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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욕정과 무질서한 충동을 정화하는 방법,
수도승들의 금욕생활에 관한 가르침
1,600~1,700년 전쯤 한 무리의 수도승들이 도시와 도시의 안일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갔다. 사막은 깊고 황량했다. 그곳은 결핍의 땅이었으므로 욕망도 컸고, 욕망이 컸으므로 이겨 내야 할 것도 많았다. 수도승들은 암자를 짓고 홀로 독방에 몸을 숨겼다. 외로움을 씹으며, 자신을 유혹하는 악령들과 죽을 때까지 싸웠다. 여자를 몰랐으며 적게 먹고 적게 마시고 거칠게 입었다. 욕정을 뿌리치고 영혼의 건강을 되찾을 온갖 지혜가 예서제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지혜는 가르침이 되었고 가르침은 주옥같은 금언과 저술로 전해졌다. 대부분 세월 속에 흩날렸으나 풍파를 면한 종이 꾸러미들은 후인들이 갈무리하여 책의 면모를 갖추었다. 『프락티코스』, 이 책도 그중의 하나다.
국내 독자들에게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비교적 생소한 이름이다. 고대 수도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 말고는 별로 알려진 바 없다. 번역된 자료가 미비했던 탓이다. 하지만, 에바그리우스가 그리스도교 영성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는 수도승 영성의 뿌리를 캐고 싶었으나 쓸 만한 호미를 구하지 못해 늘 아쉬웠다. 그의 핵심적 가르침이 올올이 우리말로 옮겨진 이 작은 책이 바로 우리가 찾던 호미다. 책의 절반을 친절한 해제와 역주가 채우고 있으니 고맙기까지 하다. 그래 봐야 120쪽밖에 안 된다.
4세기는 그리스도교 수도승생활의 전성기였다. 이집트 켈리아의 수도승 에바그리우스는 당대의 위대한 신비가이자 탁월한 신학자로, 동방 수도승 영성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심화시켰다. 고대 교부들이 대개 그러했듯이, 에바그리우스도 '어떻게 영적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이 책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에바그리우스는 영성생활을 프락티케와 그노스티케로 구분했다. 프락티케는 수행을 뜻하고, 그노스티케는 인식 혹은 관상을 뜻하는데, 후자는 다시 피조물에 대한 인식(자연학)을 뜻하는 퓌시케와 하느님에 대한 인식(신학)을 뜻하는 테올로기케로 구분된다. 에바그리우스에게 그노스티케는 프락티케를 통해서 가능하다. 영성생활은 프락티케를 통해서 그노스티케로 나아가는 과정, 즉 수행을 통해 관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프락티코스』는 바로 '프락티케', 수행생활에 관한 에바그리우스의 지혜와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욕정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한다. 특히 탐식ㆍ음욕ㆍ탐욕ㆍ슬픔ㆍ분노ㆍ아케디아ㆍ헛된 영광ㆍ 교만이라는 '여덟 가지 악한 생각'을 물리치는 지혜로운 방법이 소개된다. 이 가르침은 모두 개인적 체험과 통찰의 산물이다.
이 작품은 100개의 독립 단장短章 혹은 경구警句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보면 툭툭 끊기는 듯하지만, 살펴 읽으면 한 줄기로 흐르는 통찰의 큰 강이 보인다. 심오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한 구절씩 가슴에 품고 오래 묵상하기에도 좋다. 역주와 해제가 이해를 도울 것이다.
영적 여정을 걷는 모든 벗님이 이 보화를 만남으로써, 힘겹고 지루할 뻔했던 영적 투쟁이 다소나마 즐겁고 기쁜 일이 되기를 바란다. 다만, 먼 옛날 사막의 일을 21세기 상식으로 재단하다가 혼자 황당해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물을 많이 마시면 음욕의 악령이 공격하므로 되도록 물을 적게 마시라는 권고(본문 71쪽 이하)에서, 사막의 뙤약볕과 갈증을 연상하고 한숨 짓는 노고는 부질없고 무익하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이 달이냐 손가락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