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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모디가 구자라트에서 GDP를 10%씩 올리면서 각광받음.
- 신자유주의 속성도 강함
- 모디 집권이후 이런 식의 간판이 곳곳에 세워짐.
-인도식 산업혁명을 제대로 부흥시키려고 함.
40.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회사 '타타'그룹
- 세계에서 가장 싼 자동차를 만든 회사로 유명
- 공익적인 일도 많이 함.
- 최근에 만들고 있는 친환경차 ; 압축공기로 가는 자동차
- 2004년 대우상용차의 지분을 인도 타타그룹이 100%인수하여 지금의 타타대우상용차(주)로
공식출범하였다.
41.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기업의 CEO들이 인도계가 많아지고 있음.
- 순다 피차이:현 구글 리더
- 사티아 나델라 : MS soft 리더
- 세계 암산대회 우승자도 인도인
- 빅뱅이론 드라마의 의 배경이 LA 칼텍이라는 공과대학,
-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시 AI와 5G를 집중적으로 견제를 하는데 미국과 인도의 협력관계가 만들어
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디지털 산업에서 펼쳐지는 삼국지, 중국 인도 미국
- 바이두라는 건샘엔진
- 텐센트 기업
- 중국이 5G를 더 빨리 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14억인구의 데이터가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 테크놀로지 지정학, 앞으로의 지정학은 기술이 결정 짓는다. 실리콘 밸리vs 차이나
- AI슈퍼파워라는 책은 디지털산업에서의 경쟁력이 중국이 유리한 이유를 서술해 놓음
- 21C G3는 중국과 인도와 미국이라고 봄. 디지털 세계의 경쟁.
42. 인도식 의학/ 한국에도 책이 나와있음.
- 아유르베다 = 삶의 지혜 (산스크리트어)
43. 인도 카레,음식들.
44. 인도의 영화산업 발리우드
- 히말라야 건너편 인도양에서는 발리우드 영화가 주류, 북아프리카등등..
- 힌글리쉬/ 빅뱅이론 드라마에 나오는 인도학생의 영어
- 길게 보면 유망한 흐름, 1950년이후에는 인도식 영어가 중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누가 백년전에 뉴욕 영어가 주류가 될 줄 알았겠는가?
45. 이런 트렌드를 발리우드 형식을 차용해 만든 할리우드에서 영화
-
46. 비틀즈(with 마하리쉬 요기)/스티브잡스(히피문화,인도문화에 심취)
- 1960년대 비틀즈의 음악에 일대 전환이 일어남. 1) 미국에서 밥딜런을 만난 후로 가사의 힘에
대해 인식. 존레논이 제일 큰 힘을 받음. 2)비틀즈 막내 조지해리슨이 힌두교에 빠지게 됨.
마하리쉬 요기를 만나 수행도 하고 비틀즈가 많은 곡을 씀, 더 비틀지 화이트 앨범
(예:어크로스드 유니버스),싯타르 인도악기를 최초로 팝에 사용.
- 애플이 구연하는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적인 디자인이 인도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음.
47. 이효리/ 유발 하라리(유대인)
- 이 두 인사들도 요가와 명상등 인도문화에 심취해 있음
48. 네루대학에서 한국학 전공 교수 '산토시'
- 3.1운동이 인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연구한 학자
- 3.1운동 이후 인도 젊은이들이 한국까지 자전거와 도보로 여행을 많이 왔었다.
- 학위논문을 모아 내년에 출판 예정.
49. 젊은 타룰루/ 반기문과 UN사무총장에서 대결했던 인물
- 저명한 작가이자 학자이자 외교관이자 정치인
50. 선거 뒷얘기들
51. 선거 뒷얘기를 하는데 전임자 얘기를 꺼냈음.
- 전임 코피아난은 부쉬랑 많이 부딪혔음. 코피아난을 보좌했던 사람이 타룰루였음.
- 3대 우탄투 뒤에 4대 사무총장 발트하임(오스트리아국적) 오스트리아 대통령도 함. 그러나 나치
협력자 출신.
52. 2016년 4월 타룰루 인터뷰
- 그 이후 5권의 책을 내심. 현직 국회의원임(국민회의)
- 위 두권은 영국이 인도에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재조명
- 밑의 세권의 책은 힌두문명, 모디가 힌두뜨와는 국민회의를 비판하면서 했던 운동이였는데
그것을 받아안고 수렴하는 책.
