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면서 토요일인 지난 5월 15일, 하이서울뉴스 시민기자 8명은 역사문화기행을 다녀왔다. 이들이 첫번째로 택한 코스는 마침 중구 문화해설사로도 활동 중인 신성덕 시민기자가 무려 403회 다녀왔으며 서울에서 가장 아끼는 코스 중 하나로 추천한 안산 봉수대를 거쳐 연세대와 이화여대 교정으로 이어지는 서울 역사의 한마당이었다. 8명의 시민기자들이 함께 발로 쓴 기사 속에서 함께 여행을 떠나 본다. | | |
2호선과 5호선 충정로역 5번 출구로 나와 진동이 심한 육교 한 가운데 서서 마포대교, 이대, 서대문, 시청 방면으로 가는 이정표와 구세군 100주년 기념 빌딩과 아현 가구거리 등 주변 일대에 대한 소상한 안내를 받았다. 안산 입구까지 가는 마을버스가 있었지만, 재개발 지역으로 묶인 북아현동 일대와 골목길을 마치 사용하지 않을 묵은 사전을 넘기듯이 눈여겨보며, 재개발의 애환에 대해서도 길거리 토론을 하며 걸었다. 다소 어지럽고 심난스런 집과 골목들도 보였지만 여전히 봄꽃들은 화사하게 반겨줬다. 오래된 묵은 고목들 앞에서는 문명의 순교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착잡해지기도 했다.
마을버스 길을 따라 올라갔더니, 뜻밖에도 천연동 주공 뜨란채 아파트가 산뜻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안산 입구는 바로 이 아파트의 앞뜰이나 마찬가지였다. 잘 만들어진 목조계단으로 오르자마자 일행은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계단 외에는 자연스런 한국의 야산 그대로였다. 연초록의 나무들과 봄꽃들, 그리고 향내, 대부분 흙길이어서 걷기도 아주 편안했다. 그래서 안산인가 보다 했더니 뜻밖에도 편안할 '安'자가 아니었다. 말의 안장인 길마와 같이 생겼다 하여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재, 추모련, 봉우재라고도 불러왔다 한다. 안산(鞍山)의 옛 이름은 무악산이었다. 바로 앞에 올려다 보인 인왕산이 338m인데 반해 295.9m인 낮은 산이지만 전망이 좋고 27개의 약수터가 있어 여러 갈래 오밀조밀한 길이 있고, 뭔가 숨은 이야기가 한없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친구, 연인, 가족 누구와 함께 걸어도 지루하지 않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며 고향 한적한 길을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도 한다.
산 중턱에 능안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잠시 쉬었다 갈 수 있어서 고마웠다. 정자가 없었다면 쉬지 못하고 강행했을 것 같다. 분위기가 그랬다. 암벽등반도 할 수 있는 안산 정상의 봉수대를 향해 오르는데 하얀 꽃들이 지천이어서 눈도 코도 호사스럽고 즐거웠다. 웬만한 흰꽃들은 주소성명을 아는데 눈밭 같은 안산의 꽃들에 대해서는 잘 몰라 미안했다. 운치있는 숨은 길들이 마치 미로처럼 갈래갈래 있어서 사계절 안산에 대한 호기심으로 더욱 설렜다. 또한 서울시 우수조망대 중 하나인 이곳의 조망은 정말 이보다 더 나은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고 북한산, 인왕산이 한눈에 보인다. 그밖에 독립공원, 서울성곽, 북악산, 사직터널, 낙산, 용마산도 보이고, 안산보다 다소 낮은 남산(262m)도 바로 맞은편에 또렷이 보였다.
북한산 봉우리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쪽두리봉, 향로봉, 비봉, 승가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 형제봉 등이 줄지어 눈앞에 서있어 마치 미인대회장 앞에 앉은 심사위원 같은 심정으로 바라 보았다. 정말 인왕산에 가려진 동쪽 방면만 제외하고 서울시가 거의 다 보인다. 무악재를 사이로 인왕산이 가깝게 있어, 그 하얀 속살이 송두리째 다 보여 인왕산 안에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인왕산을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 스카이라인만 봐오다 서울시 스카이라인을 손에 쥔 것 같은 이런 조망은 생전 처음이다. 그뿐 아니다. 평소 익숙한 건물들의 둘레만 봐왔는데, 통째로 속속들이 다 내려다 보여 눈을 떼지를 못하고, 특히 발 아래 서대문 형무소나 군부대, 한성과학고, 이대기숙사는 관찰자의 눈으로 들여다 보기도 했다. 서대문까지 이어지는 사적 제10호 18km 서울성곽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도 압권이었다.
서울에는 무악산, 남산, 아차산 세 곳의 봉수대지(烽燧臺址)가 있는데. 이들은 각각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으로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3호, 14호, 15호로 지정됐다. 무악산 봉수대는 동과 서, 둘이 있는데 동봉수대 터만 복원되고, 서봉수대 터는 바로 100m 앞에 있는데 군부대 통신탑이 있어 아직 복원이 안 됐다. 무악산 동봉수대 터가 봉원동 산 1번지여서 이곳이 봉원동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봉수대에 오르자마자, “이런 바람 맛 처음 보네” 하는 연세 높은 시민기자의 탄성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안산의 싱그런 숲과 조망에 찬사를 보냈다.
