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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경전연구회 임제록 강좌 제5강 -4(2009.09.07)
14-9 有求皆苦(유구개고) 問(문) 如何是心心不異處(여하시심심불이처)오 師云(사운) 儞擬問早異了也(이의문조이요야)니 性相各分(성상각분)이로다 道流(도류)야 莫錯(막착)하라 世出世諸法(세출세제법)이 皆無自性(개무자성) 亦無生性(역무생성)하고 但有空名(단유공명)하야 名字亦空(명자역공)이어늘 儞祗麼 認他閑名爲實(이지마인타한명위실)하니 大錯了也(대착요야)로다 設有皆是依變之境(설유개시의변지경)이라 有箇菩提依(유개보리의)와 涅槃依(열반의)와 解脫依(해탈의)와 三身依(삼신의)와 境智依(경지의)와 菩薩依(보살의)와 佛依(불의)니라 儞向依變國土中(이향의변국토중)하야 覓什麼物(멱십마물)고 乃至三乘十二分敎(내지삼승십이분교)는 皆是拭不淨故紙(개시식부정고지)며 佛是幻化身(불시환화신)이요 祖是老比丘(조시노비구)니 儞還是娘生已否(이환시낭생이부)아 儞若求佛(이약구불) 即被佛魔攝(즉피불마섭)이요 儞若求祖(이약구조)하면 即被祖魔縛(즉피조마박)이니 儞若有求皆苦(이약유구개고)라 不如無事(불여무사)로다 有求皆苦(유구개고)라, 구함이 있으면 다 고통이 있다. 좋은 말이죠. 問(문) 如何是心心不異處(여하시심심불이처)오. 선심, 악심, 이 마음, 저 마음, 옳은 마음, 그른 마음이라고 하는 게 다르지 않은 그런 경지인가. 師云(사운) 儞擬問早異了(이의문조이요) 그대가 물으려고 하면은 그대가 그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려고 하면은. 심심불이처, 물었잖아요. 그게 궁금해서 물으려고 하면 벌써 달라져버렸다. 不異가 아니라 異다. 다르지 않아야 되는데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게 사실은 묻고 자시고 할 게 없으니까 공연히 거기서 갈려 나와 가지고 어떤 것이 심심불이냐 라고 그렇게 벌써 한 마음을 일으켜 가지고 묻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제 대답이 그대가 묻고자 하는 그 순간 벌써 벌~써 틀려졌다, 달라져버렸다. 性相(성상)이 各分(각분), 그리고 性과 相이 또 각각 나눠져. 물하고 물결하고 다른 걸로 본다 이거야. 전단나무 중생 모습을 만들었다고 해서 향기가 뭐 더럽고 불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향기가 더 좋고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거지. 性相(성상)이 各分(각분)이로다. 道流(도류)야 莫錯(막착)하라, 착각하지 마라. 세상과 출세간의 모든 법들(世出世諸法(세출세제법))이 皆無自性(개무자성)하며 모두들 자성이 없어. 무아이고 공이다 이거여. 현상은 전부 무아고 공이니까. 亦無生性(역무생성), 또한 태어나는 어떤 성품도 없어. 但有空名(단유공명)이야, 텅 비었다고 하는 이름 뿐이다. 현상은 그렇죠. 명자 字句일 뿐이야. 명자 이름 자꾸 붙히지마는 그 이름인들 뭐 있나.(名字亦空(명자역공)) 이름인들 뭐 있나, 그죠? 지어붙힐 때 잠깐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지. 儞祗麼 認他閑名爲實(이지마인타한명위실)하니, 그런데 그대들이 그렇게 祗麼(지마), 다만 그렇게, 그 부질없는 이름, 閑名(한명), 부질없는 이름을 오인해서, 認(인), 오인해가지고서 실다운 것을 삼으니. 그 부질없는 이름, 이름 한번 딱 걸어놓으면 그 이름에 그만 우리가 어떤 관념을 다 세워가지고서 거기에 그만 어떤 실다운 것이 있다, 삼으니, 그래서 이제 가짜 명품이 판을 치는 거지. 그놈의 이름 때문에, 브랜드 값 때문에. 그래서 그 브랜드 이름을 딱 달아놓으면은 그만 그게 가짠지 뭔지도 모르고 몇 백배 몇 천배를 더 주고 그만 그게 진짜인 줄 알고 그렇게 사는 거요. 