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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정맥 제22구간 호남정맥은 끝나고 금남호남정맥 1구간 시작
상월리 도로-주능선-마치-만덕산 분기점(761m-조두치-곰치재(430m)-x563m-△514.4m-충천치-모래재 터널위(460m)-주화산(주줄산x560m 금남정맥 과 금남호남정맥 분기점)-x640m-x615m-오룡고개(49번 국도)-x645m-x653m-부귀산(△806.4m)-x637m-x549m-x462m-활인동치(26번국도)
도상거리 : 26km
소재지 : 임실군 관촌면, 완주군 상관,소양면, 진안군 성수,마이,부귀면 진안읍
지형도 : 1/2만5천 신정 진안 2매
이 이구간 굴곡이 상당히 심하다
물론 호남정맥과 금남호남정맥을 따로 산행한다면 거리도 짧고 부담없는 산행이 될 터이지만 도상거리 26km가 주는 장거리에다가 오르내림이 유난히 심한 구간이다
수도권에서 이 곳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전라선 열차를이용 임실역에서 하차, 시로 관촌면 소재지를 거쳐 상월리 고개 꼭대기 인근까지 요금이 17.000원 정도 밖에 나오지 않으니 부담스럽지 않은 편이다
산행 초반부 부터 만덕산 분기점까지는 큰 굴곡이 없는 편이다
바위로 이루어진 만덕산 분기점까지 잠시 오름이 있을뿐이나 크게 힘듬은 없고, 이 후 곰치재 까지도 큰 힘듬 없이 진행할 수있다
충천치 이 후 잠시 오름길이 힘드나 산행 초반부나 마찬가지이니 크게 걱정 없다
여하튼 주화산에 이르기까지 호남정맥의 구간은 오르내림은 많아도 크게 힘듬은 없다
3정맥의 분기점을 이루는 주화산은 정맥의 분기점이 아니라면 거의 주목받지못 할 정도로 평범한 무명봉인데 그간 많은 정맥산행객들에 의해서 큰 현수막과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주화산 정상에서부터 호남정맥은 끝이나고 동쪽으로 떨어진 임도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치고 오르기 시작하는 금남호남정맥의 능선들도 오룡동 고개까지는 크게 힘들지 않다
49번 국도가 지나가는 국도에 내려서면 왼쪽(북쪽)으로 오룡동 주유소에 편의점이 있다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살짝 따르면 절개지가 낮은 지역으로 오르게되나 짇은 수림의 어느 쪽으로 뚫고 가야할지 난감할 정도로 가시와 잡목들이 무성한데 잘 찾아 능선을 오르면 무너진 성곽의 형체인지 돌들이 널려있는 무명봉을 지난다
이 후 x645m x625m봉을 지날 때까지 상당한 오르내림의 굴곡이 심하고 마지막 부귀산 오름길은 급경사 에다가 정상 일대는 바위로 이루어진 절벽지대라서 우회를하며 오른다
부귀산은 의외로 멋진 바위산이며 정상에 올랐다면 4.2km의 활인동치까지는 일사천리로 뛰어 내려설 수 있을 정도로 내리막으로만 이어진다
부귀산 정상일대에서 내려다보는 마이산의 매력은 또다른 멋으로 다가온다
◀산행 후기▶
2003년6월1일 (일) 날 씨 : 무덥고 햇볕이 쨍쨍함
광인 , 곰발톱 2명
산행 후반부분의 기록들이 모두 유실되어 금남호남정맥의 일부 기록들이 기억으로 기록된다
하기야 후반부는 거의 지쳐서 평소보다 기록이 부실하기도했고 사진 기록도 부실하다
드디어 호남정맥을 졸업하고 바로 금남호남정맥으로 입문하는 날이다
사실 지난 주일에 들어갔어야할 구간인데 내 그동안의 산행패턴과 어울리지않게 산에도 못가고 ...
덕분에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냈음이라 여러 가지로 좋을만도 한데 ...
