어 올릴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곰삭지 않고 호흡 짧은 글에 마음 열어 주신 수필세계 여러 선생님 고맙습니다. 모자란 딸자식 때문에 평생 가슴앓이 하시는 어머니, 제대로 된 글을 못 쓰고 의기소침한 제게 잘하고 있다며 용기 주시는 스승님 고맙습니다. 제 길만 열어 주고 먼 길 떠나 버린 선배, 쉽지 않은 길 함께 걷는 수필사랑 식구들, 게으른 사람을 아내로 어미로 두어 밥 많이 굶은 우리 집 남자들, 모두 고맙고 사랑합니다.
신인상 당선작품
줄탁동시 외 4편
최 해 숙
아이 방 창문을 닫는다. 코끝에 스치는 공기가 시원하다. 여름날 차디찬 우물물을 마신 것처럼 달다. 사람살이도 막힐 일 없이 이리 시원하고 달작지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방문을 닫고 나오려는데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입을 움직거리며 미간을 찡그린다. 꿈이라도 꾸는가. 꿈속에서 저를 힘들게 하는 존재는 이 어미가 아니어야 할 텐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초등학교 앞을 지나던 남편이 병아리를 사 왔다. 어린이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을 움직여야 할 병아리가 남편의 마음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황토에 모래를 섞어 벽을 바른 집에서 살았는데, 손길이 자주 닿는 부분의 벽지가 찢어졌다. 방 안이 제 놀이터였던 병아리는 날마다 벽지가 찢어진 부분에 부리를 대고 쪼았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구멍에서 흘러내리는 모래가 버석거렸다. 그 즈음 산달이 다 되어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두꺼운 종이로 구멍을 막아 버렸다.
며칠 뒤, 새벽에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통증이 내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조금씩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온종일 반복되는 진통과 씨름하다가 해 그림자가 길게 누울 때에야 병원에 갔다. 하지만 배 속의 아이는 바쁠 일도 서두를 일도 없다는 듯 느긋했다.
울고 웃는 시간은 더디 흘러 달빛이 창문을 기웃거릴 즈음 해산을 했다. 해산을 하면 가장 먼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내 몸에서는 분명 열 달을 품었던 달덩이가 빠져나갔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의사가 아이의 몸 이곳저곳을 두드렸지만 묵묵부답이었다. 분만실 안은 의사의 몸짓과 목소리만 가득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울지 않는 것은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이라 다급해진 의사는 대학병원으로 내달렸다. 그의 혼신의 노력 덕분에 마침내 숨통이 트인 아이는 맑고 또렷한 울음소리를 내며 내 품에 돌아왔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 눈 위에 남겨 놓은 발자국 되짚듯 지난 며칠을 되짚어 가다 보니 내가 막은 구멍 생각이 났다.
옛 어른들은 해산달에는 문구멍도 바르지 않는다고 했다. 구멍을 막으면 산모가 난산을 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 또한 해산하기 전에 주위 어른들로부터 누누이 들었던 얘기였다. 그런데도 한순간 그 기억은 벽장 속 고리짝에 넣어 놓기라도 했는지 까맣게 잊었었다. 벽에서 흘러내리는 흙가루에만 신경이 쓰여 냉큼 구멍을 막은 것이다. 물론 그 속설은 매사에 조심하며 살아온 선조들의 삶의 한 모습에 불과할 수도 있다. 내 아이도 우연히 숨길이 막혀 고생한 경우이겠지만, 요즘 아이를 보며 예전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 전 병아리가 벽을 쪼아 댈 때, 흙먼지를 닦아내는 게 성가시다는 마음 뿐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저 흙을 헤집는 습성 때문에 그러려니 했을 뿐이었다. 흙 속에 있는 모래를 삼켜야 소화시킬 수 있는 조류들의 생존 방식은 생각하지 않았다.