그게 다 부질없는 이름이거든요. 大錯了也(대착요야)라, 크게 그르친 것이다. 設有皆是依變之境(설유개시의변지경)이라, 설사 있다 하더라도 그 말한대로 이름 붙힌 그대로 실지로 그런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皆是依變之境(개시의변지경), 의지해서 변화된 내 무위진인에 의지하여 변화된 가상의 경계다. 그래서 有箇菩提依(유개보리의), 보리라고 하는 의지처가 있고 涅槃依(열반의) 열반이라고 하는 의지처도 있고, 解脫依(해탈의), 해탈이라고 하는 의지처도 있어. 三身依(삼신의), 법신 보신 화신이라고 하는 그런 그 의지처도 있고, 또 境智依(경지의), 이건 지혜에요 그냥. 경계와 지혜라는 게 아니고 경계를 꿰뚫어 보는 지혜이기 때문에 그래서 경지라고 그냥 지혜를 그렇게… 지혜라고 하는 의지처. 菩薩依(보살의) 보살이라고 하는 의지처도 있고 佛依(불의) 佛이라고 하는 의지처도 있어. 그런 것이 있게 된다 이거여. 그건 전부 우리 의식이 만들어 낸 대상, 의식이 만들어 낸 보리요, 열반이요, 해탈이요. 그게 우리 의식으로 관념상에 만들지 아니하면 그게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경을 이렇게 자꾸 공부하고 뭐 워낙 참 높고 높은 불교고 위대한 불교고 대단한 세계고 뭐 저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뭐 너무 과분한 세계야. 그래서 경을 보면서 보리니 열반이니 해탈이니 법신 보신이니 뭐 보살이니 부처니 아라한이니 하는 그런 걸 경전, 그 높고 높은 어떤 성인의 말씀으로 설해 놓은 경전에 이런 말이 딱 정해져 있어서 이게 고정 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어요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알았어요. 보리, 아, 보리라는 거 있어. 열반, 열반도 있는 거여. 해탈도 있는 거여. 전부 우리 관념이 만들어 낸 거죠. 관념이. 관념이 만들어 낸 거라. 그래놓고 거기에 도달해 가려고 하는 거지.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것도 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런 거와 관련해서 하늘, 삼십 삼 천이니 도리천이니 도솔천이니 또 선정 이야기 할 때도 초선천, 중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이렇게 하늘 이야기를 해요. 그게 우리 禪을 할 거 같으면은 선의 어떤 정신 상태가 어떤 차원으로 어떻게 변화돼 간다 하는 것을 하늘로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건 그렇다손 치고 그 위에 도리천이니 도솔천이니 온갖 화락천이니 타화자재천이니 하늘 이름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그게 뭐 금성이요? 화성이요? 목성이요? 토성이요? 어느 하늘을 두고 하는 소리여 그게. 무수히 그런 하늘 이름을 경전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면서 그게 도대체 무슨 하늘이냐고? 지금 뭐 어지간히 다 밝혀졌잖아요. 그리고 뭐 천체망원경으로 파악한 수백억 광년 뒤 너머에 저 멀리 있는 그런 별들의 세계를 두고 이야기를 한 것인가, 아니면 그거하고 관계 없는 이야기인가. 경전에 가끔 보면 거기에 대한 해답이 있어요. 의성천이라고 하는 게 있어. 뜻 意 자, 그 다음에 이룰 成 자 하늘 天 자. 전부 우리 의식이 만든 하늘. 