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알래스카메 머물 때 짧고 아름다운 여름이 되면 마구 가슴이 뛰었는데 그 이유가
연어 낚시와 테니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호숫가를 도는 일이 좋아서였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거의 거지와 같은 옷차림으로 낚시를 즐겼으며 승부나
수준에 개의치 않고 테니스장에서 그냥 뛰노는 모습이었고 나는 그게 진정 부러웠다.
성형으로 비슷한 얼굴을 한 젊은 가수들이 영어 이름을 가지고 나와 영어로 된 노래들을
강렬하고 짧고 반복된 멜로디로 노래하는 세상이 난 마뜩치 않다.
그냥 '자전거 타기'라고 하면 될 것을 '라이딩' 이라고 부르는 것도 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나의 짧고 굵은 다리와 볼록 나온 뱃살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 밖에 없는 쫄쫄이(?)
패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전거도 동네아저씨 복장으로 혼자서 탄다.
아무렴 어떠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나만 즐거우면 되는 것을.
나는 50 대 동네 아저씨다. 그리고 힘없고 소심한 소시민이며 그 가장이다.
휴일날마다 산으로 내뺄 수는 없으니 오랜만에 마음잡고 재활용품도 번쩍 들어서 버려주고
청소기도 씩씩하게 쓱쓱밀고 난 다음 온 집안의 구두를 다 닦아서 포인트(?) 적립하고 난
지난주말 오후에 자전거를 끌고 나섰다. 늙어서 구박받지 않으려면 적당히 포인트를 쌓아
두어야 한다. 대개의 숫컷은 나이들면 초라해지는 게 세상의 법칙이니까 -.-;;;
환경 파괴니 예산낭비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경인 아라뱃길이지만 자전거 도로와 시민들의
휴식공간 하나는 일품이다. 라이딩 족이 많았는데 카메라만 들면 없어졌다.
그들이 타는 자전거는 소시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내 돈으로 내가 비싼 자전거를 탄다는데
할 말은 없지만 최근 논란이 된 유모차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그저 최고급으로만 치닫는 세상이
나는 매우 불편하다.
승객은 별로 없지만 유람선도 떠가고.
이 항로를 따라 중국까지 가는 배들이 오갈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지만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반대편 그러니까 아라뱃길의 북쪽에도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멋진 전망대도 있다. 월급쟁이 유리
지갑에서 세금을 꼬박꼬박 냈으니 꼭 한 번 가봐야지.
해가 지는 서쪽 끝을 배경으로 역광을 받으며 한 장.
우리 집에서는 두 시간 반 정도면 왕복이 가능하다. 비싸고 성능 좋은 자전거로'라이딩' 하는
사람들에겐 추월당하고 '동네 아저씨 아줌마' 들을 추월하면서 가는 속도를 말한다.
나보다 더 허름한 복장과 더 허름한 자전거를 타고 온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한 장.
아라뱃길의 서쪽 끝단 풍경. 저 너머는 서해바다로 이어진다.
나의 애마는 20인치 미니벨로이다. 주인을 닮아 짧지만 성능은 꽤 쓸만하다. 작은 딸이 욕심을 내서
가끔 자기네 회사 자전거 동호회에 끌고 나가곤 하는데 딸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녀석들이 달아준
속도계까지 있는 자전거이다.
돌아오는 길에 만난 젊은 연인들의 뒷모습. 자전거를 타면서도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나는 양손을 놓고 달리면서 스마트 폰으로 몇 컷을 찍었는데 쓸만한 사진이 하나 잡혔다.
그들을 보며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나는 어느새 여기까지 와 있는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을 부러워 할 시간도 내겐 아깝다. 아직 남아있는 내 열정을 어떻게 연소시킬 것인가.
나는 동네아저씨다.
산에서도 그렇고 자전거를 타도 그렇고 동네 운동장에 나가도 나는 동네 아저씨다.
그래도 행복하다.
2012. 5. 8 일에 쓴 글을 6. 27일에 올리다.
첫댓글 그~ 동네아저씨.. 폼 한 번 그럴싸하게 잡고 있누만~~ ㅋㅋ 포세이도 날리는 멋좽이~ ㅋ
이게 뉘시오이까 프란쯔님 *^^*
반가워요 자주 들르고 글도 좀 올려주세요.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