아이를 향한 내 마음 또한 그랬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부모의 힘든 상황은 헤아리지 않고 제 적성만 찾는 것 같아 속이 답답할 때가 있었다. 병아리가 벽을 쪼듯 제 나름대로는 숨길을 틔우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중인데, 그 얼마간의 시간을 참지 못해 아이를 볼 때마다 한숨짓곤 했다. 내 조급한 심사가 숨길을 막고 있었다는 걸 늦게야 깨닫는다.
불가의 수행 지침서 벽암록에 줄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고 신호를 보낼 때 어미가 알아차리고 같은 곳을 쪼아 주어야 수월하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닭은 어미가 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알 속 새끼의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나는 어떠했는가. 어쩌다 결혼을 하고 당연한 수순인 듯 수태를 했지만, 자식을 맞을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출산일 며칠 전부터 태동이 느껴지지 않았어도 무심히 넘겼다. 배 속의 아이로서는 움직이지 않는 것 또한 저의 상태를 알리는 방편이었을 텐데, 출산할 때가 가까워지면 원래 그렇다는 주위의 말에 더 기대었다. 주의 깊게 생각하고 미리 병원에 갔더라면 그렇게 숨이 막혀 고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 아이의 상황 또한 다르지 않다. 지금은 내가 자라던 때처럼 자식을 낳아 놓기만 하면 저절로 크는 시대가 아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기본적인 자질은 타고난다 하더라도 환경이 받쳐 주지 못하면 제 역량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험난한 세상에 맨몸으로 나가는 자식에게 그 몸을 지킬 실오리 같은 힘도 보태지 못했다. 저는 세상을 향해 쉼없이 쪼아 대고 있는데, 그 소리에 귀도 마음도 기울여 주지 못했다.
무슨 꿈을 꾸었을까? 힘이 들었는지 푸우 한숨을 내쉰다. 잠자는 시간마저도 편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예나 지금이나 온전한 어미가 되지 못함이 더없이 미안하고,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엇길로 나가지 않고 꼿꼿이 커 주어 고맙다. 머잖은 날에 숨길이 온전히 트여 누구의 도움 없이도 고른 숨을 쉴 수 있기를 빌면서 잠이 든 아이의 가슴을 가만히 쓸어 본다.
중절모
가을이 되었다. 노란 은행잎들이 비가 되어 내린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신사가 저만치 앞에 걷고 있다. 눈에 익은 모습이다. 서둘러 몇 발자국 따라가 본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온다. 노신사가 중절모를 쓰고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중절모만 보면 아버지 생각을 하게 된다.
중풍으로 쓰러진 후 일을 할 수 없었던 아버지는 무료한 시간을 보내느라 근처 공원을 오가셨다. 때로는 어머니가 정성스레 손질한 모시옷을 입고, 때로는 훤칠한 키가 더 커 보이는 까만 양복을 입고 지팡이 소리 또닥이며 다니셨다. 계절에 따라 옷은 달라져도 모자는 변함이 없었다. 늘 날렵하게 모양 잡은 중절모를 쓰셨다. 아버지에게 중절모는 꽤나 잘 어울렸다.
아버지가 저 모자처럼 따가운 햇볕을, 차가운 바람을 막아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멋에만 빠져 있었을 뿐 식구들을 보호해 주지는 못했다. 철모르던 시절 겪은 일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아주머니들이 넌지시 물었다.
너거 작은엄마 이뿌더나?
나는 이상하다는 듯이 아주머니들을 쳐다봤다. 작은집이 한동네에 있고 작은엄마가 예쁜지 안 예쁜지는 당신들도 알 텐데 무슨 소리냐 싶어서였다. 내가 눈을 둥그렇게 뜨자 아주머니들은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묘한 웃음을 흘렸다.
아버지는 사주에 역마살이 있었던지 늘 바깥으로 다니셨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좀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그 치다꺼리를 하느라 더더욱 가족은 뒷전이었다. 손바닥만 한 땅뙈기에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일은 물론, 겨울에 모자라는 땔감을 해 나르는 사람도 어머니였다. 그런 지경이니 남의 이야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듣기 민망한 소리까지 나오곤 했다.
