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군재건로(섬진강 꽃길) 구례-곡성-옥과를 아래와 같이 답사합니다.
1. 일시: 2014.3.30.(일요일). 10:50 구례구역 집합
2. 교통편:
-무궁화호 1501열차 출발: 용산 06:35, 영등포 06:43, 수원 07:07, 도착: 구례구 10:49
- 운임(일반 및 경로): 용산(23,600, 16,500), 영등포(23,200, 16,200), 수원(21,100, 14,800)
- 상경 일시와 장소: 3월3일(월) 곡성 발 무궁화호
4. 준비물: 식수, 중식, 행동 간식, 여벌 옷(내의, 반바지 등), 우산(양산 겸용), 구급약
5. 소요 경비 예상(95,000~105,000 각자 부담): 왕복교통비(일반 50,000원, 경로 35,000원 내외) - 식비(40,000원 내외); 30일 조식, 석식, 31일 조식, 중식 - 숙박비(15,000)
6. 도보 일정: 42km, 14시간 (30일 22km, 7시간, 31일 20km, 6.5시간)
-30일(일): 구례구역(10:50) >조식 후 출발(0km, 11:30) > 압록(7km, 13:30) >중식(13:30-14:00) >야영장(12km, 15:20) >침곡교(17km, 16:40) >기차마을(21km, 17:50) >곡성역(22km, 18:00 >석식(18:30-20:00) >소등(21:00)1박
-31일(월): 기상(06:00) >조식(07:00-07:30) >곡성역 출발(0km, 08:00) >청계동(8km, 10:20) >농공단지(14km, 12:10) >입면 중식(16km, 12:40-13:10) >옥과면소(20km, 14:30) 곡성행 버스로 이동(14:30-15:00) >곡성역-영등포(15:-20:, 16:-21:)
7. 기타: 참고자료 제공. 우천 예보 시 하루 전에 취소 공지
참고1. 수군재건로
수군 재건로는 충무공이 통제사로 재임된 정유년 8월3일부터 흩어진 수군을 모집하고 전선을 확보한 하동, 악양, 구례, 곡성, 옥과, 순천, 낙안, 보성, 장흥, 회령포(회진)까지의 육로와 해남 이진(북평)을 거쳐 진도, 우수영, 목포, 어외도, 위도, 선유도까지 간 바닷길이이다.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막중한 책임을 졌으나 임무를 수행할 수군과 전선이 없었다. 이순신은 8월3일부터 보름동안에 하동에서 회진까지 다니며 장병과 무기를 모았으나 따르는 자가 많지 않았다.
참고2. 곡성 관련 난중일기
初三日辛酉。晴。早朝。宣傳官梁護。賫敎諭書入來。乃兼三道統制使之命。肅拜後祗受書狀書封。卽日發程。直由豆峙之路。初更。到行步驛歇馬。三更。登程到豆峙。則日欲曙矣。朴南海失路。誤入江亭。故下馬招來。到雙溪洞。則亂石稜稜。新雨漲流。艱難渡越。到石柱關。則李元春與柳海守伏見之。多言討賊事。暮到求禮縣。則一境寂然。宿于城北門外前日主家。則主人已避山谷云。孫仁弼,孫應男卽來見。獻早柿。(초삼일신유。청。조조。선전관량호。재교유서입래。내겸삼도통제사지명。숙배후지수서상서봉。즉일발정。직유두치지로。초경。도행보역헐마。삼경。등정도두치。즉일욕서의。박남해실로。오입강정。고하마초래。도쌍계동。즉란석릉릉。신우창류。간난도월。도석주관。즉리원춘여류해수복견지。다언토적사。모도구례현。즉일경적연。숙우성북문외전일주가。즉주인이피산곡운。손인필,손응남즉래견。헌조시。)
賫 재 (齎와 같음) 가져오다. 주다.
8월3일[신유/9월13일] 맑다. 이른 아침에 선전관 양호가 교유서를 가지고 왔다. 그것이 곧 겸삼도수군통제사의 임명이다. 숙배를 한 뒤에 다만 받들어 받았다는 서장을 써서 봉하고, 곧 떠나 두치(하동읍두곡리)로 가는 길로 곧바로 갔다. 초저녁에 행보역(하동군 횡천면 여의리)에 이르러 말을 쉬고, 한밤 자정에 길을 떠나 두치에 이르니 날이 새려 했다. 남해현령 박대남은 길을 잘못 들어 강정(하동읍 서해량 홍수통제소 서쪽 섬진강가)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말에서 내려 기다렸다가 불러와서 쌍계동(화개면 탑리)에 이르니, 길에 돌이 어지러이 솟아 있고 비가 와 물이 넘쳐 흘러 간신히 건넜다. 석주관(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이르니, 이원춘과 유해가 복병하여 지키다가 나를 보고 적을 토벌할 일을 많이 말했다. 저물어서 구례현에 이르니 일대가 온통 쓸쓸하다. 성 북문(구례읍 북봉리) 밖에 전날의 주인집으로 가서 잤는데, 주인은 이미 산골로 피난갔다고 했다. 손인필, 손응남이 와서 보고, 올감(早枾)을 가져왔다.