- 모디 정부가 힌두 근본주의로 갈 수 있는 흐름을 야당의 정치인이 견제하는 책
- 저 정도의 학식이 있는 정치인이 인도에 잇다라는 것이 부러움.
망부) 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과거전통 종교와 현대의 정치를 연결하려는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데
힌두의 포용력, 이슬람 경제등등, 종교가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현상들이 있는데 현재 한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데 오히려 나쁜 양상을 역사적인 방향으로 봐야 되는 것인지?
로샤) 이슬람 경제나 힌두뜨와가 본래 표방하는 것은 20세기의 국가나 우리 민족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서
더 큰 보편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흐름에서 나온 것임.(인류의 평화공존). 개개인들도 이 세속적인 가치에
함몰되기 보다는 더 인간적이고 인격적으로 고양되는 것을 추동했던 것이 과거 종교의 역할이었기에 그것
을 현대적으로 복원하려는 것이였다. 그렇기에 광화문에서 일어난 현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손) 몇몇 리더들이 나서는 것이 아니라 1970,80년대 우리 대학가를 중심으로 우리 것을 되살리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대동제). 기독교(200년)전에 불교와 유교의 영향이 한국민들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준 것이
다. 현재 일어나는 현상은 기독교의 일부 과격주의자들에 의해서 선동되는 것이기에 전혀 다르다.
망부) 한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광화문 집회는 이슬람주의, 힌두주의적인 정치적 재기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에서도 그런 종교와 정치를 결합시키려는 의도로 조직 된 것이 아니였는지. 그러나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가령 힌두,이슬람주의자들은 그들이 다수였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는 한국에 들어온지
백년이 안되었고 실제로 전체 기독교 중 2,30%정도 밖에 되지 않다. 그렇기에 명백히 다르게 봐야 한다.
광화문 집회의 기독교인들과 힌두뜨와, 이슬람주의 중심의 운동과 비슷하게 평가되서는 않된다.
로샤) 자칫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이 한국의 기독교 근본주의도 심층으로 파고 들어가면 분단체제등의
역사적인 소산이 있다. 남아시아 분할체제사를 보면 파키스탄과 인도가 갈등이 격화될 때 이런 현상이
실제로 일어 났다. 인도에선 힌두 근본주의자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파키스탄을 비판하고 파키스탄도
이슬람의 이름으로 인도를 비판했던 현상과 오히려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망부) 종교적 극단주의와 분단,분할은 정치적 현상으로 연관되어 있다. 광화문의 난동을 멈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기적, 근본적으로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이다.
53. 이 책을 모디 총리에게 직접 주었다. 제목:암흑의 시대, 영국 식민지 시기
- 저 책에도 식민지 근대화론이 있다. 영국이 와서 그나마 인도가 근대화 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
론을 조목조목 비판한 내용도 있다.
- 영국이 인도에 오기전에 무굴제국 시대였는데 당시 무굴제국의 GDP를 따지면 중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2위였다. 그런데 영국이 오고 나서 백년동안 보니 영국이 떠나고 난 후 인도는 완전히
가난한 나라가 되었다. 이 백년동안 그런 경제적 파워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영국이 다 빼앗아
간 것이 아닌가? 에 대한 놀리를 세련되게 구사함.
54. 타로루가 현대하는 운동
- 콜카타에 가면 빅토리아 메모리얼이 남아 있다(총독부역할), 오히려 없애버리기 보다 인도 독립
기념관으로 바꿔야 한다. 인도가 독립운동을 했던 역사적인 기록들을 다 전시 남겨 미래의 인도인
들을 이곳에서 교육시키자는 운동
55. 영국의회에서의 타룰루 연설
- 이런 운동을 영국의회에서 대놓고 설파함. 식민지 배상하라! 왜 영국은 안하냐? (승전국이라서
안하고 있음)
- 2차 세계대전의 성격이 여러 개가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장면이다. 2차세계대전이 민주주의 vs
전체주의 대결이라면 민주주의가 이겼다고 해석하는데 식민지 국가 입장에서는 저런 것이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것이라서 식민 모국인 영국의회에 가서 배상의 당위성을 연설(당시 영국과 인도
에서는 굉장히 센세이셔널했던 연설이었지만 한국의 언론에서는 절대 보도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망부) 우리도 일본의회에 가서 너희들 식민통치에 대해 배상하라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손) 간디를 성자라고 하지만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보면 영국의 입맛에 맞았던 리더가 아니였나..
