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사실상 망명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녀에 대한 것은 너무도 많은 것들이 베일에 싸여 있다. 따라서 적절한 수준들의 정보가 수집될 때까지 본 게시물을 위치 확보용으로만 배치해 둠.
수짜리니 왕자비와 마하 와치라롱꼰 태국 왕세자 사이에는 4남 1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딸 1명만 왕세자가 태국으로 데려가 공주 품계를 제수받게 했고, 나머지 아들들은 자신의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하는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들 중 정리된 사항들만 간추려보았다. [번역 및 편집: 크메르의 세계] |
태국 왕세자의 2번째 부인 : 수짜리니 마히돈 전 왕자비
Sujarinee Mahi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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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유와티타 뽈빠셋의 젊은 시절 모습들. |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관련 내용 발췌 번역본
(사진) 드물게 남아있는 수짜리니 왕자비와 왕세자 소생 자녀들의 가족사진.
1970년대 말부터 마하 와치라롱꼰(Maha Vajiralongkorn) 왕세자는 여배우 유와티타 뽈쁘라셋(Yuvadhida Polpraserth: 별명-'몸 벤츠'[Mom Benz])과 동거를 시작했고, 몇명의 자녀들을 출산했다.
왕세자의 첫번째 부인이었던 솜사왈리 끼띠야꼰(Soamsavali Kitiyakara) 왕자비는 수년 동안 이혼을 거부했지만,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1993년 1월 "가정법원"에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솜사왈리 왕자비가 부부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왕실모독 처벌법>의 조항 때문에, 솜사왈리 왕자비는 반론을 펼 수 없었다. 이혼소송은 1993년 7월 종결되었다. 하지만 솜사왈리 왕자비와 장녀인 파차라끼띠야파(Bajrakitiyabha) 공주는 여전히 왕실행사에서 주요한 위상으로 참여하고 있다.
왕세자가 처음 유와티타 뽈쁘라셋을 소개받았을 때, 그녀는 야망에 찬 여배우였다.
그녀는 왕세자의 확고한 동반자가 되었고, 첫번째 아들인 쭈타와촌 마히돈(Juthavachara Mahidol, จุฑาวัชร มหิดล: 1979-8-29일생) 왕자도 출산했다. 이후 그녀는 3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더 낳았다. 1994년 2월 왕세자와 유와티타 뽈빠셋은 왕궁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라마 9세) 국왕과 그 모친인 시나크린타(Srinagarindra, ศรีนครินทรา: 1900-1995) 왕대비도 이 결혼을 축복했지만, 시리낏(Sirikit) 왕후는 축복을 하지 않았다.
유와티타 뽈빠셋은 결혼식을 올린 후, 평민출신 왕자비의 품계관행에 따라 "멈 수짜리니 마히돈 나 아유타야"(Mom Sujarinee Mahidol na Ayudhaya)를 제수받았다. 수짜리니 왕자비는 육군 소령 계급도 함께 받아, 와치라롱꼰 왕세자와 함께 군대의 행사들에도 참석했다.
1996년 수짜리니 왕자비가 자녀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망명하자, 와치라롱꼰 왕세자는 왕실 주변에서 그녀가 공군중장인 아난 롯삼칸(Anand Rotsamkhan: 당시 60세)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소문을 흘렸다. 왕세자는 자녀들 중 딸을 납치한 후 태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도록 했다. 이 딸은 나중에 공주 품계에 올랐지만, 수짜리니 왕자비와 아들들은 외교관여권도 말소되었고, 왕실 품계들도 모두 박탈당했다. 수짜리니 왕자비와 아들들은 나중에 다시 미국으로 이주했다.
2007년 현재 수짜리니 왕자비는 여전히 "수짜리니 위와차라웡"(Sujarinee Vivacharawongse, สุจาริณี วิวัชรวงศ์)으로 불리고 있다.
○ 수짜리니 마히돈 왕자비 사이의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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