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딤전 1:13)
예수님께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 16: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책망하셨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 25:26)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5:30)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책망받은 이유는 그가 작은 것에 충성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들, 그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크고 위대한 일을 맡겨 주십니다.
큰 일에 대한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주어진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은 더욱더 큰 일을 맡겨주시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능력도 덧입혀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 19:16)고 말씀하셨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아멘.
예수님을 믿기 전, 바울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바울은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바울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무궁무진합니다
바울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를 충성되이 여기시고, 그에게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사실, 바울은 악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구약에서 배우고, 아는 대로, 하나님을 섬겼고, 모든 사람들도 그가 섬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그의 문제는 그가 알던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일찍 알았으면, 어쩌면, 예수님을 직접 만나, 주님의 제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너무 늦게, 예수님을 알고, 깨달았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열심이, 오히려 그를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의 과거에 대한 책임은 묻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귀한 직분을 그에게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범한 우리의 죄를 등 뒤로 던져 버리시거나, 깊은 바다에 던져 버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과거에 매여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과거에 매여 있거나, 과거로 되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앞을 향하여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바울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6)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경건한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경건하지 않는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매여 있으면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 그리고 긍휼하심에 대하여, 늘 감사하면서, 이제는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그가 통회자복할 때, 하나님은 그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시고, 그에게 긍휼을 베푸셔서, 그를 위대한 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과거가 어떠하든, 우리는 주님께 늘 감사하며, 하루하루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