로샤) 저 간디 동상이 있는 곳이 영국의회 앞, 저런 상징적인 행위를 하긴 했다.
손) 찬드라 보스 같은 인물을 동상으로 세우긴 상당히 어려운 얘기 아니였나?
- 승전국도 배상해야 한다고 연설. 영국만 배상을 안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도 알제리 베트남
식민통치한 것 하나도 배상 안했음. 그렇기에 이런 인물을 숨겨야 될 이야기 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런 인물이 UN사무총장이 되었다면 엄청난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니
미국과 프랑스등의 나라는 반드시 반기문을 당선시켰어야 할 이유이기도 했다.
56. 실제로 영국과 인도의 위상이 뒤바뀌고 있는 상황(GDP/실질구매력 PPP)
-
57. 타룰루 선생의 2권의 책
-
58. 타루루 선생님이 구상하는 인도의 장기적인 비젼
- 2권의 책을 종합해 정리하면 인도는 젊은 나라이고(한국은 42세) 비동맹 2.0 한참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국,일본,중국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된다.
- 비동맹 외교를 성취시키기 위해 인도 주변국의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델리에 남아시아대학
과 비하르의 나란다 대학 현대적으로 다시 만들려고 한다.
- 아시아 하이웨이(동아시아방향)와 인도-아랍협력포럼(서아시가방향)을 합쳐 환인도양연합을
만드는 것이 독자적으로 만드는 것이 인도가 가야할 길이라고 주장
- 남아시아라는 말조차 영국식 지정학이 투영된 이름이여서 더 넓은 의미에서의 남부아시아. 인도
아대륙, 아라비아 반도를 포괄하는 인도양 세계를 만듦.
- 미국의 패권이 아닌 중국의 세력 확대가 아닌 인도가 주창하는 제3의 지역 개념을 창안함.
- 모디는 힌디네이션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은 하이브리드 네이션에 가깝다.
- 한국엔 이런 분, 인물이 있는지...
59. 남아시아 대분할 체제의 상징적인 장면(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 분할 당시의 사진들)
- 2달만에 분리된, 섞여서 살던 사람들이 종교를 중심으로 2달만에 분리되어야 했음 서로에 대한
애증과 보복성 행동들이 있었다.
- 손)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철수 할 때 무책임하게 철수를 하면서 인도, 아랍,아프리카,
한국이 엉망이 되었다. 통치 당시의 분열책동으로 인해 식민지 국가의 독립이후 모든 학살의
원인을 제공했다. 결과만 보고 역시 저 나라들은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안되어 있다라고 비판하면 안된다.
망부)파키스탄과 인도의 분리 원인은 영국에서 인도인들을 군인으로 데려다가 사용할 때 소위 펀잡지방에
있었던 이슬람이나 시크교도 같은 전투력이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써먹고 그 후 조국으로 돌아 왔는데
인도 인민군이 인도를 차지하고 있어 생겨난 소외감이 그 분열의 시작이 되었다. 결국은 영국이 지역을
다 쪼개서 자기들 마음대로 지배하다가 순식간에 버리고 가면서 모든 비극을 잉태시켰다.
60. 그 결과 이렇게 갈라짐.
- 북쪽에 무슬림들이 많이 살았는데 파키스탄이 기형적으로 양쪽으로 생겼다.
61. 이런 지정학정 상황을 아주 잘 활용한 것이 미국이였다.
- 위치를 보면 서파키스탄은 중동이랑 가깝고 미국이 센토라는 군사기구를 만듦(서아이사)
- 시토는 동남아시아 안보기구. (결국 파키스탄은 양쪽에 다 가입되었다)
- 서파키스탄의 위치가 소련 아래에 있다. 소련의 턱 밑에 반공주의 군사국가를 만들수 있었다.
- 동파키스탄의 위에는 중국이 있어 소련과 중국을 다 견제하는 역할을 양쪽 파키스탄을 활용하였다.
