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모처럼 신부님의 강의를 하나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앱으로 신부님의 강의를 많이 들었는데 한동안 듣지 못했습니다. 어제 들은 강의는 코로나 시대에 맞물려 시대의 흐름을 말씀하시는 강의였습니다. 저는 이 강의에서 유익한 내용이 많이 있지만 하나 유독 관심이 있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사실을 말씀하신 것이지만 우회적으로 천주교의 무사안일한 모습을 표현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건 비판도 비난도 아닌 것이었습니다. 잘못 이해하면 비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저는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고 교회를 걱정하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봅니다. 설사 그게 비판이었다고 해도 비판도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관심이 없으면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만약 비판이라고 한다고 하더라도 건전한 비판이면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각에서 생각해본 게 하나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날 저녁에 마산교구 꼬미시움 단장님 한 분과 저희 본당 교우 두 분과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꼬미시움 단장님과는 예전에 꼬미시움 일로 공적인 자리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지만 사적으로 이번에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런저런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 도중에 꼬미시움 단장님 본당에 계신 신부님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웃하는 본당이라 어쩌다 이 본당에서 미사를 참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 신부님의 강론을 들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이 신부님은 사제 경력에 비추어봤을 때 강론을 상당히 잘 하십니다. 이 본당에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분들의 입을 통해서도 들어서 알지만 실제 강론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삼일 전에 타교구에 계신 신부님과 전화로 이야기를 한 게 있었습니다. 원주교구 신부님이십니다. 그때도 우연히 강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때 신부님과 나눈 말씀 내용 중 하나가 인상에 남습니다. 사제의 생명은 강론에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저녁 모임에서 옆 본당 신부님의 강론 실력과 또 저희 교구에서 하는 신앙대학이라는 프로그램에 강의도 하시는데 제 본당 두 분의 형제님은 이분의 강의를 신앙대학에서 들어봤기 때문에 이분에 대해 아주 호평을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교구에서도 인정하는 신부님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무식한 사람이지만 들어서 강의를 잘하시는지 아닌지 그 정도는 알 수 있습니다. 황창연 신부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지금은 전세계가 팬데믹으로 인해 몸살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그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 지속된다면 교회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게 눈에 뻔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교회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현실은 발생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다른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교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황창연 신부님의 강의와 저녁 식사 때 교우들과의 만남에서 나눈 대화랑 원주교구 신부님과의 대화를 모두 생각해보면 우리의 교회가 이런 암울한 시대에서 타 종교와 비교해서도 단순한 생존에만 초점을 갖는 게 아니라 교회 내부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신부님들의 강론이나 강의를 통해서 신자들이 영적으로 튼튼하게 무장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을 가져다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시대에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교회를 세속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고 현재로서는 그게 가장 급선무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네 명의 평범한 신자의 모임이었지만 많은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신자들도 각자 개인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해야겠지만 이와 함께 신부님들의 힘있고 훌륭한 강론으로 신자들도 힘을 얻을 수 있기를 희망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