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나에게 묘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책이다. 어릴 적에 우연히 TV 만화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원작소설'로 다시 만난 책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우연한 만남을 가진 책이 이 책 뿐만은 아니었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도 그랬고,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 심지어 이란 드라마에서 보았던 <기억 속의 들꽃>이란 제목도 '논술쌤'이 되는 과정을 통해서 다시 만나게 된 '원작소설들'이었다. 거기에 <빨간머리 앤>, <소공녀>, <소공자>,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랜더스의 개> 등등 '원작소설'보다 만화영화나 드라마로 먼저 만났던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샬롯의 거미줄>은 색다른 느낌을 주는 남다른 감동이었기 때문에 오래오래 기억하는 책이다.
'무녀리'로 태어난 새끼돼지 윌버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만난다. 너무 여리게 태어났기 때문에 공을 들여 키워봤자 '돼지고기'를 충분히 만들만큼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손바닥보다 작을 때 도끼로 내리찍어 죽이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해 윌버를 살린 여덟 살짜리 꼬마 아가씨가 바로 펀이다. 작고 여리다는 이유로 죽일 거라면 자신도 작고 여리게 태어났더라면 아빠가 그런 선택을 했을 것이냐고 당차게 말하며 새끼돼지를 살려내고 만다. 그리고 펀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윌버는 여전히 작긴 하지만 무럭무럭 자라게 된다.
작고 여린 생명이라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는 어린 아이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양이다. 나도 초등시절에 만화영화를 보면서 그런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는 어린이들에게 '동질감'에 따른 강한 공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른들에 비해 작고 여린 생명이 '자신'이 어른들의 판단기준으로 무시 당하고 억압 당하기만 했는데, 펀의 목소리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도 소중한 생명이란 말예요"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다. 이 책으로 논술수업을 하는 요즘 어린이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이 책이 지금도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편, 주커만 삼촌 댁의 농장으로 가서 살게 된 윌버는 '친구'를 사귈 수 없어서 심한 외로움에 빠져 버렸다. 물론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펀이 거의 매일 찾아와 자신을 바라봐주지만 '농장'에서 살아가는만큼 농장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위나 양, 젖소, 심지어 쥐를 만나기도 하지만 하나 같이 자신과 마음을 터넣고 지낼만한 부류는 아니었다. 그러다 '단짝 친구'가 되어줄 거미를 만나는데, 그게 바로 '샬롯'이다. 샬롯은 윌버에게 진정한 친구란 무엇인지 알려줄 정도로 헌신을 다한다. 그리고 윌버가 처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하고 말이다. 돼지들의 운명이란 '결국, 햄'인데 윌버도 점점 살이 붙기 시작하자 다른 돼지들처럼 그럴 운명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다. 이를 듣고 죽음을 예감한 윌버는 낙담하지만, 샬롯이 반드시 살리겠다는 위로를 듣고 다시 힘을 낸다.
'진정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자신을 알아봐주고 자신을 위해 헌신을 해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언제나 든든하고 세상 무서울 것도, 부러울 것도 없어지는 기분이 든다. 반대로 그런 친구가 훌쩍 떠나버리거나 배신을 당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고 말이다. 윌버에게는 그런 친구를 꼽으라면 바로 '샬롯'과 '템플턴'을 꼽을 수 있다.
혹시 의외라고 생각하는가? 샬롯은 그렇다치고 템플턴이라니? 교활하다못해 고약한 친구를 연상케 하는 더러운 쥐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템플턴 같은 친구도 꼭 필요하다. 샬롯이 깨끗한 세상의 친구라면, 템플턴은 더러운 세상의 친구다. 깨끗한 세상의 친구만 있으면 더는 필요치 않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지만, 현실을 살다보면 더러운 일도 겪기 마련이다. 실제 템플턴은 샬롯이 죽을 위기에 빠졌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하고, 윌버가 품평회장에서 기절을 했을 때도 결정적 도움을 주며, 윌버를 '눈부시고', '겸허한' 돼지로 만들 때에도 결정적 도움을 준다. 또한 샬롯의 마지막 걸작인 '거미알'을 농장으로 옮길 때에도 템플턴의 헌신(?)이 없었다면 결코 이룰 수 없었다. 비록 더러운 세상을 사는 템플턴이지만 마음씨만큼은 선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템플텐은 '선량한 이기주의자'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새끼돼지 윌버가 아니라 바로 '회색거미 샬롯'이다. 사실 윌버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툭하면 울고 삐치고 좌절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럴 때마다 윌버에게 '살아갈 희망'을 준 것이 바로 '샬롯'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 책의 제목도 <샬롯의 거미줄>인 것이다. 예전에 논술을 할 때는 어린이들이 이것을 눈치 못채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대번에 눈치 채고 '샬롯'과 같은 친구를 찾거나 '샬롯'과 같은 친구가 되겠노라고 다짐하는 아이들이 참 많아졌다. 정말이지 세월이 지날수록 아이들이 똑똑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전에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아기돼지 베이브>가 나왔을 때는 샬롯이 주인공이 아니라 '새끼돼지'를 주인공으로 삼아서 감동이 사그라들기도 했다. 물론 돼지가 예뻐서 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원작의 감동'을 파괴한 대표적인 영화가 되고 말았다는 점에서는 명백하다. 하지만 '우정'을 그린 작품에서는 어쩔 수 없이 '둘'을 등장시키고 '캐미'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우정이란 누가 더 빛이 난다고 해서 친구사이가 서먹해질 걱정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또, 진정한 우정이란 친구의 성공에 아낌없는 헌신과 축하를 해줄 수 있는 사이일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진정한 우정'을 맛보지 못한 것은 참 아쉽지만, 내가 '그런 친구'가 되지 못한 것이 더 아쉬울 뿐이다. 그럼에도 핑계를 댄다면, 나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데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고, 아낌없이 주는 친구는 많았으나 그럴 때마다 날 호구로 이용해먹을 궁리만 하는 못난 놈들만 만났었다고 말하련다. 진정한 친구 사귀기에 여러 번 실패를 하니 두려움이 앞섰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변명이라도 고급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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