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와 송정 사이, 잊혀가던 포구를 달리는 해변열차가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도,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도 없는 소박한 풍경을 비춘다. 창문 너머 파도가 넘실대는 따뜻한 완행열차 안에서 두 눈 가득 진짜 부산을 담았다.
엣지993 루프탑에서 바라본 해운대 해변열차
부산 바다를 두 발아래,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부산만큼이나 사계절 자주 찾는 여행지가 또 있을까. 해변 산책길, 스카이워크, 해상 케이블카 등 즐길 거리를 두루 갖춘 바다는 언제나 색다른 감동을 안긴다. 최근에는 동해남부선 폐선을 재활용한 블루라인파크가 완공되면서 전 구간 바다를 조망하는 관광열차도 생겨났다. 미포에서 송정역까지 4.8km 구간을 달리는 해운대 해변열차(이하 해변열차)다. 달맞이터널, 다릿돌전망대, 청사포 등 부산의 명소를 한 번에 둘러볼 수 있어 개통과 동시에 핫플레이스가 됐다.
해변열차 위로 모노레일이 다닌다.
블루라인파크 광장에 설치된 안내판
블루라인파크 미포정거장. 카페와 기념품점이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해변열차를 이용하려면 가장 먼저 가까운 정거장을 확인해야 한다. 엘시티 옆 ①미포정거장을 떠난 해변열차는 ②달맞이터널, ③청사포, ④다릿돌전망대, ⑤구덕포를 지나 ⑥구 송정역에 도착한다. 여섯 개의 정거장 중 주차장과 매표소를 갖춘 정거장은 미포, 청사포, 송정 세 곳뿐이다. 다른 간이역에도 무인발권기가 설치되어 있지만 코로나19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운영이 중단됐다. 요금은 1회권(편도) 7,000원, 2회권(왕복) 10,000원, 자유이용권 13,000원으로 탑승 횟수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역에서 하차할지 미리 이동 계획을 세우면 표를 살 때 도움이 된다.
미포정거장 너머로 보이는 엘시티. 부산에서 가장 높고 국내에선 두 번째로 높다.
Tip. 1회권 or 2회권 or 자유이용권, 내게 맞는 표 고르기
✔ 모든 정거장에서 한 번씩 내렸다가 재입장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보다 1회권이나 2회권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자유이용권을 구매하더라도 같은 정거장에 두 번 이상 입장할 수 없다. ✔ 정거장 간 거리가 가까운 곳이 존재하고(미포정거장~달맞이터널 500m, 청사포정거장~다릿돌전망대 600m) 기찻길 옆 데크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도보 이동이 편리하다. ✔ 1회권 구매자가 종점에서 하차하여 출발지로 되돌아가는데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 1회 하차 가능한 2회권 구매자는 다릿돌전망대에 내려 전망대와 청사포를 함께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신선한 해산물, 맛있는 디저트를 모두 즐길 수 있다.
2열 벤치로 구성된 해변열차 내부. 일반 열차보다 창문이 크다.
매표 후 승강장으로 가면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해변열차를 만날 수 있다. 두 칸짜리 작은 열차지만 라이트와 와이퍼, 백미러까지 갖출 건 다 갖췄다. 내부에는 8명이 앉을 수 있는 기다란 나무 벤치가 12개 놓여 있다. 모든 좌석이 바다 쪽으로 고정되어 있고, 2열 벤치가 1열보다 높게 설치되어 어느 자리에서나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다.
시속 15km 해변열차 속도 체감
안내방송과 함께 열차가 출발하면 커다란 창문은 영화관 스크린처럼 장쾌한 풍경을 선사한다. 시속 15km의 느린 속도 덕분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장면들이 두 눈에 온전히 담긴다. 일부 구간은 큰 건물과 울창한 소나무에 가려 제대로 바다를 보기 어렵지만 전망은 대체적으로 훌륭한 편이다. 바다와 철길이 지척이라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이 드는 달맞이터널~청사포 구간, 발밑으로 속이 들여다보일 만큼 투명한 바다를 볼 수 있는 다릿돌전망대~구덕포 구간이 대표적이다.
바다를 감상하는 해변열차 탑승객
송정에서 미포까지, 해변열차 밖 부산 명소 탐방
해변열차를 타고 미포에서 송정역까지 가는 데 약 20분이 소요된다. 짧은 시간이 못내 아쉽지만 해운대에 가려져 있던 부산의 소박한 낭만을 찾아 열차 밖으로 나가보자. 유리창 너머로 관전하던 투명한 유리알 바다를 직접 만나볼 차례다.