그래 우리 의식이 말하자면 보통 우리가 일상 생활을 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뭐 그런 데 대한 생각이 없지마는 옛날에 열심히 선정 수행을 많이 한 사람들의 어떤 정신 세계는 그런 것을 무한히 상상을 해 가지고 얼마든지 만들어 내요. 전부 意成이야. 뜻으로 우리 생각으로 마음이 만들어 낸 하늘, 여기에 이제 나열된 이런 명칭도 전부 의성이야, 의식이 만들어 낸 거죠. 특히 기독교에서 하느님 하는 것은 순전히 그게 의식화 된 의식이 만들어 낸 하느님이야. 의식이 만들어 낸 신이거든요. 너무 그렇게 하느님 하느님 하고 하니까 꼭 그 사람들은요 틀림없이 있는 걸로 생각합니다. 불교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그거 뭐 무슨 하느님이 어디있단 말이야 도대체. 하느님이 어디쯤에서 내려오고 올라가고 하느냐고.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우리 불자들은. 그런데 그 사람들은 틀림없이 있다고 뭐 밤낮없이 있다고 그렇게 하고 하느님이 우리를 어쩌고 저쩌고 한다고… 의식화 되면은 그렇게 됩니다 사람이. 그 一切唯心造라는 것도 거기에 좀 개입이 돼요 사실은. 우리 마음이 그렇게 자꾸 그런 식으로 그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있다고 그렇게 여겨지는 거야. 그럼 그다음 부터는 아 틀림없이 있는 거라고 죽어도 있다고 그렇게 생각이 드는 거지. 우리 마음이 요상한 거죠. 정말 마음이 요상한 겁니다. 여기서 임제스님께서 이런 말씀은 말하자면 우리 의식화된 모든 보리니 열반이니 해탈, 이거 전부 의지해서 변화된 경계다, 그런 말입니다 우리 무위진인이라고 하는 주인공, 거기에서. 그러니까 제발 좀 그 주인공 수처작주 그 자리를 잃지 말고 지키라 하는 것입니다. 그 지키는 게 우리는 의식적으로 생각을 하면 지켜지고 의식적으로 생각 안하면 벌써 경계 따라서 이제 흔들리는데 이게 좀 눈이 좀 더 밝아지면은 저절로 자기 자리에 자기가 있죠.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자기 자리에 자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의식이라는 게 참 이게 대단한 거요. 그래서 온갖 경전에서 많은 하늘을 이야기한 것은 전부 의성천 이야기야. 의성천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냥. 뜻 意 자, 이룰 成 자. 의식이 만들어 낸 하늘이다. 부처도 의성불이요 의성보살이요 우리 불교인들에겐 그거 많습니다. 부처님을 꼭 하느님 믿듯이 믿고 보살들도 꼭 하느님 믿듯이 그렇게 의식으로 만들어서 믿고 있어요. 사실 많습니다, 우리 불교안에도. 그래서 뭐 틀림없이 있는 걸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죠. 儞向依變國土中(이향의변국토중)하야 그대들이 의지해서 변화한 국토 중을 향해서, 온갖 세계죠, 세계를 향해서 覓什麼物(멱십마물)고 무슨 물건을 찾으려 하는가. 乃至三乘十二分敎(내지삼승십이분교)는 皆是拭不淨故紙(개시식부정고지)다. 참 이런 것도 참 아주 뭐라고 할까, 아주 냉정하고 아주 비정한 표현이죠. 정말 비정한 표현입니다. 拭不淨故紙(식부정고지)라, 똥을 닦는 휴지다. 똥닦는 휴지다. 삼승십이분교 저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똥닦는 휴지다. 佛是幻化身(불시환화신)이요 부처라고 하는 것은 저기 꼭두각시, 변화된, 환영으로 비친 그런 부처고. 祖是老比丘(조시노비구)야, 조사라고 하는 것은 늙은 비구지 뭐. 그거 밖에 달리 뭐 있나. 儞還是娘生已否(이환시낭생이부)아, 그대는 또한 이 어머니가 낳아준 사람이잖아. 그대들은 또한 어머니가 생생하게 낳아준, 다시 말해서 확실한 존재잖아 지금. 