고향에서 더 이상 아버지를 바라보고 살 수 없었던 어머니는 막냇동생이 태어나자 도시로 거처를 옮겼다. 다니던 회사는 문을 닫았고, 농사일 또한 마음을 붙일 수 없었던 아버지도 하는 수 없이 어머니에게로 왔다. 어머니가 며칠씩 시골로 장사를 하러 떠나고 나면 아버지는 나와 동생을 보살폈다. 다른 사람의 밑에서 일을 할 수 없으니 직장을 얻기도 힘들었고, 장사를 해도 끈기가 없어 어머니의 반도 못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을 해서 가족을 건사해야 된다는 책임감이 없었다. 성정이 호방하고 풍채도 좋아 밖에서는 따르는 이가 많았지만, 가족을 부양할 가장으로서는 낙제생이었다.
예전처럼 거침없이 누비고 다니지 못한 탓일까. 담장 안에 매여 세월을 보내고 있는 아버지에게 반갑잖은 손님이 찾아왔다. 중풍이었다. 서둘러 치료를 한 덕분에 마비되었던 수족은 더디게나마 회복되어 갔다. 하지만 정신은 건강하던 날로 온전히 돌아갈 수 없었다. 자식들의 교육 문제며 혼사 문제 등 어느 한 가지도 기댈 언덕이 되지 못했다.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가슴 깊은 곳에 아버지는 없었다. 그런 아버지일지언정 살아 있을 때 자식 하나라도 짝을 맺어 주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성화에 나는 처음으로 선을 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신행에 함께 왔다가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기 위해 대문을 나섰을 때였다. 보폭이 커서 성큼성큼 멀어져야 할 아버지의 길이 제자리였다. 자식이라고 다정히 손 붙잡고 걸어 보지도 못한 지난날을 더듬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는 영 자식을 떼 놓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신 걸까? 아버지의 걸음이 자꾸만 늦어졌다.
걸음만 늦어지는 게 아니었다. 긴 팔을 흔들며 돌아서는 아버지의 눈가에 시린 햇살 같은 애잔함이 묻어 있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휘청거리며 차에 오르는 아버지는, 팔도가 좁다며 자유롭게 누비고 다니던 힘 있던 그 아버지가 아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뜨거운 것을 삼킨 듯 목이 화끈거렸다.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았다는 원망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너무 오래 어머니의 힘겨운 삶을 보고 살았던 탓인지, 몇 해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까지도 속속들이 애틋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거라던 친구의 말도 귀담아들리지 않았다. 무겁기만 한 어머니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 것이라는 생각뿐, 내게는 가슴에 남을 아버지와의 변변한 추억 한 자락 없었다. 그저 머리 위에 가체를 얹은 듯 무거운 모자의 무게를 견뎌 왔을 뿐이었다. 앞으로만 내닫는 햇살처럼 굴곡지지 않은 삶도 있지만 돌 틈을 돌다 땅속에 스미는 삶도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면서도 머리 위의 가체를 내려놓지 못했었다. 그것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손에 잡힐 듯 내려앉은 하늘 탓일까. 중절모를 쓰고 가는 노신사의 뒷모습 때문에 눈앞이 흐려진다. 계절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도 변하고, 푸른 잎에 단풍이 들 듯 철없던 마음도 붉게 물이 든다. 가슴 뿌듯한 추억 한 자락 만들어주지 않았어도, 물려준 재물이 없어도, 영육을 나누어 준 아버지는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사라지지 않는 내 마음의 고향임을 저 중절모가 깨우쳐 준다.
