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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 45장 5절,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하박국 3장 17~18절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5절, 새번역>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개역개정>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하박국 3장 17~18절, 새번역>
'감사의 고백'이 주는 큰 울림이 있습니다. 혹독했던 고난의 여정을 지나 오늘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을 듣고 있으면 정말 나의 고백인 듯 신앙인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율이 있습니다. 특히 그 고백을 드리는 이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안다면 그 고백이 주는 감동은 몇 갑절로 증폭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고백이 조금씩 조금씩 변질되어 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바로 불필요한 말 한 마디가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감사의 고백을 드리면서 불평을 은근히 섞게 되는 때가 바로 그런 순간입니다. 오늘 요셉의 고백이 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게 되었고, 그 중에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해 종이 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감추지 않고 밝혀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요셉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기의 모든 시종들 앞에서 그만 모두들 물러가라고 소리쳤다. 주위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고, 요셉은 드디어 자기가 누구인지를 형제들에게 밝히고 나서, 한참 동안 울었다. 그 울음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밖으로 물러난 이집트 사람들에게도 들리고, 바로의 궁에도 들렸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고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으나, 놀란 형제들은 어리둥절하여, 요셉 앞에서 입이 얼어붙고 말았다. <창세기 45장 1~3절, 새번역>
도무지 믿겨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오히려 뒷걸음질 치는 형들을 자신에게 가까이 오게 하는 요셉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요셉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할 내용을 이야기합니다.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니, 그제야 그들이 요셉 앞으로 다가왔다. "내가,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 넘긴 그 아우입니다. <창세기 45장 4절, 새번역>
그제서야 형들은 요셉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존재는 형들과 요셉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형들은 더욱 두려워졌을 것입니다. 그 때 이집트로 팔아 넘긴 요셉이 지금은 이집트 총리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복수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멋진 감사의 고백으로 형들을 위로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그것은 하나님이,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셔서,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5절, 새번역>
바로 이 고백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하나님이 하셨다'라는 감사의 고백 중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 '감사의 고백'은 딱 한 마디만 없었다면, 정말 온전한 감사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분명히 감사의 고백인데, 듣는 이들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초래하게 만든다면 그 감사의 고백에 대한 감동은 차갑게 식혀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고백이 혹시 이랬다면 어땠을까요?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책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목숨을 살려 주시려고 형님들보다 앞서서 나를 여기에 보내셨습니다. '
'형님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아 넘기긴 하였습니다만' 이란 말은 뺐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악조차도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저는 확실히 믿습니다. 슬픔의 상황을 기쁨이 되게 하시고, 절망의 순간을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맞습니다. 분명히 형들이 요셉을 팔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은 그 상황을 통하여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감사의 고백'의 조건이 마치 '형들이 요셉을 이집트에 팔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한 마디의 말을 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심심치 않게 감옥에 가서 하나님을 영접했다는 분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 곳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시고 계심을 믿기에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감옥에 갔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났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감사의 조건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은연중에 마치 잘못을 저지르게 하셨고, 감옥에 가게 하셔서, 그 곳에서 자신을 만나주셨다는 것처럼 들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저는 2007년에 개봉했던 영화 '밀양'을 아주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납치범에 의해 살해당한 한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너무 가슴이 아픈 그녀는 교회의 치유집회에 참석하게 되고, 그 집회에서 하나님의 따스한 위로를 받고 치유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기독교인으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죽인 납치범을 용서하고자 하는 마음까지 생겼습니다. 하지만 용서를 하려고 교도소로 면회를 간 그녀는 납치범으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녀는 남치범이 교도소에서 살인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고 살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그를 불쌍히 여겨 용서해주려고 왔는데 그 납치범도 교도소에서 하나님을 믿고 새 삶을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납치범은 이렇게 죄많은 저를 주님이 용서해주셨다고 하며, 오히려 당신을 위해 매일 축복하고 있다며, 그녀가 신앙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는 말까지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말 때문에 그녀는 충격을 받습니다. 납치범 입장에서는 '간증'이었고, '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이 때부터 하나님께 대항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정신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기까지 합니다. 그런 그녀의 대사 중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있습니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하나님이 벌써 용서하셨다는데.. 내가 어떻게 용서를해요,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요, 내가 용서를 해야지..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요”