뭐 부처나 조사나 삼승십이분교 그거는 다 그런 거 아니여 삼승십이분교는 전부 똥닦는 휴지고, 부처는 환영에 비친 모습이고 환영이고 조사라고 하는 건 노비구에 불과한 것이고 그런데 지금 생생하게 살아있는 어머니가 낳아준 확실한 사람이잖아 확실한 존재잖아. 그대들은 또한 이 娘生已否(낭생이부) 어머니가 낳아준 사람이 아닌가. 儞若求佛(이약구불)하면, 그런 존재로서 그대들이 만약에 부처를 구하면, 即被佛魔攝(즉피불마섭)이요 부처라고 하는 마구니의 포섭함을 입을 것이고 儞若求祖(이약구조)하면 그대들이 만약에 조사를 구할 거 같으면 即被祖魔縛(즉피조마박)이다, 조사라고 하는 마구니의 속박을 당할 것이다. 儞若有求皆苦(이약유구개고)라 그대들이 만약에 구함이 있으면 다 고통스러워. 不如無事(불여무사)니라 무사한 것만 같지 못하다. 일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아 참 법문, 큰 법문이죠 정말 뭐 이런 아주 청천벽력같은 맑은 하늘에 벼락치는 듯한, 진도 한 천 도 쯤 되는 지진, 지진이 난 것 같은, 정말 우리 상식적인 어떤 그 불교인의 의식에는 이런 법문은 정말 어마어마한 천지를 정말 완전히 발칵 뒤집어 놓는 그런 법문입니다, 이거 보통 법문이 아니에요. 14-10 형상없는 것이 참 형상이다 有一般禿比丘(유일반독비구)하야 向學人道(향학인도)호대 佛是究竟(불시구경)이니 於三大阿僧祇劫(어삼대아승지겁)에 修行果滿(수행과만)하야 方始成道(방시성도)라 하니 道流(도류)야 儞若道佛是究竟(이약도불시구경)인댄 緣什麼(연십마)하야 八十年後(십팔년후)에 向拘尸羅城雙林樹間(향구시라성쌍림수간)하야 側臥而死去(측와이사거)며 佛今何在(불금하재)오 明知(명지) 與我生死不別(여아생사불별)이니라 儞言(이언), 三十二相八十種好是佛(삼십이상팔십종호시불)이라하니 轉輪聖王(전륜성왕)도 應是如來(응시여래)라 明知是幻化(명지시환화)로다 古人云(고인운) 如來擧身相(여래거신상)은 爲順世間情(위순세간정)이라 恐人生斷見(공인생단견)하야 權且立虛名(권차입허명)이로다 假言三十二(가언삼십이)하고 八十也空聲(팔십야공성)이니 有身非覺體(유신비각체)요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이로다 형상없는 것이 참 형상이다 有一般禿比丘(유일반독비구)하야, 일반 머리깎은 비구가 있어서 向學人道(향학인도)호대, 학인도호대, 학인을 향해서 말하대, 佛是究竟(불시구경)이다, 부처가 최고다 라고 하나니. 三大阿僧祇劫(삼대아승지겁)에 修行果滿(수행과만)하야 , 그 최고의 부처, 구경 자리에 오른 그 부처는 삼대아승지겁동안 수행과만이여, 수행해서 그 결과가 가득해. 삼아승지겁을 닦아야 부처가 된다. 方始成道(방시성도)야, 바야흐로 비로서 도를 이룬다 이뤘다 하나니. 道流(도류)야 儞若道(이약도) 그대가 만약에 말하기를 佛是究竟(불시구경)일진댄, 부처가 최고다, 최고라고 할진댄 緣什麼(연십마)하야 무엇을 인연으로, 왜, 이런 뜻이죠. 왜 八十年後(팔십년후)에 拘尸羅城(구시라성)을 向해서 雙林樹間(쌍림수간)해, 구시라성을 향해서 쌍림수간, 사라쌍수 사이를 향해서 側臥而死去(측와이사거), 옆으로 누워가지고 죽어 자빠졌느냐. 부처가 그렇게 구경이고 부처가 최고라면서 삼아승지겁을 수행해가지고 비로소 성도한 그런 존재라면서 어째서 팔십년 후에는 팔십년 살다가 사라쌍수 사이에 옆으로 누워서 자빠져 죽었느냐 이말이여. 허 참. 佛今何在(불금하재)오, 부처는 지금 어디있느냐. 明知(명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與我生死不別(여아생사불별)이니라, 우리들의 삶과 죽음하고 무엇이 다르냐 이거여. 우리도 한 백 년 후에 죽어 자빠질 거여. 지금 의학이 발달했으니까 한 백년은 살겠지. 어쨌든 뭐 그 정도 되면 살만치 살다가 다 죽어 자빠지는 우리들하고 무엇이 다르냐. 달라요? 똑같다 이 말이여. 아 이런 법문을 누가 하겠어요. 그래서 임제 이전에 임제 없고 임제 이후에 임제 없다. 참. 이러면 우리 마음이 자꾸 이제 간댕이가 부어. 좀 간이 부어야 돼요 사실은 우리가. 이 불법에 있어선 간이 좀 부어야 돼. 