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특징을 규정짓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포도 품종입니다. 그 품종 중에 단연 압도적으로 와인매니아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레드 품종이 바로 카베르네 쇼비뇽(Cabernet Sauvignon)입니다. 줄여서 캡(Cab)으로 부르는데 이 캡은 레드와인의 교과서, 레드품종의 제왕으로 불리는 등 별명도 많습니다.
이놈의 출생비밀부터 알아볼까요? 처음에 캡은 AD 71년에 로마시인 플리니(Pliny)가 기록한 비투리카(Biturica)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비투리카는 강우에 잘 적응하는 품종으로 비튀리쥬 비비씨(Bituriges Vibisci-골 지역의 남부에 살던 사람들)들이 현재의 보르도에 해당하는 부르디갈라(Burdigala)에 포도원을 건설하고 재배해 골지방 전체로 확산시킨 품종입니다.
또 스페인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이민 온 고대 품종으로도 생각되기도 했지만 캡은 18세기 샤토 브란느 무통(무통 로췰드가 되기 전 무통)의 오너였던 바롱 데 브란느(baron de brane)가 자신의 샤토에 심겨진 화이트 포도 품종을 캐내고 레드 품종인 베뒤르(Vidure= 뷔뉴 듀르(Vignu Dure :거친, 단단한 와인의 의미))로 대체시켰던 바로 그 품종입니다. 그 이후로 캡은 베뒤르란 별칭을 가지게 되고 아직도 그라브 지역에서는 때때로 캡을 베뒤르로 부르기도 한답니다.
캡은 메독와인의 발전과 그 궤를 같이 하는 품종입니다. 캡이 보르도에서 위대한 품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필록셀라와 오디윰균의 침입을 받고 난 19세기 말로 그때부터 메독지역에 널리 경작되게 되고, 메독을 레드와인의 성지로 만들고 보르도를 거쳐 19세기와 20세기에 신대륙으로 확산되면서 전세계 와인 산지에서 가장 좋은 레드와인을 만드는 품종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는 메독지방이 세계 최고의 레드와인산지로 군림하는데 걸린 시간과 궤를 같이 하고 있어 메독지방하면 바로 캡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원도 정확히 모르던 놈이 근래에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심겨지고 애호가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게 되자 캘리포니아 UC데이비스 대학의 유전자 연구팀에서 이 놈의 기원을 밝혀내려고 연구에 착수하게 됩니다. 1997년 5월 15일 캐롤 메레디스(carol meredith)박사팀들이 캡이 카베르네 프랑과 쇼비뇽 블랑의 교잡종임을 밝혀내게 됩니다.
이는 17세기 보르도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자라던 두 폼종이 우연히 이루어진 교차수분으로 새로운 성격의 품종을 탄생시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51가지의 다른 품종의 DNA를 조사하고 30종류의 DNA 표지를 비교해서 일치하는 두개의 품종을 찾았는데, 그것이 바로 카베르네 쇼비뇽과 쇼비뇽 블랑이었지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도는 현저한 DNA코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제까지의 여러 가지 설들이 반박의 여지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쇼비뇽 블랑은 화이트 와인을 만드는 품종인데 카베르네 프랑과 화이트 품종인 쇼비뇽 블랑의 교잡을 통해 더 강한 카베르네 쇼비뇽 품종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각 품종의 앞 뒤 글자를 따서 새로운 품종이 탄생했는데 쇼비뇽은 “쇼바쥬(sauvage)"란 야생을 의미하는 프랑스 단어에서 유래됐다고 합니다. 캡이 가지고 있는 거칠고 공격적인 성격이 상당 부분 쇼비뇽 블랑의 성질을 이어 받은 것 같습니다.
