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넷시민강좌 발버둥치는 식민사학 형태분석
일시 2017.11.18.15:00~17:00‘
장소 : 종로구 세종대로 시청2별관 시의원회관 대회의실
누가 : 역사교육바로세우기 시민네트워크 이주한 강사
무엇 : 발버둥치는 식민사학 형태분석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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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ksuntae&folder=120&list_id=15232056
역사교육바로세우기 시민네트워크에서 운영하는 이번 강좌는 한가람역사연구소 연구위원인 이주한 선생의 [발버둥 치는 식민사학 형태분석]에 대한 강의를 서울시의원회관대회의실에서 30여명의 관심을 가진 시민들과 함께하며 열렸다.
이주한 선생의 강의는 주로 우리 역사학계의 갈등 상황을 일으키고 있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소위 말해 식민사관을 지켜오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라 할 수 있는 제도권역사학자들인 이병도학파의 행태에 대한 비판에 포인트를 맞추어 진행이 되었다.
0 소위 말해 제도권의 역사학자들은 그들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학자들을 몽땅 통틀어 “역사파시즘”이라고 매도하고 있으며, <상고사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하며, 국가와 국력과 영토에 이상 집착하는 일련이 비합리적 행위>라고 단정 짓고 있으며, 제도권의 역사학파로 정착한 이병도의 역사이론을 이어받은 도제식의 교수학자들의 주장이다. 이제 나이 들어서 그런 소리를 하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였을까? 이들은 젊은 역사학자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사람들을 동원하여서 [한국 고대사와 사이버 역사학]이란 책으로 밀어 붙이려고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1986년인가 87년? 정확한 기록은 찾아보아야겠지만,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열린 <한국상고사 대 토론회>에 참여 하였을 때에 정말 학자들이 이런 정도여야 할까 싶을 만큼 강한 대립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저런 것을 교수라고 일제 편수국에서 만든 역사를 성경으로 삼아 일본놈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여 팔아먹고 있는 자들이 국가의 녹을 먹고 제도권에서 판을 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역사가 엉망이 되었다. 당장 끌어 내려라.”고 소리를 치고 달려 나가자 단상에서 항변의 소리가 터지고 야단이 났었다.
바로 그 자리에는 전직이셨지만, 윤보선대통령까지 참석한 자리이었다.
이 자리에서 소위 말해 제도권에서의 주장은
“재야사학자들은 우리 역사를 고서 몇 권에 의지하여 우리 강역이 만주대륙까지라고 주장을 하지만, 그것은 실증사학의 측면에서는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물증이 없는 주장이기 때문에 세계 사학계에서도 인증을 받을 수 없는 주장이다.”라고 실증사학의 입장에서 인증 받지 못한다고 강변하였다.
이 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한 분이 열변을 토했다.
“그래? 그 알량한 실증사학으로 오늘의 서울시민의 생활을 밝혀 보기 위해서 우리 저 난지도의 쓰레기 더미를 한 번 실증역사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발굴을 해보자. 그럼 무엇이 나오겠는가? 아마도 틀림없이 잘 썩지 않는 라면봉지들과 플라스틱 조각들이 나올 것이다. 그럼 실증사학적으로 해석을 해보자. ‘196.70년대 대한민국 사람들은 라면만을 먹고 살았으며. 플라스틱 그릇만을 사용하며 살았다.‘라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본 그 실증자료들 <라면 봉지와 플라스틱 조각> 그것이 과연 오늘날의 서울시민의 생활을 보여주는 진실인가?”라고 따졌다. 이 말에 대해서 실증사학을 외치던 쪽에서는 반박을 하지 못하였었다.
그런데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우리가 배웠던 역사교과서는 일본의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국>에서 만든 그들 나름대로의 역사날조를 위한 실증 자료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배워 왔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일본은 그들 나름의 발굴 자료들을 동원하여서 우리 역사를 고려통일 이후만을 역사로 그리고 강역을 한반도 안에서라는 한정을 하려고 우리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병도는 조선사편찬위원으로 참여하여 배운 그들의 주장을 받아 학파를 만들어 우리 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는 제자들을 이끌며 이병도 학파를 이루었고, 이런 일본의 주장만을 전파하고 인정할 뿐이며, 다른 주장을 하는 사학자들을 사이비사학이니 재야사학이니 하고 비하하거나 비학문적이라고 비난을 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증사학이란 것이 얼마나 조작되었으며, 얼마나 엉터리인가에 대해서는 바로 자기나라에서 조차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발굴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일본 안에서 가장 유명한 고고학의 권위자<후지무라 신이치>라는 사람이 구석기 유물을 찾겠다고 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현장에 밤중에 자기 집의 구석기 유물을 몰래 가져다 묻고 있는 것을 마이니치신문에서 비디오 촬영을 하여서 그의 발굴작업이 모두 조작이며 사기극이었다고 폭로하였다. 그 결과 그의 발굴성과와 주장으로 70만년전까지 일본의 역사를 끌어 올려 구석기 문화가 있었음을 주장했던 것이 모두 사기였음을 2000년 11월5일 마이니치가 밝힌바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학계는 이런 악독한 일본의 사학자들이 그들의 실증사학이란 이름으로 자기네보다 후진국이라고 조작한 우리의 역사를 아직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우리 역사를 그들의 주장대로 반만년의 역사가 아닌 고려시대 이후의 역사만으로 인정을 해야만 정식 사학자이며, 우리 고전이나 중국의 사서들에 명시되어 있는 우리의 역사적 사실들은 위서이며, 사이비사학이라고 주장 할 수 있는 것인가 묻고 싶다.
이런 제도권사학자들이 동북아역사재단활동을 한다고 국가예산을 몇 억씩이나 받아먹고서 8년 동안 연구한 결과로 내놓은 결과물 중에서 지도에 [독도가 우리 땅이 아니고 빠진 채로 표시된 지도]를 내어 놓았단다. 이것이 소위 말해 제도권 정통사학자란 사람들이 독도연구소란 이름으로 저지른 짓이란다. 기가 막히다. 이 게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의 짓이라니 말이다. 그리하여 이 재단은 지원 대상단체로 적합성 판정을 한 결과 14/100점을 받은 순 엉터리였다니 정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 되는 역사재단이 과연 할 수 있는 일이었는지 기가 차다.
두 시간에 걸친 강의에서 우리는 이런 우리 사학계의 기막힌 현실을 들으면서 분개하고 견딜 수가 없었다.
강의 후 우리는 1/N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차례로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하였는데, 갈수록 명언들이 나와서 점입가경이란 말들을 하면서 즐겁게 전남담양의 어느 독지가가 보내주신다는 멋진 막걸리로 정담을 다독이었다.
어느 순간에 우리가 아직도 일제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한탄하는 말을 쏟아내는 회원님들께
“8.15 해방이 되고 조선을 떠나는 마지막총통 아베 노부유키가 남긴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그는 ‘조선이 다시 그 옛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제정신을 차리고서도 빨라야 200년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조선 사람들의 가슴에 일제교육으로 폭탄보다 더 무서운 일본정신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떠났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 일제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특히 우리 역사를 일제사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라고 다시 되새겨 보았다.
모두들 이 소리를 들으면서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끝까지 같이 하지 못하고 좀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어서 미안하고, 분위기를 깨는 게 미안해서 조용히 자리를 떠나려 했으나, 결국 모두 알리게 되었고 모두에게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야 하였다.
2017.11.19.21:14‘<19매>
첫댓글 자세하고 멋진 후기를 올려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