미치고 환장하는건 그 놈의 호남정맥의 능선들이 눈가에 가물거리더란 것이다
그러나 결과를 먼저 설명한다면 산행 입문 후 최초로 엄청난 곤욕을 치뤘다는 것이다
흔히들 산에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보고 “좀 힘든 모양이구나 조금 쉬어가면 괜찮을걸” 정도로 생각했었고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금남호남정맥 첫 걸음의 후반부에는 거의 걷기가 싫어 탈출만 생각했으니... 어쨋건 10시간 정도 예상했던 것이 물론 의외로 굴곡이 심하기도 했지만 13시간만의 끝까지 주행한 산행이었다
무덥기도 했지만 상당히 무료한 토요일 오후였다
23시50분 발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오늘밤의 호남정맥행을 기다리기에는 너무 지루했다
그래서 이래 저래 마시기 시작한 초가 약간은 과 초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못된 습관 때문에 다음 날 엄청난 시련의 산행을 할줄이야 알고 행했겠는가?
못된 습관이라는게 저녁 밥상머리에서 습관적으로 또 참초 한병을 마셔버린 탓이다
오후에 걸려온 대전의 이경한 아우님의 전화는 “그래도 내가 복 받은 넘이다” 라는게
“선배님! 졸업산행에 같이 동참하고 싶습니다” 아 ~ 의리의 싸나이 곰발톱 이경한^^
같은 열차를 서대전에서 타서 만나자고 이른 후 열차안에서 역시 깊은 잠에 빠지고, 전주역인가 지날 무렵 비몽사몽간에 후배님을 만난 후 “ 더 자 ~ 더 임실서 내려” 04시가 거의 다되어서 내리고 지난번 부탁했던 관촌택시가 04시30분경 도착이고 열심히 달려서 산행 들머리에 도착한 시간이 05시를 몇 분 남긴상태고 행장을 추스르고 산행을 시작한 시간이 05시 정각이다
지난번 내려설 때 봐 두었던 전신주 옆의 숲으로 올라서니 어둠속에서 약간은 모호했지만 제대로 능선으로 올라붙는 족적을 찾아내고 10분이 채 걸리지않아서 주능선으로 오른다
<이거 오늘 산행 초반부 컨디션 조절에 애 먹겠는걸> 하는 소리는 웬만하면 열차에서 몇 시간 자고일어나면 숙취 증세가 없는데 오늘은 속이 메스껍고 영~ 아니올씨다 다
<만덕산 분기점을 오르기전의 암릉길을 오르는 곰발톱>
5분여 하나의 봉우리로 올라선 후 동쪽으로 떨어져 내리고 “마치”를 05시17분 지나간다
다시 오름길이 후 8분만에 오른 곳이 무덤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서 다시 7분 후 무명봉에 오르니 동쪽 하늘에서는 이미 해가 떠오르고 있다
05시52분
<해발620m, 정상1.6km, 정수사1.1km,동부교회 수련원4.4km> 이정표가 서있는 안부를 지나고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바위봉을 오르고 암릉길을 지나게 된다
06시15분
만덕산 분기점인 x761m봉에 도착하니 <전북 산사랑회>에 의해 세워진 이정표에는 만덕산 정상임을 표시해 놓았다
지도상의 만덕산 정상은 정맥의 분기점인 이 곳에서 북쪽 약 0.25km 지점에 있는 것으로 알고 높이도 763.3m에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로 알고 있다
이정표에는 <정수리1km 슬치13.2km 곰치2.5km>로 표시되어있는 이 곳에서 휴식을 한다
<만덕산 분기봉과 일대를 둘러본다>
06시37분
다시 출발하면서 잠시 내려섰다가 바위봉을 오르는데 반대쪽에서 많은 인원들이 오른다
부산에서 왔다는 산악회인데 오늘 호남정맥 첫 구간을 뛴다며 02시에 모래재를 출발 슬치까지 운행한다고 한다
정상에서 이정표가 있는 두 번째 봉우리부터는 급격하게 떨어져 내린다
만덕산은 전국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역 산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고, 또 한 산세로 보아서 괜찮은 산으로 보이는데 그래서인지 잘 정비된 등로와 이정표가 있다
06시53분
평탄한 능선에 의자가 설치된 제2쉼터를 지나 내려서고 5분 후 <조두치>를 지나 오른다