62.- 나라로만 갈라진것이 아니고 펀잡이라는 하나의 지역도 동쪽(44%)과 서쪽(56%)으
로 갈라졌다. (강원도와 유사)
63. 라오르/ 타지마할
- 델리와 라오르를 왔다갔다 할 때 원래는 무굴 제국 당시 하나였던 곳인데 지금은 둘로 나뉘어
사이가 매우 좋지 않은 관계여서 비자 입국문제로 매우 힘들었다.
손) 한국의 K9이란 자주포를 인도에 수출. 호주에서도 1조원어치 구입.
64. 서쪽엔 펀잡이 쪼개지고 동쪽에서는 뱅골지역이 동서로 갈라짐.
- 손) 방글라데시 북쪽 미얀마 국경지역만 산간지역(800m)이고 나머지는 거의 늪지대임.
-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
65. 2000년대 초반 원래 고향은 파키스탄 델리로 피난/파키스탄의 군부 리더는 델리가 고향
- 잠시 평화의 바람이 불었다.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강원도와 유사한 상황.
66. 2024년에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하는데 강원도 지사가 평창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강원도란 이름으로 대회개최권을 따냄.
- 북한과 같이 하려고 했던 의도
67. 파키스탄에 꼭 기억해야 되는 인물 '부토'
68.원래 파키스탄은 미국이 백업하는 반공주의 군사독재국가였는데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서파키스탄의 군사독재 했던 세력들의 기반이 와해되는 때를 기회삼아 정당을 새로
만들고 집권까지 성공하는데 표방했던 것이 이슬람 사회주의였다. 미얀마도 불교 사회주의를 시
도했었는데 이것이 좌우의 문제라기 보다는 자기들의 전통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평등한 사회를
지향할 때 저런 식의 개념이 발생 되는 것 같다.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우리는 문명적인 기초가
이슬람이였지. 그런데 자본주의식 경쟁체제보다는 사회주의식 평등이 더 나은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슬람사회주의로 가는 것이고 소련식 공산국가는 아닌 것으로 판단. 무신론 국가는 무슬림으로서
는 받아 들일 수는 없어서 알라와 함께 이슬람국가를 만들자는 개념으로 접근함.
망치) 이성과 영성의 화해, 복음과 복지의 조화.
손)칼빈 이전의 원시 기독교 공동체는 원시 공산주의에 가까웠다.
망치)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의 제자들은 공산주의 체제였다.
손)그렇다면 이슬람이 되었든 힌두교가 됐든 그 공동체 안에서는 지금의 자본주의야 말로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 아래의 세권의 책은 부토가 직접 쓴 책, 가운데 있는 책은 '독립의 신화'라는 책을 아랍어로 번역
해서 중동사람들도 봤다. 그 책중에 이성과 영성을 화해시키자. 복음과 복지도 조화시키지자. 물질
주의적인 서방과 정신주의적인 동방의 가교역할을 신파키스탄이 해보자고 제안에 젊은 청년들이
열광했었다.
- 범이슬람주의와 범아시아주의를 동시에 얘기함
-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오랜동안 UN에 참여 못했었다. 굉장히 오랜동안 대만으로 쫓겨난 중화
민국이 대표로 있었는데 중화인민공화국을 UN에 대표로 승인해야 된다고 가장 먼저 앞장 서서
제기했던 사람이 부토였다. 그래서 핑퐁외교를 했던 닉슨이 부토에게 자문을 많이 구했다. 그
중간 역활을 부토가 많이 했었다.
- 키신저와도 한 때 가까웠던 사이였다.
- 사회주의 국제주의, 범이슬람주의, 범아시아주의를 다 얘기했기에 부토의 글을 읽다보면 유라시아
연합을 구상했었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 베를린 ,모스크바 베이징, 평양얘기도 함.
- 그러나 일본은 우려했음. 일본이 커지면 자연스레 미국이 같이 따라오기에 그것은 굉장히 우려되는
발상들을 했었던 지도자였다.
- 파키스탄이 핵무기 보유를 시도했었고 그러한 이유로 결국 미국이랑 틀어나고 1977년에 군사쿠데
타가 다시 일어나 석연치 않은 죄목과 말도안되는 살인죄로 사법살인을 당하게 됨.
