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金春洙,1922.11.25.-2004.11.29), 호: 대여(大餘)
한국의 시인
1. 시적 순수성의 옹호
김춘수 시인은 가장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불행한 시인이다. 일견 볕 잘 드는 방에서 언어와 놀이에 빠져 자기 유희에만 열중한 시인의 뒷잔등을 먼저 보게 되는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가 방 밖 세계에 대한 예민한 시선과 자신의 자유 의지 사이에서 긴장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의 삶과 시적 편력은 매우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 드리워진 시인의 생애는 마치 추상적 편린과도 같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시에서 생의 기미를 읽으려는 그런 독법 자체가 가장 무효화되는 시인이 바로 김춘수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시인은 고집스럽게 견지해 온 자신의 시세계가 딛고 있는 자신의 삶과 시에 대해 오해와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 시키려 해 왔다.
그는 1922. 11. 25. 경남 통영의 부유한'수재집안"에서 태어났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동경의 예술대학 창작과에 입학했다.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퇴학당하고 6개월간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통영중학과 마산중.고교 교사를 거쳐(1946-1952) 해인대학과 경북대,영남대 교수를 지냈으며(1960-1981),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
시작 활동으로는 1945년 '통영문화협회(유치환,윤이상,전혁림,김상옥 등)를 결성하면서 문화 계몽 운동을 하는 한편 본격적인 시 창작을 시작하였으며, 동인지 『로만파』(조향, 김수돈,1946),『시연구』(유치환,김현승,송욱,고석규,1956)를 발간한 바 있다. 시인은 초기에는 유치환,서정주,청록파의 시에 영향을 받았으며 30세가 넘어 비로소 자신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시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시쓰기와 관련된 몇개의 삽화들이 있다. 통영바다와 더불어 성장한 유년기의 기억, 유치원 선교사를 통해 경험한 이국풍의 세계,일본인 담임 교사와의 마찰 및 자퇴,일본 유학 시절 만난 릴케시집, 시인의 길로 들어서는 데 강한 영향을 준 일본인 시인 교수,사상 혐의로 투옥되어 고운을 당한 일 등이다. 생애의 이런 경험들 가운데 유년과 청년 시절에 겪은 두 경험은 김춘수의 시쓰기와 매우 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의 시를 평가하는 태도는 시 혹은 예술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다. 그는 시에 대한 문제의식을 촉발시키고 문학과 삶에 관해 예민한 문제 제기를 하면서 그에 대한 반향과 반감,지향과 지양을 동시에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본격적으로 시작 활동을 한 시기는 한국문학에서 모더니즘 시학과 민중문학이 본격화되면서 강하게 양립하던 와중어었기에 논의와 평가는 더욱 쟁점화하였다.
그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평형의 힘을 견지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의 무의미시와 시론은 시적 성취와 획기적인 이론으로 시사적 의의를 크게 부여받은 한편 일부 독자와 연구자들에게는 공감을 얻지 못해 왔던 것도 사실이지만, 모더니즘 미학과 독자적인 현대성에 근거한 시학으로 시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한 단계 끌어올린 매혹적인 시와 시론이었음도 사실이다.
시인은 춤의 언어와 보행의 언어 사이에서 단연 춤의 언어에 몰두한 시인이다. 시는 언어의 기호들이 만들어 내는 환상의 세계일 뿐 어떤 목적에 도달하려는 의도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인식이다. 시인은 이를 '꽃'에 비유하여 얘기한 바 있다. 우리가 시에서 꽃을 말할 때 그것은 잎과 줄기와 꽃잎과 뿌리를 가진 하나의 생물학적 식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꽃이라는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세계, 즉 하나의 이데아를 지향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사물을 지칭한다기 보다 오히려 그 상투성과 낡음 때문에 사물을 왜곡하거나 사물의 본질을 사라지게 하는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언어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시는 언어 밖의 세계를 지칭하는 공리적인 언어들의 조직이 아니라 '말의 긴장된 장난'이자 정신적 유희의 산물이라는 의지이다.
시인은'크래프트','트릭','메이크업' 등 기존의 한국시론에서는 다소 낯선 표현들을 즐겨쓰며 이 같은 자신의 시외 시론을 구축해 왔다. 그의 시적 태도는 미학적 예술의 첨병인 반면 문학과 삶은 동궤라는 입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었다.