반대쪽에서는 여전히 뿔뿔이 흩어져서 반대쪽으로 오르는 부산팀들을 목격하고,
07시08분
광활한 삼포밭을 통과해서 오르니 7분 후 무명봉을 지나고 완만한 능선을 지나는데 남쪽으로 삼각점이 있는 577.1m봉과 능선의 방향을 같이하며 달려간다
<삼포>
혼자 다닐 때는 말을 할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산행을 하면서도 곰발톱 후배님과 게속 이야기를 하며 움직이니 아무래도 빠른 발걸음은 아니다
07시35분
진안군 부귀면과 완주군 소양면의 경계를 이루는 웅치에 내려서니 시멘트 포장길이고 차량이 간간이 지나다닌다
그늘을 찾아 잠시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데 많이 담아가지않은 물만 먹힐 정도로 아직도 컨디션 회복을 못하고 가끔씩 구토만 해대니 내가 나를 생각해도 과연 장거리 산행을 할 자격조차 있는건지 할 정도로 토요일이면 그렇게 마셔대는 한심함이다
13분을 지체하고 다시 시멘트길을 따라 부지런히 오르니 전적비가 나타나고 그 옆에는 차량을 주차하고 라면을 끓이는 사람이 아는체를 한다
이 곳에서 시멘트길을 버리고 숲길로 들어선다
<웅치 전적비>
여기서 웅치 전적지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곳은 선조25년(1592)임진왜란 때 조선의 관군과 의병이 전라도로 진출하려던 왜군을 맞아 장렬한 공방전을 전개하였던 격전지이다
그해 칠월 충남 금산에 주둔하고있던 왜장 안고구찌 게이강이 이끄는 왜군이 2진으로 나뉘어 전주를 공략하려 하자 권율장군은 이치에서 적의 1진을 맞아 격파하고 김제군수 정담, 해남현감 변웅정, 나주판관 이복남이 이끄는 의병은 웅치에서 적의 2진을 맞이하여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일단 적을 격파 하였다
다음날 새벽 왜병은 전열을정비하여 재차 공격해왔다
3일간에 걸쳐 전개된 이 전투는 임진왜란사에 손꼽히는 대격전이었고 특히 조선군의 주장인 정담은 포위 당한 가운데 백병전으로 적을 무찌르다 순국하였다
그리하여 웅치 수비는 중과부적으로 비록 무너지고 말았지만 왜군도 많은 희생자를 내고 큰 타격을 받아 전주성을 직접 공격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웅치 싸움이 끝난 후 왜군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에 깊이 탄복하여 용전하다 순사한 조선군의 유해를모아 무덤을 만들어 <조조선국 충간의 담>이라는 표목을 세워 조선의 충신과 의사의 영혼을 조상하기도 하였다
1979년에 전라북도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웅치 전적비를 세웠다“
<옛 곰티재를 지나기전 멀리 바라본 만덕산 전경>
08시
무명봉 하나 올라선 후 북쪽으로 떨어져 내리는데 단풍나무 군락지다
내려선 후 잠시 평탄하다가 시야가 터지면서 오래된 산판길이 나타나는데 뒤돌아보니 지나온 만덕산의 전경이 보기좋으나 갈길을 생각하니 아마득하다
곧 이어 산판길 사거리 나타나고 내려서니 옛 곰치재를 지나 오르는데 우측으로는 철조망이 쳐져있다(08시18분)
철조망을 끼고 오름은 한동안 이어지고 특징없는 x563m봉을 지나서 내려선다
08시33분
바람이 부는 곳을 찾으려 게속 움직이다가 결국은 △514.5m봉 직전에서 아침 요기를한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출발한 시간이 08시57분 이고 곧 이어 514.5m봉의 깨진 삼각점을 확인하며 지나는데 가지치기가 잘된 참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죽 죽 잘 자라있다
09시18분
무명봉 하나 지나고 잘록이를 지나 다시 올라섰다가 내려서는데 <1989년 신보89-3 한국광업진흥공사>의 표지석을 지나내려서니 사거리 안부로 이루어진 <충천치> 다
조금전의 그 표지석은 북서쪽에 위치한 <신보광산>때문일 것이다
충천치에서 게속 오름길이 이어지고 두 번의 무명봉을 거친다
