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과 들꽃에서 꿈꾸는 유토피아
소외된 주변부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을 가진,
이문복 시인의 첫 시집 《사랑의 마키아벨리즘》
시를 좋아했으되 ‘시인’이 되기를 꿈꾸지 않았으나 뜻 같지 않은 세상살이에 대한 가슴앓이로 시를 써 온 이문복 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냈다. ‘사랑의 마키아벨리즘’이란 제목을 붙인 그의 첫 시집에는 존재와 세상에 대한 남다른 감성과 성찰이 돋보이는 ‘물새와 우편함’을 비롯하여 조선 시대 후기에 발달한 사설시조나 고려 시대의 패관문학을 떠올리게 하는 ‘노인정 난상토론’ 등의 시 사십여 편이 실려 있다.
한때 폭압의 시대에 맞서는 전사의 길을 걸으며 최루탄에 맞서고 촛불집회에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던 전교조 ‘해직교사’. 간난신고 끝에 학교로 돌아왔으나 ‘명퇴교사’의 도정을 걸으며 검객이 동굴로 숨어들듯 산자락 아래로 스며들어 분필 대신 호미를 든 촌 아낙으로 살아가는 이문복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소명의식의 광휘에 가려져 미처 보지 못했던 일상적 삶의 소소한 진실과 사소한 생명”(강병철 시인의 발문 중에서 인용)들을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이 시집의 발문을 쓴 김태현 문학평론가는 이문복 시인을 “겨우겨우 존재나 할 뿐인 꽃을 꿈꾸며 투병 중인 영산홍이나 볼품없는 개똥참외나 버려진 감자” 등의 살붙이를 보살피는 정원사로 표현했고, 조재도 시인은 그의 시를 조선 시대 후기의 사설시조나 고려 시대의 패관문학으로 평가하면서 “그의 시에서 우리 문학사의 한 형식이 이어져 오고 있음”에 주목했다.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하루하루 때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시에는 세상에 대한 미움보다는 따뜻한 마음이 배어 있다. ‘나의 일’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우리에게 그의 시는 ‘나’보다는 ‘남’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통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그의 시 낱낱을 읽다보면 고된 시대의 여정을 살아낸 후 어떤 이유에서든 시골로 스며들어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며 또 한 생을 살아내는 이문복 시인의 삶과 조우할 수 있다.
편지 대신 둥지를 틀은 물새가 포르릉 튀어나오는 우편함, 그리고 “세상으로 꿈과 희망을 전하는 네루다의 우체부” 같은 우편함을 만들고 있는 이문복 시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추천사
이문복 시인의 거처는 야트막한 산과 앙증맞은 호수 사이에 있다. 세월이나 인생을 암시하듯이 철철이 피었다 지는 유명의 꽃이며 草綠에서 暗褐로 가는 길을 묵묵히 따르는 무명의 풀이 그곳에 공생한다. 겨우 겨우 존재나 할 뿐인 꽃을 꿈꾸며 투병중인 영산홍이나 볼품없는 개똥참외나 버려진 감자도 모두 시인이 돌보는 소중한 식구다. 그 살붙이를 보살피는 정원사의 눈길은 한없이 따스하다. 보자마자 스르르 녹아버리게 하는 온화한 눈길이다. 시인이 소요의 저자거리에서 쏘아 올린 열망과 추억도 이따금 그 풀과 꽃의 정원에서는 명멸한다. 빛과 그림자를 함께 내포한 회한이라든가 이름 모를 그리움도 그 단아한 시크릿가든에서는 종종 부침한다. 존재와 세상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감성과 성찰을 호수 옆 우편함은 물새처럼 우리에게 전달한다. 이 우편함은 우리에게 혹은 세상으로 꿈과 희망을 전하는 네루다의 우체부가 아닐는지!