그는 현실과 실천의 맥락을 담지 않는 시, 일견 진공 속에 존재하는 것 같은 절대언어, 시의 순수성을 옹호했다. 그래서 '시는 언어의 예술, 그 이상의 무엇도 담을 수 없다'는 확고한 인식을 지닌 김춘수의 시는 의미에서는 해방되었을지라도 무의미에 유폐되었고, 미학적 예술론을 표명하면서도 동시에 극단적으로 치달은 실험에 갇힌 격이 되었다.
그는 언어 유희를 견인한 시인이지만 기교와 실험에 빠진 수인이기도 한, 양가적 위상에 놓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2. 의미와 무의미를 선회하는 시 세계
열다섯 권에 이르는 시집에는 머무르지 않는 정신 편력과 거듭되는 회의 정신이 잘 드러난다. 시의 궤적은 의미에서 무의미로 그리고 다시 의미로 선회하는 노정이라고 약술할 수 있다.'왜 지금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시인의 글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 독백은 자의식의 환기이자 시적 미로를 향한 그이 부단한 모색과 탐색을 잘 드러낸다.
1)의미에서 무의미로
김춘수 시인이 처음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릴케와의 조우이다. 시인은 시적 혜안을 열어 준 존재로 릴케를 꼽는데 이 운명적인 계기가 종국에 그의 시적 방향을 계시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즉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시라는 것을 릴케 시의 '햇살,꽃눈보라, 기도, 날개, 꽃피어 있는 영혼' 등의 표현들로 각인하고 이런 언어에 매혹되어 시쓰기로 들어선다.
그의 초기 시는 이런 인식의 세례 아래 쓰여진 다소 감수성 짙은 시들이 주조를 이룬다. 이후 시인인 '비로소 나만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기억하는 꽃에 관한 일련의 시들은 이른바 대표작이다. 김춘수 만큼 '꽃'이라는 대상에 관념의 무게를 얹은 시인이 드물 정도로 의미가 과부하된 시들이다.
꽃이라는 존재가 인격화되고 극대화된 이 시들은 인식론적 깊이, 존재론적 탐구, 이데아의 세계관으로 해석되는 관념과 비의의 시 세계이다.
'꽃이여!'라고 내가 부르면, 그것은 내 손바닥에서 어디론지 까마득히 떨어져간다. - 「꽃2」중에서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꽃을 위한 서시」중에서
사랑도 없이 스스로를 불태우고도 죽지않는 알몸으로 미소하는 꽃이여, - 「꽃의 소묘」중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꽃」중에서
꽃은 제 존재만으로 충만하고 아름다우며, 실존하는 모든 가치 있는 존재들을 상징한다. 그러면서도 꽃은 소용되는 쓰임새는 없는 무용지용한 존재라는 점에서 시 혹은 예술과 닮았다. 이 시들에서 시인은 꽃이 지녀온 관습적인 언어의 질감을 지우고 관념화된 꽃을 통해 존재의 현현과 실존의 체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이후 시인은 시의 가장 기본적인 질료인 언어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데, 현재의 언어로는 사물의 절대성과 본질적 의미에 가 닿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다다른다.
언어의 낡아버린 옷과 상투성으로는 대상의 본질 혹은 순수에 절대적으로 도달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시인은 새로운 '기교'로 나아가는데 이것이 묘사주의 이다. 시인은 대상을 의미에 종속시키거나 도구화하지 않으며 시인의 주관적인 의미를 거두어 나가는 방식으로 사물을 극대화하는 묘사주의를 지향한다.
언어를 도구삼아 시인의 감정이나 관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주관적인 의미나 습관화된 판단을 중지해 대상의 묘사만으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시 밖의 맥락은 철저하게 배제하고 시 안의 세계만으로 자족적인 세계, 이것이 바로 김춘수 시의 순수성이다.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먹고 있다.
월동하는 인동 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도 더욱 슬프다. -「인동잎」전문
씨암탉은 씨암탉, 울지 않는다. 네잎토끼풀 없고 바람만 분다.