봉수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무악정이 기다리고 있어서 김밥을 맛있게 먹었다. 아무 데서나 먹으려 했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은 쉽게 통하지 않았다. 또 3개월에 한 번씩 수질검사를 하는데, 적합판정을 받았다는 용천 약수터도 있어서 '不老水'라는 약수를 시원하게 들이키고 하산을 하기로 했다. 다음 코스로 가야 하는 부담이 없다면 메타세콰이어, 자작나무, 잣나무 숲도 가보고 안산방죽도 가보고 싶은데, 공원 이용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기에 손색이 없는 안산을 그냥 그대로 두고 왔다.
하산길에, 안산이 있어서 이 회사에 근무한 사람들은 좋겠다고 하며 석조건물 옆을 지나는데 바로 연세대 캠퍼스란다. 연세대학교에 들어서자, 캠퍼스 자체가 사적과 문화재로 채워진 박물관 같았다. 수경원(綏慶園) 터와 광혜원(廣惠院)이 있는데, 수경원 터는 당쟁의 제물로 비명에 숨진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친모이자 영조대왕의 후궁인 영빈 이씨의 원묘 수경원이 자리했던 곳으로, 1968년 지금의 서오능으로 이장했으나 당시의 정자각과 비각은 지금도 여기에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목조건물인 광혜원은 1885년에 미국인 H. N. 알렌에 의해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으로 1985년에 실제 크기로 복원하여 현재는 연세 사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세 역사의 뜰'이라는 광혜원 넓은 마당과 뒤뜰, 나무들이 좋아 잠시 둘러보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교내 중앙 도로로 400여 미터를 더 올라가면 정면과 좌우로 사적 건물이 보인다. 언더우드의 동상을 지나쳐서 정면 중앙이 언더우드 관, 왼쪽이 스팀슨 관, 그리고 오른쪽이 아펜젤라 관이다. 1920년에 완성된 2층 석조건물 스팀슨 관(Stimson Hall, 사적 제275호)은 연세대학교에 세워진 최초의 건물이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 언더우드(한국이름 원두우) 목사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서 항구적인 학교건축을 위해 로스엔젤레스에 거주하던 찰스 스팀슨의 기부금을 얻어 놓고 세상을 떠난 뒤, 후임교장인 에비슨이 그 기부금으로 건립한 것이다. 그로부터 4년 뒤 완성한 언더우드 관(Underwood Hall, 사적 제276호)은 언더우드 박사의 업적과 인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아펜젤라 관(Appenzeller Hall, 사적 제277호)은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라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신성덕 시민기자로부터 아펜젤러 무덤이 없는 사연을 듣게 되었다. 1902년 6월 11일 전남 목포에서 모이는 성서번역출판위원회에 참석차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짙은 안개로 아펜젤러가 탄 배와 다른 배가 충돌하여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아펜젤러는 함께 승선했던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려다가 결국 순교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 후 아펜젤러의 장남은 배재학교 교장으로, 장녀는 이화학당 교장으로 봉직하다 한국 땅에 묻혔으며, 막내 또한 이화학당의 교수로 한국선교에 헌신하였다. 1935년에는 아펜젤러 기념비가 정동교회에 세워졌고, 1989년에는 배재학교 총동창회에 의해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개교 125주년인 연세대와 124주년인 이화여대 캠퍼스는 봄기운이 무르익어 아름답고 정말 활기차다. 연세 한글탑 옆 정원에 있는 흰꽃과 분홍꽃이 섞여 핀, 일명 팝콘나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바로 옆 이화여대로 향했다. 확실히 이화여대 교정은 여성적이다. 무릎등이 줄지어 있는 정원이 멋스럽다. 등록문화재 제14호인 파이퍼 홀(Pffeiffer Hall)를 가기 위해 정원길을 바삐 걸었다. 이 건물은 신촌의 이화대학을 건축할 때 개인으로는 가장 많은 기부금을 희사한 미국인 파이퍼 부부를 기념하여 ‘파이퍼 홀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되었다. 파이퍼 부부는 1919년부터 1946년까지 세계 여러 곳에 교육, 선교 사업비로 1,600만 불을 기부하였으나 승용차를 타지 않고 전차를 타고 다니는 근검한 생활을 하는 분들이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파이퍼 부부의 근검절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총장실로 쓰고 있다한다.
일정이 여의치 않아 이화여대를 서둘러 나오려다, 뜻밖에도 대학 캠퍼스와 신촌을 잇는 '캠퍼스 밸리'라는 새로운 공법의 마치 미술작품 같은 기이한 건축물에 놀라 건물 내부까지 들어가 눈여겨 보고 기념사진도 찍느라 어리둥절했었다. 옛것의 발견과 새로운 도시로의 탄생, 한 나절의 나들이가 마치 100년 이상의 세월을 넘나든 것 같았다. 404회째 또 가고 싶고,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로 가장 아끼는 코스라는 문화해설사 신성덕 시민기자, 동행한 나머지 시민기자들의 마음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사계절 다 와야 하고, 가족, 친구, 친지에게 알려주고 같이 또 오고 싶은 곳, 앞으로는 이러한 곳을 찾아 독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과 열정을 쏟을 것이다.
시민기자/김기형, 박칠성, 신성덕, 유화성, 이은자, 장기양, 정경섭, 조희상 (가나다순, 공동취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