할미꽃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루가 열흘 같다. 시집이라고 온 후 하늘에 해 박인 날은 자리에 누운 적이 없었는데, 지는 해가 되어 드러누워 있으려니 갑갑증이 거품처럼 부글거린다. 움직인다고 해 봐야 꼬집어도 아픈 줄 모르는, 감각을 잃은 쪽으로 돌아눕는 게 고작이다. 아득한 세월을 살고 보니 어느 한 구석 성한 데가 없다. 팔다리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말도 시원시원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눈이 만만치 않다.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물체를 또록또록 볼 수 없으니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오래 전, 눈앞에 까만 점들이 오락가락하다가 뿌옇다가 하더니 만물이 흐릿해졌다. 좀 불편하긴 해도 아들 며느리가 살려고 용쓰는 동안 손자들을 내 손으로 거두는 데는 별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이즘에는 자식들 얼굴에서 눈도 코도 보이지 않고 동글납작한 모양만 어른거린다.
보이지 않으니 소리라도 들어야겠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꿈속에서도 듣고 싶은 자식들의 목소리가 모깃소리처럼 앵앵거린다. 귀에 입을 바짝 대고 말을 하지 않으면 도라고 하는지 개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아주 조용할 때는 주위의 소리가 희미하게나마 들린다.
지금도 창문 쪽에서 소리가 난다. 아무도 온 것 같지 않은데 자꾸만 이름을 불러 댄다. 이 자식 저 자식 보고픈 얼굴이 많은 게지. 저리 애타게 부른들 나 여기 있소 하고 금세 달려올 자식이 몇이나 될까. 불러 봐야 입만 아프고 가슴만 시리지. 옆 노인네가 그새 잠이 들었나. 매미 소리처럼 왱왱대더니 잠잠하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개미 한 마리 얼씬 않아 고요한 때는 나도 슬슬 부아가 끓는다. 내가 저희들을 어찌 키웠는가. 손발이 거북 등짝이 되도록 온갖 험한 일 하면서도 저희들 앞날이 신작로처럼 쭉쭉 뻗어 가기만을 일구월심 빌고 또 빌었는데, 아들은 고사하고 딸들마저 코빼기도 안 비추나 싶어 서운한 마음이 든다. 그러다가도 팍팍한 세상 사느라 오죽 힘이 들면 그럴까, 마음을 다독인다.
조용해서 나도 한숨 자려는데 이번에는 발치에서 소리가 들린다. 온몸을 옹그린 채 귀를 바짝 세운다. 숨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을까 싶어 숨도 쉬지 않고 들어 보니 노래를 하고 있다.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
저 노인네도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다. 잠 좀 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입을 떼려는데 귓전에 옹알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셋째 며느리다. 제 볼일 다 보고 선심 쓰듯 한 번씩 오는 게 서운해서 말도 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래도 오니 반갑다. 건너편 노인네도 사람 소리가 나니 반가운 모양이다. 노래 한 자락을 더 뽑는다.
하늘에는 천삼이요, 바다에는 해삼이라, 산에는 산삼이요, 지하에는 불로초라.
천삼, 해삼, 산삼은 이해가 가는데 지하에 불로초는 뭐람. 죽어 땅속에 묻히는 게 영원히 사는 것이란 뜻인가. 내 며느리가 뭐라고 했는지 노인네 목소리가 또다시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
뒷동산에 할미꽃은 늙으나 젊으나 꼬부라졌네.
젊어 꼬부라진 꽃도 있는데 늙어 꼬부라지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느냐고 읊어 대는 것 같다. 저 노인네도 사람이 그리운 게지. 그동안 찾아오는 이가 가물에 콩 나듯 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복이 많은 늙은이다. 며칠 전에는 큰며느리가 쇠고기를 볶아 왔었다. 한동안 입맛이 없고 이래저래 심사도 편치 않아 곡기를 넘기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며느리 덕에 입맛이 돌아 밥 한 그릇 다 비웠다. 어제는 막내아들이 손자랑 같이 와서 한참을 떠들다 갔는데, 오늘 작은며느리까지 와서 내가 좋아하는 요구르트를 떠먹여 주니 이만하면 복 없다 소리는 못 하겠다.