- 김태현(문학평론가)
이문복 시인의 시 가운데 나는 제3부의 시를 주목하고자 한다. ‘무형식의 형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편들을 읽으며 나는 조선시대 후기에 발달한 사설시조를 떠올린다. 앞의 다른 시들이 정형화된 단형(短形) 서정시라고 한다면, 3부의 시들은 민중들의 문학적 요구가 반영되어 나타난 사설시조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또 나는 3부의 시에서 얼핏 고려시대에 발달했던 패관문학을 떠올린다. 패관문학은 주지하다시피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패관들이 수집해 그 내용을 더하거나 빼거나하여 새로운 형태로 발달시킨 문학이다. 이문복 시인은 이 시대 민중들의 삶이 직접 드러나는 이야기를 채록하다시피 하여 시를 썼다. 그러니 그 속에는 민중들의 애환과 풍자와 해학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그의 시에서 우리 문학사의 한 형식이 이어져오고 있음을 보는 것도 그 같은 이유에서이다.
- 조재도(시인, 아동청소년문학작가)
결국 버려진 것들을 삼태기에 담는 것도 시인 혼자다. 지금 이 순간이 날마다 가장 젊은 몸이라며, 손바닥 발바닥으로 닦아내던 버림받은 것들에게 호오호 곱은 손을 쥐어준다. 점차 그는 마이다스의 손을 달고 다닌다. 고무다라나 플라스틱 화분에 핀 분꽃으로 온 골목을 어느새 환하고 비춰주고 그 처연함에 생명을 불어넣어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채워주는 점액질로 살려내는 것이다. (중략) 단순 명쾌한 게 천상의 그의 모습이다. 그렇다. 그는 짜릿한 절창을 피하면서 신랄한 주제의식을 담보한다. 디테일한 묘사, 비유, 상징, 허구, 비약을 거절하는 대신 통째로 비유하고 상징을 시도한다. 이야기를 추스르는 데 바쁘니 상징이나 비약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소외된 주변부에 포커스를 맞춘 다음 문단 전체를 한방에 털어내 버린다. 무수한 엑스트라들이 세간의 주류가 되는 줄기를 찾아내는 것. 그게 시인의 주제의식이다. 밥상과 들꽃 그리고 마키아벨리즘까지 그 속에서 피워내지 못한 아우성을 토로한다. 그렇다. 굳은 땅 헤치고 비로소 첫 시집을 상재하는 노병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다.
- 강병철(시인, 발문 중에서)
책속으로 추가
사랑의 마키아벨리즘 2
사랑?
그런 게 정말 존재한다고 생각해?
소유욕과 욕정의 다른 이름일 뿐이야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의타심,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미화하려는
다른 동물보다 숭고한 존재이고 싶은 인간의 허영심이 만들어낸 말장난
권력욕, 명예욕, 지배욕, 물욕, 그거 다 애정결핍증이 낳은 일란성 쌍생아들이고
인간들이 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더 목매고 집착하는지
알아?
가질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열망이라는,
인간의 욕망 중 가장 강력하고 끔찍한 감정에 몰입하여
온갖 귀찮고 부담스럽고 골치 아프며 지질한 욕망과 의무를
잠시나마 잊고 싶은 거야. 뽕 맞은 중독자처럼, 아주 잠시 황홀했다가 깨어날지라도
너와 그, 감정의 유효기간이 서로 달랐을 뿐
진실과 거짓의 문제는 아니야
그러니 제발, 확인하려 들지 마. 네가 준 게 진짜면 됐지, 사랑이면 됐지
아, 내가 말을 바꿀 게. 사랑, 그거 나도 인정해
영원한, 아름다운, 오로지 나만을, 따위의 수식어만 떼어낸다면
- 본문중에서(64~67쪽)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첫댓글 시가 가슴에서 맞아맞아, 맞장구를 치네요. 시집 안 내시고 여태 참느라고 애쓰셨어요. 이정록 절
축하합니다 잼나게 읽었어요
그녀의 "안부"를 받아든 봄날, 꽃들이 환장하게 피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환장하겠더라. 남들은 참 잘도 쓰네!
matarri님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이제사 겨우 알았습니다. 늘 이렇게 엇박자네요. ㅠㅠㅠ
축하합니다.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전, 우수문학도서) 선정을 축하드립니다.
축하해요. 늦바람이 늘 새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