初四日壬戌。晴。到鴨綠江院秣馬。高山縣監。以軍人交付事到來。多言舟師事。午到谷城。則官舍閭里一空。宿于同縣朴南海。直往南原。(초사일임술。청。도압록강원말마。고산현감。이군인교부사도래。다언주사사。오도곡성。즉관사려리일공。숙우동현박남해。즉왕남원。)
8월4일[임술/9월14일] 맑다. 압록강원(곡성군 오곡면 압록리 : 남북류의 순자천[섬진강]과 동서류의 대황천[보성강]이 합류하는 곳)에 이르러 말을 먹였다. 고산현감(최진강)이 군인 교체할 일로 와서 수군의 일을 많이 말했다. 오정에 곡성(곡성읍 읍내리 713-2번지)에 이르니 관청과 여염집이 하나같이 비어 있어, 그 현청(현감 최충검)에서 잤다. 남해현령 박대남은 곧장 남원으로 갔다.
初五日癸亥。晴。到玉果境。則避亂之人。彌滿道路。下坐開諭。入縣時。逢李奇男父子。到縣。鄭思竣,思立來迎。縣倅托病不出。欲爲捉出罪之則來見。(초오일계해。청。도옥과경。즉피란지인。미만도로。하좌개유。입현시。봉리기남부자。도현。정사준,사립래영。현쉬탁병불출。욕위착출죄지즉래견。)
8월5일[계해/9월15일] 맑다. 옥과(곡성군 옥과읍) 땅에 이르니 피난민이 길에 가득 찼다. 말에서 내려 타일렀다. 옥과현에 들어갈때, 이기남의 부자를 만나 현에 이르니 정사준, 정사립이 와서 마중했다. 옥과현감(홍요좌)은 병을 핑계대며 나오지 않았다. 잡아다 죄주려 하니 그제야 나와서 봤다.
初六日甲子。晴。留玉果。初更。宋大立探賊而來。(초륙일갑자。청。류옥과。초경。송대립탐적이래。)
8월6일[갑자/9월16일] 맑다. 옥과에서 머물렀다. 저녁에 송대립이 적을 정탐하고 왔다.
初七日乙丑。晴。早發直往順天。路逢宣傳官元潗。受有旨。兵使軍。盡爲潰還。連絡道路。故馬三匹,弓箭若干奪來。宿谷城江亭。(초칠일을축。청。조발직왕순천。로봉선전관원집。수유지。병사군。진위궤환。련락도로。고마삼필,궁전약간탈래。숙곡성강정。)
8월7일[을축/9월17일] 맑다. 일찍 길을 떠나 곧장 순천(순천시행동)으로 갔다. 길에서 선전관 원집을 만나 임금의 분부를 받았다. 병마사의 군사들이 모두 패하여 돌아가는 길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말 세 필과 활과 살을 약간 빼앗아 왔다. 곡성 강정(석곡면 능파2구 능암리 일대)에서 잤다.
참고3. 수군재건로 조성
전남도는 2013.12.23일 백의종군(白衣從軍)하던 충무공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수임된 이후 명량대첩지로 한 달여간 이동하면서 군사와 무기, 병선, 군량 등을 모았던 역사의 현장길을 복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선수군 재건로'로 붙여진 이 길은 섬진강 화개장터에서 구례, 곡성, 순천, 보성, 장흥, 강진, 진도를 거쳐 해남 우수영까지 450km에 이른다. 고증과 기초조사를 거쳐 2014년부터 26억 원을 들여 탐방로 조성, 유숙지, 행적지 등을 정비한다. 장흥 회진에서 해남 우수영까지는 바다 구간으로 육로로 대체 조성할 계획이다. 경남 하동에서 진주에 이르는 161㎞가 지난 2010년 복원된 데 이어 지난해 전남 구례-순천 간 119㎞, 경기도 수원-오산 간 35㎞가 복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