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13. 12. 1. 02:27
■ 이 군미[李君美: 이경휘(慶徽)선생의 자] 에게 보냄
경진년(1640, 인조 18)
글 : 송준길(宋浚吉)
지난 가을에 멀리 찾아 준 것이 실로 천만뜻밖이어서, 난리를 겪은 뒤로 그립던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위로되었네.
그러나 겨우 반나절 동안 정담을 나누었을 뿐이어서, 쌓인 회포를 풀 수 없었던 것이 한스럽네.
요사이 세모(歲暮)의 추운 날씨에 해교(海嶠)에서 지내시는 제반 정황(情況)이 편안하신가?
그립고 염려되는 마음 갑절이나 더하다네.
나는 마음과 골수(骨髓)에 병이 들어 나을 기약이 없으니, 조용히 조화(造化)의 구물(舊物)로 돌아가고자 할 뿐, 이 밖에는 다른 생각은 없다네. 근자에 듣건대 서쪽 소식이 매우 좋지 않다 하니, 앞으로 어느 지경에 이를지 알 수 없네.
그러므로 기미를 보고는 먼저 떠나서 세상만사 다 벗어 버리고 세상 밖에서 노니는 형을 깊이 부러워하며, 가서 함께 어울리고 싶지만 어찌 될 수 있겠는가. 끝으로 힘써 대업(大業)을 연구하여 세상이 어지럽다 하여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멈추지 마시기 바라네. 이만 줄이네.
[原文]
與李君美 慶徽○庚辰
前秋遠訪。實出千萬料外。所以開慰亂后懷思。有不可以言語容喩。第恨半餉晤。未足以抒我積鬱耳。卽此歲暮窮陰。海嶠諸況。佳安否。戀念一倍。弟病在心髓。差可無期。惟欲靜還造化舊物。外此無餘念。近聞西音極不佳。未卜稅駕之所。深羨兄見幾先擧。蟬蛻於物外。欲往從之。何可得耶。千萬只祝勉究大業。毋以世亂而沮吾所當爲者。不宣。<끝>
同春堂先生文集卷之十二 / 書
출전 : 동춘당집 제12권> 서(書)/송준길(宋浚吉)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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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군미(李君美)에게 답함. 석이(錫爾)와 함께 보게함
을사년(1665, 현종 6)
서울이 점점 멀어지자 나그네의 회포 점점 언짢아지던 차에 말씀의 뜻이 간곡한 두 분의 편지가 갑자기 당도하니, 위로되는 마음 지극하여 눈물이 절로 흘렀네.
나의 이번 걸음이 어찌 원한 바이겠는가. 하지만 지성으로 성상을 감동시켜 세도(世道)에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성은을 저버렸으니, 만 번 죽어도 속죄하기 어렵네.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전후에 내리신 성상의 유지(諭旨)가 십항(十行)만이 아니었으니, 이것도 이미 지극히 감읍(感泣)스러운 일인데, 의원(醫員)을 보내시어 병을 간호하게 하시고 말을 주어 송행(送行)하게 하셨네.
이는 더욱 세상에 드문 특별하신 대우이므로 당초에는 상소하여 사양하고자 하였으나, 이내 다시 생각해 보니 이는 성상께서 병든 신하를 가엾게 여겨 특별히 인자하신 은혜를 베푸신 지극한 뜻이었네. 그리고 또 평소에 “정의(情義)를 믿는다.”라고 하신 성상의 전교가 생각나서 마침내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네.
어제는 수성(隋城)에서 묵으며 공서(公瑞 민시중(閔蓍重))과 대화를 나누었고, 오늘은 진위(振威)를 향해 출발하려 하므로 바빠서 두 분께 각각 따로 답장을 쓰지 못하네.
[각주]
[주1]십항(十行) : 임금의 수찰(手札)과 조서(詔書)를 이른다.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가 각 지방에 내리는 조서를 모두 한 장에 열
줄로 세서(細書)한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後漢書 卷76 循吏列傳 序》
[주2]송행(送行) :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이 출발하는 곳으로 가서 작별(作別)을 고하고 전송하는 것을 말한다.
[原文]
答李君美 兼示錫爾○乙巳
終南漸遠。客懷轉惡。僉書忽墮。辭旨懇到。慰浣之極。涕淚自零。弟之此行。豈是所願。唯不能至誠感動。裨益世道。孤負聖恩。萬死難贖耳。奈何奈何。前後聖諭。不翅十行。已極感泣。而遣醫護疾。給馬送行。尤是曠世異數。初欲陳章辭免。而旋念此是聖上愍憐病臣。特施仁恩之至意。且念平昔情義相孚之聖敎。遂不敢辭矣。昨宿隋城。與公瑞對話。今向振威。臨發悤悤。不及各謝。
同春堂先生文集卷之十二 /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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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요약]
●송준길(宋浚吉)
1606(선조 39)∼1672(현종 13).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 세영(世英)의 증
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 응서(應瑞)이고, 아버지는 영천군수(榮川郡守) 이창(爾昌)이다.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은
휘(金殷輝)의 딸이다.
주요 관직은 내시교관. 형조좌랑. 한성부판관. 사헌부집의.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등을 역임하고, 송시열(宋時烈)과 더불어 서인 노
론을 이끌었다. 1756년(영조 32) 해동18현(海東十八賢)의 한 사람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 저서로《어록해 語錄解》·《동춘당집》이 있
으며, 글씨로는 부산의 충렬사비문(忠烈祠碑文), 남양의 윤계순절비문(尹啓殉節碑文)이 있다.
● 이경휘(李慶徽)
1617(광해군 9)∼1669(현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군미(君美), 호는 묵호(默好) 또는 춘전거사(春田居士).
제현(齊賢)의 후손이며, 경윤(憬胤)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건(大建)이고, 아버지는 형조판서 시발(時發)이며, 어머니는 신응구(申
應榘)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다.
벼슬은 강화유수· 경기도관찰사를 거쳐 이조판서가 되었다.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 이경억(李慶億)
1620(광해군 12)∼1673(현종 14).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석이(錫爾) , 호는 화곡(華谷). 서울 출생. 경윤(燝胤)
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건(大建)이고, 아버지는 판서 시발(時發)이며, 어머니는 승지 신응구(申應榘)의 딸 고령신씨(高靈申氏)이
고, 이조판서 경휘(李慶徽)의 아우이다.
주요 관직은 한성우윤. 도승지. 대사헌. 경기도관찰사. 좌의정을 지내고, 저서로는《화곡유고》가 있고.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벼슬은 춘추관기사관. 강화유수. 경기감사.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시호는 익헌(翼憲)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