하지만 입맛이 돌아도 문제다. 밤낮없이 드러누워 있으니 대소변도 시원스레 나오지 않는다. 볼일을 한 번 보려면 젖 먹던 힘까지 다 써야 한다. 살아온 세월이 장구한데 그 힘인들 남아 있을까. 용을 쓰다 지쳐 도저히 볼일을 볼 수가 없다. 어쩔 도리가 없어 또 며칠을 참다 결국에는 돌봐 주는 이가 파내야 한다. 자주 볼일을 보는 것도 치우는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니 이래저래 처신이 말이 아니다. 사람으로 살면서 먹고 배설하는 일만큼은 제 힘으로 해결을 해야 되는데 몸뚱이가 말을 듣지 않으니 살아 있어도 산목숨이라고 할 수가 없다.
생각을 거듭하면 당장 숨을 거두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오는 사람마다 붙잡고 얼른 죽을 약을 사 오라고 억지를 부렸더니 더러는 와도 말을 않고 내 몰골만 살피고 간 모양이다. 그나마 맏손녀는 내 머리도 쓸어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고 하니 키운 보람이 느껴진다.
내 신세를 생각하면 오늘 당장 숨 줄을 놓은들 원통할 일 없겠지만, 맏손녀 혼사 소식이 감감이라 걱정이다. 나이가 가을 곡간의 나락 섬처럼 꽉 찼는데 어찌 짝이 안 나서는지 답답하다. 얼른 짝이 나서야 제 어미도 한시름 놓을 텐데. 숨 쉬는 일 말고는 죄다 남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형편에 누굴 걱정할 잡이가 못 되지만, 조손의 인연으로 만났으니 걱정을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밥을 먹고 좀 있으니 며느리가 달달한 빵을 입 안에 넣어 준다. 틀니를 빼놓아 야문 음식은 먹기가 거북한데 빵이 입 안에서 살살 녹는다. 오늘이 내 생일이라고 케이큰지 뭔지를 사 온 모양이다. 당장 숨을 놓고 싶다가도 맛난 먹을거리 한입에 서운하던 마음이 봄 햇살에 눈 녹듯이 녹아내리고, 생에 대한 미련이 봄 들판의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니 이 망령된 심사를 어이할 거나.
내 눈이 조금만 밝으면, 내 귀가 조금만 더 밝으면 이 적막 강산을 견뎌 맏손녀 혼사라도 보고, 내년 생일에 맛난 빵 한 번 더 먹어 보고 저 세상으로 가도 좋으련만, 욕심이겠지?
업(業)
옛날 어느 마을에 심성 고운 부부가 살았다. 부족함 없는 가세에 안팎으로 마음 씀씀이도 넉넉했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을 보살피는 일에도 진심을 다하는지라 주위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재물과 인망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일이 있었다.
손자 볼 나이가 되어 가도록 자식을 보지 못했다. 채워지지 않은 가슴 한구석은 늘 허전했다. 대를 이을 자식 하나만 점지해 주시면 바랄 게 없겠노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날을 보냈다. 지극한 바람에 부처님이 감동한 것일까. 그들에게 자식이 생겼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예쁜 딸을 낳았다.
부인은 지극 정성으로 아기를 키우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모습, 작은 눈에 눈물이 맺히는 모습, 자면서도 빙긋이 웃는 모습,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말끄러미 엄마를 올려다보는 아기의 모습은 어떤 영화(榮華)보다 그녀를 행복하게 했다. 날이 갈수록 행복감에 빠져들던 어느 날, 아기를 어르고 있던 부인이 중얼거렸다.
얘야, 너와 내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 이리 예쁜 아이로 내게 왔니?
가만히 듣고 있던 아기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전생에 엄마의 시녀였는데 엄마에게 빚을 받으러 왔답니다.
부인은 전생에 어느 대갓댁 외동딸이었다. 늘 담장 안에서 부모님 보호 속에 사는지라 바깥 세상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시녀를 조르고 졸라 바깥 구경을 하기로 했지만 돈이 필요했다. 부모님 몰래 바깥나들이를 해야 하기에 시녀에게 엽전 두 닢을 꾸었다. 나중에 갚아 주마 철석같이 약속을 했지만 끝내 갚지 못했다.