09시40분
서쪽으로 능선이 뻗어나간 분기봉에서 다시 10분간 주저 앉으니 오늘의 여정이 평탄치만은 않으리란 것이 불 보듯 뻔하고 다시 출발이다
시야가 터지면서 쓰러진 나무들과 교통호를 통과하다보니 우측 아래로 휴게소가 보이고 차량들이 지나가는 모래재터널 위를 지나가다가 다시 오름이 이어진다(09시55분)
10시10분
드디어 작년(2002년)3월부터 시작해서 우여곡절끝에 22구간만에 호남정맥 구간종주의 막을 내리는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의 분기를 이루는 주화산(주줄산(565m) 정상에 오르니 각 산악회들의 환영 현수막들이 걸려있고 전북 산사랑회, 건건산악회에서 세운 정상 금속표지가 서있고 제법 넓은 공터를 이루고 있다
“축하 합니다 선배님!”
연신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는 곰발톱 후배님과 얼린 캔 맥주로 호남정맥 졸업을 축하하는 행위를 벌인다
만약 나 혼자서 오늘의 산행에 들어섰다면 그나마의 감흥도 없이 아주 무덤덤 했을 것이다
별다른 감흥이 없다하더라도 그래도 지나간 기억들을 되살려보면 몇 가지 떠오르는 생각들, 그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구간은 있다
<주화산 정상 분기점 표시앞에서 건배의 맥주캔을 들고있는 곰발톱 후배 上 그리고 나 下>
첫 구간 망덕포구 인근에서 시간을 보내며 차량 안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농협 앞이었고, 당시 어디인지 기억은 없지만 농협강탈사건이 있어 경찰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 모두가 시커먼 복장을한 건장한 사람들이 농협앞에 차량을 주차해 있었으니, 초반의 구간 때는 작년 그렇게도 심했던 황사로 온 몸이 누어렇게 변했다는 것과 무엇을 볼 수 없었다는 그런 기억 뿐이다
4구간 문유산 일대와 유치산 일대의 철죽은 새로운 철죽구간을 발견한 듯 했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 구간이 아무래도 존재산 통과가 아니었나 싶다
결국은 부대를 통과하지 못하고 엄청난 잡목숲을 헤치며 사투를 벌였던 기억, 7구간을 끝내고는 풀독으로 참가자 거의가 병원신세를 졌었고 그로인해 3개월의 종주를 접었던 생각들,
3개월만에 시작한 8구간은 일림산-제암산 구간이라 감회가 남 달랐고, 대체적으로 무등산권으로 접어들기전 까지는 호남음식 맛 기행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홀로산행으로 들어선 후 하루종일 겨울비를 맞으며 진저리를 쳤던 유둔재-방아재 코스의 14구간은 산행을 끝낸 후 나를 만나고 지리로 들어가려던 제주의 그넘과의 만남,
환상적인 추월산 코스와 바로 다음 코스에서 완주를 불과 수 km 남겨놓고 내장산 관리공단 직원들에 의해서 되돌아서야 했기에 나의 호남정맥 산행에서 유일한 아픔으로 남았던 기억, 참으로 징그럽게도 가시와 잡목과의 사투를 벌이는 구간이 많은 호남정맥이었던 것 같다
작년3/1 팔공모임 때 거인산악회의 이구 대장의 말이 생각난다
"광인님! 남할 땐 좋은 옷 입고 다니지 마십시요" ^^
◁또 다른 시작 금남호남정맥 첫 걸음▷
10시32분
동쪽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는데 우측 저 아래로는 여전히 휴게소가 내려보이고, <세봉 임도개통 기념식수>라고 쓰인 표석을 지나 내려서니 자갈이 깔려있는 임도로 내려서며 부족한 식수와 맥주등을 구하러 모래재 휴게소를 다녀오려 하다가 취소하고 건너편 계단길을 오른 것은 어차피 49번 국도가 지나가는 오룡동고개에 내려서면 구할 수 있을 것이니 굳이 왕복 최소 30분은 소요될 휴게소까지의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다
가파른 계단길을 향해 올라서는 것이 바로 금남호남정맥 구간의 첫 오름인데도 역시 별다른 느낌은 없고 그냥 여느 산을 올라가는 것이고 몇 시에 이 산행을 끝낼 것인가...