바람아 불어라,서귀포의 바람아, 봄 서귀포에서 이세상의 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 바람아, - 「이중섭1」전문
김춘수의 많은 시들은 그 일상적 맥락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불연속적 이미지의 병치,절제된 표현과 정제된 언어로 이룬 언어의 금욕주의, 너무 많은 공정을 거쳐 깎아지른 듯한 언어, 심상이나 비유에서 환기되는 비일일상적인 정경들이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언어로부터 의미를 거두어 내고 그리하여 삶과 일상,현실과 역사를 거세해 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단계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타령조 연작과 이중섭 연작은 그의 시가 극단적인 무의미 시로 막 진입하려는 지점에 씌어진 시들이다. 이 시들에는 육체성이 두르러지는데 그간 시인이 벗어버리지 못한 순결 콤플렉스가 다소 극복되는 양상이 엿보인다. 감상과 이데올로기적 관념을 거세해 온 그의 무의미 시는 좀더 실험적인 단계로 들어선다.
돌려다오 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간 것, 여자가 앗아가고 남자가 앗아간 것, 앗아간 것을 돌려다오.
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 여자를 돌려주고 남자를 돌려다오 쟁반 위에 별을 돌려다오. 돌려다오.
-「처용단장 2-1」중에서
언어의 의미란 본디 끝없이 차연되고 미끄러지는 것이기에 기표가 실로 더 우세하며, 의미는 없으되 음악이나 주문 같은 원초적인 생명력을 지닌 언어만이 완벽하게 순수한 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의 계기성없는 소리의 반복과 리듬의 환기, 또 심리적 박동의 고조만으로 구체적인 현존을 느끼게하며,쓸모와 도구성을 내던져 버린 언어의 몸짓으로 현기증 나는 긴장 상태와 열락을 이루는 것, 이것이 무의미의 절정이라 확신한다.
시인은 이 시들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악보같은 시, 추상화 같은 시로 완성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트릭의 정점인 동시에 한계와 맞닥뜨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몰아 간 무의미 시에서 숨이 차오르는 힘겨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음절도 해체하고 문법마저 깨뜨린 무정부주의적 언어의 세계에서 시인은 또 다른 한계를 느낀다.
줄글로띄어쓰기와구두점을무시하고동사를명사보다앞에놓고잭슨플록을 앞질러포스트모더니즘으로존케이시를앞질러소리내지않는악기처럼미국의 한병사가갖다준내쓸개한쪽서럽고도서럽던
-「처용단장 3-28」중에서
ㅜㅉ ㅣ ㅅ ㅏ ㄹ ㄲ ㅗ ㅂ ㅏ ㅂ ㅗ ㅑ ㅣ 바보야, 역사가 ㅕ ㄱ ㅅ ㅏ ㄱ ㅏ 하면서 ㅣ ㅂ ㅏ ㅂ ㅗ ㅑ
- 「처용단장 3-39」중에서
통사적 질서를 와해해 정연한 문장으로는 드러낼 수 없는 시인의 심리적 억압과 고통의 자취를 드러낸 시들이다. 의미의 세계보다 소리의 세계를 더 믿는 시인의 태도는 여전하지만, 시를 통해 의미의 본질을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신하는 만큼, 언어를 통해 무의미를 실현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 또한 불가능한 것임을 자인하게 된다.
'무의미 시를 30년이나 고집해 왔지만 결국 이처럼 허사였다'는 시인의 고백에 이르러 마침내 의의와 한계에 동시에 다다른 격이 되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몰아세운 의미의 거세에서 놓여나 시인은 자기 시를 패러디하거나 의미의 음영을 드리우는 방식으로 시세계를 선회해 나간다.
시인이 무의미 시를 회의하게 된 것은 탈수된 언어와 소리의 소용돌이가 공소하게 느껴진 탓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념은 시인이 언어를 버리지 않는 이상 사실 완벽하게 도피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 또한 부정하고 배제한다고 해서 비워 낼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며, 관념이나 의미의 부재는 이미 또 다른 관념이나 의미를 배태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2)무의미에서 의미로
무의미 시는 부단히 실험적인 시도 끝에 이루어 낸 절대 언어의 세계였지만 어느 사이 의미를 끝내 버리지 못한 앙상한 골격의 언어들로 남게 되었다. 시인은 자기 모순을 거치고 또다시 언어에 길항하면서 무의미의 세계로부터 의미의 세계로 선회한다. 긴장된 끈을 놓고 의미 혹은 관념을 노출하게 되는데, 의미의 질곡을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의미를 놓아 버린 언어의 자유를 다스리는 일 또한 지난한 것을 아는 그는 설명적 해석이나 감상을 드러내는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인간과 역사, 인간과 세계의 갈등에 대한 촉수만큼은 날을 세우고 있다.