캡의 대표적인 특징이 4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알이 알이 작다는것입니다. 식용포도는 거봉포도처럼 알이 큰 것이 좋은데 레드와인을 만드는 포도는 알이 작아야 껍질의 비율이 높아져 타닌이나 색소를 추출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두 번째는 깊고 어두운 색입니다. 껍질의 비율이 높아서 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짙은 벽돌색을 내는 깊은 색을 가집니다. 세 번째는 두꺼운 껍질입니다 두꺼운 껍질은 색소와 타닌 추출에도 많은 도움을 주지만 포도의 부패를 늦추어주고 병충해와 추위에 잘 적응하게 해, 캡이 추운 독일 지방을 제외하고 와인을 생산하는 전세계에 두루 재배될 수 있도록 하는 원인이 됩니다. 네 번째는 많은 씨앗입니다. 캡은 씨 대 과육의 비율이 1:12에 해당할 만큼 높은 비율의 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타닌의 풍부함과 직결이 되는데 타닌은 산도와 함께 와인의 뼈대를 만들어 주며 맛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와인을 장기숙성핳 수 있도록 만드는 필수 요소가 되지요.
이밖에 캡은 늦게 싹이 나서 늦게 완숙하는 만생종으로 소출이 많지 않습니다. 만생종이라서 봄의 냉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소출이 작은 것은 바로 품질하고 연결되므로 가지치기를 덜해도 됩니다.
더군다나 재배하기 편하고 수확하기도 쉽고 리슬링처럼 가지가 튼튼해서 겨울의 추위에도 곧잘 견디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으니 포도를 재배하는 사람치고 싫어할 이유가 없지요.
그런데 캡도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성숙이 늦어서 가을이 습하거나 추운지역에서는 제대로 완숙하지 못합니다. 또 여름에 일조량이 부족해도 잘 안 익구요.
가장 큰 단점은 야생성을 띤 강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어 일찍 와인을 마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나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샤르도네처럼 오크와의 친화력이 강해 오크숙성을 많이 하는데 여기서 또 타닌이 첨가되니 긴 시간이 흐른 후에야 순해지는 야생마 같다고나 할까요?
그렇지만 영할 때는 떫은맛이 강하지만 숙성이 진행될수록 부드러워지고 복잡미묘한 향들이 생기면서 환상적인 향과 맛을 선사해 매니아들을 사로잡는답니다.
같은 포도라도 그 포도가 자라고 익은 토양이나 기후에 따라 다른 와인을 빚는다는 사실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청도의 씨 없는 감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씨가 생긴다고 하는데 이는 테루아를 얘기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겠지요.
캡은 보르도와 같이 북위 45도선에서 재배되면 떫은맛이 강한 반면, 칠레나 호주와 같이 남위 30도 선상에 있는 나라에서 생산된 캡은 매우 유순한 맛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주와 칠레 등의 나라에서는 캡만 사용한 단일품종의 와인들이 호평을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캡은 더운 기후에서는 블랙커런트의 전형적인 아로마와 맛뿐만 아니라 자두의 향과 맛도 나며 특히 칠레나 호주 등 남반구에서 생산된 캡은 종종 신선한 민트향이나 심지어는 유칼립투스나무의 향도 납니다. 지나치게 더운 기후나 비옥한 땅에서는 과일향이 지나쳐 포도쥬스처럼 느껴질 수 가 있습니다.
선선한 기후에서는 쓴맛의 아로마를 만들며 종종 피망을 잘라 놓은 것과 같은 향과 올리브 향을 냅니다. 오크는 와인의 미네랄 성분을 강화시키는데 보르도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시가박스 향이 나며 삼나무 향이나 심하면 연필 깍은 부스러기향이 나기도 합니다. 지나치게 선선한 지역에서는 완숙에 이르지 못해 풋풋한 풀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캡의 훌륭한 품질을 위해서는 성장기의 통제가 필요합니다. 성장력이 강해 많은 싹이 터고 잎이 무성해 여름기간동안 많은 전지작업을 해야 합니다.
캡이 좋아하는 토양은 배수가 잘 되는 자갈토양입니다. 그래서 메독과 그라브지역이 캡의 고향이 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이밖에 남반부의 메독이나 나파밸리로 불리는 호주 쿠나와라에 있는 톡특한 토양인 테라 로사(홍토)와 석회질 토양도 좋아합니다.
기후는 건조한 기후와 많은 일조량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기온이 다소 높고 축축한 진흙토양이 많은 보르도 우안 지역은 상대적으로 캡에게는 매력적인 지역이 되지 못합니다. 메독내에서는 자갈을 더 많이 함유하고 있는 마고에서는 캡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진흙토양이 좀 더 있는 생테스테프에서는 메를로와 카베르네 프랑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집니다.