요셉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지금 이집트 총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자신의 억울했던 지난 날들을 형들에게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2번의 테스트를 거치게 되었고, 충분히 형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몇 배 이상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이 정말 이 순간 형들에게 하는 말이 '하나님이 하셨다' 라고 말하는 믿음과 감사의 고백이 되려면, 과거에 대한 그 말 한마디는 과감히 뺄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말을 함께 함으로 인하여 이 믿음과 감사의 고백에 대한 고백은 조금은 찝찝한 고백으로 남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통해 '감사의 기도'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가 영으로만 감사를 드리면, 갓 믿기 시작한 사람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듣지 못하므로, 어떻게 그 감사 기도에 "아멘" 하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가 훌륭하게 감사 기도를 드린다고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덕이 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14~15절, 새번역>
다행히 요셉도 자신이 괜한 말을 한 것을 느꼈는지 한 번 더 이어지는 고백에서는 그 한 마디를 뺀 고백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 주시려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살아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리로 보내셔서, 바로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고, 바로의 온 집안의 최고의 어른이 되게 하시고, 이집트 온 땅의 통치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창세기 45장 7~8절, 새번역>
바로 이 고백입니다. 첫번째 고백이 직접적인 표현을 통해 형들의 마음을 철렁 내려 앉게 만들어 부담을 가게 만드는 고백이었다면, 이 두번째 고백은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형들로 하여금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용서를 구하게 만들 수 있는 고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우리도 분명히 지금 겪고 있는 이 어려운 고난을 지나 '하나님이 하셨다' 라고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우리 다 함께 '감사'만 있는 '감사의 고백'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어떠한 조건을 통해 그 '감사'가 찾아왔다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마치 그 고난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하셨다'는 감사의 고백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처럼 느끼게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감사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개역개정>
'조건'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로 인해 만들어진 오늘로 인하여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는 감사 그 자체여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으로서 고백하는 감사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러니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굳이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셔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알아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순간을 누구보다 잘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칭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것으로 족한 것입니다.
'해같이 빛나리'라는 복음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족하리' 네. 맞습니다. 주님이 기억하시면 그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기억해 주실 그 말 한마디를 빼고, '감사의 고백'이 흘러 나올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렇게 오늘 요셉의 첫번째 감사 고백을 통해 슬기로운 신앙생활에 대한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이 했던 첫번째 고백 없이 두번째 고백이 첫번째 고백이었다면 정말 전율 넘치는 '감사의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형들이 느낄 부담도 훨씬 덜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감사의 고백을 통해 진심으로 뉘우치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고, 요셉의 용서와 하나님의 은혜를 더 깊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감사의 고백'을 통하여 '감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회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늘 그 한 마디를 덜하시면 덜했지, 결코 더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천명을 먹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이 빈 들에서, 어느 누가, 무슨 수로, 이 모든 사람이 먹을 빵을 장만할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 8장 4절, 새번역>
이런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잔소리를 하거나, 꾸짖거나 하지 않으셨습니다. 빵이 7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시고 이렇게 행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명하여 땅에 앉게 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들어서, 감사 기도를 드리신 뒤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가복음 8장 5절, 새번역>
예수님은 그저 감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드러내는 감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통하여 감사하신 것이 압니다. 하나님이 감사의 모든 조건이셨으며, 하나님이 감사의 이유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의 고백' 역시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 <하박국 3장 17~18절, 새번역>
형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팔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요셉이 이집트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감사의 고백은 하나님이 하지 않으신 것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지 말아야 할 딱 한 마디의 말을 줄이고, 진짜 '감사의 고백'을 통해 슬기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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