의식도 영혼도 다 비우고 나는 돼지가 될 수 있다. 밥 달라고 꿀꿀거리며 간들간들 나는 꼬리를 칠 수도 있다.
성서에 적힌 그대로 무리를 이끌고 나는 바다로 몸 던질 수 있다.
말하자면 나는 죽음을 이길 수 잇따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내 눈에는 그 다음이 보이지 않는데,썰렁하구나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 1872년 3월 1일
-「사족」전문
어떤 늙은이가 내 뒤를 바짝 달라붙는다. 돌아보니 내 조막만한 다 으그러진 내 그림자다. 늦여름 지는 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 산보길」전문
시인은 여전히 역사에서 악의 의지를 먼저 읽고 개인과 역사 간의 갈등에 고민한다. 그러나 한결 느려진 박동수로 완급을 조절해 가며 산문의어법으로 삶의 풍경과 심리적 갈등을 묘사한다. 시인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들려' 있는 이유는 그의 주인공들이 인간의 죄의식과 갈등을 가장 절실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인물들에게 자신의 삶의 역정을 투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굴욕적인 체험이 상기될 때마다 자존을 버리지 못해 평생을 괴로워했던 시인은 이제 '밥 달라고 꿀꿀거리는 돼지가 되어 간들간들 꼬리를 칠 수도 있겠다고 말하며,안쓰러운 내 그림자를 '혼신의 힘을 다해'받쳐 주는 '늦여름 지는 해'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얻는다.
나의 시를 고급장식품이라고 누가 말했다고 한다. 잘한 말이다. 오스카와이드는 장식품을 <어떠한 의미에 의하여도 손상되지 않는다>고 말했느데 그렇다. 의롱에 앉은 백동나비는 술어가 없다. 하늘에 뜬 해와 달이 그렇듯 나의 시는<어떠한 의미에 의하여도 손상되지 않는다>섭씨 39도에도 나의 시는 옷깃을 여민다. -「바꿈노래-나의시」전문
3할은 알아듣게 아니 7할은 알아듣게 그렇게 말을 해가다가 어딘가 얼른 눈치 채지 못하게 살짝 묶어두게
살짝이란 말 알지 펠레가 하는 몸짓 있잖아 뒤꼭지에도 눈이 있는 듯 귀뚜라미 수염같은
그리고 절대로 잊지말 것 넌 지금 거울 앞에 있다는 인식 거울이 널 보고 있다는 그인식 -「시인」중에서
이는 무의미에서 의미로 선회한 김춘수의 인식을 잘 드러내는 메타적 성격의 최근 시들이다. 그의 시를 두고 '고급장식품'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어쩌면 비난 섞인 평가였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인은 '어떤의미에 의해서도 손상되지 않는다'는 가치 때문에 그 평가를 선뜻 받아들인다. 의미의 세계로 선회했을 지라도 그 의미 때문에 자신의 시가 손상되는 것은 여전히 거부하는 의지이다.
옷장의 나비 장식이나 하늘의 해와 달처럼 그의 시는 존재하는 는것 자체로도 의미를 지니는 '고급장식품' 같은 언어로 남길 희구한다. 시인의 꼿꼿함은 섭씨 39도의 더위에도 '옷깃을 여미는 자세로 다시 강조된다. 이전의 무의미시가 3할은 알아듣게 말하는 시였다면 이제 그의 시는 7할은 알아듣게 말하는 시,그러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어딘가 살짝 묶어두어 끝내 다 풀어 내려 놓지는 않는 시이다. 이 시에 이르면 시인의 자의식이 마치 맨 처음 시를 쓰던 무렵과 겹쳐지는 듯하다.