급격하게 오르던 능선은 정상을 오르지 않고 남쪽으로 떨어져 내린 후 평탄하게 이어지니 사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우측은 모래재 휴게소로 내려서는 길이리라
11시04분
올라선 봉우리가 x640m봉 이고 여전히 정맥은 남쪽으로 이어지는데 서쪽 저 아래로는 모래재 휴게소를 볼 수 있음은 충천치 이 후 북쪽으로 향하던 호남정맥이 주화산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이어지는 U자형 능선이 이어지기 때문이다(3분간 지체)
640m봉에서 급격히 떨어졌다가 한동안 평탄함이 유지되고 우측 <적천>으로 내려서는 소로 길도 지나간다
<모래위 임도 계단을 오르면 금남호남정맥의 첫 오름길이다>
11시39분
산죽군락을 헤치며 급격히 올라서니 x615m봉에 올라서고 거의 남쪽으로 떨어진다
11시52분
615m봉에서 내려서니 암봉을 하나 오르고 암릉을 따르니 사방의 조망이 터지고 뒤돌아 바라보니 지나온 모래재 터널이 바라보이고 북쪽으로 오룡리 오산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8분 후 다시 무명봉 하나를 오른 후 내려서니 갈비가 푹신한 소로길 갈림길을 지나 다시 전면의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낙엽송들이 죽 죽 뻩어 보기좋다
12시19분
햇볕에 노출되는 벌목지대가 나타나니 몇 기의 무덤이 나타나고 이제 저 아래 국도를 지나가는 차량소리가 요란하고 곧 이어 다시 숲으로 들어서는데 정맥은 갸날프게 이어져 가는양 왼쪽 바로 아래 로는 시멘트 길이 보이고 그 옆으로 콸~ 콸 물이 흘러 내리는 수로가 보이지만 내려서지 못하고 그대로 능선을 이어가는데 바로 도로로 떨어지나 했으나 전면의 무명봉 하나를 오르니 엉컹퀴 등 잡초가 무성한 무덤지대가 나타나고 금새 절개지 위에서 좌측의 내려서고 고추밭을 지나서 내려 국도로 내려선다(12시28분)
금남호남정맥으로 접어들며서 그 유명한 구름나그네의 노란색 표지기를 나로서는 생전 처음으로 보며 가게되고 몇 번 본일이있는 강산에 후배님의 표지기도 간간히 보인다
<부귀산 쪽을 바라보며, 그리고 전주와 진안을 이어주는 49번 국도상의 오룡동고개>
북쪽으로 도로를 따라 십수m내려서니 오룡주유소가 나타나고 편의점이 있어 들어섰더니 아기를 안고있는 젊은 아낙이 <오늘 장사를 않는데요> 한다
<무슨 소리인가? 문이 열려있고 있는 물건 돈을주고 사면 되지않는가?>라는 되 물음에 어제부터 전기가 나가서 냉장고에 있는 맥주니 음료들은 만질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라면등 음식도 끓일 수도 없거니와 심지어 전기로 끌어올리는 수도도 작동이 되지않아서 식수도 구할 수가 없단다
장사가 얼마나 안 되는 곳인지 빵이나 쵸코파이가 보이길래 집어 들었더니 유통기한이 지난지 오래되어 살 수가 없단다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엄청나게 크니 맥이 빠진다
혹시하고 과자 몇 봉지를 구하고 저 아래 오룡동마을로 내려간 곰발톱 후배님에 의해 식수만 보충하고 다시 오룡동 주유소를 출발한 시간이 13시 정각이다
부귀 방향으로 도로를 따르다가 절개지의 낮은 지역으로 올랐으나 밭떼기가 나타나고 이 곳 저 곳 아무리 둘러봐도 가시넝쿨등이 기로막아 방향만 보고 치고 오르기로 한다