그 빚을 받기 위해 자신의 딸로 태어났다는 아기의 말이 놀라우면서도 신기해서 부인은 누워 있는 아기의 이마에 엽전 두 닢을 얹어 놓았다. 그러자 아기는 그대로 숨을 거두어 버렸다.
오래 전에 들은 작자도 출처도 모르는 옛이야기에, 어린 마음에도 놀랍고 안쓰러워 잊히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토록 놀랍고 안쓰러운 일이 어디 옛날이야기에만 있을까.
지난봄에 남편이 시골 장에서 병아리를 사 왔다. 시중의 닭고기가 입맛에 맞지 않아 직접 키워서 어찌해 보겠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애초 그럴 사람이 못 되기 때문이었다.
짧지 않은 세월 함께 살면서 남편은 몇 년에 한 번씩 외도 아닌 외도를 해 왔다. 어느 해는 장터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강아지를 사 왔고, 어느 해는 고무 통 속에 웅크리고 있는 자라를 사 왔다. 그네들의 처한 상황이 안쓰러워 덜렁 사 와서는 이내 온 마음을 쏟고는 했다. 그때마다 나는 투덜거렸다. 치다꺼리하기가 귀찮기도 했지만, 녀석들에게도 못 할 짓이라 생각해서였다. 사람이야 제 스스로 울을 만들어 닫고 사니 갑갑증이 덜할 테지만, 동물은 마음껏 움직여 제 본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이번에도 남편은 마누라가 무슨 생각을 하건 괘념치 않고 정성을 다했다. 마당 한 귀퉁이, 고추 모종이라도 몇 포기 심으려던 흙 무더기 위에 병아리가 살 집을 지었다. 아침마다 나가기 전에 모이와 물을 잔뜩 넣어 주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날은 식구들에게 성화를 부렸다. 여태 따로 운동이라고 한 적 없었던 사람이 퇴근 후에는 병아리 운동을 시킨답시고 주변 공원까지 갔다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병아리도 그에게 장단을 곧잘 맞추었다. 조용히 있다가도 남편이 들어오면 문 쪽으로 몸을 움직여 어리광 부리는 아이처럼 날개를 파닥였다. 안방까지 거침없이 드나들며 어미를 본 듯 잘 따랐다. 몇 달 지나 중닭이 되자 남편은 그물망으로 막았던 한 면을 잘라내었다. 이젠 컸으니 제 스스로 들락거리게 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는 일이 있어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돌아오니 횃대에 앉아 있어야 할 닭이 보이지 않았다. 더울 때는 서늘한 곳을 찾더라 싶어 막대기로 툭툭 쳐도 움직임이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침침한 닭장 안을 살펴보니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닭장 안에 분분히 흩어진 깃털로 미루어 길고양이에게 당한 듯 보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닭이라고 그 마음이 다르겠는가. 남편은 한참 동안 애꿎은 담배만 태울 뿐 말이 없었다. 온 마당을 돌며 배설을 해 놓아 바쁜 아침 시간을 축내더니 잘되었다며 모진 말을 뱉었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 안타깝고 서운하기는 내 마음도 남편과 다르지 않았다.
서운한 마음을 정리해야겠다 싶어 닭장을 뜯어내라고 잔소리를 해 댔다. 남편은 마지못해 대나무 발과 그물망을 걷어냈지만, 마당 한구석에 쌓아 놓고 치울 생각을 않는다. 지금도 현관에 걸터앉아 뼈대만 남은 그곳에 눈길을 두고 있다. 한 생명이 스러진 자리에, 그놈이 쪼아 먹다 두고 간 호박잎이 아픈 상흔을 덮고 있다.
전생의 빚을 받으러 온 아기와 엄마처럼, 병아리도 몇 달을 눈 맞춤 하며 부대낀 우리 식구들과 무슨 인연이 있었던가? 아니면 닭장에 침입했던 길고양이에게 주어야 할 무엇이 있었을까?