엉뚱한 데 간 붓지 말고 이런 데는 간이 좀 부어야 마음이 자꾸 커지고 大器, 큰 그릇, 앞에서 나왔죠. 큰 그릇이 되고 대장부가 되는 거여. 이렇게 좋은 교재를 갖다가 교과서로 안하고 참… 그래서 교과서 하라고 내가 교재를 이렇게 잘 만들어 가지고 한문에 좀 약한 우리들 보기 좋게 이렇게 해 놨구만… 아 대단하죠, 이것 참. 내용을 보면 이거 아무에게나 가르쳐서는 안 될 것이기도 해, 어떻게 보면은. 하지마는 아무에게나 가르쳐서 이 법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눈을 뜰 수 있도록 그렇게 해 줄 필요가 또 있기도 하고 참 갈등이네요 그러고 보니까. 아무에게나 가르쳐 줘서는 안될 것 같기도 하고 儞言(이언) 그대가 말하기를 三十二相(삼십이상)과 八十種好(팔십종호)가 是 부처라 하나니 轉輪聖王(전륜성왕)도 應是如來(응시여래)라, 그렇다면은 전륜성왕도 응당히 여래겠구나. 明知是幻化(명지시환화)로다,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환화야, 허망한 몸뚱이 가지고 있다가 그냥 팔구십 년 뒤에 죽어 자빠지는 거야. 그것 밖에 뭐가 또 있느냐 이거지. 아이구 겁나. 아 정말 겁나요. 이런 법문은 내가 참 좋아서 하기는 하는데 내 그릇이 아직 이것을 확실하게 담을 만한 게 못되는지 때로는 말해 놓고도 좀 겁이 나기도 하고 그래. 결국은 뭐 책임은 임제스님한테 있지 나한테 있는 건 아닌데 아닌데도… 古人云(고인운) 고인이 말하기를 如來擧身相(여래거신상)은 여래의 모든 신상은 爲順世間情(위순세간정)이라 세상의 정을 말하자면 따른 것이다. 恐人生斷見(공인생단견)하야 사람들이 단견을 낼까 두려워서 텅비고 공한 것이다 라고 두려워서 權且立虛名(권차입허명)이로다 방편으로 헛된 이름을 세웠다. 그래서 부처님 부처님 하는 거에요 우리는 살아 있는 부처님으로 늘 생각하고 불상이지마는 살아있는 부처님이다 고 생각하고 예배하는 거야. 그리고 모든 경전은 특히 대승 경전은 소승 경전이라 해도 그게 부처님 열반한 후 삼백 년 경에 편찬이 됐으니까 누구 소리가 누구 생각이 얼마나 개입됐는지 뭐 알 수가 없죠. 특히 대승경전은 오백 년 육백 년 경에 결집이 된 것이니까 그거는 더 말할 나위 없이 그 당시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기 위해서 정말 그렇게 조직적이고 아주 치밀한 이론을 거기다 넣어서 그렇게 경전이 성립돼 있거든요. 그렇지마는 우리는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그대로 생각을 하고 공부하는 거에요. 그게 뭐 경전 성립사적인 입장에서 불멸 오백 년 육백 년 심지어 뭐 일 세기나 지나서 일 세기가 뭐여 십 세기나 지나서도 결집된, 천 년이 지난 뒤에도 결집된 경전이 있다. 심지어 뭡니까 천지팔양경, 우리 나라에서 만든 천지팔양경 같은 경전도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이다 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읽는 거요. 우리 자세는 신앙인의 자세는 그게 다른 거라. 학자들은 그대로 그냥 파헤쳐 가지고 그렇다 라고만 말하는 게 학자의 자세라면은 우리 신앙인은 수행인은 누가 해 놨든지 간에 언제 결집이 됐든 간에 그대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읽으니까 신심이 나고 재미가 있고 거기에 깨달을 게 많고, 학자들은 그 경전 연구해서 밥벌이 하니까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니까 전혀 달라요 그러니까 우리 스님들은 저기 교수들 학자들, 이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들 뭐 역사 쪼가리 한 두개 가지고 연구해 가지고 허 이런 것인데 스님들은 무식해서 말이야 무슨 대승경전이 어떻게 결집됐는지 그것도 알지도 못하고 말이야 부처님이 설했다고 한다고 … 이런 소리 하거든요 그 사람들은. 