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선하고 맛있는 안주가 장수 비결
- “지나친 자기 확신이 자영업 망친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10년은 ‘마의 벽’으로 통한다. 처음에는 기반을 닦느라 힘들고 3~4년 성공적이다 싶어 사업을 확장하면 이곳 저곳에서 문제가 터진다. 본사가 흔들리니 가맹점도 불안하고 서로 호흡이 흐트러지는 순간 계약은 무너진다. 수많은 프랜차이즈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문을 닫는다.
‘술집’인 동시에 가족이 모이는 ‘레스토랑’
맥주전문점 치어스는 다르다. 2001년 1호점을 열었는데 올해로 12년째다. 가맹점은 올해 6월 기준으로 310개를 넘어섰다. 165㎡(50평) 내외의 대형 점포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성장이다.
치어스 정한(46) 대표는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속도와 가맹점을 늘리는 속도를 조절한 것이 성공비결”이라고 말했다. 가맹비와 로열티를 조금 더 받겠다고 마구잡이로 가맹점을 늘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12년 동안 치어스의 가맹점은 급증한 적이 없었다.
본사가 유통시스템 등을 갖추는 속도에 맞춰 해마다 약 30여 개씩 꾸준히 늘었다. 가맹점을 개설하는 것보다 문닫는 가맹점이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는 프랜차이즈 사업의 기본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본사에서 관리할 수 있는 능력에 한계가 있는데 가맹점만 늘리면 그때부터 둘의 관계가 삐거덕거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지금이야 직원도 90명 정도로 늘었고 인력 지원이나 식자재 공급 등 전반적인 시스템을 갖췄지만 처음에는 치어스 역시 준비하는 단계였습니다. 무작정 늘릴 수야 없는 거지요. 이 속도조절은 어느 정도 안정권에 접어든 지금도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입니다.”
정 대표가 말하는 시스템이란 치어스만의 독창적인 가맹점 관리 방법을 뜻한다. 가장독특한 부분은 식재료를 수도권과 영·호남등 3곳의 물류센터에서 직접 관리하고 배송한다는 점이다.
아웃소싱에 의존하면 물류비용이 늘어 가맹점 매출에 악영향을 주기때문이다.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양만큼 당일 배송한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가 물류 관련 사업을 위탁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주방인력을 본사에서 직접 관리하는 점도 눈에 띈다. 치어스는 본사에서 조리아카데미를 열고 정기 교육을 이수한 주방장을 가맹점에 보낸다. 갑작스런 부재에 대비해 보조인력까지 준비해두고 있다.
가맹점 별로 쓰는 재료가 다르거나 음식 맛이 달라지면 아무래도 브랜드 품질 관리에 어려움이따른다는 게 정 대표의 철학이다.
“치어스의 강점은 맛있고 신선한 안주입니다. 종류도 다양하지만 계절별로 신메뉴를 출시하기 때문에 통합적인 관리가 필수적입니다. 재료부터 조리까지 본사가 철저히 통제하지 않으면 고객들의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그래야 재료비를 아끼려는 일부 가맹점의 못‘ 된’ 장난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들이 대개 그렇듯 정 대표 역시 고난을 겪었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1995년, 그는 고급 인테리어 사업을 시작해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를 피할 순 없었다. 거리를 떠돌며 노숙자 생활까지 했다.
정 대표가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것은 26.47㎡(8평) 짜리 작은 치킨집이었다. 그는 “남들에게는 테이블이 고작 5개에 있는 동네 치킨집이었지만 나에게는 생명줄이었다”며 “하루 3시간씩만 자면서 조리부터 전단지 붙이는 일까지 악착같이 뛰니 점점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2001년 정 대표는 분당 야탑동에 치어스 본점을 냈다. 흔히 맥주전문점이라고 하면 맥주 맛이 가장 중요할 것 같지만 정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애초부터 치어스는 회식에 적합한 ‘술집’인 동시에 가족모임도 할 수 있는 ‘레스토랑’을 결합시킨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직접 제조하지 않는 이상 맥주 맛의 차별화는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음식으로 승부를 보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치어스는 보통의 호프집과 인테리어부터 다르다. 조명은 밝고, 여느 패밀리 레스토랑 못지 않게 세련된 분위기다. 냉동식품 대신 페퍼로니 슬림피자나 가프레제 샐러드 등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는 요리들이 안주로 나온다. 사업 초기만 해도 주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실 땐 안주가 별로 필요치않은데 그래서 장사가 되겠느냐”며 말렸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략은 맞아 떨어졌다. 이제는 여성과 가족 단위 고객이 더 좋아하는 레스펍(레스토랑과 호프의 합성어)으로 자리를 잡았다.정 대표는 지금도 매일 가맹점을 돌며 직접 안주를 먹어보고 경연 전반에 관한 조언을 건넨다.
자사 가맹점뿐만 아니라 경쟁업체나 성공한 자영업자를 찾아다니며 노하우를 눈으로 보고 배운다. 직원을 보내도 될법하지만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의 꼼꼼한 성격 탓이다. 정 대표는 12년 동안 사업을 해오면서 기억에 남는 가맹점주로 한 주부를 꼽았다.
“2003년쯤 주부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가게를 열 건물이 다 지어지지도 않았는데 미리 와서 교육을 받을 수 없겠느냐고 묻더라고요. 그건 힘들다고 했더니 가맹비를 미리 내고서라도 배우겠다고 하기에 거절을 못했죠. 그리고는 건물을 짓는 1년 내내 본점에 나와 운영 시스템을 꼼꼼히 배운 뒤에 가맹점을 열었습니다. 결과가 어땠느냐고요?
지금까지도 300개가 넘는 전체 가맹점 중 매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정 대표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지나친 자기 확신이다. 그는 오히려 사회 경험이 부족한 주부가 프랜차이즈에 더 적합하다고 본다.
사업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만의 노하우를 강조하기 쉽기 때문이다. 남의 얘기를 잘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맹점주들에게도 늘 본사가 더 열심히 배울 테니 본사의 방침을 따라달라고 부탁한다. 치어스는 본사가 중심이 돼 전략을 세우고 가맹점은 가게 경영에만 집중하도록 만든다.
고객이 싫어하는 요인 줄여야 성공한다.
“아무리 좋은 가게도 3~4년이 지나면 고객이 지루함을 느끼는 데 이때마다 변화를 줘야 손님들이 또 한 번 찾게 됩니다. 대규모 투자가 아니라도 벽 색깔을 바꾸거나 소파천 갈이를 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음식점을 오래 운영하다 보면 가게에 냄새가 배기마련인데, 손님들은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발걸음을 돌립니다.
이 정도의 투자에도 인색해지면 장사는 어렵습니다. 고객이 좋아하는 요소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싫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본사가 할 일은 가맹점이 그렇게 하도록 잘 이끌어 주는 일입니다.”
정 대표는 치어스에 이어 최근 새로운 맥주전문점 브랜드 ‘빠담빠담’을 론칭했다. 치킨과 감자요리에 초점을 맞춰 치어스보다는 소규모, 생계형 창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치어스가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기 시작한 후 부터 구상했던 사업이다. 그는 50년, 100년동안 흔들리지 않는 프랜차이즈를 만들고싶다고 했다.
“장사꾼은 오늘 하루만 보지만 경영자는 내일을 위해 오늘 투자를 합니다. 장수하는 기업은 많은데 장수하는 프랜차이즈가 드문 이유는 이런 경영 마인드가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걸으면 50년, 100년 뒤에도 치어스에서 맥주를 한 잔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