20분쯤 오른 능선상에는 성곽의 형태였는지 돌들이 널려 깔려있는 무명봉을 지나간다
14시20분
몇 번의 오르내림끝에 남쪽 <신리>쪽으로 뻗어내리는 능선의 분기점에서 다시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오름길이 이어진다 (10분 휴식)
<날씨는 엄청나게 더웠지만 그래도 워낙 짇은 수림으로 그늘이 이어지니>
사실 오룡동고개 이 후 잡목을 헤치고 오르면서부터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잦은 발걸음의 멈춤이 어지고 평소 1.8리터 식수 하나면 도상 20km정도를 거뜬히 지날 정도로 물을 많이 마시지 않던 내가 수시로 물을 마셔대니 부귀산도 가기전에 식수가 거덜날 것 같기도 하지만 이즈음 사실은 부귀산은 커녕 중간 탈출을 서서히 생각할 정도였고 오룡고개에서 도상거리 2km 남짓한 남릉 분기점까지 무려 1시간 20분이나 소요될 정도이니...
사실 그 동안의 산행중에 체력 때문에 탈출을 결심한적은 기억에 없었는데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하여튼 장거리 산행에 나서기전에 생각없이 과한 음주를 하는 숩관이 다시금 떠 오른다
사실 힘들고 지치니 모든게 귀찮아져서 기록도 부실해지고 이 후 부귀산까지는 많은 거리임에도 평소 기록을 위해 열심히 찍어대던 사진마저도 몇 장 찍지않을 정도였다
14시41분
북쪽 △644.5m봉을 거쳐서 부귀면소재지까지 이어진 능선분기점을 지나 동남쪽으로 내리고, 그리고 9분 후 안부에 내려선 후 645m봉을 향해서 올라선다
그리고 이 후의 기록이 내 부주의로 인해서 모두 사라져서 목요일(5일)부터 기록하는 산행기가 기억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즈음 또다른 부산의 산악회팀들이 활인동치에서 올랐다며 마지막 뒤에쳐진 한 사람을 만나면 탈출로를 좀 일러주라고 부탁하며 지나들 간다
<x653m봉을 오르기 시작하면 남쪽 멀리 조망되기 시작하는 마이산>
x645m봉에서 x653m봉을 오르는 구간에도 숱한 오늘내림의 굴곡이 심하다
그 것은 실제 많은 무명봉의 오름과 잦은 잘록이가 나타나기도 했지만 내 체력이 평소와 달리 엄청나게 다운된 탓도 있을 것이고 계속 탈출하고픈 생각뿐이었다
x635m봉에 오른 후 저 건너편의 부귀산을 쳐다보니 도저히 오를 수 없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 지도상의 남쪽의 <원정곡 마을>과 북쪽의 <대곡마을>로 이어주는 골짜기 소로 표시가 있는 잘록이로 내려서면 무조건 탈출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동행한 곰발톱 후배께도 내 뜻을 전하는데 내 정도는 아니드라도 후배님도 그리 좋은 컨디션은 아닌 듯하다
기억상으로 16시가 되기전에 잘록이 안부에 내려선 것으로 기억되고 양쪽을 아무리 살펴봐도 내려설 만한 족적이나 소로길이 보이지 않는다
실제 내려서는 맛에 이런 곳으로 내려서면 엄청난 고생이 도사리는 것은 뻔하다
그 것도 능선의 내리막이 아닌 골자기 내리막에는 거의 뚫고나가기 힘든 잡목과 가시의 장벽에 부딧치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러니 방법이 없으니 오히려 이 때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부귀산 정상을 향해 오름짓이다