그거 누가 모르나 그거 다 알지. 알지마는 우리는 신앙인이니 때문에 그대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읽으니까 그냥 환희심이 나고 신심이 나고 그게 깨달을 것도 많고 그게 내 인생의 양식이 되는 거지. 그 사람들은 그걸 가지고 정말 밥벌이하는 거죠 그건. 그러니까 그걸 그냥 되지도 않는 지식가지고 그저 파헤치는데 파해쳐서 그냥 쪼가리 쪼가리 내는데 불과한 거에요. 그거 잘 조심해서 우리가 들어야 됩니다. 그런 이론들 너무 많잖아요 요즘. 또 학교 가서 어줍지 않은 그런 소리 또 몇 마디 들어놓으면은 그거 듣고 와가지고 절에 돌아와 가지고는또 그런 소리 한다. 뭐 신기한 소리 들었다고. 아 우리 강원에서는 이런 소리 못들었는데 말야 학교 가니까 이런 소리 하더라 해 가면서 그래 와서 되지도 않은 소리 그렇게 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생각이 부족한 것은 미처 모르는 거야. 대학교 교수 라고 하면은 뭐 최고인 줄로 생각하는 거야. 절에 강사라고 하면 뭐 아주 저 낮춰서 보고. 그런 역사적인 사실을 잘 알지마는 우리는 그대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이라고 그렇게 신심을 담아서 읽는 거에요 천지팔양경 까지도. 예를 들어서 뭐 지장경이라든지 부모은중경이라든지 목련경이라든지 이런 것은 순전히 중국에서 효 사상에 맞추어서 만들어진 경전이에요. 진짜 효사상이거든 이거는. 효사상이 불교에 그렇게 있어야 불교가 살아 남는 거요. 충효를 위주로 하고 있는 중국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그런 효도 이야기가 없으면은 불교가 발 붙히기가 좀 힘드는 거야. 우리나라는 청우경이니 기우경이니 그런 거 많이 있잖아, 막 만들잖아. 가물면은 비를 내리게 하는 請雨經. 또 빌 祈 자 비를 비는 경. 이거 전부 우리 나라에서 마음대로 만든 거야. 그렇더라도 그거 읽을 때는 이건 여시아문하사오되 이렇게 시작하거든, 그래 부처님이 설하신 것으로 그대로 믿고 믿고가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읽는 거요 우리는. 누가 이익하겠어 그게. 경전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權且立虛名(권차입허명)이야, 사람들이 단견을 낼까 두려워서 방편으로 헛된 이름을 세우는 도다. 假言三十二相(가언삼십이상)하고 八十也空聲(팔십야공성)이다, 거짓으로 삼십 이상을 이야기해, 삼십 이상 거짓말이래요. 하하하하… 팔십종호도 헛된 소리래. 헛소리래, 헛소리. 有身(유신)이면 非覺體(비각체)요, 身이 있으면은 그건 覺體가 아니요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이다. 형상이 있는 몸 그거는 깨달음의 체가 못된다 이거지. 실체가 못된다 이거여. 왜냐, 형상있는 몸에만 팔리니까 삼십 이상 팔십 종호 뭐 삼천 이백 상과 팔억 종호를 설사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거는 외형이야, 몸뚱이야. 그건 각체가 아니야. 마음의 체가 아니다 이거지. 無相乃眞形(무상내진형), 형상없는 몸이야말로 진짜 이제 형상이다 그랬습니다. 아 이거 법문이 아주 너무 우렁차고 참 힘이 넘치고 용기 백배 하고 뭐 이런 내용들로 일관돼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불교를 전래해준 우리 선사 스님들은 전부 이 정신, 이 사상, 이것이 좋다고 그렇게 껌뻑 넘어가게 좋아했고 그래서 임제스님의 몇대손이라고 부처님의 몇대손도 아니고 달마스님이 몇대손도 아니고 뭐 육조스님의 몇대손도 아니야. 그저 임제스님의 몇대손이라고 비석 비석마다 다 그렇게 기록을 해서 그것으로 자랑삼았던 우리 선사스님들의 그 마음을 이런 데서 좀 읽고 우리도 좀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첫댓글 有身非覺體(유신비각체)요 無相眞形(무상내진형)이로다. ㅡ 형상이 있는 몸은 깨음의 체가 못되며, 형상 없는 몸이야말로 진짜 형상이다. 禪慧珠보살님 고맙습니다._()()()_
