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이상 수학자를 배출한 베르누이 가문 영국 황실의 가문, 케네디 가와 같은 정치 가문 또는 록펠러 가와 같은 사업가 가문처럼 같은 계통으로 몇 대에 걸쳐 뿌리를 이어가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지성과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에서 몇 대에 걸쳐 가문의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음악에서의 바하 가문과 수학에서의 베르누이 가문을 손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수학자가 한 가문에서 한 명 나오기도 힘드는 일인데 베르누이(Bernoulli) 가문은 100년 동안 세계적인 수학자를 8명이나 배출한 집안으로 유전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 베르누이 가문은 17세기말부터 시작하여 18세기 한 세기 동안 유럽의 수학계를 주름잡았던 것이다(그림 참조).
같은 시대에 있어서 바하의 집안과 베르누이 집안은 150여년 동안 활발한 활동을 하였는데 바하의 집안이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그늘 아래서 커 온 것에 비하면 베르누이 집안은 야곱, 요한의 형제와 요한의 둘째 아들인 다니엘 세 사람이 각각 두드러진 활약을 하였기 때문에 세 사람 중 누가 더 뛰어났느냐 하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편 바하의 집안은 아버지 아들 삼촌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냈는데 비하여 베르누이 집안은 형제간은 물론 부자간에까지 반목과 질투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누이의 가문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수학과 물리학의 모든 분야에서 공헌한 바가 큰 점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확률과 진동계산을 포함한 몇몇 분야에서는 새로운 이론이 소개되어 전 유럽에 전파되기도 하였다.
베르누이 가문에서 처음 등장하는 수학자는 야곱(Jacob: 1654-1705)이다. 그는 사무직에 종사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흥미를 갖고 있던 수학, 물리학, 천문학에 관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하여 여행과 더불어 그 당시 유명한 과학자들과의 교분을 두텁게 쌓아갔다. 그 후 1683년에 스위스 바젤대학교의 교수가 된 야곱은 평생을 수학연구에 보냈다. 등시성곡선, 현수선(catenary)의 문제를 연구하였고, 탄성곡선의 방정식을 발견하여 대포의 포신이나 망원경의 통 모양을 수학적으로 표시할 수 있게 하였다.
야곱의 둘째 동생인 요한(Johann : 1667-1748)도 사업적 가업을 이어나가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처음에는 의학과 인문학을 공부하였지만 곧 그의 형과 마찬가지로 수학에 빠져 들었다. 1683년부터 그의 형과 함께 미적분학을 연구하였는데 많은 참고 서적과 연구가 되어있는 요즈음도 쉽지 않은 미적분학을 아무런 교과서도 없이 새로 개척해 나간다는 것은 여간 끈질긴 노력이 없이는 안되는 연구이었다. 두 형제와 당시 수학의 대가 라이프니츠 세 사람이 한 팀이 되어 수학연구에 몰두한 것이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다음과 같은 미분학의 기본공식은 요한 베르누이가 발견한 것이다.
이 공식은 로피탈의 공식(LHospitals Law)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이유는 라이프니츠, 야곱, 요한이 연구한 결과를 로피탈(LHospital : 1661-1704)이 정리하여 발간한 미적분학 교과서에 소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공식은 분자와 분모가 동시에 0이 되는 분수함수의 극한값을 구하는데 긴요하게 쓰이고 있다. 야곱과 요한 형제간의 추악한 명예 싸움은 최속강하선의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 최속강하선문제는 두 점 A, B를 지나는 곡선을 따라서 A에서 출발하여 B로 움직일 때 마찰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이 곡선이 어떤 형태를 취할 때 지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최소가 되느냐 하는 문제이다. 즉, A와 B를 잇는 곡선을 구하는 문제이고 이에 대한 해답은 A를 지나는 수평선 위를 회전하는 원둘레 위의 한 점이 그리는 사이클로이드(cycloid)이다.
이 문제는 요한이 제시하였고 당시의 유명한 수학자 뉴턴, 라이프니츠, 로피탈과 야곱, 요한 다섯명 만이 해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야곱과 요한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접근한 방법은 서로 달랐다. 요한의 방법이 직관적인데 반하여 야곱은 해석적으로 접근하였다. 그는 이 문제를 풀기 위하여 새로운 분야인 변분학을 탄생시키는 업적을 수학사에 남겼다. 요한의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잘못 사용한 유도식을 후에 그의 형 야곱의 유도식으로 대체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두 형제간에 추한 논쟁이 4년 동안이나 지속되었고 마침내 형 야곱이 싸움에 지쳐 죽고 말았다. 요한은 그의 형이 죽은 후에 바젤로 돌아와 형 대신 교수직을 물러 받았다.
이러한 요한의 욕심은 나중에 그의 아들 다니엘(Daniel : 1700-1782)이 연구했던 유체역학의 이론까지 자기 이름으로 발표하는 오점을 남기기까지 하였다. 이 요한의 수제자가 파이, 시그마, 자연대수의 밑, log, sin, cos 등의 수학기호를 발명한 유명한 수학자 오일러(L. Euler : 1707-178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