1930년대 지어진 구 송정역을 리모델링한 송정정거장
송정정거장
+ 뭐하지? 벽화거리부터 죽도까지 송정 한 바퀴
송정정거장은 블루라인파크의 다른 정거장과 달리 1930년대에 지어진 구 송정역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매표소와 간이의자로 이루어진 단출한 구조는 당시 역사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안팎으로 복원공사를 거치긴 했지만 승강장은 문화재청 방침에 따라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해변열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옛 동해남부선의 역사와 마주하는 셈이다.
벽화골목에서 만나는 송정해변
송정해변을 따라 죽도 방향으로 걷다 보면 아기자기한 그림이 그려진 골목을 만난다. 송정민박촌 벽화거리다. 송정해변의 상징물, 아침부터 저녁까지 송정해변의 24시간을 표현한 모던 포스터 등 송정해변을 주제로 한 벽화가 20여 점이나 된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 때문인지 바닷속에 첨벙 뛰어든 것 같다.
죽도 망양정에서 바라본 송정해변 전경
여덟 방향으로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망양정
한적한 송정해변
죽도는 23m 높이의 작은 동산을 품은 해변공원이다. 과거에는 대나무가 자생하는 섬이었지만 현재는 송정천에서 흘러온 모래로 바다가 메워져 육지가 되었다. 2~3분 남짓 오르막길을 따라가면 죽도의 끝, 망양정에 닿는다. 이곳에서 활시위처럼 넓은 부채꼴 모양을 한 송정해변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죽도 정상은 키 큰 소나무에 둘러싸여 오히려 바다를 보기 힘들다. 육지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해변열차와 달리 바다 쪽에서 육지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감흥이 인다.
매끄러운 곡선 디자인이 인상적인 다릿돌전망대
전망대 끝에 유리 바닥과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유리알처럼 투명한 청사포 바다
청사포 다릿돌전망대
+ 뭐하지? 짜릿한 공중 산책 후 맛집 탐방
정거장 바로 앞에 20m 높이의 거대한 전망대가 바다를 향해 뻗어 있다. 청사포 수호신으로 전해지는 푸른 용을 형상화한 다릿돌전망대다. 강화유리와 철망이 설치된 전망대 끝에 서면 발밑으로 끝없이 파도가 밀려든다. 어찌나 물이 맑은지 바다 밑까지 훤히 보인다. 시선을 정면으로 옮기면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가 펼쳐진다. 몇몇 암초와 해상 등대만이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초겨울에도 암초 근처에서 전복, 멍게, 해삼, 성게 따위를 잡는 해녀들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풍경이 밥 먹여주는 청사포 조개구이
청사포의 상징과도 같은 쌍둥이 등대
청사포는 해운대와 송정 사이에 위치한 작은 포구다. 부산을 대표하는 큰 해수욕장을 양옆에 두고도 아직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은 ‘푸른 모래 전시관’으로 꾸며져 청사포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여준다. 피땀으로 일군 논밭은 사라졌지만, 만선을 꿈꾸며 거친 바다로 나아가는 어부의 삶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해산물이 풍부한 포구인 만큼 해변 가득 포차가 들어섰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주력메뉴가 회가 아닌 조개구이와 장어구이라는 것. 원래는 횟집이 많았으나 해산물 구이가 인기를 끌면서 메뉴가 비슷해졌다. 근방 포차는 맛과 가격이 평준화되어 있으니 이왕이면 다릿돌 전망대가 잘 보이는 곳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는 것이 좋다.
달맞이터널을 통과하는 해변열차
알록달록한 아치형 기둥
달맞이터널
+ 뭐하지? 알록달록 터널에서 해변열차 인증샷 촬영
달맞이터널은 블루라인파크에서 손꼽히는 포토존이다. 아치형 기둥이 바다 쪽으로 세워져 낮에는 햇살이, 밤에는 달빛이 가득하다. 해변열차 운영 이후로는 터널 안으로 진입할 수 없지만, 터널 밖에서도 알록달록한 기둥을 배경삼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더 광활한 앵글을 원한다면 미포 테라스 카페 ‘엣지993’으로 가보자. 미포의 해안 절벽과 옛 철길을 달리는 해변열차, 10m 공중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스카이캡슐, 그 너머의 달맞이터널까지 뷰파인더에 모두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