儞若有求皆苦(이약유구개고)라 不如無事(불여무사)로다...고맙습니다. _()()()_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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儞若有求皆苦라 不如無事로다..그대들이 만약에 구함이 있으면 무사한 것만 같지 못하니라..선혜주 님!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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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무상내진형
구함이 있으면 모두 고통이 따른다.()()(().
부처가 그렇게 구경이고 부처가 최고라면서 삼아승지겁을 수행해가지고 비로소 성도한 그런 존재라면서 어째서 팔십년 후에는 팔십년 살다가 사라쌍수 사이에 옆으로 누워서 자빠져 죽었느냐 이말이여. 허 참. 부처는 지금 어디있느냐.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아주 청천벽력같은 맑은 하늘에 벼락치는 듯한, 진도 한 천 도 쯤 되는 지진, 지진이 난 것 같은, 정말 우리 상식적인 어떤 그 불교인의 의식에는 이런 법문은 정말 어마어마한 천지를 정말 완전히 발칵 뒤집어 놓는 그런 법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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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우리 마음이 자꾸 이제 간댕이가 부어. 좀 간이 부어야 돼요 사실은 우리가. 이 불법에 있어선 간이 좀 부어야 돼. 엉뚱한 데 간 붓지 말고 이런 데는 간이 좀 부어야 마음이 자꾸 커지고 大器, 큰 그릇, 앞에서 나왔죠. 큰 그릇이 되고 대장부가 되는 거여.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有求皆苦 ... _()_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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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 .무위진인 ...놓치지 말아야 겠습니다. _()()()_
고맙습니다
儞若有求皆苦 不如無事
佛今何在 明知 與我生死不別 ... _()_
선혜주님 고맙습니다_()__()_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有求皆苦.......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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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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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南無無位眞人 南無無位眞人 南無無位眞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