손) 너무 빨리 온 미래가 이니였을까? 계획대로 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엔 인도랑 대립해야 됐고
군사력이 강해져야만 했기에 지나치게 군부 영향이 컸었고 한창 서양식으로 따지면 냉전이 한창이였기
에 유라시아 연합을 하면 곤란해 했던 상황과 전반적으로 파키스탄의 이해에 반하였기에 사법살인을 강
요 당한 것이 아닌지. 칠레도 그러하였다 (아옌데). 부르키나파소, 정직한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의 이름
을 가진 나라의 독립의 아버지도 대단히 숭고하고 고귀한 사람이였지만 군부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다.
준비되지 않았고 옳은 얘기이긴 했지만 너무 빨리 미래를 맞이하게 되어 그 제단에 바쳐져야만 했던
인물이 아니였을까?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인물들이 있다. 장준하, 노무현, 등등. 주변의 동북아시
아의 다른 나라에 비해 일본에 비해 정치적으로 빨리 발전했다. 일본은 한번도 못했던 것을 한국은 계
속 했는데 그래도 우리는 역사에 비해 너무 빨랐던 것은 아닐까? 빨리 찾은 미래는 역사나 사람이 따라
가기엔 너무 버거웠기에 큰 희생이 따른기도 하는 것은 나닐까? 그것이 증명이 되는 예가 부토의 딸이
후에 파키스탄의 총리가 됨.
- 부토의 발상들, 사상들, 지향들은 지금 더 의미가 있는 것 같다.
70. 부토식 접근이 현재 다시 재기됨.
- 아시아의 새로운 지정학을 할 때 파키스탄이 굉장히 중요한 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71. 중국이 부토의 발상을 역으로 활용해서 일대일로를 연결하는 핵심국가로 파키스탄을
활용하고 있다.(철도와 항만을 설치)
- 신장위구르->과다르항(가라코룸 고속도로), 과다르항을 통해 중동과 인도양으로 진출하는
초원길과 바닷길을 연결하는 핵심 역활을 파키스탄이 해줘야 한다고 강조(중국)
72. 가라코룸 고속도로 풍경(간판내용:중국파키스탄 인민의 만세)
- 세계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있는 고속도로, 가장 아름다운 고속도로(설산들의 배경).
73. 최근의 인도 강대국사이의 동향
- 중국과 인도의 갈등, 미국의 비건이 발표한 인도태평양 안보기구
- 인도의 주가가 올라가 있음. 인도의 선택이 21세기 유라시아 지정학의 결정적인 향방을 쥐고 있다.
- 상좌] (블라디보스톡)동방경제포럼에 초청하는 푸틴의 초청해서 블라디보스톡에서 회담하는 장면
/ 상우] 불교유적이에서 중국과 인도는 오래전부터 불교를 통한 관계가 있지 않느냐며 역사를 통한
접근을 하는 장면시진핑과의 회담./ 하좌] 아베가 강조하는 인물 찬드라보스를 활용한 접근/ 하우]
트럼프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국가로 인도를 삼으려 하는데 미국이 새롭게 하는 것 뿐만 아니라
게보레이스라고 하는 1960년대 하버드 대학교수, 외교관도 했었던 케네디의 친구, 브레인이였던)
그 친구도 중국을 견제하려면 아시아에서 인도를 키우는 전략을 주장했었다.
74. 대국들 사이의 새판짜기가 한참 전개되고 있는 상황임
- 현재 사진과 같은 구도임.
- 앞으로 10년의 가장 중요한 방향일 듯. 인도가 어느 쪽으로 갈것인가?
75. 현실 인도양이 어떤 바다였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황.
- 아편전쟁 이전에 영국이 인도양을 장악하기 이전에 아시아와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가 어떻게
교역을 했는지에 대해 전세계 학계가 다시 조명하고 있다. 역사라는 것이 보통 미래의 트렌드에
맞게 다시 쓰여지는 것이다. 국내에도 한권이 번역되어 있다. [인도양에서 본 세계사]
76. 일부학계는 더 나아 갔다. (2019)
- 이미 아프라시아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이것이야 말로 인도양세계를 제대로 구현하는 개념일 수
있다.
- 일본의 학계에서 먼저 조망했다. 책 표지상의 지도는 앞 100년의 지도, 부제를 아프라시아의
시대라고 지었다.
- 이러한 것은 자민당이 아무리 개판을 쳐도 일본이 아직도 버티는 저력이 아닐까?