불가에서는 세상만사 어떤 일도 무연히 생기는 법은 없다고 한다. 내게 다가오는 어떤 인연도 내가 짓는 것이며 그 고리 또한 내가 풀어야 한단다. 아둔한 내 생각으로는 우리 가족과 병아리가 어느 고리에 얽혀 만났다 헤어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옛이야기 속의 내외가 대를 이어야 하는 소명에 매이지 않았다면, 내 남편이 무료함을 달랠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그토록 허망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볼 따름이다.
오늘도 나는 다양한 인연의 고리에 얽혀 함께 흘러가고 있다. 때로 하얗게 빛이 바랜 고리가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풀리기도 하고, 오륜기 속의 고리처럼 붉고 푸른, 노랗고 까만 새로운 인연들이 다가오기도 한다. 그것이 내가 싫어하는 검정이라 하여 쉽사리 끊어낼 수 없고, 좋아하는 초록이라 하여 마냥 붙잡아 둘 수 없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더라도 욕심이라는 걸림돌에 부딪혀 먹빛 삶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할 뿐이다.
내 어리석은 행보가 누군가의 가슴에 티끌만 한 상처도 남기지 않길 소망하며 내딛는 발걸음을 다시 한 번 살핀다.
콩 반쪽
입구에 신발들이 가득하다. 내게는 아직 새벽인데 많은 이들이 온 모양이다. 목욕탕 문을 열자 바가지 소리, 물소리, 이야기 소리가 마중이라도 하듯 왁자하게 뛰어나온다. 소리에 뒤질세라 때를 미는 사람들, 물을 끼얹는 사람들의 눈길이 촌각의 지체함도 없이 내 몸에 달라붙는다. 목욕 가방으로 앞가림을 하고는 바가지를 챙겨 욕탕 언저리에 자리를 잡는다.
뜨거운 물 몇 바가지를 연달아 끼얹어 몸을 헹군다. 머리까지 감고는 한참 동안 탕 안에서 뒹군다. 자고 눈뜨자마자 빈속으로 왔더니 허기가 지는지 탕 속에 더 있기가 힘이 든다. 얼른 물 밖으로 나와 가방을 뒤적인다. 목이 마를까 싶어 감귤 한 알을 챙겨 왔었다.
껍질을 벗겨 한 조각을 입에 문다. 아무 생각 없이 귤 조각을 씹으며 고개를 돌리는데 옆에 사람이 있다. 순간, 들고 있던 귤을 내려다보며 고민에 빠진다. 저 사람도 목이 마르지 않을까? 콩 반쪽도 나누어 먹는다는데 곁에 사람을 두고 혼자 먹어도 될까? 한 조각 떼어 줄까? 생각만 분분할 뿐 선뜻 내밀어지지 않는다.
먹는 것도 잊은 채 한동안 멍해 있다가 돌아보니 곁에 앉은 사람은 자신의 바구니에서 우유를 꺼내 마시고 있다. 그래, 탱자만 한 귤 한 알인데 나누어 먹을 게 있나. 저 사람도 내게 우유 좀 먹어 보란 말 하지 않는 건 매한가진데……. 알몸을 목욕 가방으로 가리듯, 엉거주춤하던 마음을 그의 손에 든 우유로 가린다. 잠시 동안의 번뇌와 반성의 마음은 사라지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돌이켜 보면 내 것을 나누는 데 참으로 인색한 삶을 살아왔다. 오늘처럼 아무런 연고가 없는 타인에게는 물론이고, 피를 나눈 형제에게조차 내 것을 선뜻 내주지 못했다.
십여 년 전이었나. 동생이 제집의 압력솥이 고장 나서 못 쓰게 되었다고 했다. 마침 내게는 쓰고 있는 것 외에 새것이 있었다. 우리 집에 새 솥이 있다는 말은 뱉었지만 솥을 순순히 주지 않았다. 어떤지 한 번 써 보고 주겠노라고 했다. 자그마한 게 모양이 예뻐 손이 오그라든 것이다. 막상 써 보니 손에 익지 않아 불편하고 아이들이 왕성하게 먹을 때라 솥이 너무 작았다. 그제야 선심 쓰듯 동생에게 주었다.