<천신만고끝에 오른 부귀산 정상이다>
부귀산을 향한 오름은 숨이 턱에 찰만치 급격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내 산행 입문이 후 열 발자국 정도걷고 숨 한번 내쉬며 멈추고, 그렇게 되풀이하는 산행은 처음일 것이다
그렇게 부귀산을 향하는 오름짓이 고통스럽게 이어지고 1시간여 오름이 이어지니 거대한 암봉이 나타나면서 암봉의 절벽 아래를 우측으로 따라 오른다
마지막 바위봉에 오르니 시야가 터지는 터지는 지역으로 올라서니 의외로 오래된 무덤이 한 기있고 이 곳에서 남쪽으로는 마이산이 확실하게 내려다 보인다
이 곳이 정상인가 했을정도로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였는데 정상은 몇 걸음 위에 자리한 넓은 공터에 역시 무덤이 한 기있고 역시 전북 산사랑회에 의해서 표지가 설치되어 있다
<부귀산 806.4m, 대곡교4.1km, 활인동치4.2km, 26번국도6.2km>로 쓰여 있다
부귀산 정상 도착 시간이 17시가 조금 안된 시간이었고 이 곳에서 마지막 남은 활인동치 까지의 4.2km거리상에 지도를보니 x637m x549m x462m의 봉우리가 표시되어 있어 은근한 걱정을 했으나 17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정상을 출발해서 힘을 얻어 뛰어내려 서다보니 큰 오름없이 오로지 뛰어내려설 수 있는 좋은 길이 이어진다
언제 그렇게 힘겨운 오름을 이어왔냐싶게 단거리 선수마냥 뛰어내리다보니 죽 죽 뻗은 소나무들이 있는 지역도 지나며 내려서는데 많은 산우들이 축하의 메시지나 전화로 연락을 해주니 고맙기 그지없다
17시55분쯤으로 기억되는데 포도밭이 나타나고 민가가 나타나니 왼쪽옆으로 개 사육장이 있어 요란하게 개 짓는소리를 들으며 전면의 넓은길을 따라오르니 <마이 종합 학습장>을 지나서 그대로 풀숲을 헤치며 내려서니 <활인동치> 절개지가 나타나고 도로로 내려선다
준 고속도로같은 26번 국도상의 활인동치는 중앙에 분리대가 있어 진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분리대를 넘어가야 하는데 엄청난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을 조심해야 한다
활인동치를 내려선 시간이 정확하게 18시 임으로 무려 13시간이 소요되었다
10시간으로 예상시간을 잡았는데 물론 굴곡도 많았지만 오룡동고개 이 후 컨디션 저조로 인해서 워낙 시간이 많이 소요된 경우였고 내 일상생활을 다시한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같다
거기에다가 내 부주로 마지막 몇 시간의 기록이 없어진 금남호남정맥 첫 구간이 아쉽기도 하고 끝으로 생각지도 않았는데 산행에 동참해준 곰발톱 후배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다. -狂-
첫댓글 처음으로 광인님 용안을 우려러봅니다. 대단한 酒力과 走力 존경스럽습니다. 아마 광인님정도의 내공소유자는 금수강산, 고원, 청암, 서울시청산악회에서 가끔만나는 고수님과 비슷한 경지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