-유라시아 견문 2권을 쓸 당시 한국자료는 거의 볼게 없었다. 신문 학술논문조차, 그러나 일본에는
굉장히 많았다.
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미 '란학'이라고 해서 쇄국정치를 했던 에도시대부터 서양의 문물
을 네델란드 말로 된 것을 번역을 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메이지 유산 뿐만아니라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빨랐다. 학문적으로 배울려고 하는 흐름은 분명 일본이 앞서있다. 그러나 100년 뒤의
지도를 그리기 전에 일본은 십년뒤의 일본 정치에 대해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남 좋은 일만 하게
될 것이다.
로샤) 일본의 학계와 정계는 거의 연결고리가 전혀 없다. 싱가포르에서 만났던 지식인들이 공부를
하면서 정치와 행정을 겸장하는 사람들인데 일본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유교국가를 경험하지
못한 이유라고 보는데 공부와 정치를 같이 하는 사람을 찾기가 정말 힘들다. 저 책을 쓰신분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했지만 그냥 학계에서 열심히 공부만 하시는 분이였음.
손) '이와나미출판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출판사, 저런 연구를 현실 정치에 반영해야 하기에는
현재 아베후의 스가의 시대가 올가능성이 많은데 그냥 복제 수준에 머무를 가능성이 많다. 아무리
정치에 대해 혐오를 갖고 정치인들을 폄하한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정치가 해줄 수 밖에 없는 역
할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일본은 정치가 획기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이상 미래가 없다고 본다.
로샤) 첫번째 유학지로 일본을 선택햇던 것은 일본이 바뀌지 않으면 동아시아 공동체는 불가능해
보였기에 그런 가능성이 있는지를 보러 갔다가 1년만에 다시 나옴.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동아시
아가 아니라 유라시아로 시야를 옮긴 것 같다. 그 동안의 지적여정을 살펴보면 그 때가 터닝포인트
였던 것 같다.
77. 아프라시아 첫 번째 학회후 사진촬영
- 일본에서는 이미 '아프라시아'라는 이름의 학회가 이미 형성되어 있음.
- 이런 활동이 정치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앞서가는 지식인들의 감각은 현재 한국의
학회보다 예리하다. 이것은 분명하다.
망치) 이번과 같은 책을 읽고 이렇게 강의를 듣는 것이 대한민국의 미래 역사를 바꾸는 순간이라고
자신한다. 이전까지 미처 알지 못했던 세상을 이번 기회에 깨닫고 있고 이것이 우리의 미래를 바꾸
는 엄청난 박동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로샤) 이 방송이 모든 싸움의 최전선에 있는 것 같다.
78. 한국 포스코의 기업잡지;
- 유라시아 견문 2권을 준비했던 당시 1년동안 가장 공부를 많이 했었다. 그 당시 일본에는 사용할
자료가 진짜 많았기에 많은 열패감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열패감을 조금이라도 만회시켜준 잡지.
- 처음엔 중국과 인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친디아로 시작했다가 플러스가 붙은 것은 아세안 국가
들, 중앙아시아, 유라시아가 앞으로는 가장 중용한 시장이다라는 것을 그나마 기업에 계신분들은
감각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 잡지에 나온 내용들은 꽤 볼만했다. 좀 위안을 받으면서 우리나
라에도 이런 잡지 하나는 있지만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학계에서 언론계에서 좀 더 많은 접근이
있었으면 좋겠다. 인도에 있으면서 가장 한심했던 것이 모디나 타로루에 관한 중요한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보도하지 않고 인도 뉴스에서는 강간뉴스 같은 것만 국내 언론에 유통되고 있는 상황
이다. 그러면 처지는 것이다.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정확하게 인식을 해야 국가의 다음 스텝
전략이 나오는 것인데 이런 흐름의 물꼬를 트는 첫번째 역할을 망부 방송이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망부)사실 고려가 상인의 나라였다. 조선이 유학과 선비의 나라로 바뀌면서 우리의 상인의 습성을
누르며 살아왔는데 지금도 보면 정치 언론 학계 모두가 바라보지 못한 것을 상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가들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로샤)경험적으로 기업이 항상 빨랐다.
망부)그동안 상인의 본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유라시아의 경영인적 관점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