젊은 날의 처신이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탓이라 스스로를 합리화하지만,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도 안다. 그 시절 서민들의 살림이야 내남없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이웃에 제 것을 나누며 살고, 동생 또한 나와 달리 제 것을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 비해 나는 살아오며 남에게 무엇을 주기는커녕 늘 받으며 살고 있다. 좋게 보면 인덕이 있다 할 수 있겠으나, 물질이든 정신이든 남의 것을 받기만 하는 삶이 제 것을 주는 삶보다 아름답고 행복하다 할 수는 없음이다.
가끔 대중 매체에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내놓는 사람을 보기도 하고, 온몸으로 어려운 이들을 도우며 사는 사람을 보았다. 또한 살아서는 대중의 영혼을 위해, 사후에는 그들의 육신을 위해 자신의 신체를 내어 주는 성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내 삶도 저러해야지 하다가도, 현실로 돌아와 내 것을 내 놓아야 할 때는 주춤거리는 자신이 돌아보여 얼굴이 붉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누지 못하는 것은 물질뿐이 아니다. 현대는 가상 공간의 활용이 일상화된 시대이다. 인터넷에 들어가면 많은 이들이 다양한 내용의 글을 올린다. 마음을 흔드는 음악에 귀감이 되는 글과 정보를 전하는 글 등, 몇 날을 다듬고 정성을 들여 올렸을 그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면, 더욱이 그것이 용기를 주는 내용이면 글을 올린 이들은 알게 모르게 힘을 얻을 것이다. 슬플 때는 슬픈 대로, 기쁠 때는 기쁜 대로 마음 한 자락 내려놓으면 될 터이나, 메마른 내 마음은 그마저도 주춤거린다.
이유는 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인터넷에 들락거리느라 수월찮은 시간을 빼앗긴 경험이 있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의 감정 노출로 여러 일들이 일어나는 걸 보기도 했다. 내가 그런 일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내 감정부터 절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의 시간을 할애한다.
가끔은 컴퓨터 자판 글쇠를 누르다가 지우기를 반복할 때도 있다. 내가 하는 몇 마디가 이 사람한테 도움이 될까? 혹 오해를 하지는 않을까? 타인에게 용기를 주기 전에 내가 먼저 움츠린다. 음식을 해서도 마찬가지다. 이웃과 나누어 먹을까 생각하다가도 이 음식을 저 사람이 좋아할까, 맛없다고 흉을 보지 않을까, 주저하다가 그만 마음을 접는다.
누군가 나눔은 사랑이라 했다. 희망이라 하기도 했다. 내게 나눔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콩 반쪽이라도 내 진심을 담아 주변과 나눌 수 있으려면 뒷걸음부터 멈추어야 할 터이다. 사랑이 있으면 나누고픈 마음이 절로 인다고 하겠지만 용기 없는 내게는 사랑도 희망도 그다음이다.
불자인지라 타 종교의 내력을 알지는 못하지만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그 속사정이 어떻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 해석을 하건 간에 그 이야기야말로 나눔의 이야기, 세상이 존재하는 근원인 생명 나눔의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듯 콩 반쪽의 의미는 나눔의 의미이다. 여태의 내 삶은 누군가 내민 콩 반쪽을 받기만 한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그 반쪽의 반이라도 누군가에게 내밀어야 할 일이다. 콩 반쪽은 다가올 내 삶을 풍요롭게 해 줄 씨앗이 될 것이며, 사람살이는 혼자보다는 함께할 때 더 따뜻하니까.
목욕탕 안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물 끼얹는 소리, 바가지 부딪는 소리가 뽀얀 수증기를 타고 오르내린다. 소소한 일상을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도 날개를 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