의자를 응시하고 딸기를 바라보고 꽃을 인식하고 온몸이 눈인 천사에 눈부셔하던 그때처럼, 시인은 거울 앞에서 자신의 의 모습을 보면서 거울 또한 자신을 보고 있다는 시선의 응시를 그대로 기억하고 또 체현한다.
3. 절대시, 신기루와 인공 낙원 사이
고도로 세련되었다는 말에는 벌써 '인간적으로 훈훈한'의 의미는 거세되어 있다. 김춘수의 시가 그러하다. 시를 읽는 독법은 여느시를 읽는 독법과는 다르다. 정서를 넣어 읽기도 삶을 넣어 읽기도 쉽지 않다. 암호를 풀거나 퍼즐을 맞추듯 읽어야 하는 시도 있다.
너무 많은 생략과 돌연한 시구에 한참을 주저하게 되기도 한다. 시인이 모차르트 음악을 두고 모차르트 음악은 너무나 음악적이다 라고 하듯이 김춘수의 시는 너무나 시적 이기 때문이다. 그는 장인으로서의 시인이고 무위의 시인이고자 하지 성인으로서의 시인이길 원하지 않았다.
진정한 시는 시인 자신의 인간성을 드러내거나 감정을 전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 삶의 역력한 자취를 지워내고 잘 만드는 것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시인은 적극적인 고립과 소외를 감당하면서도 여느 차원과는 다른 시를 지향해 왔으며, 현실을 당위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공리적인 효용성을 갖지 않는 절대 언어의 시, 무용지용의 시 세계를 추구해 왔다.
고군분투하여 이루어 온 김춘수의 절대 언어와 무의미 시는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와 정신적 유희의 인공낙원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재해 왔다. 낭만적 토로나 인간적 체취를 거부하고 일상적 언어나 감각으로는 잡을 수 없는 그 어떤 '안타까운'것들을 시로 포착하려는 인공낙원의 의지는 바로 그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한다는 이유 때문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는 시인이 아닌 언어가 말하는 것이고 시는 인격이 아닌 인식으로 쓰는 것 이라고 주장하며 시의 향유는 삶의 모방이 아니라 춤이나 놀이와 유희정신과 같다는 자신의 시학을 올곧게 지켜왔다. 무용한 시를 통한 무상의 감동, 삶의 구속에서 벗어난 정신적 해방의 유희 공간- 이것이 바로 언어가 이루는 시의 세계라는 것이다.
시인은 무의미와 의미의 세계를 선회하면서 시적 주체로서의 개인의식과 실존을 강조하고 존재론적 문제,내면 탐구, 언어의 딜레마,의미와 무의미의 문제들에 천착해 시를 한층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문학과 삶의 본질적 관계를 재조명하여 삶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역설적으로 삶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 시의 존재 의의를 극대화한 것, 이것이 김춘수 시인이 지닌 시사적 의의이다.
그의 절대적 예술관은 한국시가 지닌 인식의 넓이와 깊이를 더없이 확장시켜지만 역사와 삶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온 한국 시의 현실에서 그의 유희정신은 부침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4. 꽃의 시인 일생 마감
김춘수 시인은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하여 등단하였으며, 초기의 시경향은 라이너마리어 릴케의 영향을 받았고, 1950년경부터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고 시를 써 <인식의 시인>으로 일컫어 졌다. 2004년 11월 29일 82세의 나이로 성남시 분당구 삼성 서울병원에서 지병으로 치료를 받아오다 작고하였다. 영결식은 2004.12.1.10시경 위 서울병원에서 시인 김종길,정진규,조영서, 김종해,심언주,류기봉 제씨 등 생전의 절친한 시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인장으로 치러졌다. 시인은 부인 명숙경이 묻혀있는 경기 광주공원묘지에 영면하였다.
5. 주요저서
구름과 장미(1948년)/ 늪(1950)/ 기(1951)/ 인인(隣人)(1953)/ 꽃의 소묘(1959)/ 부다페스트의 소녀의 죽음(1959)/ 타령조.기타(1969)/처용(1974)/김춘수시선(1976)/ 남천(1977)/ 비에 젖은 달(1980)/ 김춘수전집(1982)/ 처용이후(1982)/ 김순수시집(1986)/ 꽃을 위한 서시(1987)/ 너를 향하여 나는(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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