이러한 토양과 기후조건을 갖춘 최상의 지역이 메독과 그라브 지역입니다. 보르도 와인의 심장부로 여겨지는 메독 와인의 핵심에는 바로 이 캡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캡은 보르도외에 캘리포니아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있습니다. 19세기에 보르도로부터 캘리포니아에 도입된 캡은 보르도와 비슷한 기후와 토질에 재빨리 정착합니다. 나파의 더운 여름은 높은 알코올의 무거운 맛의 레드와인을 생산하게 되고 19세기말까지 미국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도 단일 품종을 사용한 캘리포니아 캡와인은 높은 타닌으로 인해 10이나 20년이 지나야 마실만한 와인이었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렇게 기다려 주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로 비교적 서늘한 지역에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친숙한 피망향이 나고 포도의 품질은 충분히 익지 않은 상태에서와 비슷한 경향을 띠었지만 오크숙성을 통해 풍부한 과일향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해 캘리포니아와인은 놀랍게 부드럽고 풍부한 과일향을 가지고 있는 캡와인을 생산하게 됩니다.
캘리포니아는 보르도를 제외하고 최고의 캡와인을 만드는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소노마 카운티의 알렉산더 밸리와 나파밸리 그리고 센트럴 코스트의 파소 로블 지역 등에서 고도로 집중된 캡와인을 생산합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 1960년대 600에이커에 캡을 재배했지만 2006년 현재는 무려 4만에이커에서 캡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외에도 워싱턴에서도 캡와인을 생산하는데 이는 지난 1996년 강추위가 닥쳤을 때 포도밭의 메를로 품종은 전멸했는데 캡은 굳건히 견뎌낸 것을 계기로 이 지역이 메를로 위주 재배에서 캡위주 재보로 돌아서게 됩니다. 워싱턴에서는 보르도와 캘리포니아에서는 하지 않는 늦수확을 해서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늦수확을 하게 되면 와인의 당도가 높아지고 알코올이 세며 농익은 과일향이 두드러진 와인들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캡의 제3의 고향은 칠레 입니다. 오리지널 캡의 맛을 보려면 칠레와인을 찾아야겠지요. 칠레중에서도 센트럴 지역에 있는 메이포 밸리는 모래와 자갈, 석회질 등의 토양으로 포도재배에 가장 이상적인 지역입니다. 특히 캡와인이 좋은 소출을 내기로 유명한 지역이지요.
칠레에 못지않게 좋은 캡 와인을 생산하는 또 다른 나라가 호주입니다. 호주에서도 남호주의 쿠나와라는 석회질과 테라로사라 불리는 홍토와 서늘한 지역으로 명작의 캡 베이스와인을 만들어 내기로 유명합니다. 호주는 쉬라즈와 함께 1832년부터 캡을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메를로나 카베르네 프랑은 20세기 후반에야 재배됨)
호주에서는 쿠나와라외에도 마가렛 리버와 야라벨리 등 3대 지역이 좋은 품질의 캡 와인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마가렛 리버에서 생산되는 캡은 쿠나와라보다 풍미는 덜 화려하나 구조가 우수하고 과일향이 깔끔하며 산미와 타닌이 두드러진 가운데 피니쉬가 오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쉬라즈와 메를로와 함께 블랜딩 되기도 합니다.
야라벨리의 캡 베이스 와인은 견고한 구조로 밸런스가 좋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특히 마운트 메리(mount mary)의 퀸뎃 카버넷(quintet cabernet)는 호주 최고의 보르도 스타일 브랜딩와인입니다.
캡은 전세계에 퍼져 그 나라에서 최고의 와인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의 메리티지와인은 대부분 캡을 베이스로 브랜딩 된 와인들입니다. 또 캡은 이태리에서 슈퍼투스칸이란 위대한 반항아를 탄생시켰고캘리포니아에서는 인시그니아(insignia)와 오퍼스 원을 만들었으며 칠레에서는 알마비바로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밖에 남아공, 스페인, 아르헨티나, 레바론 등 전세계 와인산지에 그 터전을 깊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다음은 캡의 전형적인 향과 풍미에 대한 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